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하늘에서 카르마 포인트가 떨어진다아!!>
그린스킨의 여섯 총사령관 중, 한 명인 제스터는 꽤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지구의 시간으로 계산하면 10일이나 미동도 없이 온몸을 한껏 웅크리고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제스터는 열흘 전 권속의 눈을 통해 확인한 인간의 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본 성의 전력은 분명히 굉장했다. 이 저급한 식량만 가득한 차원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만큼.
물론 그는 모를 것이다. 지구의 의지가 페널티를 받아들여 화약 정도만 사용할 수 있었어도 그린스킨은 지금보다 몇 배는 힘들었을 거다. 초전은 오히려 박살 났을 수도 있다.
“흐음.”
하지만 그걸 모르는 제스터고, 한국이 아닌 아시아의 다른 나라를 기준으로 한 제스터의 입장에서 이요한의 성은 기이할 정도로 높은 전투력을 가진 곳이다.
심지어 제스터가 확인한 건 주인인 이요한이 없는 영지의 전투력이었다. 주인이 있었다면 여기서 더 전투력이 오를 게 분명할 터.
“흐음.”
물론 그는 아직도 엘리아나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이요한의 전투력을 높게 잡았다.
“옐로 랭크 정도일까?”
열흘에 가까운 사색 끝에 그는 올려치기를 해서 우연히 이요한의 랭크를 정확히 가늠했다.
“그래. 그 정도겠구나.”
옐로 랭크의 강자(?)와 그 아래 랭크의 부하들. 그 숫자를 가늠하던 제스터는 가만히 아시아 전역이 그려진 지도를 응시했다.
이요한이 차지한 영토는 작고 작은 나라의 한쪽에 불과하다. 그 위로 거대한 대륙이 제스터의 눈에 들어온다. 그에게는 축복의 땅과 같은 곳이었다.
“옐로 랭크 정도면 충분하지.”
광활한 땅에 엄청난 인구. 그리고 인간이길 포기한 이들이 가득한 땅.
침식자의 숫자가 백이나 천이 아니라, 십만 단위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숨겨 있는 땅.
“가축은 중국이라고 부른다고 했던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하나 같이 인간 같지 않은 사람이 드글드글한 땅을 흡족하게 바라보던 제스터는 차원의 문이 두 배는 더 커진 것을 확인하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때가 되었구나.”
전보다 훨씬 넓어진 차원의 문을 통해서 밀려드는 그린스킨 군대를 흡족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히 위대한 푸른 피를 거스른 가축을 토벌할 때가.”
* * *
66일.
이 불길한 숫자의 날이 밝아왔다. 나를 비롯한 영지의 모든 각성자가 막연하게 기다리기만 한 건 아니다.
그 사이에 만으로 닷새 동안 우리는 전격적으로 주변으로 원정을 나섰다. 사실 전격적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우리는 엄청난 기동력으로 원정을 다녔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군벌에서 골라온 각성자들의 힘이 컸다. 4천 명에서 거르고 거른 2천여 명의 라이더가 [도서관]에 틀어박히면 하루에 일반 능력 [기승(騎乘)]의 스크롤을 수십만 장 쏟아낼 수 있었다.
이렇게 제작된 스크롤을 사용하면 적성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4시간은 일반 능력 [기승]이 생겨난다. 그리고 기승이 발현된 각성자는 [마구간]에서 동물을 고용할 때, 평균 40%에 달하는 고용비용 할인이 적용됐다.
이게 무슨 말이겠나?
카르마 포인트 때문에 억지로 낮춘 동물을 원하는 것으로 고용할 여건이 비로소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스크롤이 쏟아진 첫날.
정작 영지 소속 각성자들은 스크롤은 써보지도 못하고 8할 이상이 라이더 클래스의 군벌 각성자들이 운전하는 군용 차량 뒤에 타고 서울로 향했다. 이 말이 무슨 뜻이냐? 서울에 5천여 명의각성자가 투하됐다는 뜻이다.
5천 명의 각성자들은 서울 곳곳에 흩어져 그린스킨을 사냥하고, 멋도 모르고 덤비는 빌런을 썰어버리고, 생존자를 구출했다. 그때까지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던 비각성자들은 카르마 포인트로 기준을 나눠 기준에 통과한 이들은 군용 트럭 뒤에 실어 영지로 이송하는 과정을 거쳤다.
첫날 영지를 떠나 서울로 향한 각성자 중에는 전 대통령 경호처장인 김준과 그의 부하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김준이 자발적으로 자원해 도착한 곳은 삼청동이었다. 청와대가 있는 곳이다.
“대장님. 여길 왜?”
“내가 치우지 못한 쓰레기를 치우려고 하는 거네.”
“예?”
“오늘, 이요한 영주님 휘하의 1만 하고 2천 명이 넘는 각성자가 서울에 뿌려졌네. 그말을 뭐겠나? 서울이 살만해진다는 뜻이지. 살만해진 서울에서, 살만해지면 여기 있는 이 쓰레기들이 우리 영주님의 발목을 잡지 않겠나?”
“…음.”
김준의 부관은 차마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가 경험한 정치인들, 특히 지금 청와대에 있는 놈들이 발목이 아니라 허리를 잡고 늘어질 확률이 오만칠천 퍼센트니까.
“그렇다고 한들, 여길 찾아오셔서 어쩌시려고요?”
김준과 그의 부하들은 허물이 없다는 게 이런 대화에서 드러난다.
“말했잖은가. 내가 처리한다고.”
“예?! 죽이시려고요?”
“필요하다면.”
“안 됩니다!”
김준은 그런 부하들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가 판단한 이요한 회장 아니, 영주는 선한 듯 보이지만, 무서운 사람이다.
그렇다고 선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선을 넘는 순간 누구보다 냉혹하게 돌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너희는 영주님이 어떤 사람 같냐?”
“이요한 회장님이요?”
“영주님이라고 부르라니까!”
“그래요. 영주님. 영주님은 이상한 분이죠.”
“이상해?”
“네. 솔직히 우리가 어떤 놈들입니까? 은밀하게 실행한 작전에서 죽인 사람을 모두 더하면 세 자리는 될 겁니다. 그런 우린데. 이상하게 영주님 앞에 서면 오금이 저린다고 해야 하나?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신병 때 생각이 납니다.”
“그게 카리스마다. 실제로 우리보다 랭크가 높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영주님은 무서운 분이시다. 너희도 봤지? 어제. 조배달이라는 놈하고 권정현? 이라고 했던 그 양아치 놈과 그 무리들.”
“아아. 봤죠.”
“난 그때 그냥 영주님이 화풀이 하는 줄 알았다.”
“응? 그거 아닙니까?”
“가이아 게시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영상이 뭔지 찾아봐라.”
청와대를 앞에 두고 모여서 영상을 시청하던 이들은 하나 같이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누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고, 누구는 질린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요한은 단순히 빌런을 괴롭히는 영상을 올려 인기를 끈 게 아니다.
이미 사회적 통념과 도덕이 무용지물이 된 세상에서 최소한의 선을 그어버렸다. 이 선을 넘지 말라고 경고와 함께 생존자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저것들이 뻘짓하면 우리가 어떤 취급을 받겠나?”
“흠.”
“무조건 다 죽이겠다는 게 아니야.”
“그럼요?”
“우리는 어디까지나 물자를 얻으러 온 거야.”
물자를 얻는다? 청와대 지하 벙커에 마련된 물자를 빼앗기면 저들이 가만히 있을까? 뭐, 이쪽이 무력부대니까 가만히 있을 수도 있지. 그렇다면 그 후에는?
“급하면 그린스킨 놈들을 사냥할 궁리를 할 테지.”
김준의 설명에 부하들을 깨달았다. 김준이 직접 손을 쓰진 않겠지만, 지금 청와대 벙커에 있는 이들은 모두 죽을 거라는 걸.
“그렇게 하겠습니다.”
“가시죠. 문은 제가 열겠습니다.”
김준과 대통령 경호처 소속이었던 각성자들이 벙커로 들어서자, 죽어있던 눈으로 서로를 비난하기 바빴던 늙은 이들은 반색했다. 이요한 회장이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여겼기에.
하지만,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나!”
김준의 통보에 게거품을 물고 달려들 듯이 따졌다. 하지만 이 멸망한 세상에서 김준 일행이 가진 무력에 비하면 허울 뿐인 무슨 무슨 장관 같은 직책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다.
“컥!!”
민정수석을 벽에 처박아 넣은 김준이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내가 분명히 경호처장을 그만둔다고 했는데, 왜 아직도 아래 사람 다루듯이 하는 것 같지? 기분이 언짢은 건 기분 탓일까? 응?”
“컥! 컥!”
김준의 평소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폭력적이고 깡패 같은 분위기에 잔뜩 뿔이 난 치와와처럼 짖던 정치인들의 입이 저절로 다물어진다.
“경고를 겸한 충고를 하나 하지. 이제 난 당신들 부하가 아니고, 우리의 소속은 이요한 영주님의 영지다. 그러니 앞으로는 그 주둥이를 열 때, 주의해 줬으면 좋겠어.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당신의 목을 잡은 이 손에 힘들어가지 않도록. 알겠나?”
“컥! 크헉! 아, 알겠……! 컥컥! 쿨럭! 쿨럭!”
살길이 열리자 맹렬히 고개를 끄덕이는 민정수석을 놓아주자 기침을 하며 괴로워하는 사이에 벙커 안으로 들어선 김준의 부하들이 하나둘 손에 엄청난 양의 짐을 들고나오기 시작했다.
“저, 저, 저!!”
대통령은 그 모습을 보면서 억울하고 분한 듯,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김준의 눈빛에 차마 입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끝났습니다. 대장.”
“좋아. 사흘 정도 버틸 수 있는 식량을 남겼소.”
그럼 사흘 뒤에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에 대한 질문과 대답은 서로 하지 않았다.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기에. 그렇게 김준이 떠난 벙커에는 절망이라는 안개가 퍼져나갔다.
“그러게 내가 김준을 보내면 안 된다고 했잖소!!”
“당신이 언제 그랬어! 멍청하게 고개만 끄덕였지!!”
서로 다투는 소리를 뒤로 하고 김준은 막대한 양의 물품을 군용 트럭 뒤에 싣고 영지로 복귀했다. 영지에서 나설 때는 사람만 타고 빈 군용 트럭 여럿이 출발했는데, 영지로 돌아오는 군용 트럭 뒤에는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식량과 물자가 가득했다.
이런 양상은 김준뿐만이 아니다. 서울 곳곳에 있는 물류 창고와 음식이 아니면 관심이 없어 생존자에게 무시 당한 의복과 여러 생필품과 유류를 긁어오다시피 하며 첫날에 획득한 물품의 양은 차량이 두 번 왕복해야 했을 정도로 풍족했다.
서울로 떠난 첫날의 대규모 원정은 단순히 물자만 파밍한 게 아니다. 이요한이 세운 기준―플러스 카르마 포인트가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의 2배 이상―을 통과해 영지로 데려온 비각성자의 수가 2만 명을 넘었다.
원정을 나선 각성자들이 서울의 거리마다 가득한 그린스킨을 때려잡고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를 획득한 것은 부차적인 수입에 불과했다.
카르마 포인트. 물자. 그리고 생존자까지.
더할나위 없이 훌륭한 원정이 아닌가!
그렇게 이틀, 사흘이 지났을 때.
올리비아를 비롯해 첫 원정에 나서지 않았던 각성자들 중, [마구간]에서 원하는 동물을 고용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흘, 닷새가 지났을 때.
지구의 의지의 사제들은 하나씩 탈 것을 보유했다.
각자 개성이 뚜렷하지만, 지정한 여섯 개의 후보 중 하나를 선택해서 고용한 이들은 영지민에게 또 하나의 트로피이자 목표가 되었다.
향상심을 불러오는.
그렇게 멸망 이후 66번 째의 날이 밝았다.
그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그린스킨이 대거 등장한 것은 아직 아침 해가 떠오르기도 전인 새벽 시간 대였다.
“하늘에서 카르마 포인트가 떨어진다아!!”
그리고 이제 이 영지에 속한 각성자 중, 그린스킨을 두려워하는 각성자는 없다.
그게 자신의 강함을 믿는 것이든, 갖고 싶은 탈 것을 위한 것이든 말이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