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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40화 (40/183)

40화

<바뀐 미래>

침식자라고 불리는 존재는 태생부터 모순적인 존재였다. 마치 경계에 선 존재라고 할까?

침략자, 그린스킨으로 예를 들면, 그들은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과 교감하지도 않는다. 여성을 납치해 성욕을 채우고 동족을 생산하지만 감정의 교류가 일어나지 않는다.

인간이 생고기에게 성욕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침식자는 그런 관계를 부정하는 것처럼 그린스킨 혹은 다른 침략자의 권능자에게 힘을 부여받는다.

이게 모순적이라는 거다.

그린스킨이 씨를 뿌린 암컷은 종족을 불문하고 그린스킨이 태어난다. 하지만 그린스킨의 힘을 받은 침략자는 힘을 드러내지 않으면 인간의 외형을 유지한다.

이것도 모순적이다.

그런데 또 침식자는 인간의 외형을 하고서 죽이거나 섭식하는 것으로 힘을 얻는다.

이것 역시도 모순적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아주 드물게 어떤 침식자는 오히려 쉘터를 만들어 인간을 보호하고, 침략자들을 이용해 연약한 이들을 보호하고 빌런을 사냥하는 침식자도 있다. 오히려 그린스킨의 보호를 받는 침식자가 이끄는 쉘터는 빌런만 조심하면 되니까 웬만한 쉘터보다 안전했다.

침식자가 강해지는데는 ‘인간 각성자’가 최고인데, 빌런도 어쨌든 인간 각성자니까 문제가 없고 말이다.

물론 9할 이상이 해충처럼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지만, 마치 각성자가 모두 선한 게 아닌 것처럼 침식자도 모두 악한 게 아니다.

경계에 선 모순적인 존재.

그게 바로 침식자다.

‘그래서 벌써 나오지 않아야 정상인데?’

총사령관 따위가 아니라, 더 상위의 존재가 관여해야 만들 수 있는 게 침식자인데 벌써 관여한다고?

‘그나마 분탕치는 약탈자 새끼들보다는 낫다는 게 위안이긴 한데.’

침식자는 각성자가 된 후, 타락한 약탈자보다는 나은 편이다. 약탈자가 주로 힘이 강한 쉘터를 무너트리는 방법이 쉘터 안에서 피해자인 척하면서 분탕질로 내부 분열을 일으키는 것이니까.

이때 우리 영지의 [행정청] 같은 장비나 고유 능력을 보유하지 않으면 약탈자는 색출하기 힘들다.

반면 침식자와 각성자는 구별하는 방법이 간단하다. 마력을 투사해보면 된다. 침식자가 사용하는 마기는 마력에 닿으면 반발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제 막 각성하기 시작한 완전 초창기라는 거지. 마력을 투사해서 구분하는 법을 모를 텐데? 이러면 난리나는 거 아닌가?’

회귀 전이야 침식자가 나왔을 때, 이미 각성자의 평균 랭크가 오렌지였다. 그때는 그린스킨은 물론이고 약탈자 비슷한 것만 필드에서 만나더라도 칼부림을 하던 때였기에 상대의 적의를 판단하기 위해 마력을 쏘아 보내는 건 인사 수준이었다.

당연히 극초반인 지금은 생존에 모든 포커스가 맞춰져 있을 테니, 그런 건 생각지도 못하고 있을 거다. 오히려 침식자가 그린스킨을 끌고 다니는 능력이 각성자의 고유 능력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이 방법은 오늘 가이아 게시판에 올리는 게 낫겠다. 아! 그러려면 침식자를 몇 마리 포획해야겠는데?’

“그나저나 차대두? 그놈, 어디로 갔다고?”

“저희가 나흘 전에 확인했을 때는 부천 북쪽에서 서남쪽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요한은 부천과 남북으로 인접한 김포의 위치 그리고 서남쪽에 있는 도시들의 위치를 떠올리며 갑자기 엄청 바뀐 미래에 대해 세운 가설에 의구심이 들었다.

‘내가 그린스킨 놈들을 너무 잘 때려잡아서 이런 변화가 생긴 일인 줄 알았는데? 이쪽으로 오는 게 아니라 멀어진다고? 그럼 나 때문이 아닌 건가?’

이요한은 헛다리를 짚고 있지만, 그가 처음 세운 가설이 맞다. 200%.

그가 그린스킨을 때려잡아서 미래가 변한 거다. 그것도 그냥 때려잡은 게 아니라, 엄청, 매우, 잘 때려잡아서.

그래서 지구에서 가장 먼저 한국에 침식자를 만들었다. 위에도 언급했다시피 침식자를 만드는 건 총사령관 따위가 정하는 게 아니다. 그것보다 더 고위 급 존재, 적어도 권능을 다루는 존재가 관여해야 만들어지는 게 침식자다.

각성자를 지구의 의지가 만들 듯이 말이다.

총사령관의 보고 때문인지, 아니면 어떤 고위 존재의 변덕인지 벌써부터 침식자가 등장했다. 그것도 한국에.

여기에서 이요한이 기억하는 모든 것이 틀어졌다.

본래라면 차대두는 종말이 시작되고 무너진 교도소에서 벗어나 김포의 문수산에 숨어든다. 응? 산 지명이 익숙하다고?

맞다. 이요한이 영지를 세운 곳 주변에 있는 그 산이다. 회귀 전 이요한은 여기가 아니라 서울에 있었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도망쳐 숨어든 차대두는 나중에 파주로 넘어가게 되고, 거기서 쉘터에 숨어든다. 비각성자로서. 그리고 거기서 살인을 저지른다.

그때 그가 죽인 비각성자가 바로 김준의 후임 가족이다. 각성하는 과정에서 사망해서 다른 생존자와 함께 김준이 따로 보호하고 있던. 이게 바로 인포서의 탄생이기도 하다.

이요한이 김포에 똬리를 틀고 일주일 동안 그린스킨의 공격을 여섯 번이나 아무런 피해 없이 막아내면서 생긴 극적인 변화 과정이다.

“저…….”

“어. 할 이야기가 더 있나?”

마치 말을 꺼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김준은,

“이건 조금 상관이 없을 수도 있는데. 고양시와 파주시에는 군벌이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그래도 하는 게 낫다는 결심을 굳혔는지 이번에 구한 생존자 무리에게 들은 소문을 전했다.

“응? 군벌? 그러니까 군인이 모여서 만든 무력 단체를 말하는 거지? 군인이 지금 이 상황에서 뭘 해? 총도 소용없는데?”

이요한은 김준의 추가 설명에 의아함을 감추지 않았다. 군대가 무서운 이유는 모든 병사가 최소 무장으로 소총을 다루기 때문이다. 이제 지구에서 소총은 무용지물인 상태고.

“저도 생존자에게 들었는데. 로드킬을 하는 방식으로 그린스킨을 사냥한다고 합니다.”

“어? 아……!”

로드킬이라는 단어에 이요한은 어떤 상황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그린스킨을 차로 밀어버린다는 뜻이다. 그것도 단순히 자가용이나 세단이 아니라, 군대 트럭으로.

군대에서 흔히 사용하는 레토나조차도 일반 차에 비하면 엄청 단단하다. 흔디 두돈반이라고 부르는 2.5톤 트럭은 말할 것도 없다.

“하긴 휘발유는 그대로니까. 음. 장갑차나 전차도 쓸 수 있겠네?”

“예. 그런 부대를 봤다고 합니다.”

이요한은 이것 역시 회귀 전에는 등장하지 않은 단체였음을 떠올린다. 회귀 전, 군대는 모두 엉망이 된다. 그게 한국이든 북한이든 가리지 않고. 주 무기인 총과 포를 잃었는데 뭐로 싸우겠나?

“응? 그럼 이상한데? 보통은 그러면 군대에 보호를 요청해야 하지 않나? 여기까지 어렵게 걸어올 게 아니라?”

“그게…….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랍니다.”

“정상적이지 않다? 뭐가? 정신이? 아니면 힘이?”

“고양과 파주를 점령하다시피 한 군벌의 지도자의 사상이 말입니다. 차로 그린스킨을 로드킬 한다고 모두가 각성하게 아니라는 걸 알고 각성하지 못한 인간을 노예로 부린다고…….”

“…미친놈일세.”

“예. 저도…….”

김준의 생략된 말이 무슨 뜻이지 모를 사람은 이 자리에 없다. 특히나 올리비아와 유다연을 비롯한 미인들의 이마가 보기 싫게 찌푸려진다. 상상만으로 혐오스럽다는 듯이.

“원래 이랬나?”

이요한이 유다연을 보며 여러 의미가 담긴 말을 중얼거렸지만, 유다연은 정말 모른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잠깐만 그러면 파주랑 고양에는 ‘군벌’, 남쪽인 부천 부근에는 ‘침식자’, 북쪽은 말 그대로 북한 놈들이 있을 거고. 와! 우리 미친놈들에게 포위됐네? 그리고 이 사태를 어떻게든 수습해야 할 정부는 노답이고?”

문장과 단어만 보면 굉장히 절망적인 내용인데, 그걸 입에 담고 말하는 이요한의 목소리는 오히려 흥겹게 들렸다. 좋아하는 게임에 새로운 DLC가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일단 당신 부탁은 오케이. 결격사유가 없으면 영지민으로 받아주지. 정보에 대한 대가는 다른 정보로 치르겠어. 어때?”

“가, 감사합니다!”

“좋아. 그럼 당신 일행을 이끌고 한 명씩……!”

김준을 보며 절차에 대해 설명하려던 이요한의 입이 닫히고 그의 시선이 곧장 하늘로 향한다.

“올리비아!! 행정청에서 전문직원을……! 아니! 일단 밖에 있는 사람들 전부 들여! 그리고 한곳에 모아놔!! 기존 영지민이나 이번에 소환된 영지민하고 섞이지 않게 하고!!”

“네! 보스!”

“엘라! 각성자들 모두 성벽으로 집합시켜!”

“알겠습니다. 주인님.”

하늘을 향한 이요한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며 두리번거리던 김준의 시야에 무언가 들어온다.

수십 개의 검은 운석이 지상을 향해 떨어지고 있다. 그린스킨이다!

“미, 미친!!”

김준이 대통령 경호처 소속으로 그린스킨을 사냥할 때,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수준의 대량 침공이다.

“김준!”

“네? 아, 네!!”

“믿을 수 있는 사람, 중범죄자가 아니라고 확신하는 사람 중, 전투에 참여하려는 사람만 데리고 북쪽 성벽으로 와!”

이요한은 그 말을 남기고 길게 잔상을 늘어뜨리며 눈앞에서 사라졌다. 어느새 저 멀리 사라진 이요한의 흔적이 이어진 발밑에는 벽돌 같은 것이 박힌 ‘도로’가 있었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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