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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38화 (38/183)

38화

<혼잔 줄 알고 쫄았다가도 두 팔 벌려 환영받아야 하는>

시간을 조금 더 돌려서 종말이 시작되고 세 번째 날.

침식자 무리가 그린스킨을 대동하고 부천 시내를 점령하고 이동을 시작한 이른 아침.

“정말……. 정말 갔군요.”

청와대와 지하 통로로 연결된 넓고 견고한 벙커 안에는 누군가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낮게 깔렸다.

“아무리 급조된 경호처장이라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경호처의 장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을 두고!!”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꽉 막힌 벙커 내부를 웅웅 떨리게 할 정도로 분노를 토해내는 사람도 있었고,

“아니겠죠? 곧 돌아올 거예요? 그렇죠?”

울먹이면서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치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를 여기저기서 두서없이 중구난방으로 표현하는 분위기가 이어지다가 이내 불편하고 묵직한 침묵이 내려앉는다.

옷이 스치는 소리마저 선명하게 들릴 정도로 절망이 가득한 침묵 속에서,

“이제…….”

누군가 그렇게 운을 뗐다가 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벙커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가 하려다가 멈춘 말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이제 어쩔 거냐.’

민정수석의 부탁 아닌 부탁에 이제는 ‘전’ 경호실장이 된 청와대 경호실 인원은 모두 청와대를 벗어났다. 정확히는 청와대가 아니라, 이 넓고 튼튼한 벙커를 벗어난 거지만, 자신들의 지휘 체계를 벗어났다는 건 확실하다.

그러니 이제 어쩔 거냐는 본심이 자신도 모르게 튀어 나온 건 어쩌면 당연할 거다. 다만 이 안에서 그 질문에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지만.

“이요한 회장이 제발 ‘옳은’ 선택을 하길 바라야겠지요.”

누군가 기도하듯이 그렇게 중얼거리는 말이 여기 모인 한때 대한민국 권력의 정점에 있던 정치인들의 마음과 같았다. 이요한이 자신들을 보호해주는 게 ‘옳은 선택’이라고 믿는 것도 같은 마음이었고 말이다.

“그는 옳은 선택을 할 겁니다.”

“그래요.”

“맞아요!”

다시 말하지만, 여기 있는 이것들은 애시당초 죄다 글러쳐먹었다.

* * *

종말이 시작됐을 때, 대통령 앞에서 잘 보이고 싶어서 ‘지랄’하다가 뒈진 전 경호처장은 대통령이 꽂아 넣은 일명 낙하산 같은 인물이었다. 경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이 손바닥을 잘 비비는 인물.

그리고 그런 모자란 상사를 대신해서 경호처 실무를 관장한 사람이 바로 김준이었다. 당연히 이 난리가 나고 각성자까지 되자 그를 부랴부랴 경호처장이라는 장관 급으로 올렸지만, 김준은 거기 머물고 있을 마음이 없었다.

‘어휴. 답도 없는 것들. 진짜.’

청와대 벙커를 나서는 순간까지도 답이 없었다. 김준은 청와대를 떠나면서 작은 배려를 해주려고 했다. 각성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각성을 도와주겠다고 했던 것.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사람을 뭘로 보고! 나는 그런 험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네!”

“그런 건 그런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죠!”

“저, 전 모, 못해요!”

이딴 대답들이나 하고 있으니, 정이 붙을 리가 있겠나.

대통령 경호처장을 사임하고 청와대를 벗어난 김준은 172명의 경호처 인원을 이끌고 서울 중심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종말이 시작된 한국 시각 오후 8시를 지군으로 800명에 가까웠던 대통령 경호처 인원 중, 교대인원으로 절반 정도가 근무 중이었고, 다시 그 중 절반이 넘게 죽고 남은 인원이 172명이었다.

민정수석의 부탁이 아니라도 김준은 이요한 회장이 있는 땅으로 향하려고 했다. 생각해보라. 지금 같은 상황에서 고작 200명도 안 되는 인원이 청와대를 벗어나서 어디에 머물겠나.

하지만 단순히 그런 개인적인 생각만 가지고 그곳으로 향하는 건 아니다. 종말 첫날 저녁. 그날에 청와대에서 근무하지 않은 경호처 소속은 가족을 지켰겠지만, 여기 있는 이들의 가족은 다들 연락이 끊겼다.

종말 첫날, 서울 지역은 아직 통화가 가능했던 그 시기에 연락이 끊어졌다는 건 결국 99%는 죽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최악의 순간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렇기에 각성하고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가족의 생사였다. 하루가 다르게 폐허로 변하는 서울에서 초법적인 권력으로 녹화된 CCTV를 추적할 수 있는 대통령 경호처이기에 가능한 행위였다.

그리고 몇몇은 그 과정에서 가족의 죽음을 확인했고, 또 몇몇은 가족이 일정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 걸 확인했다.

“여기쯤이었지? 마지막으로 확인된 흔적이?”

“네. 맞습니다.”

그건 지방에 있는 가족을 제외하고 서울에 있는 경호처 직원 가족이 대부분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아파트에 모여 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건 단순히 가족들이 같은 아파트에 모여 산다는 것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교대 근무를 위해 집에서 쉬고 있던 다른 경호처 직원들. 그들 중 일부가 각성자가 되면서 그때까지 생존한 가족을 보호했다는 의미였다.

“형석이하고 마지막 연락도 여기라고 했지?”

“네.”

스마트폰의 지도가 아니라, 둘둘 말린 서울 경기 지역의 전도를 펼쳐 손가락으로 집어가면서 이동 경로를 예측하던 김준은,

“내가 그때 더 정신을 차리고 연락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그저 자책의 말을 쏟아내는 것으로 아쉬움을 대신했다.

“그때는 처장님도 그렇고, 저희도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특히나 전 처장 그 미친새끼가 나대는 바람에…….”

부하의 말처럼 그때는 김준을 비롯한 이들도 VIP를 대피시킨다 청와대를 지킨다 하면서 정신이 없을 때였다.

경호처 전체에서 처음으로 각성자가 된 김준 역시도 몰려드는 그린스킨을 처리하고 부하 직원들을 지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 나가지 말고 자신을 지키라고 떽떽거리는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그를 더 힘들게 했고 말이다.

그래서 영상을 너무 늦게 확인했다. 전화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답답함에 점차 피폐해져 가던 김준을 구한 것은 가이아 게시판이었다.

“가이아 게시판에 이후로 올라온 글은 없어?”

“있을 겁니다. 다만 저희가 확인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응?”

“가이아 게시판에 형석이 놈이 올린 글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실시간으로 많은 글이 올라오고 있어서 문젭니다. 후우.”

가이아 게시판에 청와대 경호처에 근무하기 전, 같은 부대 후임이었던 민형석이 가족들과 함께 이요한이 있는 곳으로 이동 중이라는 글을 남긴 거다. 그것도 같은 부대에서 근무할 때 쓰던 암어를 이용해서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식으로 서로 안부를 묻거나 의미 없는 글로 자신이 살아있음을 남기는 ‘전 세계’의 각성자들이 가이아 게시판을 이용하면서 이전에 민형석이 남긴 글조차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김준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각성자들이 가이아 게시판을 평범한 인터넷 게시판이라고 착각해서 생기는 문제였다.

가이아 게시판은 무려 지구의 의지가 인간을 위해 만든 무언가다. 그것도 카르마 포인트를 다루는 각성자를 위해서. 그런 시스템이 그렇게 단순할 리가 있겠나. 가이아 게시판에서는 적당한 카르마 포인트를 가이아 게시판에 지급하면 원하는 정보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일단 최대한 빠르게 이동하자. 일산 아파트에서 도보로 이요한 회장의 도시까지 이동한다면 얼마나 걸릴 것 같아?”

“함부로 예측할 수 없습니다. 처장님도 아시겠지만, 단순히 걷는 속도로 따지면 쉬지 않고 걸으면 12시간에서 13시간이면 충분할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린스킨도 있고, 일반인도 보호하면서 이동 중일 테니…….”

“그런가…….”

“네. 게다가 각성자와 달리 각성하지 못한 일반인은 오래 걷지 못할 겁니다. 중간에 쉬기도 해야 하고, 음식도 부족할 거고, 잠잘 곳도……. 그런 것을 다 고려하면 오히려 우리가 더 빠를 수도 있습니다.”

“어휴. 진짜. 미안하다.”

“아닙니다. 처장님.”

김준이 이렇게 가족을 신경 쓰는 이유는 자신의 가족 때문이 아니다. 김준은 결혼도 하지 않은 40대 노총각이고, 부모는 그가 군대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

그가 걱정하는 건 172명의 생존자 중 확인한 가족들과 이미 전사한 부하 직원의 가족들의 안위 때문이다.

“일단 이동하자. 최소한 한강을 건너려면 일산대교는 무조건 이용해야 할 테니, 그쪽부터 가자.”

화약의 성능이 저하된 거지, 휘발유를 이용한 것들은 여전히 그대로임에도 이들이 ‘차’가 아니라, ‘도보’로 이동하고 있을 거라고 판단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일단 가족들이 모두 탈 수 있는 대형 버스를 구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버스가 아니라 차 여러 대로 움직인다면 남아 있는 그린스킨이 소음을 내며 일렬로 달리는 차를 향해 달려들 거다.

그걸 모르지 않을 거고 안전하게 이동할 방법은 최대한 조심히 도보로 이동하는 방법뿐이다.

그렇게 김준은 이 시기 한국의 ‘각성자 그룹’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무력을 보유한 각성자를 이끌고 이요한이 김포 방향으로 이동했다.

그러다가 김준 휘하의 각성자 중 원견 능력을 보유한 궁수 계열 각성자가 정찰병처럼 높은 건물 위로 이동하면서 그것을 보게 되었다.

“처장님!”

“왜?”

“그 새낍니다.”

“그 새끼? 누굴 말하는 건가?”

“그 살인자 새끼 말입니다! 차대두!”

차대두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김준은 영상에서 보았던 그 괴물이 떠오르며 소름이 돋았다.

“얼마나? 거리는 얼마나?”

그래서 급하게 차대두와 자신들 사이의 거리를 물었다.

“대략 3km 이상입니다.”

“응? 그 정도 거리를 봤다고?”

“차대두를 직접 본 건 아닙니다. 다만 그린스킨과 인간이 동시에 이동하는 걸 봤습니다. 그런 놈은 지금 차대두, 그 살인자 새끼뿐이잖습니까?”

“…빌어먹을. 다행이라는 말을 하는 내가 한심하지만, 젠장! 다행이야!”

그리고 그로부터 두 시간 정도 뒤에 김준은 그토록 찾던 후임들의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민형석을 비롯한 각성자는 오히려 멀쩡했다. 문제는 부족한 각성자 수에 비해 턱 없이 많은 비각성자였다. 생각보다 살아남은 경호처 직원의 가족들이 많았고, 또 이동하면서 따라붙은 생존자들이 늘어서 비각성자의 수가 무려 400명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아이고. 팀장님 얼굴이 이렇게 반갑게 느껴질 줄이야.”

“새끼. 고생했다. 그리고 나 이제 팀장 아니다.”

“엥? 잘렸습니까? 서 대통령 그 양반 빠꼼이라서 팀장님 같은 능력자를 자를 리가 없을 텐데요?”

“처장까지 했지. 지금은 우리 모두 퇴사했고. 전원 백수.”

그리고 청와대 지하 벙커에서 있었던 일을 요약해서 들은 민형석은,

“아아. 그럼 그렇지. 서 대통령이 삽질해도 민정수석 그 양반이 나서서 수습했을 텐데. 잘린 건 아니고 사직서를 던지신 거네요. 사직서를 서 대통령 그 새끼 마빡에 던지고 오셨어야죠.”

“그럴 가치도 없다.”

“그럼 이제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돠. 형님. 적당한 곳에 일단 자리를 잡고 쉬었다가 가야 할 겁돠. 지금까지 잠도 안 자고 걷고 쉬고를 반복했거든요. 쉬려고 모여 있으면 귀신처럼 괴물 놈들이 우르르 나타나는 바람에.”

“그러자. 괴물이라니까 갑자기 그 미친놈이 떠오르네.”

“미친놈이요? 누굽니까? 그게?”

김준에게서 차대두에 대한 일화를 들은 민형석은 쉽사리 믿지 못했다.

“하긴 각성자도 등장하는 판에 빌런도 있을 수 있죠. 어휴.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 건지.”

“세상은 이미 망했어. 그때 그 메시지 못 봤냐? 지구 입장에서 인간이 하는 짓이 하도 X 같아서 샤따 내리는 거라잖냐.”

“그러고 보면 이요한 회장님은 대단하네요. 갑자기 성을 짓다니.”

“그래. 네가 보기엔 어떨 거 같냐? 이요한 회장.”

“최소한 문전박대는 안 하지 않겠습니까?”

“왜?”

“왜라뇨? 일단 우리는 출신 성분이 명확하지 않습니까? 대통령 경호처! 그리고 여기에만 각성자가 200명 넘게 있는뎁쇼?”

“그게 뭐?”

“우리 정도 정도 전력이면 전쟁에서 혼잔 줄 알고 쫄았다가도 두 팔 벌려 환영 받아야 하는 병력 아닙니까?”

“글쎄…….”

김준은 똑똑하고 잔머리가 좋은 민형석의 말에도 어딘가 모르게 찜찜하고 불안했다. 그는 이요한 회장의 유튜브 영상뿐만 아니라, 가이아 게시판에 올라온 영상도 몇 번이나 확인했다.

“그런 사람 같지 않았어. 부족한 게 없는 것 같았거든.”

“잘못 들었습니다?”

“잘 들었어. 너도.”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전투에 베테랑인 특수 부대 출신 각성자 200명인데요.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형님!”

“그래. 그렇겠지. 음.”

그러나 민형석의 호언장담은 쉬엄쉬엄 이동해서 나흘 만에 도착한 성벽 위에 나타난 이요한을 본 순간 산산이 부서졌다.

“당신들인가? 청와대에서 나온 사람들이?”

지독히도 보기 싫은 원수를 마주한 것 같은 그 차가운 눈빛과 형형하게 흘러나와 모를 수가 없는 확연한 적의에.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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