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61화 (61/183)

61화

난 원정대를 보내면서 몇 가지 안배를 했다. 200명이나 되는 각성자뿐만 아니라, 선임 각성자라고 불리는 지구의 의지의 사제들을 필연적으로 넣었다.

엘라의 상급 정령도 그중 하나였지만, 문제는 이걸 책정한 이요한도, 상급 정령을 붙여준 엘라도 이 안배가 발동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침식자가 활동하는 경기도 남부로 내려가는 것도 아니고, 영지가 속해 있는 김포시가 대상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엘라는 상급 정령의 힘이 발동되자마자 나를 찾았고, 그 길로 나와 엘라는 바람의 상급 정령의 지원으로 이곳까지 달려왔다. 중간에 파밍하고 있는 영지민에게 아는 척도 하지 않고 달릴 정도로 급하게.

다행스럽게도 원정대는 무사했다. 그 원흉으로 보이는 놈도 같은 자리에 있었고.

그래서,

“너냐? 이 개자식아? 감히 우리 애들을 건드린 간 큰 놈이?”

일단 멱살부터 잡고 봤다. 그런데 멱살을 잡고 흔들다 보니까 얼굴이 익숙하다. 그리고 익숙하다는 걸 인지하기 무섭게 내게 멱살이 잡혀 대롱대롱 매달린 놈이 누군지 떠올렸다.

“폭군?”

회귀 전, 인천 지역을 주름잡은 대규모 쉘터의 주인이자 누군 약탈자라고 하고 누군 영웅이라 평가한 기이한 각성자. 폭군, 권정현이라는 걸.

그리고 폭군은,

“반갑다. 이 개자식아.”

회귀 전 삶에서 내가 가장 싫어하던 인물 중,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각성자다.

싫어하는 데 이유가 있냐는 말도 있지만, 내가 폭군을 싫어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가 사다리를 걷어차는데 적극적인 놈이었다는 것과 각성자의 수를 제한하며 결국 서울과 인천이 그린스킨의 손에 넘어가게 되는 데 그 사다라 치우기가 결정적인 이유인 놈이라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내가 이 빌어먹을 새끼를 싫어하는 진짜 이유는,

“아니지. 도살자라고 불러 줄까?”

이 새끼의 클래스 때문이다. 도살자. 단순히 살해하는 것만으로도 강해질 수 있는 각성자 클래스로 랭커 조건인 100위에는 들지 못했겠지만, 굉장히 좋은 클래스다. 그린스킨과 싸운다는 걸 생각하면.

그런데 이 새끼는 그 도살자 클래스로 각성자를 도시락처럼 써왔다. 앞으로 3년 뒤, 김포에 자리 잡은 그린스킨 간부들이 사방으로 확장할 때, 자신의 쉘터에 있던 각성자를 잡아먹고 혼자만 도주한다.

각성자를 살해하면 스탯을 영구적으로 획득하고, 운에 따라 일반 능력을 얻기도 한다나?

그러면 차라리 각성자를 수두룩하게 만들어서 죽여서 엄청나게 강해지던가.

그런데 이 빌어먹을 놈은 그것도 아니다.

각성자 숫자를 통제하고 때가 되면 각성자를 잡아먹는다.

이해할 수 없는,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수준의, 개새끼다.

“일단 몇 가지 확인 좀 하자.”

멱살이 잡힌 놈을 바닥에 던져놓고,

“헌터. 칼.”

“아, 네! 여기요.”

헌터가 건네는 단검을 받자마자,

푹―.

“끅!”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한 권정현의 허벅지에 칼을 박아넣었다.

푹푹―. 푸욱―.

“악악!”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에 걸쳐서 허벅지 곳곳과 옆구리에도 바람구멍을 하나 내놓았다. 그리고 관찰했다.

“음. 재생 계열 패시브 스킬은 없나 보네.”

“왜, 왜……?”

“왜 괴롭히냐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그걸 물어보면 안 되지. 너도 그냥 너 기분 내키는 대로 저렇게 해놓은 거 아냐?”

“…….”

“나도 마찬가지야. 난 너 같은 짓을 하는 새끼가 싫어. 그것도 X나 싫어. 절대 편하게 죽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싫어. 그러니까 이제부터 당하는 모든 고통이나 괴로움 그런 건 네 탓이고, 네 업보라고 생각해. 알겠지? 우리는 카르마(업보)를 다루는 사람들이니까 명분도 괜찮네.”

놈은 답이 없었다. 그저 자신이 당할 일을 상상하기라도 하는지 벌벌 떨다가 지리고 있었지만, 일말의 동정심도 생기지 않는다.

“엘라.”

“네. 주인님.”

“이 빌어먹을 놈을 끌고 가서 가둬놔. 허튼짓 하면……. 아니지. 아예 사지를 잘라서 가져가.”

“네.”

세계수가 심어진 영지에서 안락한 생활을 하면서 미(美)의 화신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단순히 외모뿐만이 아니라, 고귀함마저 느껴지게 변한 엘리아나였다. 그런 그녀의 외모만 본다면 내 명령이 절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그녀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선선하게 대답했다.

“루크. 헌터.”

“네. 영주 님.”

“네. 마스터.”

“상황 좀 설명해 봐.”

그걸 이제 물어보느냐는 생각이 헌터의 푸른색 눈동자를 타고 흘렀지만, 나는 무시했고 헌터는 서둘러 그런 기색을 숨겼다. 그러니 아무런 문제도 없는 거다. 아마도?

“그러니까…….”

헌터의 대략적인 설명과 루크의 첨언에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확실히 이해했다. 그리고 나는,

퍽―!

“끄악!”

불의 상급 정령에 의해 사지가 잘린 채 고통에 바닥에서 버둥거리는 놈의 얼굴을 발로 차버렸다.

“아……. 하마터면 죽여 버릴 뻔했네. 오래된 음식물 쓰레기 같은 새끼가.”

“끄악……. 큭. 왜, 왜……?”

“내가 아까 한 말 뭐로 들었어? 이유 같은 거 궁금해 하지 말라니까? 그냥 넌 당하기만 하면 돼. 여태까지 너 새끼에게 당했던 다른 사람들처럼.”

흔들리는 동공에는 ‘미지의 공포’라는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엘라. 저거 영지 부근에 던져놔. 정령으로 그 정도는 가능하지?”

“그럼요. 주인님.”

엘라의 대답 동시에 놈을 지지해주던 땅이 꿈틀거리더니 거대한 손 모양으로 변해 놈을 움켜쥔다. 움켜쥐는 힘이 강했는지 안에서 ‘끄악!’ 하는 비명이 나왔지만, 나나 엘라나 그딴 건 관심도 없었다. 손을 흔들어 치워버리라는 말을 대신한 후,

“여기 생존자는 몇 명이야? 저기 죽은 시체들은 각성자야?”

“생존자 파악은 다 안 됐습니다. 죽은 이들은 각성자이고, 몸에 한 군데 이상 구멍이 난 것들은 저 자식……, 아까 그 자식 부하입니다.”

방금까지 권정현이 있던 곳을 가리키던 헌터는 이미 사라진 권정현 때문에 말을 바꾸며 그렇게 대꾸했다.

“알았어. 그럼 너희 둘은 생존자부터 파악해서 모아놔. 너희는 파밍 마저 가고.”

“네.”

“네에~!”

헌터와 루크는 생존자를 파악하러 나섰고, 50명이나 모여 있던 어린 각성자들은 내 명령에 밝게 대답하며 빠르게 쉘터를 벗어났다.

그렇게 원정대 소속 각성자들이 흩어지고, 나와 엘리아나를 비롯해 설기 위에 탑승했던 인원과 헌터와 루크만 남았을 때,

“어?!”

순간 엘리아나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역시 블루 랭크. 옐로 랭크 따위는 움직임을 알아차릴 수도 없다니.

잠깐, 정말 잠깐의 시간이었는데 사라진 엘리아나는 얼마나 멀리 이동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이런 일이 전에도 있었던 것 같은……? 응?”

중얼거리는 짧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실로 몇 초 지나지 않아 다시 나타난 엘리아나의 손에는 기절한 남자가 둘이나 있었다.

“응? 이건 뭐야?”

“주인님. 침식자예요. 멀리서 훔쳐보고 있었어요. 실라이론이 찾아냈어요.”

바닥에 내팽겨쳐지면서 그 충격에 꿈틀대며 일어난 둘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우리를 보며 기겁했다가 눈빛과 표정이 결연해졌다. 마치 무언가 큰 결심을 한 것처럼. 딱히 관심은 없지만,

“네 놈은 이제 끝났다!”

대뜸 신박한 소리를 해대는 빡빡이 놈의 말에 관심이 생겨 버렸다. 이 신박한 개소리에 어떻게 반응해줘야 더 빡칠까 고민하고 있는데,

“이미 그분께서 네가 세워놓은 쉘터를 끝장내셨을 테니까.”

어디서 우리 설기도 속지 않을 쌉소리를 해댄다. 이게 바로 그 병신인가?

“흐흐흐흐. 절망해라! 위대한 분께 거역한 과거를 후회하면서!!”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병신 같은 소리라서 무슨 말부터 꺼내야할지 고민했는데, 그걸 내가 당황했다고 생각했는지 쌉소리를 쉬지 않고 내뱉는다.

짜악―.

일단 일명 귀빵맹이로 주둥이를 닥치게 해놓고,

“그러니까 지금 영지를 공격 중이시다? 침식자 새끼들이랑?”

가장 궁금한 걸 물었다.

“그, 그렇다아!!”

마치 기개를 잃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를 빽 지르는 놈의 죽빵을 한 방 더 갈겨줬다.

“귀 아파. 살살 말해. 이 새끼야.”

“…….”

“그럼 그린스킨도 대동했겠네?”

“…그, 그렇다.”

“설마 많이 데려왔어?”

“그렇다! 엄청 많다!”

아 놔. 이 양아치 같은 침식자 새끼들.

“아 왜!”

“으흐흐흐. 후회해 봐야 소용없다.”

“나도 카르마 포인트 필요한데!! 왜 나 없을 때 쳐들어와아!”

“……뭐?”

카르마 포인트 귀한 줄 모르고 말이야. 영지에 남아 있는 애들만 노났네.

“아니지. 우리 설기는 빠르니까. 지금이라도 갈까?”

“무, 무슨 소리를!!”

내가 지금 안타까운 건 카르마 포인트를 얻지 못하는 것 정도다. 영지 방어에 대한 걱정?

“하! 영지를 끼고 파수꾼의 틈에서 마법만 날리는 올리비아가 얼마나 독한지 모르는 머저리들이.”

더욱이 내가 영지를 나오면서 업그레이드까지 끝낸 옐로(Yellow) 랭크 망루도 있다. 나도 그 성능을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누가 후회를 한다고?”

“뭐?”

멍청한 얼굴로 ‘뭐?’만 반복하는 놈의 목을 단번에 잘라버렸다.

“올리비아의 이응도 모르는 새끼 같으니라고. 걔가 얼마나 무서운 앤데…….”

내가 중얼거리는 말에 지켜보던 지구의 사제들 고개가 위아래로 출렁인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