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물어!>
“왔구나! 헌터!!”
‘빌어먹을 놈아. 내가 여기 있다고 아예 광고를 해라.’
헌터는 루크의 외침에 혀를 차고는 곧장 다른 그림자로 이동했다. 방금 있던 곳에서 동쪽으로 조금 더 떨어진 건물 옥상으로. 물탱크로 만들어진 그림자로 이동해서, 다시 석궁을 들고 이제는 ‘적’으로 규정한 이들의 뒤통수를 노리고 화살을 발사한다.
“악!”
“뒤, 뒤다!”
“젠장!”
…
석궁은 총에 비견될 정도로 투사체의 속도가 빠르다. 그렇기 때문에 죽이지 않고 제압만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각성자인 헌터에게는 다른 이야기다. 그림자로 된 석궁 화살을 다리나 옆구리에 맞은 이들은 모두 쓰러져 신음을 흘렸다.
그건 단순히 관통상이 아니라, 몸 안에 그의 마나가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그림자 감시자는 빛의 추적자와 달리 수색대라기보다 파수꾼처럼 특정 영역을 수호하고 적을 저지하는 것에 가까운 클래스이기에 지금처럼 적을 무력화하는 데 특화되었다.
물론 그것도 더 강력한 마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겠지만,
“뭐 때문에 그렇게 열이 잔뜩 올랐냐?”
다행스럽게도 루크를 습격한 각성자 중에는 그런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그걸 확인한 후에야 헌터는 모습을 드러내고 루크의 옆에 섰다. 마치 너희 따위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것처럼 태연하게.
“저 빌어먹을 놈들이! 글쎄! 아오! FXCK!!”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를 갈다가 분에 못 이겨 욕설을 내뱉는다. 루크가 가리킨 곳을 본 헌터의 눈이 순식간에 좁아진다.
그곳엔 그린스킨 시체 하나와 팔이 어깨 아래부터 뜯긴 채로 기절한 중년 남성이 한 명 있었다. 궁수 계열 각성자이기에 헌터는 바닥에 난 여러 흔적만으로도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짐작했다.
“싸움? 아닌데?”
“싸움은 염병! 저것들이 그린스킨을 잡아서 인간을 던져놓고 구경하더라! 무슨 UFC인줄! 거기까지만 그래도 나중에 다 조져야지 했는데, 저 빌어먹을 망종들이 언제 죽을지 내기를 하고 있더라니까!”
투쾅!
헌터가 더는 참지 못하고 가장 가까이 있던 놈의 어깨에 석궁을 박아넣었다.
“너네 뭐냐?”
소란을 듣고 나온 권정훈의 권태 섞인 목소리가 다른 각성자들의 신음을 뚫고 들리던 그 순간,
“헌터님! 루크님!”
공교롭게도 헌터가 부른 50명의 전투 각성자들이 도착했다.
“제압해.”
헌터는 대장으로 보이는 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주변에 널브러졌거나, 방금 나타난 각성자들을 가리키며 명령했다. 그 명령에 아직 10대인 아이들이 주축인 각성자는 각자 능력을 발현하며 달려들었다.
이 원정이 시작되기 전, 원정을 나가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그러니까 그린스킨이 더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걸 확신할 무렵부터 이요한은 대대적인 각성자 교육에 들어갔다.
그는 카르마 포인트를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효율적인지와 직업에 따라 귀하게 다뤄야 하는 카르마 포인트 종류 및 스탯을 전부 꿰뚫고 있었다.
이요한이 그럴 수 있는 원동력은 회귀 전, 10년 가까이 누워 있으면서 가이아 게시판 영상을 보며 습득한 정보였다. 당시 이요한의 정신은 무너지기 직전이었고, 만약 가이아 게시판에서 ‘열중할 거리’를 찾지 못했다면 그는 미쳐버렸을 거다.
그렇기에 이요한 본인도 모르게 그의 생존 욕구는 집요하게 가이아 게시판을 파고 들었고, 그러한 본능의 일환으로 그는 정작 영상을 올린 사람보다 더 효율적인 카르마 포인트 소비 방법을 정립했다.
다만 이런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영주인 이요한의 통찰력에 감탄하며 충성 스탯이 더 높아지곤 했다.
아무튼 그런 과정을 거친 각성자 중, 능숙하게 고유 능력과 일반 능력을 다루는 일종의 재능을 보이는 이들만이 김포시 전체를 수색하는 원정대에 포함됐다.
“아저씨. 검, 그렇게 휘두르는 거 아닌데. 그러다가 손목 나가요.”
“닥쳐! 좆 만한 새끼야!!”
“머리, 머리, 다리!”
“컥, 큭! 칵!”
“죽어! 죽어! 죽어어!!”
“피했죠~. 피하죠~. 또 피했죠?”
무엇보다 성벽이라는 든든한 방패 뒤에서 만에서 수천에 이르는 그린스킨과 전투를 겪으면서 쌓인 카르마 포인트는 이 시기의 웬만한 각성자들과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높다. 정예병과 특수병을 죽여 카르마 포인트를 얻은 사람만이 원정에 나왔으니까.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이미 전투가 아니라 농락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마 이 쉘터가 다른 무법자들과 다르게 제한된 인원으로 주변 그린스킨을 처치하는 특이한 방식인 폭군 권정훈의 쉘터가 아니었다면 대결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을 거다.
권정훈은 주변의 동료가 모두 제압되는 걸 보면서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권태를 담고 있었으며, 동요조차 없었다.
“대답 기다리고 있는데? 너네 뭐냐고.”
“네가 시켰냐?”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루크는 거기에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턱짓으로 쓰러져 있는 중년의 남자를 가리키며 되물었다.
“아~~~~! 짜증나네. 갑자기 처들어와서 지랄하는 것도 짜증나고,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것도 짜증나!”
머리를 거칠게 헝클면서 온몸으로 짜증을 표현하던 권정훈은,
“그러니까 너희가 죽는 건 내 잘못이 아니다?”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섬뜩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나른한 여름의 낮잠처럼 늘어지던 목소리가 착 가라앉는 순간 그 주변의 온도가 내려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순간 그의 모습이 루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챙―!
루크의 왼쪽에서 그의 목을 향하던 단검을 헌터의 군용 단검이 막아냈다.
“정신 차려. 이 자식아!”
“젠장!”
다시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권정훈을 본 루크는 헌터와 짧은 눈빛 교환 이후, 한 줄기 빛이 되어 사라졌다. 헌터가 말한 ‘정신 차려’의 의미는 유격전 전문 클래스인 루크에게 그가 잘할 수 있는 걸 하라는 뜻이었고, 루크는 그걸 알아들었다.
대신 루크가 보호하고 있던 모양새였던 한쪽 팔이 잘린 중년의 남자를 헌터는 은근슬쩍 그림자로 뒤덮어서 보호했다.
“흠. 생각보다 강한데?”
그림자를 팔처럼 다루면서 자신을 공격하는 권정훈을 막으면서 상대의 강함을 가늠하던 헌터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어떻게 나와 비슷한 속도를 낼 수 있는 거지?’
궁수 계열의 특이 클래스. 그림자 감시자. 헌터는 자신과 비슷한 반응 속도를 보이는 권정훈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몇 번의 공방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헌터만 해도 신체 스탯이 오렌지 랭크 초반이다. 종말이 시작된 지 아직 100일이 되지 않은 이 시점에 오렌지 랭크 스탯을 보유한 사람? 영지 소속을 제외하면 열을 넘지 않을 거다.
‘그런데 그 다섯 중 하나가 이렇게 가까이 있었다고?’
그럴 리가 없다. 한국인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카르마 포인트를 막대하게 수급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특별한 환경이 되어야 한다. 이요한이 괜히 첫 선발대와 간부들이 내리는 전초기지인 김포에 영지를 설정한 게 아니다.
비각성자뿐만 아니라, 각성자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는 공방이 십여 차례쯤 되었을 때.
쐐애애애액!
하늘에서 빛의 비가 내렸다.
창―. 채채채앵―. 퍽. 퍼퍼퍽.
몇 개는 막는 것처럼 보였지만, 오히려 그게 권정훈의 실책이었다. 그는 막지 말고 피했어야 했다. 막는 것에 집중하다 한 자리에 머문 순간 권정훈에게 쏟아지는 빛의 화살은 순식간에 두 배가 되었다.
그리고 막지 못한 빛의 화살이 권정훈의 몸을 때렸다. 그 모습을 관찰하던 헌터의 눈매가 더욱 좁아졌다.
‘루크의 화살을 마력으로 막았어. 저 새끼 뭐지?’
이상한 놈이다. 특히나 시간이 지날수록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세는 불길하기까지 했다. 마치 포식자 앞에 선 것처럼.
그리고 그때 갑자기 권정훈이 주변에 있던 제압을 위해 허벅지에 그림자 화살을 박아 넣었던 같은 쉘터 출신 각성자의 목에 단검을 박아넣는 게 아닌가!
“뭐?”
당황해서 저런 말이 튀어나왔을 정도로 헌터는 놀랐고, 하늘에서 쏟아지던 빛의 화살이 끊어질 만큼 루크도 놀랐다.
“아, 망했어요. 더 묵혔다가 먹었어야 했는데. 어쩔 수 없죠. 아저씨들은 쉽게 죽일 수 없을 만큼 강하네요. 그래도 괜찮아요. 아저씨들은 이것들보다 훨씬 맛이 좋을 것 같으니까.”
이제 권정훈의 눈에서 권태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 같은 눈이 헌터를 훑는다.
“하?”
헌터는 그게 어이가 없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다.
헌터 핸스워스.
다른 지구의 의지의 사제들과 달리, 헌터와 네이선은 일반인이 아니라 군인 출신이었다.
그것도 진짜 전쟁을 경험하고, 총으로 적을 수십, 수백 사살한 경험이 있는 군인이었다. 네이선과 달리 헌터는 PTSD로 폐인 같은 나날을 보냈다. 아마 지구의 의지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그는 스스로 입에 총을 물고 자살했을 거다.
그런 그의 앞에 ‘부모와 자식 한데 모아 가지고 노는’ 이런 광경은 이제는 치료된 PTSD를 끄집어 내는 광경이고 그의 역린이었다.
“하아. 진짜. 이게 뭔 쪽팔리는 짓이야.”
그제야 머리가 차가워진 헌터는 손에 쥔 단검을 다시 허리춤에 꽂고, 허벅지에 권총처럼 꽂아 둔 소형 석궁을 들었다.
“Do not mess with me, fucking kid.”
‘까불지 마라, 빌어먹을 애송이.’라는 말을 영어로 내뱉은 헌터의 손에 들린 소형 연발 석궁에서 검은 광택으로 뒤덮인 작은 볼트가 쏟아졌다. 그렇게 쏘아진 볼트는 전과 다르게 수십 개로 늘어나 권정훈의 몸 곳곳에 박혔다.
* * *
이요한과 그 일행이 오백을 넘어 천 명이 넘는 군인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제압해 잔디밭 곳곳에 쌓아놓았을 때가 돼서야 좀비처럼 달려들던 군인들이 정신을 차렸다.
“조배달. 어디있나?”
가장 앞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선 군인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그는 애초에 간부가 아니었다는 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의 움직임에 다른 군인들도 마치 전염된 것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한곳으로 시선을 모은다.
“…젠장.”
드물게 상의와 모자의 계급이 일치하는 군인. 소령 계급을 달고 있는 중년의 남자가 자포자기한 얼굴을 하고 그렇게 중얼거린다.
“조배달은?”
그의 명찰에 달린 이름은 조배달이 아니었기에 물었지만, 그는 어딘가 씁쓸한 얼굴을 하고 입술을 달싹였다. 주변에서 자신만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빛에 망설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도망갔소.”
소령의 입에서 나온 대답에 왜 그가 망설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들을 이끄는 대장이 도주했다는 말에 축구장을 가득 채우고 그 너머 스탠드까지 가득 찬 군인들의 얼굴에 배신감과 허탈함이 깃들었으니까.
“도망? 어딜? 어떻게?”
“그건…….”
어떻게 도망갔는지 소령이 대답하려 했지만, 그의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었다.
두두두두두―.
저 멀리서 막 비행을 시작한 헬리콥터가 보였으니까.
“미친 새끼.”
내 일행이 한 말이 아니다. 군인 중 어려 보이는 남자가 여기서 점점 멀어지는 헬리콥터를 보며 그렇게 욕을 씹어뱉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벌써 빠르게 멀어지는― 고유 능력인지 일반적인 헬리콥터의 속도가 아니다― 저 헬리콥터를 보면서 같이 욕을 하겠지만,
“설기야~.”
“먀아~.”
내 품에는 어느새 작아진 고양이 상태로 안겨 식빵을 굽고 있는 설기가 있다.
“저거 물어와.”
“먀아!”
눈앞에 레이저 포인터로 움직이는 붉은 점을 만들어준 것처럼 신나는 울음을 토해내고는 내 품에서 폴짝 뛰어내려 허공에 몸을 띄웠다. 작고 앙증맞은 날개가 몇 번 펄떡이는 사이 설기의 몸은 빠르게 멀어지는 헬리콥터에 다가갔지만, 원근법을 무시하는 것처럼 덩치는 점점 커졌다.
콰득―!!
“으아아아아!!!!”
멀리서 아련하게 들려오는 비명소리가 들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서,
콰득―. 푸덕―. 텅텅.
절반이 찌그러진 헬리콥터였던 것이 잔디밭에 나뒹군다.
“잘했어. 우리 설기.”
거대한 덩치가 순식간에 줄어들어 품으로 쏙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새하얀 고양이를 쓰다듬는 광경을 4천의 군인들이 넋을 잃은 것처럼 바라본다.
넓은 축구장에는 설기의 ‘먀아~.’ 하는 기분 좋은 울음과 ‘살려줘!!’라고 외치는 조배달의 비명만이 간간이 들려온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