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43화 (43/183)

43화

<망루(Watchtower)>

무려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로 건설과 업그레이드를 하는 망루에 들어간 비용은 6만이나 된다. 그리고 추가로 발리스타를 업그레이드 하는데 다시 6만이 들었다.

12만의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

첫날이었다면 입에 거품을 물었을 만큼 비싼 가격이지만, 일단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라는 점과 발리스타 업그레이드로 병영에 설치된 ‘모든’ 발리스타에 적용된다는 걸 생각하면 엄청 싼 편이다.

그렇게 총 12만 포인트로 랭크를 모두 오렌지로 맞추자 저런 무시무시하고 현 시기에 나올 수 없는 방어 시스템이 구축됐다.

굳이 아쉬운 걸 꼽자면 공병 유닛이 없다는 것 정도? 해당 유닛은 아마도 나중에 등장하는 느낌인데, 아무튼 지금은 없다. 보통 영지 게임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게 일꾼, 공병 유닛인데 말이지.

아무튼 원형에 가까운 다각형 형태의 성벽 중, 그린스킨이 나타난 쪽에 드러난 망루의 숫자는 총 여섯이다.

“궁병, 파수꾼 그리고 궁수를 포함한 원거리 계열 각성자들 모두 망루로 이동해.”

눈먼 화살을 막아줄 수 있는 곳이 망루이니 만큼 각성하지 않은 석궁을 들고 있는 이들과 궁병은 망루를 이용하는 게 효과적이다. 원거리 공격력 증가 버프도 있으니까 겸사겸사.

이쪽이 자리를 잡는 사이 우왕좌왕하던 그린스킨에서는 다시 하얀색 깃발을 든 놈이 앞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전과 달리 방패와 몽둥이를 든 놈이.

[들어……!]

당연히 줄 거라고는 화살뿐.

[좀 들어라!! 인간……! 컥!]

장래희망이 김준이 목격한 침식자가 아니라면, 그린스킨과 굳이 말을 섞을 필요가 없다. 그린스킨 놈들이 인간의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니까. 저건 그냥 의념을 전달하는 거다. 텔레파시처럼.

무엇보다,

“좋은 그린스킨은 뒈진 그린스킨이지.”

그런 거다. 굳이 말을 섞어서 소중한 칼로리를 소모할 필요가 없다.

“발리스타. 연발 모드. 페인트볼 장착. 자동 경계 모드. 경계 범위 최대.”

발리스타와 그 주변이 푸른색 홀로그램이 일어났다가 다시 빛알갱이로 부서지며 사라진다. 그리고 최초 발리스타의 3분의 1 크기의 거대한 거치형 석궁 세 개와 형광 녹색의 동그란 탄환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연발 모드의 발리스타는 지정된 탄환을 쓸 수 있다. 여기서 탄환은 총알 같은 것만 생각나는데, 범위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거대한 활시위에 여러 가지를 걸어 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면, 다듬어지지 않은 돌멩이‘들’이나, 화살이 아닌 창, 휘발유를 담은 병 같은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화약 사용은 시스템에 의해 금지됐지만, 인간이 발전시킨 흉악한 무기 중에는 화약이 전부가 아니다. 앞서 사용했던 휘발유도 마찬가지고, 지금 사용하는 페인트볼은 흔히 서바이벌 게임장에서 사용하는 페인트볼을 개량한 것으로 크기는 아이 주먹만 하고, 무엇보다 단순히 표시만 하는 게 아니라 특유의 향이 있다.

투쾅―! 투쾅―!

경쟁적으로 작동하는 소형 발리스타에서 발사된 페인트볼은 은신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던 적의 몸에 적중하며 그곳에서 움직이는 무언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한다.

“퐁당퐁당으로 발리스타 탄환 변경. 기름병. 자동 요격 모드.”

재차 푸른색 홀로그램이 나타났다가 알갱이로 부서진 후, 발리스타에서는 페인트볼과 가솔린이 담긴 동그란 유리병이 빠르게 허공을 날아 적에게 부딪혀 깨져나간다.

어딘가 익숙하고 기시감이 든다면 당신은 훌륭한 독자다. 이 익순한 이 광경은 곧,

“유다연.”

“네. 오빠! 다들, 불바다로 만들어버려요!”

성벽 앞이 불바다가 된다는 결과를 만들어 냈고, 당연하게도 거기서 멍청하게 기름을 뒤집어쓰고 있던 그린스킨은 곧 뒈질 목숨이라는 뜻이었다.

“봤냐? 이게 바로 과학의 힘이다. 다시는 인간을 무시하지 마라!”

특수병? 정예병? 1천? 5천? 1만? 5만? 그럼 뭐가 달라져?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인 건데?

휘발유에 붙은 불은 그 휘발성과 낮은 인화점 때문에,

콰앙! 쾅쾅!

폭발이 발생하고 빠르게 번지며, 대형 유류 화재로 분류된다. 유류 화재는,

“Ke―raya!! Aq―araaaaa!!”

물로 끌 수 없다는 게 지구인에게는 상식이지만, 성벽에 가득한 여자를 보며 침을 흘리며 달려드는 저 미친 강간마 새끼들에게는 상식이 아니다.

마법이 아닌, 주술로 보이는 이능으로 강에 있는 물을 끌어 올려 한창 불이 타고 있는 곳에 들이 부었지만,

“끄아아아아!!”

“아아아악!”

오히려 불이 더욱 크게 번지는 결과만 가져온다. 사방이 솟아오르듯이 치솟은 불길과 유류 화재 특유의 검은 연기는 영지 효과로 우리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지만,

“크헉!”

“쿨럭! 케엑!”

“크에에엑!”

그린스킨에게는 치명적이다. 화재 사고에서 불에 타서 죽는 것보다 질식사가 더 많다는 이야기도 지구인에게는 상식이지만, 저들에게는 아니니까.

그린스킨의 특수병이 죽어 나간다. 오천 마리가 넘는 도적 계열 특수병은 저들에게 제법 큰 손실일 텐데,

“이상하네?”

아무런 대응이 없다. 전처럼 원견으로 이쪽으로 살피려는 시도조차 없다.

“엘라? 어때?”

“이쪽을 염탐하려는 자는 없는 것 같아요. 주인님. 제 능력을 벗어난 존재라면 모를까.”

“하하. 그럴 리가.”

엘라는 첫 소환 혜택으로 영지 랭크와 동기화 하면서도 2랭크 추가 베네핏을 얻었다. 방금 망루를 건설하면서 영지가 레드가 아니라 오렌지 랭크로 올랐듯이 그녀의 랭크는 무려 그린(Green) 랭크다.

그것도 그린 랭크 최상.

그런 그녀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존재? 총사령관이 은신형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그런 유형이 총사령관이 될 수 없겠지만.

결론적으로,

“그럼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건데.”

저 특수병은 다른 의도로 파견된 거라는 뜻이 된다.

‘아까 무슨 말을 하려던 거 같은데, 말이라도 들어줄 걸 그랬나? 에이. 아니지. 아니지. 그린스킨하고 말을 섞어 봐야, 입냄새만 나지. 쯧.’

그린스킨을 흔한 아포칼립스에 나오는 좀비처럼 무턱대고 달려들고 핸드폰 소리에 우르르 뛰어가는 그런 멍청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아니, 간부 등급까지는 본능이 뇌를 지배하는 게 맞긴 한데, 그런 간부와 병사 등급 그린스킨을 지휘하는 존재들이 인간보다 영악하니까 말이다.

단순히 회귀 전 경험이 아니라도, 무려 한 차원을 다스리는 지구의 의지를 상대로 사기를 친 것만 봐도 그 잔머리고 잔혹함이 짐작할 만하지 않은가.

“젠장. 생각할수록 안 좋은 가정만 떠오르네. 미지가 공포를 불러오는 느낌이랄까?”

“주인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지켜드릴게요.”

엘라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 담긴 기세는 섬뜩할 정도였다. 흔히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얀데레의 속삭임 같았달까? 나긋나긋하지만 섬뜩한 기세.

엘라는 자신이 내뱉은 다짐과 같은 말을 실력으로 보여줬다.

“실라페. 샐리스트.”

그녀의 부름에 응답한 바람과 화염의 중급 정령이 각각 50기나 된다. 그러니까 모두 더해서 100기의 정령이 그녀의 주위에 나타났다.

“쓸어버려.”

중급 정령은 하급 정령 이후에 소환할 수 있는 정령이다. 엘라가 너무 쉽고 가볍게 중급 정령을 부리기에 중급 정령이 약한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그래. 이미 결론이 나왔듯이 그건 착각이다.

바람의 중급 정령은 소리 없는 암살자다. 그린스킨의 특수병? 그것들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전장에는 갑자기 그린스킨의 목이 후두둑 소리를 내면서 떨어지고 그것은 공포로 자리했다.

불의 중급 정령은 잔혹한 폭군이다. 무엇이 되었든 체온은 존재하고, 도적 계열 뿐만 아니라 각자 특이한 능력을 보유한 그린스킨 특수병은 모두 한 줌의 재가 되어버렸다.

가뜩이나 휘발유가 여기저기 뿌려져 있고, 불길이 솟구치는 전장에 나타난 불의 중급 정령은 오히려 그린스킨이 침략을 받은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실제로 중급 정령은 정령 각성자가 생기고 무려 5년은 지나야 소환 가능한 개체였다. 랭크로 따지면 최소 오렌지 랭크는 되어야 가능한 수준. 그것도 고작 한 기를 소환하는데 말이다.

“정령들이 기운이 넘치네?”

“어머니의 나무가 계시는 땅을 침범한 적이니까요. 정령들은 순수하지만, 그래서 적이 되었을 때는 무섭죠.”

그녀의 말대로다. 엘라의 배려로 나를 호위하고 있는 땅과 물의 정령은 저렇지 않았다. 귀엽고 앙증맞은 다른 의미로 심장에 해로운 존재들이었는데, 지금 그린스킨의 목을 수확하는 저들을 보고 있노라면 단어 그대로 심장에 해로운 존재처럼 보인다.

“그래도 그 무서운 아이들이 우리 편이니까요.”

“그건 인정이지. 그나저나 특수병이면 카르마 포인트가 많지 않나?”

[네. 마스터. 간부 등급하고 비슷합니다. 정예병이나 수호병 따위하고는 비교도 안 되요. 마리당 마이너스 카르마 5천 포인트 이상일 걸요? 더욱이 이쪽에 특수병을 몰아넣었으니, 한국의 다른 지역은 더 안전해졌겠네요.]

그거면 된 거다.

더욱이 저 특수병은 나만 때리는 게 아니라, 얼마 전에 각성한 초보 각성자와 지구 각성자 랭킹 100위에 들어가는 지구의 의지의 사제도 포함되어 있다.

어디 그것뿐일까? 전에 각성하지 못한 영지민들은. 특히나 나이가 어린 아이들은 눈에 불을 켜고 그린스킨의 뚝배기를 깨기 위해 석궁을 연사하는 중이다.

왜냐고? 첫 날 내성에서 잠을 자봤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첫날 전투로 충성 스탯이 상승했다. 이제 성인이 아닌 아이들의 경우는 모두 90을 넘긴 충성 스탯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내성에서 하루의 생활은 아이들의 입장에서 종말 이전과 종말 이후를 모두 통틀어 가장 안락하고 안온한 밤이었을 거다. 여기 모인 아이들은 부모의 보살핌을 받던 아이들이 아니었으니까.

각성자가 아닌 아이들은 그날 이후, 내성 밖에 지어진 막사에서 생활한다. 막사에서의 삶이 나쁘냐? 막 피폐하고 혐오스럽고 열악하냐? 그건 또 아니다. 살만하다.

하지만 불과 어제만 해도 이상할 정도로 안온하고 따뜻한 방에서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잠들었던 내성과 비교하면 상대적 박탈감은 엄청나다.

그렇기에 지금 아직 각성하지 못한 아이들은 오히려 갑자기 나타난 그린스킨의 존재에 기뻐하기까지 했었다.

그런 아이들이다.

석궁을 들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이 진지한 것은 당연하고 그렇게 임한 전투이기에 각성자가 늘어나는 것 역시 당연하다. 그것도 무려 특수병을 잡고 각성하는 각성자가.

뭐 다르냐고?

난들 아냐?

그러나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지구의 의지가 설정한 카르마 시스템은 노력에 대가를 후려치지 않는다는 것.

“그나저나 이거 찜찜하네. 쩝. 어쩔 수 없지.”

전투는 서서히 끝이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종말이 시작되고 일주일째 되는 날이 또 무사히 지나가고 있었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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