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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58화 (58/183)

58화

<쓰레기들>

이요한이 막 9사단 사령부에 내려 군인들과 드잡이를 하고 있을 시기에 거의 모두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생존한 이들은 그런 따뜻하고 안온한 것과는 이만오만 광년 떨어진 삶을 보내고 있었다.

김포 북쪽에 새롭게 나타난 땅 주변을 제외한 한국 땅에는 여전히 그린스킨이 바글거렸다. 누군가 유토피아라고 부르는 이제는 김포 시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거대한 성을 제외한 다른 곳은 그린스킨이 포식자이며, 인간은 먹잇감에 불과하다.

이요한과 그를 따르는 이들이 너무 쉽게 그린스킨을 처리하다 보니 그린스킨이 약한 것 같지만,

“아아아아악!!”

오히려 해가 떠 있는 낮이 생존자에게는 더 지옥이었다. 건물에 아무리 잘 숨어도 그린스킨은 귀신처럼 인간을 찾아냈다.

결국 생존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각성자들의 그늘에 숨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생존자를 거둔 각성자 무리 모두가 선하고 이 상황에서도 약자를 돌보는 존경 받아 마땅한 사람이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현실은 언제나 시궁창이다.

“저것들이야? 몰래 밤에 나가려다가 잡힌 놈들이?”

“맞아.”

그러한 이들 중, 단순히 착취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멸망 전의 세상처럼 사다리를 걷어차는 특이한 각성자가 있다.

“차암~. 이상하단 말이야. 하지 말라면 꼭 하는 놈들이 있다니까?”

“크윽! 이 개자식!”

“개자식? 지금 우리 엄빠를 개라고 한 거임? 와. 패드립 지리네. 내가 너한테 나가서 돈을 벌어오래? 아니면 뭐 음식을 가져오래? 그냥 가만히 있으라는 거잖아. 먹을 것도 주고, 재워 주고, 저 괴물 놈들도 알아서 처죽여주고. 그런데 왜 말을 안 들어?”

꿇려진 다섯 명의 남녀 앞에서 살기를 줄줄 흘리는 젊은 청년의 말을 얼핏 들으면 그가 정말 성인군자이고 이타적인 사람이고, 그 앞에 앉은 이들이 분탕종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 얼핏 들으면 그런 거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내 가족은 여기서 벗어나겠어!”

“흐응~? 왜?”

“살기 위해서다!”

“누가 죽인데?”

“너와 네 패거리들이 보호라는 명목으로 다른 사람들이 각성자가 될 기회를 없애고 있다는 걸 모를 거라 생각해?! 결국 이 망해버린 세상에서 나와 내 가족을 지킬 힘은 각성뿐이니까! 각성자라는 놈들이 우리를 노예처럼 부리는 걸 모를 것 같아?! 내 아내와 딸을 지키기 위해서 각성하려고 했을 뿐이다!”

독립투사의 그것이 떠오를 정도로 열변을 토했지만,

“그렇구나~.”

다리를 꼬고 앉아 위에 올라온 다리를 까딱거리는 모양새는 조금도 그 열변에 집중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실제로도 집중하지 않았다. 일말의 흥미도 없는 잔소리를 듣고 있는 반항아처럼.

“애초에 우리는 여기가 아니라, 이요한 회장에게 가고 있었다고!”

“그렇구나~. 그럼 이제 뒈지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은 다 한 거지? 영감?”

“…….”

“끌고 가. 영감은……. 음. 내일까지 굶겨. 내일 저녁에 고블린 하나 잡아서 싸우게 하지 뭐. 각성하고 싶다니까.”

잔인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정상인 상태에서 그린스킨을 상대하는 것도 힘들다. 애초에 인간의 연약한 몸으로 그린스킨과 1:1은 불가능하다. 운이 따라주거나, 이요한 일행처럼 미리 강력한 원거리 무기를 준비하지 않는다면.

그런데 하루를 굶기고? 죽으란 소리다.

“그리고 영감의 가족 중에 마누라랑 딸이 있지? 둘은 창녀 방에 넣어. 아, 오늘은 아니고 내일 저녁 이후에. 아비이자 남편인 영감이 그린스킨과 싸워 이길 수도 있잖아? 못 이기면 임종은 볼 수 있게 해줘야지?”

“이 개자시이이이익!!”

잔인한 소리를 아무런 감흥도 없는 얼굴로 내뱉는다. 너무 자주해서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것처럼. 익숙함을 넘어 권태? 그래. 그건 권태다. 가장과 아내와 딸이 포함된 가족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명령을 내리는데 느껴지는 감정이 권태라니.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이들은 왜 각성자가 생기는 걸 막는 걸까? 언젠가 누가 물었을 때, 800명 가까운 사람이 뭉친 이 무리의 리더는 말했다.

“게임 안 해봤어? 게임처럼 몹이 시간마다 살아나는 곳도 자리 싸움을 하는데, 여긴 그런 것도 없다고. 그린스킨은 한정적인데, 각성자가 계속 생겨나면 어떻게 되겠냐? 사냥을 못하겠지? 그럼 스탯은? 스킬은 어떻게 올릴 건데?”

“우리는 쉘터를 지킬 수 있는 수준의 각성자만 있으면 충분해. 결원이 생긴 후에 선별해서 각성자로 만들어도 된다고. 그러니까 자책이나 죄의식 따위 느끼지 마. 이건 게임이라고 생각하라고. 사냥터를 지켜.”

이 결정에 반발한 각성자는 그의 손에 다 죽었다. 이요한은 몰랐지만, 그가 바로 회귀 전 인천 남쪽에서 시작해서 인천 지역의 왕으로 군림한 ‘폭군’ 권정훈이다.

잔혹하며, 사이코패스와 같은 그의 이런 사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망해가는 지구에서 한 지역의 패자로 군림할 정도로 강자가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권정훈이 다스리는 인천이 그린스킨 선발대가 내린 김포와 인접한 도시임에도 생각보다 오랜 시간 버텼다는 건 그만큼 그가 강자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가 또 한 가족의 사다리를 치워 버린 이날.

공교롭게도 이들의 쉘터 부근으로 접근하는 무리가 있었다.

그 무리는 2백 명이나 되는 대인원이었고, 무리의 7할이 미성년자인 아이들이었으며, 여러 인종이 섞여 있었고, 무엇보다 모두 각성자였다.

* * *

루크와 헌터는 궁수 계열로 각성했다. 이상하리만치, 반대로 너무나 그 뜻이 눈에 보일 정도로 얄팍하게도 이요한을 따르는 지구의 의지의 사제들은 여자가 훨씬 많다. 31명 중, 남자는 고작 7명이 전부다.

그래서 루크와 헌터는 여러 식료품과 생필품을 파밍하는 첫 번째 원정대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이요한이 고양시로 출발한 직후, 영지가 포함된 지역인 김포시 전역을 수색하는 원정대에.

이요한이 고양시에서 라이더를 대거 잡아오면 편하게 탈 것을 타고 나가게 될 추후 원정대에 비하면 김포시 전체를 훑는 원정대는 불편하고 꺼려지는 원정대였음에도 그들은 일단 나왔다.

왜 남녀의 비율이야기를 하다가 이러고 있냐하면 이게 다 이요한 때문이니까.

그렇다 헌터와 루크가 이요한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존경하는 쪽에 가깝다. 그는 정말 선하면서 강한 사람이었으니까.

‘본인은 그걸 모르는 것 같지만.’

다만 그들의 동료이면서 동시에 XX 염색체를 보유한 이들의 기세가 루크와 헌터는 감당이 안 된다고 해야 할까?

유다연은 천진난만한데 종종 도른자가 된다.

올리비아는 이성적인데 종종 도른자가 된다.

사나스는 선한데 심심치 않게 도른자가 된다.

도로시는 생기발랄한데 종종 도른자가 된다.

아이리스, 빅토리아, 케일리, 이사벨라, 세이디, 캐롤라인, 매켄지, 페넬로페, 앨리샤, 벨라, 헤이즐, 릴리, 후아나, 미아, 류보브, 페챠, 산드라, 샤디아, 셀마는 종종 혹은 심심치 않게 도른자가 된다.

특히 언제냐고?

“영주 님이랑 연관되었을 때지.”

“마스터와 관련된 일에.”

뭐, 그것까지는 괜찮다. 사실 안 괜찮지만, 이 망한 세상에서 그런 건 투정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괜찮다고 치자. 그런데 미쳐버리겠는 건, 이 여자들이 돌아버린 그 상황에서,

“헌터, 넌 어떻게 생각해? 남자의 입장에서? 나야? 올리비아야?”

“루크 니가 볼 땐 어때? 도로시야? 나야?”

꼭 주변에 있는 남자들에게 답이 없는 질문을 던져 괴롭힌다는 거다. 그게 절정에 이른 게, 이요한이 고양시로 원정을 떠나고 자신들이 그 원정대에 포함되지 않았을 때다. 둘은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파밍 원정에 자원했다. 그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어휴. 그린스킨의 목에 화살을 박는 게 낫지.”

“그렇게 따지면 정말 우리 마스터가 진정한 의미에서 성인이 아닐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루크와 헌터는 궁수 계열로 각성했다. 그리고 그들은 원정 파밍을 자원했다. 둘은 자전거가 달리는 속도보다 빠르게 ‘걸으면서’ 동시에 잡담을 나누면서도,

“어? 앞에 사람?”

“그리고 많아.”

당연하게도 함께 나온 영지 소속 각성자보다 몇 백m 앞서 선봉에서 수색과 정찰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둘은 단순히 궁수 각성자가 아니라, 특별한 클래스를 가진 랭커였다.

“너? 나?”

“나.”

헌터가 루크의 질문 아닌 질문을 받은 것과 동시에 한 줄기 빛이 되어 사라졌다. 그의 클래스는 ‘빛의 추적자’.

이동 속도에 엄청난 보너스가 적용되고, 일반적인 화살 대신 빛 속성 마력 화살을 사용할 수 있으며, 해가 떠 있을 때 몇 가지 신체 스탯에 대한 보너스를 얻는다. 루크가 한 줄기 빛이 되어 움직인다는 건 고유 능력을 발휘했다는 뜻이다.

“그럼 수색은 루크가 할 테니까. 나는.”

치익―.

헌터는 허리쯤에 걸어둔 무전기를 꺼내 쥐었다.

“전방에 생존자 무리로 추정되는 인간 발견.”

[치익―. 그럼 어떻게 할까요? 여기서 대기할까요?]

“흠. 이상하게 주변에 그린스킨이 적지? 그럼 본격적으로 파밍을 해보는 것도 좋겠지?”

[치익―. 알겠습니다.]

이번 파밍은 단순히 식량만이 목적이 아니다. 사림이 모이면 생필품은 먹는 게 전부가 아니다. 의식주라고 했다. 식주(食住: 먹을 것과 집)도 중요하지만, 입는 것도 못지 않게 필요하다. 여름이 지나면 곧 겨울이 올 테니까.

치익―.

“생존자 무리와 마주치면 먼저 공격하지 마. 하지만 저쪽에서 먼저 공격해오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죽여.”

[치익―. 알겠습니다.]

이건 헌터의 개인적인 판단이 아니다. 헌터가 마스터라고 부르는 이요한의 명령이었다. 생존자 무리를 보면 먼저 공격하지 않고 경고한다. 하지만 저쪽에서 덤비면, 덤빈 놈은 모두 죽인다.

“그나저나 이 자식은 왜 안 와? 그냥 살피고만 오라니……? 어라? 싸우는 건가?”

무려 빛의 추적자이기에 분명 오고도 남았을 시간임에도 소식이 없어 걸음을 빨리하던 헌터는 얼마 안 가 앞에서 폭발하는 마력을 느끼고 그대로 고유 능력을 발현했다.

그림자 감시자.

헌터가 각성한 클래스의 이름이자, 고유 능력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제는 해가 져물어 가고 있는 저녁 시간대. 길게 늘어선 주변 건물과 집들의 그림자 사이로 헌터가 스며들어 이동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개자식들!! 쓰레기 같은 새끼들!!”

보기 드물게 화를 내며 빛을 번쩍번쩍 뿌리고 있는 루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 팔푼이 같은 놈이 저렇게 화를 낸다고? 여기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루크는 그의 클래스답게 밝고 외향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이다. 오죽하면 이 종말이 시작되기 전, 루크가 한 일이 바로 세계 곳곳의 보육 시설을 돌아다니며 시설과 아이들을 체크하는 일이었을까? 그는 선한 사람이다.

“뒈져!!”

그리고 선한 사람이 빡치면 진짜 무서운 법이다. 우리 마스터가 그런 것처럼.

‘이거 어쩐다?’

보아하니 이곳 쉘터의 각성자들이 백은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루크의 클래스는 정찰과 수색에 특화되어 있다. 이렇게 정면에서 벌이는 전투보다 원거리에서 요격하는 게 더 쉬운 클래스.

‘음. 일단.’

헌터는 그림자 사이를 넘어 전장에서 살짝 멀어졌다. 그리고 다시 무전기를 들어서,

치익―.

“각성자 50명만 이쪽으로 오세요. 조금 급합니다.”

[치익―. 알겠습니다.]

일단 연락을 해놨으니까,

“아오. 이 새끼. 뭐에 또 눈이 돌아가지고. 젠장!”

헌터는 투덜대면서도 어느새 적을 요격하기 좋은 곳으로 이동했다. 등에 총처럼 메고 있던 대형 연발 석궁을 앞으로 돌려 잡고,

“스읍. 실루엣 애로우(Silhouette Arrow).”

석궁의 기다란 화살을 주변에 있던 그림자가 몰려들어 감싼다. 가뜩이나 카본 재질로 검은색이었던 석궁의 화살은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투웅―.

거친 파공음을 남기고 싸우진 화살은 눈 깜빡할 사이에 한참 루크와 부딪치고 있는 각성자들 앞에 도달했다.

“불열. 확산.”

뒤덮인 그림자로 그것을 감지하고 있던 헌터는 마력을 쏘아내며 그림자 감시자의 진짜 힘을 드러냈다. 석궁 화살을 감싸고 있던 그림자가 십여 개의 석궁 화살이 되어 루크를 가두려고 힘을 쓰던 각성자의 몸에 박혀 들었다.

“컥!”

“크악!”

“아아악!”

“왔구나! 헌터!!”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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