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천재묘니까>
난 김준 부대 소속 각성자가 전한 긴급 사항은 올라온 것과 동시에 확인했다. 이번에 영지 소속 각성자가 전부 원정을 떠났기 때문에 영지 전용 게시판을 주시하고 있었다.
“음.”
상당히 세밀히 그리고 면밀히 작성된 긴 글을 보면서 저절로 나오는 한숨을 숨기지 못했다.
“돌겠네.”
내가 이렇게 난감해 하는 이유는 ‘시간’의 착오 때문이다.
최초 계획에 따르면 김포에서 한강을 건너 이동해 개성 공단에 들어서면 생존자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책정한 시간이 있었다. 단순히 생존자만 수색하는 게 아니라, 생존자를 발견하고 오래 굶은 그들을 위한 구제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었다.
당연히 적지 않은 시간의 소요를 예상했다. 개성에서 뿐만이 아니라, 그 위의 도시와 주변 도시에서도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러나 북한의 상황은 나와 김준의 예상과 달랐고, 그들은 개성에서도 그리고 그 위의 도시와 마을에서도 사람을 구하느라 시간을 쓰지 않았다.
그렇게 예상과 다르게 빠른 속도로 평양에 도착했다. 멸망 전에도 개성과 평양 사이에는 고속 도로가 있어서 넉넉히 1시간 반이면 도착하는 거리였다.
그런데 멸망으로 차도, 사람도 없는 고속 도로를 옐로 랭크의 탈 것과 라이더가 운전하는 차가 달리는 데 얼마나 걸리겠나?
예상보다 너무나 빠르게 평양에 도착했고, 김준과 그 일행은 그곳에서 지옥을 보았다.
“천만이 넘는 그린스킨과 침식자라니…….”
애초에 물량으로 조지는 놈들이다. 그린스킨이라는 종속들은.
‘뒤에 등장하는 시체쟁이도 물량으로 조지는 건 마찬가지긴 한데. 그것들은 방어력이라도 낮은데. 이 새끼들은 진짜. 어휴.’
게다가 물량하면 빠지지 않는 게 중국 놈들이다. 무한 고기 방패 따위를 인해전술이라고 포장하는 놈들 아닌가.
물량과 물량의 만남.
그린스킨과 중국인.
이 끔찍하기만 한 혼종은 순식간에 병력을 천만이나 뽑아내는 미친 짓을 해버렸다.
“미친 개또라이 새끼들!”
엘라가 있으니 괜찮지 않냐고? 괜찮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엘라가 완벽하게 전면으로 드러나게 된다.
“뭐, 이젠 그것도 괜찮아.”
물론 시일이 지난 만큼 엘라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글을 처음 확인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내가 느끼고 있는 이 난감함의 가장 큰 원인은,
“구출하러 갈 사람이 없어.”
김준과 그의 부대를 돕기 위해 나갈 병력의 부재였다.
당장 영지를 비울 수 없다. 당연한 말이다.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고 효율만 따진다거나 도덕적 해이 같은 게 아니라, 지금 영지에 남아 있는 병력은 병영에서 뽑은 네 개의 병과 20명씩 80명을 제외하면 나뿐이다.
이번에는 한반도 전체를 관리하겠다는 일념으로 마법사들까지 모조리 나갔다. 아직 두 번째 페이즈 초창기이기에 빠른 결단이 필요했고,
“난 결단을 내렸지. 그러니까 이건 내가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야.”
이요한은 자신이 내린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는 분명히 그랬다.
“일단 지금 차출할 수 있는 인원이…….”
없다. 젠장. 진짜 없다.
그렇다고 원정 나간 부대를 되돌린다?
그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다.
김준 부대 그러니까 포스단이라고 하는 각성자가 영지에서 나가고 30여 분이 지나고 난 뒤, 각 지역으로 나갈 원정대가 하나둘 출발했다.
그때부터 3시간 정도가 지난 지금이라면, 아마 다들 목표로 했던 도시에 도착하거나 도착을 앞두고 있을 타이밍이다.
지금 돌아온다고 해도 김준 부대를 제시간에 구출할 수 없다. 지금 돌아오라고 해도 오면 끝날걸?
“차라리 오늘도 특작부대 놈들이 떨어졌으면 좋았을 텐데.”
아직 오늘치 그린스킨이 등장하지 않았다. 하늘은 유난히 파랗고 구름 한 점 없었다.
“주인님?”
성벽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서 혼자 중얼거리다가 절망하기를 반복하는 내가 의아했을까? 엘리아나가 다가와서 커다란 눈에 걱정을 가득 담고 묻는다.
“음. 그래. 일단 지금 상황부터 설명해줄게.”
엘라에게 김준이 처한 상황과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최대한 자세히 설명했다. 특히 엘라는 중국이라는 나라의 특징을 모르는 만큼 더 자세하게.
“이해했습니다. 주인님.”
“그래? 생각나는 게 있어?”
“네. 두 가지 정도 있습니다.”
“두 개나?!”
“하나는 제가 가는 겁니다. 지금쯤 김준이 있을 곳과 이곳의 거리를 계산했을 때, 바람의 상급 정령을 이용하면 2분 17초가 걸릴 겁니다.”
허어? 여기서 평양과 개성 사이에 있을 김준이 있는 곳까지 2분 남짓이라고?
하긴 도로를 따라 이동하는 게 아니라 바람의 정령이면 하늘을 날아 직선으로 날아갈 테니까.
그래도 엄청 빠르다.
“다른 하나는?”
엘라는 대답 대신 내 품에 안겨 졸고 있는 설기를 바라봤다.
“설기?”
“음. 네. 설기. 그 윙 샤벨 타이거의 왕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 설기가 그 정도……? 잠깐만. 왕? 무슨 왕?”
엘리아나는 잠시 망설이는 것처럼 입술을 달싹이더니,
“주인님의 품에 안긴 녀석은 고대 윙 샤벨 타이거의 시조 격인 녀석입니다. 저도 솔직히 왜 저렇게 요망한 모습으로 지내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어머니의 나무에서 받은 지식에 기록되기로는 분명히 그렇습니다. 설산의 지배자. 냉기의 폭군.”
그렇게 설기에 대해서 설명했다.
“자이언트 윙 샤벨 타이거. 웅크리고 있으면 산과 같고, 몸을 일으키면 지진이 일어나며, 날개를 펼치면 하늘을 뒤덮는다.”
오래된 노래처럼 운율을 담아 읊조리는 엘리아나의 말에,
“먀!”
한쪽 눈을 뜬 설기가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며 다시 몸을 웅크리고 눈을 감았다.
엘리아나는 어떤 의미에서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리고 조금은 두려운 듯이 말했지만,
“그랬어?! 내 새끼. 왕이었어요~? 오구오구.”
“먀아~.”
난 그저 귀엽고 앙증맞은 우리 설기가 대단한 혈통을 지닌 고양이라는 말을 들은 것 정도였다. 위아래로 흔들리자 꼬리와 다리를 바짝 펴고 심통을 부리는 설기가 귀여울 뿐이었고.
“그런데 김준을 쫓고 있는 병력이 수십 만이라던데. 설기 혼자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나도 설기가 강하다는 건 안다. 자그마치 옐로 랭크에서 나온 영주 전용 아이니까.
“윙 샤벨 타이거는 최소 하나의 속성을 다룰 수 있어요. 얼음이죠.”
“…그래?”
“그리고 자이언트 윙 샤벨 타이거는……. 얼음과 바람, 물과 대지의 힘을 다룰 수 있어요.”
“그으래?!”
나는 품에 안고 있던 설기를 다시 높게 치켜들었다. 역시 내 새끼는 천재였다!
“그러니 자이언트 윙 샤벨 타이거, 그……. 설기에게 부탁하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김준이 처한 상황을 뒤집을 수 있습니다.”
“그렇구나! 우리 설기! 잘할 수 있겠어요? 응?!”
설기의 머리를 씩씩하게 쓰다듬으면서 묻자,
“먀아!”
하늘을 보고 날카롭게 울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화를 내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설기와 영혼이 연결된 것 같은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나는 그게 긍정의 울음임을 느꼈다.
“그럼 우리 설기가 좀 도와줄래?”
“먀아.”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만 믿으라는 듯이 가슴을 쭉 내미는 모습에 귀여워서 잠시 상황을 잊고 한껏 쓰다듬을 뻔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방금 마스터 굉장히 멍청한 얼굴이었습니다.]
‘닥쳐! 설기보다 귀엽지도 않은 게.’
“아까 김준 봤지? 네모난 얼굴에 울퉁불퉁하게 생긴 아저씨? 응?”
[마스터. 그게 무슨 설명이에요? 절대 모르겠는데요?]
“먀아.”
고개를 끄덕이는 설기. 역시 내 새끼는 천재묘가 맞았다!
“그 녀석이 지금 좀 위험하거든? 가서 도와주고 같이 와.”
“먀먀!”
두 손에 올려놓고 부탁하는 내게 고개를 끄덕이며 앞발로 탁탁 손바닥을 두드리는 모습은 정말 너무 사랑스러웠다. 상황이 이렇게 급박하지만 않았으면 한참 놀아줬을 텐데.
“잘 부탁해. 내 새끼. 다치지 말고 돌아와야 해?”
“먀아~.”
작은 몸에 어울리는 작은 날개를 퍼덕여 천천히 날아가는 설기에게 마지막까지 걱정을 담아 보내는 나를,
“주인님…….”
[마스터…….]
엘리아나와 반지의 에고가 여러 의미가 생략된 말을 하고 있다.
뭐? 왜? 내 새끼가 이렇게 다재다능하고 천재묘라는 데! 내가 적당히 하게 생겼어?
“엘라. 준비하자.”
때마침, 아니면 기다렸다는 듯이, 청명한 하늘에서 운석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 * *
설기는 빠르게 북쪽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멸망한 세상을 떠돌기 시작한지도 벌써 셀 수 없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이번처럼 안정적인 땅에서 보낸 적이 없었다. 오염되지 않은 상쾌한 공기와 생명력이 넘치는 땅, 그리고 어린 생명이 지어내는 웃음이 울리는 곳은 이곳이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그의 계약자이자 주인이 좋은 사람이었다. 카르마 시스템의 중재로 맺어진 계약은 영혼에 새겨진다.
그렇기에 설기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의 계약자이자 주인이 좋은 사람임을.
‘설기라니. 그것도 백설기라는 하얀 음식에서 기원했다지?’
태어날 때부터 설기는 포식자였다. 누군가에게 보호를 받거나 보살핌을 받은 기억이 없다. 자신은 부모가 없었고, 그저 존재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런데 이 인간 주인은 전투력은 높지 않으면서도 이상하게 자신을 과보호한다. 방금도 그렇다.
천재묘(猫)라니? 난 고양이가 아닌데?
하지만 주인이 좋아하니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다.
주인의 품은 그딴 것은 무시할 정도로 안온하고 포근하니까.
‘녹색 피부 놈들은 여전하구나.’
그래서 설기는 기분이 언짢다. 추운 겨울에 억지로 이불 밖으로 나와야만 하는 상황이랄까? 설산에서 사는 샤벨 타이거의 입장에서는 조금 이해하기 힘든 비유겠지만,
‘물론 난 이해할 수 있지. 난 천재묘…아니, 천재니까. 응응.’
민망해진 설기는 날개를 더 빠르게 움직이며 생각을 이어갔다.
‘뭐, 그래도 잘 한 것 같아.’
혹한의 땅에서, 점점 좁아지는 영역에서 반쯤은 떠밀리다시피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의 계약을 받았지만, 그래서 생존의 힘의 반의 반도 안 되는 수준이 되었지만,
“크르르르.”
‘잘했어. 역시 난 천재묘……. 칫. 똑똑하니까.’
힘의 제약을 받아들이면서 빠르게 계약한 과거의 자신을 칭찬했다.
‘저긴가?’
빠르게 멀어지는 풍경 앞에 바글바글한 인간과 회색 피부 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주인님 부하들 잘 싸우네. 그래도 구해 줘야지. 가끔 간식을 주던 녀석도 있는 것 같으니까.’
빠르게 가까워지는 전장. 인간과 그린스킨, 인간과 침식자 간의 한치의 양보도 없는 전장을 발 아래 둔 설기는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크와아아아아아아아앙!!”
드래곤의 그것과 비교되는 피어(Fear)가 전장의 광기를 지우고 태생이 포식자인 설기에 대한 공포만 남긴다.
그리고 김준을 비롯한 각성자들의 얼굴에는 안도라는 감정이 진해질 때,
“크르르르.”
설기의 거대한 발이 땅에 닿으면서,
콰르르르릉―!!
수천 개의 석창(石槍)이 던전의 함정처럼 솟아올라 수천 마리의 그린스킨의 몸을 꿰뚫었다.
“크롸아아아앙!!”
석창 공격으로 아군과 적군의 구분이 생긴 직후, 설기의 입에서 포효와 동시에 아이스 브레스가 쏘아졌다.
“크왕!”
두 번의 공격으로 이십 만이 넘었던 그린스킨의 절반이 사망했다.
“우와! 설기야!”
“찢었다…….”
“헐. 영주님이 보내신 건가?”
단 두 번의 공격, 두 번의 호흡 정도 할 수 있는 찰나의 순간에 바뀐 전장의 분위기에 호들갑을 떠는 각성자들에게,
“크으르르.”
설기는 방심하지 말라는 듯이 적을 턱으로 가리키며 으르렁거렸다. 설기의 그 행동에 호들갑을 떨던 각성자들이 다시 그린스킨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설기야. 미안해. 방심 안 할게.”
누군가 그렇게 사과하면서 자신의 탈 것을 타고 다시 그린스킨에게 돌진했다. 그게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김준 부대의 각성자들이 공격을 재게했다.
김준을 포함한 포스단의 각성자들은 설기가 그르렁거리던 게 방심하지 말라는 경고라고 짐작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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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천재묘……. 에잇 난 천재묘니까! 이정도 쯤이야. 흥이야!’
설기는 그저 자신이 천재묘임을 인정하기로 한 순간이었을 뿐이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