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마스터는 운이 좋은 편이시죠>
중국에서 소국을 정벌한다고 외치고 침식자와 그린스킨이 대거 이동한 것은 중국이라는 나라 전체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다. 한국과 인접한 지역인 라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까지 세 개의 성에만 해당되는 일이었다.
단지 세 개의 성이라고 수식하기에는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늦었구나.”
“뭐라는 거냐. 이 가오리방즈가.”
“시끄럽다.”
“니가 닥치라.”
…
다만 하나의 성에서 한 명의 지배자만 있는 게 아니었고, 그 결과 북한 경계에서 모인 이들은 그야 말로 난장판이었다.
“조용.”
하지만 그것도 가장 늦게 북한의 국경에 도착한 침식자의 등장으로 난장판은 살얼음판으로 바뀌었다.
“류하이칭님…….”
삼합회의 간부 직책인 홍곤(紅棍)으로 중국의 뒷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홍곤 중 하나다. 잔인한 손속과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지 하는 잔인한 존재다.
주활동지역은 산둥성과 허베이성 일대다. 즉,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도 그의 활동 지역에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다.
본래 이들이 말하는 ‘소국’인 한국을 침공하는 작전에는 둥베이 지구라고 부르는 북한의 북쪽 지역의 세 개의 성,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 그러니까 한음으로 각각 요령성, 길림성, 흑룡강성이다.
류하이칭의 활동 구역은 이곳들보다 서쪽에 치우쳐 있다.
“왜 류하이칭님이……?”
그런데 왜 갑자기 여기 나타났느냐?
콰득―!!
그렇게 중얼거리며 못마땅하다는 기색을 내비친 침식자의 머리가 터지며 뇌수와 피가 옥상에서 떨어진 토마토처럼 사방으로 튄다.
“개지랄들 떨지 말라. 계시가 우선이다.”
2m에 가까운 키와 떡 벌어진 어깨에 온몸이 울퉁불퉁한 근육에 얼굴에 난 자상이 더해지면서 그를 더욱 위협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네. 류 홍곤.”
“알겠슴돠.”
세상이 이렇게 변한 뒤, 서로 다른 말을 해도 의미가 온전히 통하게 되면서 삼합회의 공포스러운 홍곤이었던 류하이칭이 사실은 조석족 출신이었다는 게 말투에서 드러났다.
“멍청하게 경쟁 따위를 한다고 나대는 건 꿈도 꾸지 마라. 우리는 계시에 내려온 그대로 이요한. 그 놈만 노린다.”
“예!!”
“출발한다.”
지금까지 주도적으로 대화를 일곱 명이 움직인다. 단둥 시에서 모인 이들은 중국의 단둥과 북한의 신의주 사이를 잇는 다리인 조중우의교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때가 돼서야 주변에 몸을 감추고 있던 침식자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10명……. 50명……. 100명……. 500명……. 1,000 명……. 5,000 명……. 50,000명…….
마치 새떼의 비행처럼 일곱 명의 지도자급 침식자를 꼭지점으로 점점 넓게 벌어지면서 침식자의 존재가 기하급수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6.25 전쟁에서 인해전술에 당한 연합군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끝이 보이지 않는 인간의 파도가 이어진다. 5만 명이었던 수는 10만을 넘어 50만을 돌파하는 게 순식간이다.
오직 중국이라는 나라의 특이성에서 기인한 인해전술이다. 고작 세 개의 성에서 모인 인류를 배신한 침식자가 순식간에 50만을 넘는다는 건 단순히 인구가 많아서 생길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결국 모든 침식자의 숫자가 350만에 이르고서야 비로소 침식자의 행렬이 끝이 난다.
랴오닝성 한 곳에만 종말 전에 인구가 4,500만 정도 됐다. 지린성은 2,400만, 헤이룽장성이 3,800만 정도 됐다.
세 성의 인구가 1억 700만 정도라는 걸 생각해보면 350만의 침식자는 3% 비율이고, 이 정도면 오히려 범죄자가 적은 편이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은 흉악범은 총살시키는 놈들이고, 종말이 시작된 초기에 중국에는 엄청난 사상자가 나왔다. 괜히 아시아를 담당하는 총사령관 제스터가 중국을 축복의 땅이라고 하는 게 아니다. 그때 모은 그린스킨의 ‘먹이’와 ‘암컷’은 그린스킨 차원이 침공 초기에 세운 역대 기록을 갈아치울 정도였으니까.
결론만 말하자면, 그린스킨과 각성 확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떨어지는 중국은 침공 초기인 열흘 사이에 인구가 3할로 줄었다. 즉, 세 개 성의 인구는 3천만 정도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세 개 성의 생존자 3천만 명 중, 침식자의 숫자가 350만.
11.7%가 그린스킨도 인정하고 스카우트 할 정도로 마이너스 카르마가 높다는 뜻이 된다.
무려 흉악범이라고 할 수 있는 수가 인구에 11퍼센트.
카르마 시스템이 인정할 수 없는 악인이, 그것도 종말이 시작되고 일정 시일이 지난 후에 그 정도로 남아있었다는 뜻은 그만큼 중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곳인지를 알려주는 방증이며, 중국 길거리에서 사람이 칼에 찔려 죽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썰이 어쩌면 단순히 썰이 아닌 진실일 수도 있다는 걸 침식자의 수가 증명한다.
아마 이 상황을 이요한이 알았다면,
“역시 대국!!”
이라며 쌍뻑큐를 날렸을 거다.
더욱이 침식자의 행렬이 고작(?) 350만에서 끝이라는 거다. 그 뒤를 따르는 세 개의 성에 자리를 잡고 생산을 위해 암컷을 납치하거나 동물이나 인간을 사냥해 식량을 수급하던 그린스킨의 수는 아직 더하지 않았다.
350만의 침식자. 그 뒤를 잇는 침식자의 두 배는 훌쩍 넘는 수의 그린스킨.
7백만을 넘기는 압도적인 물량을 가진 그린스킨의 모습은 마치 해안가를 덮치는 해일의 공포가 떠오르게 한다.
[미친놈들.]
이 사태를 지켜보던 지구의 의지 중 누군가 그렇게 탄식을 뱉었을 정도로 침식자와 그린스킨의 해일이 북한을 북쪽을 뒤덮었다. 고대 중국에서 그토록 두려워하던 황충이 떠오르게 할 정도로 침식자와 그린스킨이 지나간 곳에 살아 있는 인간과 가축의 씨가 말랐다.
또한, 공교롭게도 중국에서 대규모 침식자 쓰나미가 밀려드는 그 시각 북한 남쪽으로 김준과 그의 각성자 부대원이 진입하고 있었다.
* * *
북쪽으로 김준과 그 휘하의 부대원 그리고 군인이나 경찰 출신 각성자가 출발한 건 66일 째의 지독한 그린스킨의 침공을 막아낸 다음 날이었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아닌 국경을 넘는 일정이기 때문에 영지민의 협조 아래 그린스킨의 침공 규모가 증폭된 첫 날에 그들에게 카르마 포인트를 몰아주기를 하면서 하루를 보냈기 때문이다.
영지로 침공은 더 이상 없었지만, 경기도와 서울로 떠난 원정에서 막타를 양보하는 식으로 카르마 포인트를 몰아줬다.
그 덕분일까?
김준과 그 일행이 북쪽으로 출발하는 원정대의 절반이 탈 것을 고용할 수 있었다. 그만큼 그린스킨이 많았고, 강해졌다는 뜻이었다.
전날과 달리 새벽부터 그린스킨이 떼로 몰려들거나, 특수 부대가 나타나진 않았다. 그래서 아침 일찍 김준 부대를 배웅하기 무섭게 영지의 각성자들은 재차 원정을 나섰다.
이제는 서울과 경기도뿐만 아니라, 중부지방까지 범위를 넓힌 대규모 탐색 작전이었다.
그렇게 영지 소속 전투 계열 각성자의 95%가 영지를 나서고 30분 정도가 지났을 때,
“지랄 났네.”
마치 그걸 기다렸다는 듯이 하늘에서 검은 운석들이 떨어졌다.
쿠웅―. 쿵쿵―.
수십 개의 운석들. 운석 하나에 천 마리의 그린스킨이 탑승하고 있다는 걸 계산하면 수만의 그린스킨이 등장한 셈이었다. 그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지 하늘에서는 운석이 쉬지 않고 떨어지며 오늘의 전투에서 절대로 쉽게 물러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암시했다.
“뭔데 웅장하게 등장해?”
하지만 그 상황을 지켜보는 나와 남은 각성자들은 긴장감조차 희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그런 그린스킨을 내려다보는 성벽 위에는 긴장감보다는 기대감이 더 컸다.
김준 일행의 절반이 탈 것을 고용한 것에서 각성자들은 다시 한번 절실하게 카르마 포인트의 소중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한,
“다들 준비 잘 했지?”
“네에!”
“네!”
“네네!!”
…
…
그린스킨의 등장에 환호성을 지르며 성벽 위로 올라온 건 각성자만이 아니다. 전날 전투의 영향으로 영지민 전체의 충성 스탯이 상승했기 때문에 85 이상이 된 비각성자가 다시 이천 여 명이나 늘었다.
각성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에 비각성자이면서 일반인에 불과한 영지민들은 수만이나 되는 그린스킨을 기다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너무 긴장해도 안 좋은데, 너무 방심해도 큰일 나. 옆에 가디언이 최대한 보호를 하겠지만. 알겠지?”
“네!”
…
그러면서 성벽의 틈으로 대형 연발 석궁을 거치하고 그린스킨을 노려보며 방아쇠에 손가락까지 걸었다. 여차하면 쏘겠다는 의지가 절절하게 느껴진달까?
“대답은…….”
“그래도 대답이라도 잘 하는 게, 대답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아요? 보스?”
“…그건 그렇지.”
“네. 그런 겁니다. 보스.”
“너도 똑같아. 말은 매번 보스라고 부르면서 날 부하직원 다루듯이 하잖아. 그러고 보니까 이 사태가 모두 너 때문인가?”
“적이 움직입니다. 보스.”
“저저, 말 돌리는 거 봐라. 저거.”
“아닙니다. 보스. 아무튼, 아닙니다.”
은근히 다가와서 괜히 시비를 트고는 쌉마이웨이로 도망간다. 어휴. 이 놈의 영지. 정상이 없다. 정상이.
“정상인인 내가 이해해야지.”
[마스터도 딱히 평범하시진 않…….]
말도 안 되는 음해를 무시하고 몰려드는 그린스킨에 집중했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수의 그린스킨 대군. 바글바글하다는 말이 저절로 떠오를 정도의 대규모 병력이 영지 성벽을 향해 진군하지만,
“이십팔색 저주야~.”
“라이트닝―스톰.”
영지에 남은 마법사 계열 각성자들과,
투쾅―! 투투투투쾅―!! 투투쾅!
옐로 랭크까지 상승한 망루에서 발사되는 발리스타들이 있다.
무엇보다,
“엘라.”
“네. 주인님.”
어제의 전투에서는 설기의 활약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기 때문에 나서지 않은 엘리아나가 만전의 상태로 대기중이다.
“최대한 티나지 않게 부탁해.”
“믿어 주셔서 감사해요. 주인님.”
무엇보다 그녀는,
“실라이론. 노에스.”
물량 전투에 특화된 정령사이면서 원소를 다루는 궁수다. 최대한 드러나지 않기 위해서 정령만 다루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보이지 않는 바람의 칼날을 날리는 바람의 상급 정령 실라이론.
땅 밑에 숨어 귀신처럼 그린스킨을 땅으로 삼켜 질식으로 죽이는 땅의 상급 정령 노에스.
바람과 땅의 상급 정령이 100기씩 총 200기.
무려 상급 정령을 200기나 소환하고도 편안해 보이는 걸 보면 블루(Blue) 랭크가 얼마나 대단한 랭크인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최대한 천천히 처리하라고 일러뒀습니다. 주인님. 빠른 처리를 원하시면 말씀해주세요.”
“음음. 아니야. 충분해.”
충분하지.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잠깐 열어 본 상태창엔 무슨 슬롯 머신의 계기판처럼 카르마 포인트의 숫자가 미친 듯이 상승하고 있었으니까.
“적당히 애들도 먹을 수 있게 지금 속도가 딱이네. 땅의 정령을 몇 기 소환해서 성벽 위에서 도탄 같은 것에 다치지 않게만 신경써줘.”
“네.”
오히려 어제보다 더 수월하게 그린스킨의 기습 침공이 마무리 되는 건 한 번이긴 하지만 경험했다는 것도 있지만,
‘엘라가 진짜 대단하네.’
엘리아나 덕이 크다.
[그녀는 세계수가 낳은 첫 번째 하이 엘프니까요. 자연적인 생명체도 유전적으로 첫 번째 자손이 좋은 유전자를 가질 확률이 높은데, 세계수가 직접 디자인 하고 직접 낳은 하이 엘프니. 어떻겠어요? 그것도 엘프의 종족 특성인 정령에 관한 건데.]
‘음. 좋군.’
[네. 마스터는 운이 좋은 편이시죠.]
‘역시 그렇지? 이런 식이면 앞으로 완전 쉽게 막겠는데?’
[네.]
이런 플래그를 세우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걸 난 다음 날 저녁에 깨달았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