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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44화 (44/183)

44화

<추방>

“아아. 정말 그 괴물들이 다 죽었어!”

“흑흑. 살았어. 살았다고!”

“엄마……. 왜 울어?”

그린스킨의 습격을 막고 성벽을 내려와 내성 근처로 오니 난장판이다. 아마 경험하진 못했지만, 6·25 전쟁 시절 부산의 정경이 이와 같지 않을까 싶다. 본래 각성하지 못한 영지민을 위한 주거 설비나 마찬가지였던 텐트의 수가 늘었다. 엄청 많이.

본래 아이들을 재우려는 용도로 우리가 준비한 텐트는 굉장히 유명한 텐트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를 닮은 세 겹의 지붕에 태양열 판이 달려있어 전력 공급이 되어 내부에서 따뜻하고 시원하게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솔라 텐트(Solar Tent)다.

넉넉하게 준비한 텐트였고, 첫날 각성자가 무려 3천 명이 나와서 남는 텐트가 많았다. 그리고 혹시 몰라 15인용 돔 형태의 텐트인 스페이스 스테이션 텐트도 500세트 준비했었다. 15인용에 강풍에도 버티는데, 접으면 작은 가방 사이즈라서 나중에 원정을 나갈 때 사용하려고 파손 될 것을 대비해 준비했는데.

“헐?”

그렇게 준비한 모든 텐드가 전부 출고된 상태였다. 하나도 남김없이.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내성 주변으로 마치 여기가 무슨 글램핑장인 것처럼 빼곡하게 들어선 텐트를 보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냐고.

“아무리 그대로 이건 너무 많은데? 잠깐 사이에 이걸 다 어떻게 쳤대?”

“하~. 오빠. 오빠는 각성자를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오빠가 애기들은 성벽에 오르지 못하게 했잖아.”

“당연하지. 특수병이 나왔으니까. 위험하잖아. 아직은.”

유다연이 말하는 ‘애기’는 아직 10살이 되지 못했는데 첫날에 각성을 경험한 아이들을 말하는 거다. 각성자를 그대로 두겠다는 게 아니라, 시간을 잡고 교육을 할 예정이다. 더욱이 이번에는 갑자기 등장한 특수병 때문에 급하게 내려보낸 거고.

“그래. 암튼 가뜩이나 힘이 넘치는 우리 쪼꼬미들이 시간이 남는데 신기한 게 앞에 있으면 뭐 하겠어?”

“가지고 논다?”

“당연하지.”

“창고는 어떻게 열었대?”

“……이 오빠가? 벌서 치매야? 올리비아한테 말해두고 갔잖아.”

그랬나? 당시에는 갑자기 벌어진 일에 정신이 없었다. 유다연을 비롯한 지구의 의지의 사제들은 어느새 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 뒤에 성벽 쪽으로 각성자들이 늘어섰다.

자연스럽게 소음이 서서히 사라지고, 모두의 시선이 이쪽, 정확하게는 나를 향해서 모이는 분위기가 되었다.

누군가는 희망을, 누군가는 두려움을, 누군가는 기대를.

각자가 여러 의미가 담긴 눈빛이 자그마치 10만이다. 그동안의 나였다면 그 10만 쌍의 눈빛이 부담스러웠을 거다.

그러나,

“일단은 이 말이 먼저겠네요. 어서 오세요. 비록 내가 원한 방문은 아니었지만. 존대는 여기까지. 조금 전에 듣고 보셔서 알겠지만, 이 땅은 안전해. 괴물은 물론이고 온갖 범죄자들로부터도. 그리고 이 안전한 영지의 주인인 영주가 바로 나지.”

난 이제 이런 일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방금 전투를 끝내고 왔기 때문일까? 머릿속은 어느 때보다 명료했고, 내 가슴은 조금도 두근거리지 않을 만큼 냉정했다.

“여러분이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는 대충 들었어. 시스템이 정한 기준에 통과하셨다는 것 역시도. 축하해.”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하지만이라는 말에 놀란 듯이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여러 곳에서 들려온다.

“그 기준이 이 땅의 주인이자, 이 영지의 주인인 제 기준과 같다는 이야기는 아니지. 따라서 여러분들은 제가 정한 기준을 통과해야 해.”

그러자 마음이 약한 사람들은 벌써 ‘흑!’ 하면서 눈물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아까도 말했지만, 난 이제 이런 일로 마음이 약해지거나 부담스럽지 않다.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와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를 모두 공개해.”

내가 직접 공개하게 할 수 있다. 첫날 영지를 건설하고 했던 것처럼. 하지만 그러지 않고 공개하라고 말한 이유는 이런 것도 협조하지 않는 사람을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성자는 모두 이쪽으로. 그리고 카르마 포인트와 더불어 스탯도 공개해.”

각성자는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와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가 다를 거고 그들은 따로 분별할 방법이 있다.

거기까지만 말하고 가타부타 설명 없이 빤히 바라보자 하나둘 카르마 포인트를 공개하는 이들이 늘어갔다. 난 가장 먼저 카르마 포인트 공개를 한 이들을 눈여겨봤다.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이들을.

그리고 그때,

“저, 저기…….”

아이 둘을 품에 안고 있는 여자가 소심하게 손을 들었다. 아직 카르마 포인트를 공개하지 않은 여자가.

“뭐지?”

같잖은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닌가 싶어 나오는 말투에는 가시가 잔뜩 돋아 있었다.

“카, 카르마 포인트를 어떻게 공개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겁에 질려 있는 목소리였지만, 아이들 안은 팔에 힘을 주면서 질문을 끝냈다.

“아. 음. 카르마 포인트를 내게 보여 주겠다고 생각하면 돼.”

“가,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와 함께 그녀의 머리 위에 카르마 포인트가 떠올랐다.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는 고작 16밖에 되지 않는 믿을 수 없는 포인트가. 그런 주제에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는 천 단위다. 왜? 뭐 하는 사람인데?

그러다가 문득 그녀가 품에 소중하게 안고 있는 두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두 아이의 피부색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도.

“그 아이들. 당신 아이인가?”

“네, 네네.”

“당신이 낳은 아이들이냐고.”

“제가 가, 가슴으로 낳았어요.”

“뭐라고 하는 건 아니니까. 너무 그렇게 겁 먹을 것 없어. 당신은 합격이야. 거기 당신 아이들도.”

두 아이도 엄마인 여자가 알려줬는지 머리 위에 카르마 포인트를 띄우고 있었는데, 카르마 포인트가 순백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마이너스 카르마에 비하면 플러스 카르마가 높다는 뜻이었다.

물론 모두가 순순히 지시에 따른 건 아니다.

“개인 정보를 왜 공개하라고 하는 겁니까?”

네 명의 가족의 가장인지 중년의 남자가 못마땅한 기색을 여실히 드러내면서 묻는다. 그의 손에는 이 급박한 순간에도 놓지 않은 성경책이 들려 있었다.

“아! 하나 깜빡했네. 이건 나중에 말할 거긴 한데. 내 영지에서 종교는 금지야. 자신이 믿는 신이나 종교를 버릴 수 없다. 그런 신념이 있는 사람은 저쪽으로 열외.”

“당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조금 전에 반발했던 그 남자가 더욱 격렬하게 항의했지만,

“추방.”

그 남자는 ‘있었는데, 없습니다.’가 되었다.

“아, 가족도 같이 보내 줘야지.”

그 남자의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도 마찬가지로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카르마 포인트 공개 안 한 사람도 모두 추방.”

그제야 부랴부랴 카르마 포인트를 공개하려는지 우후죽순처럼 새롭게 카르마 포인트가 올라왔지만, 예외는 없다. 모두가 하얀색에 가까운 카르마 포인트였음에도 말이다.

그렇게 추방된 사람이 2천 명이 넘는다. 어쩌면 상황을 보고 판단하려고 했던 걸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뭐? 내가 왜 그런 사정을 봐줘야 하는 건데?

11만이 넘는 인원이었지만, 2천 명의 사람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건 눈에 확 띌 수밖에 없다.

“종교인은? 없어? 나중에 걸리면 이번처럼 좋게 추방만 하고 끝나지 않아. 난 100% 분탕 종자가 되는 종교인을 내 영지에서 키우고 싶은 마음이 없어. 이건 확실해. 그러니까 빨리 나와. 나중에 전도는 물론이고, 권유 비슷한 것만 해도 죽일 거야. 추방이 아니라. 그것도 괴롭게 죽일 거니까. 빨리 나와. 지금 나오면 좋게 추방만 해줄 테니까.”

그러나 나서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있어도 나오지 않는 거겠지만, 괜찮다. 나중에 또 본보기를 보이면 되니까.

“각성자들은 여기 엘라를 따라가서 면담을 진행해. 각성자가 아닌 사람들은 내 주위에 있는 이들과 면담을 진행해서 통과하면 영지민으로 그때 영지민이 될 거야.”

“영지민이 되면 뭐가 좋냐고? 그때부터 당신들은 이 성벽 안에, 인류가 멸종을 앞둔 지구에서 가장 안전한 땅에서 살 수 있는 자격이 된다.”

“또한, 멸망의 세상에서 밤에 춥지 않고, 씻을 수 있고, 병에 걸리면 최소한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여건 또한 마련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고.”

“그런 곳이니 만큼 내가 이 영지를 많이 아낀다. 그러니 나중에 개짓거리하다가 걸리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해. 그러니까 종교쟁이는 조용히 나와. 지금 나오면 조용히 추방하는 수준에서 그칠 테니까.”

추방이라는 단어 앞뒤로 ‘조용히’와 ‘수준에서 그친다’라는 게 어울리냐고 누군가는 항의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일이다. 이 아포칼립스를 향해가는 지구에서 종교라는 존재는.

“이렇게 말했음에도 나오지 않는다는 건, 종교쟁이가 있음에도 너희가 믿는 신을 저버릴 정도로 이곳이 마음에 든다는 거겠지? 또한, 저 밖의 괴물이 두렵다는 뜻이기도 할 테고.”

정확하기 숫자를 셀 수 없는 불특정 다수의 눈빛이 날아와 꽂힌다. 불쾌함을 담은 눈빛이다. 멍청한 놈들이지. 레드 랭크만 되도 초인이라고 불리기 부족함이 없다. 하물며 레드도 아닌, 오렌지 랭크인 나는? 그린 랭크인 엘라는?

“감히!”

엘라가 활을 쥐고 있는 왼손이 아니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 시위에 가지런히 얹어두고 있던 오른손을 거칠게 휘둘렀다.

그녀의 의지를 고스란히 반영해서 땅이 일어난다. 아니다. 땅이 일어난 것처럼 보인 것은 땅의 하급 정령 노움이다.

중급 정령을, 그것도 속성이 다른 물과 바람의 중급 정령을 100기를 힘든 기색도 없이 다루는 게 엘라다. 정령왕의 친우. 더욱이 지금은 세계수의 영향이 닿은 영지 안쪽이다. 그녀에게 수백 기의 땅의 하급 정령을 다루는 건 숨을 쉬는 것과 같았다.

다만,

“주인님께 살기를 품다니!!”

지금 엘라의 기분이 매우 나쁘다는 것과 무려 정령왕에게 ‘친우’라는 칭호를 얻은 엘라의 기분에 따라서 정령은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다는 거다.

“까악!”

“끄아아악!!”

“아악!”

정확하게 말하면 살기가 아니라, 불쾌감이었지만 엘라가 느끼기에는 그게 그거였을 거다. 멸망을 향해가는 차원에서 안전한 장소를 제공하는 상대에게 불쾌감을 표시한 건. 더욱이 그녀의 충성 스탯은 100.

“음. 내가 느낀 연놈들은 모두 포함되어 있네. 잘했어. 엘라.”

“네. 주인님.”

방금까지 보였던 살기 넘치는 모습은 착각이었다는 듯이 내 칭찬 한마디에 봄바람처럼 살랑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엘라다.

“오빠. 나 쟤 좀 무서워.”

유다연이 질렸다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면서 기겁하는 것을 무시해 주고,

“불쾌하던가? 너희의 믿음을 정면에서 부정해서?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 종교쟁이는 나서라고.”

“그, 그건!”

돌로 이뤄진 주먹이 발목 등을 움켜쥐고 들어 올려 허공에 거꾸로 매달린 이들 중, 동양인 남자의 입에서 변명이 튀어나오려고 했다.

“나가.”

하지만 듣기 싫다는 듯이 추방하자 서로 변명하려던 이들의 입이 조개처럼 다물어진다.

“내가 너희 같은 것들을 잘 알아. 멸망을 향해가는 세상에서 안전한 잠자리와 음식을 받아 먹으면서, 그걸 얻기 위해 발로 뛴 동료가 아니라, 자신이 믿는 신 덕분이라고 여기며 그 신이라는 것들에게 감사를 돌리는 쓸모없는 것들.”

거의 모든 쉘터에서 종교인들은 문제를 일으킨다. 왜냐고? 세상에 멸망하지 않았을 때도 수십 년 동안 전쟁을 벌이던 게 종교 분쟁이다.

그런데 멸망을 향해가고 있는 지구에서는 어떨까?

멸망에도 도움을 주지 않는 신을 비난하며 정신을 차릴까?

천만에.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이성적이지 않다. 생명이 걸린 일에는 더욱 그렇고.

오히려 더욱 강렬하게 신을 찾고 부르짖는다.

그리고 비이성의 끝에 도달한다. 이런 세상이 도래한 것은 모두 불신자들 때문이다! 불신자는 지옥으로!

비약이 심하다고? 몇 번이나 말하지만, 인간은 위기 상황에서 당신의 생각보다 비이성적이고 멍청하다.

“아닐 거라고? 난 그렇지 않다고? 그럴 리가. 고작 내가 너희의 신앙을 깎아내렸을 뿐인데, 이렇게 불쾌감을 고스란히 드러낸 너희가?”

거꾸로 매달린 이들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것이 오래 거꾸로 매달렸기 때문인지, 아니면 곧 자신들의 처지를 예상했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난 내 영지에 암덩어리를 들일 생각이 없어.”

나도, 매달린 이들도, 지켜보던 이들도 모두가 예상한 대답을 내놓기 무섭게 그들의 모습이 영지에서 사라졌다.

“마저 진행해. 그리고 명심해.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고, 하라고 하는 것은 최선을 다해서 이행해. 그러면 최후까지 안온한 삶을 장담할 테니까.”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려 내성으로 향했다. 영지의 문제는 실시간으로 쌓여 가는 중이다. 아직도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너 좀 나와봐. 문제가 심각하다.”

[부르셨습니까? 마스터.]

“주인님!!!”

그 순간, 내 옆을 지키고 있던 엘라가 불길한 무언가를 발견한 사람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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