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36화 (36/183)

36화

클래스 세부 카테고리

『히든 스탯이 행운이 움직입니다.』

“초록…색이라고?”

가장 넓은 붉은색 칸 옆에 가장 좁은 룰렛의 칸. 그 칸의 중앙에 정확하게 바늘이 멈춰있었다. 어설프게 걸쳐서 색을 구별하기 어려울 걱정은 하지 말라는 듯, 정확하게 중간에.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당연해? 초록색인데?! 뭐가 당연해! 이건 완전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대박!”

레드, 오렌지, 옐로를 지나야 도달할 수 있는 랭크가 그린이다.

[이걸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까요? 설명해도 되는지가 걱정인데. 일단 해보겠습니다. 마스터에게 부여된 클래스는 ‘유일’입니다. 오직 하나뿐이라는 거죠. 지금까지 각성한 각성자는 물론이고 앞으로 각성할 각성자 누구도 [영주]라는 클래스는 얻지 못합니다. 그게 바로 유일입니다.]

“어. 그래.”

제법 중요한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아서 방방 뛰던 행동을 멈추고 침대 끝에 걸터앉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마스터는 영혼 귀속 페널티를 가지고 계십니다. 즉, 마스터께서 사망할 경우 앞으로 지구의 각성자 누구도 [영주] 클래스를 얻지 못한다는 뜻이 됩니다. 영원히요.]

“흠.”

[이건 ‘침공’을 방어하는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귀중한 패를 하나 소멸시키는 셈입니다. 체스로 치면 퀸 두 개를 빼고 시작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영주]라는 클래스가 그 정도인가? 그 정도이다. 그건 인정이다. 내가 준비를 철저하게 했고, 미리 대비를 했다지만, 첫날 5만이 넘는 그린스킨을 전멸시켰다. 그게 다 [영주] 클래스 때문이다.

[지구의 입장에서 영혼 귀속 페널티는 상당한 출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당 페널티를 고려한 룰렛에서는 가장 좋은 게 나올 수밖에요. 물론 나중에 혹시 모를 인과율의 감사에서 말이 나오지 않기 위해서 칸은 제일 좁았지만 말이죠.]

“허어?”

[일종의 눈 가리고 아웅인 거죠.]

결과적으로는 내게 이득이니 됐다. 그것도 엄청!

물론 고유 능력이 그린 랭크라고 해서 내가 당장 무쌍을 찍을지는 알 수 없다. 고유 능력이 모두 전투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점에서 그린 랭크는 무조건 이득이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냐고?

랭크란 그런 거다.

화이트(White) 맥스를 찍은 각성자가 막 레드(Red) 랭크를 달성한 각성자를 이기는 것? 가능하다. 충분히.

레드(Red) 랭크 맥스를 찍은 각성자가 막 오렌지(Orange) 랭크를 달성한 각성자를 이기는 것? 가능하다. 어쩌면?

그럼 오렌지(Orange)와 옐로(Yellow) 사이에는?

불가능에 가깝다.

옐로(Yellow)와 그린(Green)은?

절대! 결단코!

그린스킨 천(千) 급 간부가 엘리아나에게 끔살당했다. 왜?

몇 번 언급한 것 같은데, 각성자가 생겨도 화이트 혹은 레드 랭크가 고작 시기인 침공 첫날, 엘리아나가 옐로(Yellow) 랭크에 맥스였으니까 가능했던 거다. 레드 랭크의 마력에 죽어 나가던 일반 그린스킨과 다르게 천 급 간부 놈들은 레드 랭크 최상 혹은 오렌지 초입이었을 거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그린 랭크 고유 능력은 더는 말할 필요가 없을 만큼 좋다.

마치 우리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멈춘 룰렛의 각자 색으로만 채워진 칸에 숨겨진 글자가 나타난다.

[내정(Domestic Affairs)]

[경제(Economy)]

두 개의 붉은색 칸에 나타난 글자다. 그리고 주황색 칸에는,

[매력(Magnetism)]

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두 번째로 높은 색인 노란색 칸에는,

[무력(Force)]

라는 글자가 볼록 솟아있었고 마지막으로 내가 원했던 초록색 칸에는,

[만능(Almighty)]

이라고 적혀있었다.

“만능?”

『세부 카테고리 만능(Almighty)이 개방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지구 각성자 중, 최초로 세부 카테고리를 개방하셨습니다.』

────────────────

만능(Almighty)[Rank: Green]

영주는 여러 유형으로 나뉜다. 내정에 치중해 영지를 부유하게 만드는 영주. 경제적으로 부유한 영지를 만드는 유형. 카리스마로 가신의 충성을 끌어내는 유형. 전투에서 앞장서서 본을 보이며 강렬한 유형까지.

어떤 유형이라도 최선을 다하면 영지는 부유해집니다.

그러나 그 모든 유형을 아우르는 영주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내정과 경제로 영지를 부유하게 하고, 휘하에 훌륭한 인재를 받아들이고, 전투에서 승리를 가져오는 영주.

영지를 넘어 대영지 그리고 결국엔 하나의 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영주.

이런 영주를 우리는 만능형 영주라고 불렀습니다.

Rank: Green(WROY[G]BNPA) ― 다섯 번째 단계

1. 영지에서 생산하는 모든 생산량이 [100%(0.2×5)] 증가합니다.

2. 영지에서 획득하는 모든 종류의 재화 획득량이 [25%(0.05×5)] 증가합니다.

3. 특수 병종과 간부 계급 병종 고용에 들어가는 비용이 [50%(0.1×5)] 감소합니다.

4. 영주가 참여한 전투 시 모든 소속 병과의 신체 스탯이 [50%(0.1×5)] 증가하고, 특수 스탯이 [25%(0.05×5)] 증가합니다.

5. 전투에 참여한 영지민의 수에 따라 영주의 모든 스탯이 상승합니다.

6. 이제부터 [영지 관리]의 기능이 향상됩니다. 영지 건물의 기능이 [잠금]이 모두 해금됩니다.

────────────────

“허어?”

[만능형 영주는 솔직히 말하면 대전쟁의 시대에 위대한 정복왕의 시작이며, 패시브이며, 전제조건인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지금 지구의 상황에도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기도 합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각성자들에게 지금 지구의 상황은 게임이나 영화로 치면 아포칼립스물인데, 내게는 영지 시뮬레이션 게임 정도의 난이도?

“이제는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그 너머를 봐도 되는 건가? 생존이 아닌 승리 혹은 그 이후를?”

[그렇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그걸 위해 우리가 노력한 거고, 제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다시 일어날 겁니다.]

마치 알에서 깨어나 성장한 새끼를 보는 어미 새처럼 반지 안에 담긴 에고의 목소리에는 전에 없던 희망과 대견함이 절절하게 흐른다.

“그런가.”

그렇게 종말이 시작된 둘째 날.

나와 지구의 의지에서 태어난 에고는 조금 이른 희망을 품었다.

『히든 스탯 행운이 소폭 상승합니다.』

* * *

침식자가 부천에 똬리를 틀었다는 것과 그들이 어딘가 이상하고 불길하다는 걸 가장 먼저 알아차린 이들은 제법 가까운 곳이 있는 이요한과 그의 휘하 각성자들이 아니었다.

“저것들도 각성자라는 초능력자요?”

“아닌 것 같습니다.”

아직은 존재하는 정부의 인사들이었다. 특히나 용케도 아직 멀쩡한 인공위성으로 특이사항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등장한 괴물에 놀라고, 뜬금없이 넓어진 영토에 기겁하고, 그 영토에서 괴물들이 무더기로 죽어가는 것에 경악했다.

그렇게 이요한의 영토를 집중적으로 확인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아래에서 급변하는 침식자들의 행동을 누구보다 빠르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 저건 뭔가? 저기 괴물이 사람을 따르는 건 뭐지?”

당황한 얼굴로 질문을 퍼붓는 사람은 대한민국의 31대 대통령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이 짙게 배어있었다.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생존자를 공격하는 걸 보면 각성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같은 화면을 보고 분석한 바를 보고하는 남자의 대답은 사실 틀린 답이었지만, 어느 정도는 또 맞는 대답이기도 했다.

무슨 소리냐고?

생존자를 공격한다고 각성자가 아닌 게 아니다. 각성자 중에도 생존자를 공격해 강압적으로 지배하고 여러 행태로 착취하는 이들이 있으니까 말이다.

침식자가 태생이 개자식이고, 자신이 싸패인 걸 드러낸 사람들이라면, 위에 설명한 각성자들은 자신의 본성을 숨기고 살아다가 운이 좋게 각성한 각성자들이다.

이들에게는 오히려 이렇게 도덕과 사회적 통념이 무너진 상황이 반가울 거다. 자신이 마음껏 날뛸 수 있으니까.

아무튼, 그런 존재들은 다시 등장하면 설명하기로 하고, 대통령과 그 가족 그리고 수하들이 숨어 있는 지하 벙커에서 모든 사람이 경악하며 지켜보는 화면에 변화가 생긴 것도 그때였다.

“어? 어어?”

“저 방향은……!”

“서울 아닙니까?!”

침식자의 무리들이 뒤에는 수천의 그린스킨 무리를 이끌고 동쪽을 향해 움직였다. 그 방향이 꼭 서울 방향이라고는 볼 수 없다. 부천시 남쪽에서 동쪽은 광명시도 있고, 아래쪽으로 더 이동하면 과천시나 안양시도 있으니까.

실제로 이 차대두의 침식자들은 서울이 아니라 안양에 있는 교도소를 향해서 이동할 계획을 하고 있었다. 거기서 추가로 대량의 침식자를 만들고 안양에서 과천을 거쳐 서울로 진입하는 게 차대두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난리 속에서 영상까지 제작해서 공개한 이요한의 경고이자 당부를 무시하고 그저 벙커에 숨어서 벌벌 떠는 이 늙은 정치인들의 눈에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저, 저, 저 괴물들이 서울로!!”

괴물 같은 놈들이 괴물을 이끌고 서울 방향을 향해서 이동하고 있다는 게 더 중요할 뿐이다.

“어, 어떻게 할까요? 대통령님?!”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당신이 알아서 계획을 세워서 내게 보고를 해야지!!”

자신이 겁을 먹었다는 걸 들키기 싫은 건지, 아니면 겁을 잔뜩 집어먹고 울고 싶은 건지 얼굴이 붉게 물들 정도로 바락바락 고함을 지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이요한이 영상으로 설명까지 해가면서 각성하라고 했음에도 시도조차 하지 않은 인간들이 이곳에 숨어 있는 이들의 태반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나. 답이 없는 인간들이다.

“경호처장! 저것들! 저것들이 이곳에 쳐들어오면 막을 수 있겠소?”

“불가능합니다.”

물론 전부 비각성자인 건 아니다. 청와대 경호처장을 비롯한 경호실 직원들은 사망자를 제외하고 모두 각성자가 되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경호처장이면 그에 맞는 대답을 하라고!”

어디선가 돼지가 멱을 따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경호처장은 무시했다. 그리고 그는,

“저와 경호실 전원을 더는 멍청하게 여기서 숨어서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벙커에 경악이 내려앉을 법한 폭탄을 투하했다.

“뭐? 뭐뭐?! 무슨 소린가!!”

“한마디로 당신들이 한심하단 소리입니다. 이요한 회장의 영상을 저만 봤습니까?”

경호처장의 입장에서는 속이 터지다 못해 암에 걸릴 것 같은 상황이었다. 더 안전한 상황을 마련하기 위해서 그린스킨 사냥을 종용해봤지만, 이 겁쟁이들은 절대 불가를 외치며 벙커 안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서 바라는 것은 엄청 많았고, 안전에 대해서 요구하는 사항은 점점 늘어갔다. 자신들이 각성자가 아니어도 스트레스에 버리고 갈 판인데, 각성자가 된 상황이다. 굳이 이들을 안고 갈 필요가 없다.

“들은 대로요. 그리고 한 번만 더 소리를 지르면 나도 참지 않겠소.”

“히, 히익!!”

조금 전 바락바락 소리를 치던 돼지는 마력을 담은 살기 어린 눈빛에 기겁하다가 기어이 바지에 지리고 말았다.

“그러니 함부로 나서지 마시오.”

거기까지 말한 경호처장은 자신에게 소리를 지른 돼지에게서 눈을 돌려 대통령을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 알아서 잘 버티시길 기원합니다. 대통령님.”

“이, 이보게!”

대통령은 마치 시장통에서 부모의 손을 놓친 아이처럼 반사적으로 경호처장의 손을 부여잡고 애원하듯이 부탁했지만, 이미 경호처장의 눈에는 대통령과 그 측근을 향한 감정이 조금도 보이지 않은 상태였다.

“국가에 충성하기로 했지 않은가!”

“이 상황에서 국가가 무슨 소용이란 말이오.”

민정수석. 일반적인 상황 아니, 고작 사흘 전만 해도 경호처장이 감히 말대답도 할 수 없는 사람에게도 거침없었다.

“그럼 마지막 부탁이라도 들어주게.”

그리고 민정수석 역시 그 부분을 지적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이라는 단서를 달아가면서 이 상황에서 최선의 수를 내기 위해 애썼다. 어떤 의미에서는 대통령보다 훨씬 나은 상황 판단이다.

“이요한 회장. 그의 땅에 가서 이곳 상황을 알리고, 지원을 부탁해주게.”

정치 9단, 여당의 여우라고 불리던 그의 수는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대통령님과 우리가 아직 멀쩡히 살아있다는 것과 대한민국 정부가 그대로라는 것을 알려주게.”

어디까지나 그럴 듯만 해 보인 거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