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일단 평양까지만>
김준은 기존의 휴전선이었던 것을 넘으면서 어떤 감회에 젖어드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그저 가진 거라고는 남보다 많이 튼튼한 몸뚱이와 회복력 같은 게 전부였던, 젊은 날의 김준은 국민을 수호하고 적을 선제 타격하는 특별한 부대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이 있었다.
고아로 세상에 내던져졌을 때, 할 수 있는 게 없던 김준에게 군인은 인정 욕구를 충족할 수 있으면서 안정된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직종이었다.
그렇게 젊은 날의 치기 어린 꿈에 이끌려 잠입했던 북한이라는 땅을 다시 밟으면서 드는 감회는 하나의 단어로 형언하기 힘든 무언가였다.
‘그것도 이렇게 당당하게 대로를 이동할 줄이야. 코뿔소를 타고.’
감상에 젖은 건 거기까지였다. 본격적으로 김포 시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인 개성시가 눈에 들어오자 그의 기세는 날카롭게 간 검과 같이 변했다.
“이제부터 정신 차려라.”
“대장이 가장 넋이 나가 있었어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합니까?”
“…그냥. 옛날 생각?”
“어휴. 노인네.”
빠악―!
옆에서 투덜거리는 문정환의 뒤통수를 마력으로 후려치고는 모르는 척 이동했다. 문정환은 비록 장난스럽게 휘두른 마력에 맞았다고는 하지만, 랭크가 차이가 나는 김준의 마력에 맞아서 앓는 소리를 했지만,
“내 그럴 줄 알았어요. 문 상사님.”
“그러게. 그러고 보면 은근히 맞는 거 즐기는 것 같다니까?”
“설마, 문 상사님 취향이?”
그 모습이 익숙한 군인 출신의 각성자들은 그렇게 문정환에게 장난기가 다분한 핀잔을 날리며 김준의 뒤를 따랐다.
이요한의 영지에서 출발한 군인으로 이뤄진 일명 ‘포스단’의 2천 여 명은 그렇게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개성 시에 입성했다.
개성공단이 활성화 중일 때는 부유층의 도시로 불렸던 적이 있지만, 개성공단이 멈춘 후 다시 어려워진 개성은 역시나 도시 외곽에서는 인기척 자체가 없었다. 외곽만 본다면 유령 도시가 떠오른다.
부스럭.
그렇게 얼마나 개성 시 내부로 진입했을까? 김준 부대는 개성 시내 곳곳을 자신의 집처럼 활보하고 있는 그린스킨들을 발견했다.
“1분대, 2분대 오른쪽. 3, 4분대 왼쪽. 나머지 각 분대별로 자유 사냥.”
지금까지 장난스럽게 서로 농담을 주고받던 각성자들의 각막을 타고 스산한 살기가 옅게 흐른다.
4개 분대가 그린스킨 무리의 양옆으로 크게 우회하는 걸 확인한 김준은,
“돌격.”
“우와와아아아아!”
“죽여어어!”
“카르마 포인트으으!!”
그린스킨의 이목을 확 잡아끌 만큼 온갖 요란을 떨면서 그린스킨을 향해 돌격했다.
그린스킨은 어떻겠나?
사흘을 굶었는데 눈앞으로 닭이 달려온다면?
잡는다? 안 잡는다?
닭을 평소에 무서워하던 사람이라도 일단 달려들어 닭을 잡고 봤을 거다. 사흘을 굶었는데.
그린스킨도 마찬가지다. 개성시이기에 적지 않은 그린스킨이 있었는데, 인간을 사냥한 지 벌써 사흘이 넘게 지났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나 소란스럽게 떠드는 가축이 눈앞에 있다?
이건 못 참는다.
“기수들 스크롤 찢어.”
“네!”
“네!”
마구간에서 탈 것을 고용한 각성자들은 상의 주머니에 꽂아 둔 수십 장의 스크롤 중 하나를 꺼내 찢었다.
『스크롤의 영향으로 일반 능력 [기승(騎乘)]을 일시적으로 개화합니다. 지속 시간은 6시간 59분 59초입니다.』
이런 메시지가 각자의 눈앞에 출력됐다. 누군가는 7시간 가까운 시간의 지속 시간이었다면, 누구는 고작해야 4시간 20분 남짓이었다.
같은 스크롤로 일시 개화한 것에도 재능에 따라 지속 시간이 달라지는 게 불합리하다고 투덜댈 수도 있겠지만, 누구도 그러지 않았다.
포스단의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번 북한 원정에 나서면서 그들이 영지에게서 받은 지원은 서너 달은 빡세게 일해도 다 갚지 못할 정도였다.
카르마 포인트는 물론이고, 도서관에서 생산되는 스크롤의 7할을 몰아받았다. 특히 스크롤을 수백만 장을 나눠주려고 온 이요한은,
“위험하다 싶으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모든 가용 자원을 사용해 후퇴해.”
라고 말했다. 그렇게 돌아서려던 이요한이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뒤를 돌았을 때, 김준은 그가 성과에 대해서 언급할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위험하다는 기준은 죽을 것 같을 때가 아니라,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을 말하는 거야. 특수부대 식의 기준이 아니라고. 알았어?”
그렇게 말하고 정말 쿨하게 뒤를 돌아 사라졌다. 김준이 생각하기에 이요한은 단순히 군대를 모른다거나, 전쟁이나 투쟁을 몰라서 그런 말을 한 게 아니었다.
그가 당부한 걸 군대식으로 표현하면 ‘병력 손실이 없이 최대한 안전하게 작전을 수행하고, 적의 섬멸보다 수색을 위주로 하라.’ 정도가 된다.
“다치는 놈은 죽을 줄 알아!”
기승을 개화한 직후 탈 것 위에 올라탄 이들의 자세게 한층 편해지고, 타고 있던 옐로 랭크의 동물의 질주 속도가 1.5배는 빨라졌다.
“네!!”
그린스킨을 자신을 향해 점점 빠르게 가속도가 붙어서 달려드는 기마대를 보며 오히려 포효를 내지르며 근육을 키웠다. 조잡한 무기를 들고 있던 이들은 무기를 움켜쥐면서 더 흉포하게 인간에게 달려들었다.
두 그룹이 충돌하기 직전,
쿠우우우아아아아아아―!!
머리 위로 전투가가 지나가는 굉음과 함께 탑승하지 않은 원거리 전투 계열 각성자들의 공격이 그린스킨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불과 낙뢰. 순수한 마력 덩어리와 수백 발의 화살과 보이지 않는 염력 등.
2천여 명의 포스단 중, 942명의 기마대를 제외한 모두가 원거리 계열로 각성한 건 아니다. 남은 1200여 명의 각성자 중, 절반은 운전병이나 버프와 힐러 같은 계열의 각성자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600여 명의 각성자가 원거리 계열 각성자다.
그들이 쏟아내는 공격은 호기롭게 달려들던 그린스킨의 전열을 완전히 붕괴시켜 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에 김준을 선두로 한 각성자 기마대가 들이닥쳤다.
쾅! 콰득―!! 쾅쾅! 콰앙!
고대부터 기마대의 위력은 더는 증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위력적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그린스킨을 덮친 ‘말’의 역할을 하는 여러 종류의 동물은 무려 랭크가 옐로(Yellow)였다. 비록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신비가 고가의 동물에 비하면 적더라도, 육체적인 능력은 옐로라는 랭크가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수준이라는 거다.
이미 완전히 전열이 무너진 상태의 그린스킨이다. 그리고 애초에 그린스킨은 군대처럼 오와 열을 맞춰 기마대의 돌격에 대비하겠다는 의지도 없었다. 그저 먹이가 눈앞에 있으니까 무질서하게 달려드는 거였지.
“죽어!”
“뒈져!”
그린스킨을 그야 말로 일방적으로 갈려 나갔다. 믹서기에 넣은 물러터진 키위처럼.
“죽여!!”
“이예! 파티다!”
그리고 그 순간에 그린스킨의 양옆으로 사전에 우회한 네 개의 분대가 들이닥쳤다. 일방적인 학살이다.
개성 시는 제법 크다. 북한에서도 특별시로 지정할 정도로. 그런 만큼 그린스킨의 수도 적지 않았는데, 그런 그린스킨이 단 한 번의 전투로 다 갈려 나갔다.
“전장 정리하고. 부상자들은 치료받고 따로 남아. 얼차려다.”
“우우우!”
“환자한테 얼차라니~. 우우우!”
“가혹행위다! 당장 마음의 편지를 써!”
전투가 끝난 김준의 농담에 조금 전 살기 넘치는 모습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장난스럽게 대꾸하며 전장을 정리한다.
전장 정리라고 하면 대단한 것 같지만 특별한 게 아니다. 주인 없는 물자를 챙기고, 생존자를 찾는 것이다. 북한은 여러 물자가 부족한 국가였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챙길 게 있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흩어진 이들이 돌아온 건 1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대장님. 생존자가 한 명도 없습니다.”
“응?”
“진짜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럴 수가 있나?”
불편하고 불길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때,
“대장님! 이것 좀 보십시오.”
가장 늦게 도착한 분대의 분대장은 이제는 사용하는 사람이 드문 라디오를 들고 있었다. 그것도 일반적인 라디오가 아니라, 북한 국기가 그려진 뭔가 좀 다른 느낌의 라디오였다.
그가 들고 온 라디오에서는,
[경애하는 최고 용도자 김종은 동지께서 회색 괴물을 향해 일갈하시고, 맹렬히 꾸짖어 그것들을 굴복시키셨다. 오만방자한 괴물들은 위대한 용도자 김종은 동지의 일갈에 무릎을 꿇고…….]
쩌렁쩌렁하게, 그리고 같은 내용만 반복해서 나오는 라디오 뉴스를 듣는 순간 어떻게 된 상황인지 다들 파악했다.
“다……. 죽었다는 건가?”
“그런 것 같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멍청하게 다 같이 한곳에 모여 있다가 몰살당했을까요? 생각이라는 걸 하는 사람이면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그럴 수 있지. 여기는 북한이라고. 어쩐지 아까 그린스킨 놈들 며칠 굶을 놈처럼 달려들더라니.”
“어째 불안한데요. 이번 원정.”
누군가 그렇게 입에 ‘불안’이라는 단어를 담았지만, 김준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 역시도 이번 원정이 마냥 쉬울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대장님. 이 라디오에서 나오는 방송. 이거 진짜일까요?”
북한 특유의 사투리가 많이 가미되었지만, 알아듣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 내용을 무시하던 이들이 문정환의 지적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다들 ‘이게 무슨 개소리야?’ 같은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표정이 되었다.
“뭐? 북한의 돼지가 그린스킨을 꾸짖어서 굴복시켰다는 거?”
“예. 솔직히 북한 김씨들은 말도 안 되는 뻥을 쳐대서 솔직히 믿기 어렵긴 한데요. 그런데 지금 나오는 이 아줌마 말투가 진짜인 것처럼 막 희열에 차서…….”
“사실일걸?”
“예?!”
“그린스킨을 굴복시켰다잖아. 이거 보면 생각나는 거 없어?”
“어? 설마? 침식자요?”
“그래.”
“와……. 돌겠네.”
문정환의 탄식처럼 이번 일은 제법 골치가 아픈 일이었다. 북한의 최상층, 그러니까 이 독재국가의 독재자가 침식자가 되었다는 뜻이었으니까.
한국의 대통령이 침식자가 됐다면? 그건 전혀 문제가 아니다.
그게 뭐? 오히려 김준은 오! 개꿀! 이라면서 바로 달려가서 대가리를 깨버렸을 거다.
하지만 독재국가의 독재자가 침식자가 된 건 심각한 일이다. 해당 국가의 침식자뿐만 아니라, 각성자도 침식자의 명령을 듣는다는 뜻이었으니까.
한 마디로 침식자, 그린스킨 그리고 각성자의 연합군을 상대해야 한다는 뜻이니까.
“다행이라면 화약과 핵무기 같은 걸 못 쓴다는 건가?”
“그런 게 있었으면 애초에 망했어. 북한이 나서기 전에 중국에서 전 세상에 핵무기를 쏴댔을 걸? 애초에 그린스킨도 인간을 식량으로 보고 있으니까. 방사능에 찌든 식재료는 그쪽에서 사양했겠지.”
“흠. 어쩌시겠습니까?”
“…일단 평양까지만 이동한다.”
“네. 전달하겠습니다.”
문정환이 그렇게 물러나자 주변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각성자들이 각자 자신의 분대로 돌아가 상황을 전파했고, 김준과 그 일행은 곧장 평양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들이 평양을 눈에 두었을 때,
“저, 저, 저게 뭐야?”
두 눈으로 보고서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마주해야 했다. 도저히 말이 안 되는 광경을.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