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어디까지 가려고?>
김종은이 주술이 주는 쾌락에서 깨어난 것은 리철우가 추격을 위해 출발하고 20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김종은은 어느새 죽어 버린 류하이칭의 시체를 누군가 밤사이에 길에 토해 놓은 토사물을 출근길에 발견한 사람처럼 경멸하는 눈으로 내려다보더니,
딱딱―.
신경질적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문 앞에서 대기하던 이들이 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 경계를 붙인다.
“저것들 모두 치우라. 그리고 철우는 출발한 지 얼마나 됐나?”
김종은이 리철우가 아니라 이름만 부를 정도로 리철우는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존재였다. 그걸 현재 평양에 모여 있는 생존자와 각성자 그리고 침식자 중,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24분 됐습니다. 지도자 동무.”
“음. 기래? 기럼 얼마 안 남았겠구나.”
“그렇습네다!”
“기래. 기렇구나. 음. 이번에는 또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고 오려나. 동무는 가서 와인이나 한 병 가져오라우.”
비서의 보고를 받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와인을 마시던 김종은의 얼굴이 일그러진 것은 와인 한 병이 다 비워지기 전이었다.
“쿨럭! 커헉!”
목과 몸통이 분리된 채로 나타난 리철우의 모습에 마시고 있던 와인 잔을 내팽개치며 달려들었다.
“철우야!!”
“쿨럭! 죄, 죄송……. 쿨럭!”
피가래가 섞인 기침을 해대는 몸통과 떨어진 목이라니.
보통 사람이 피가래를 뱉거나 내장 조각을 토해내는 것은 내상을 입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하지만 이미 목이 잘려 몸통과 분리가 됐는데, 어떻게 내상의 징후가 잘린 머리에서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아니, 그것보다 더 앞서서.
머리가 잘렸는데 어떻게 말도 하고 살아도 있는 건데?
그러나 그런 건 김종은에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차피 리철우가 이런 상태로 생존할 수 있게 한 것도, 절체절명의 순간 안전지대로 설정한 주석궁으로 복귀한 것도 모두 김종은의 주술 덕분이니까.
“어이! 밖에!!”
“부, 부르셨습니까!”
“제물을 준비하라우!”
“제, 제물 말씀……? 아, 알갔습네다!!”
제물이라는 단어에 기겁하던 보위병이 핏발이 선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김종은의 눈빛에 기겁하며 알겠다는 말과 함께 몸을 밖으로 날리듯이 나갔다.
“━━, ━━━, ━━━━━! Bewahrung!”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처럼, 그러나 음의 고저가 기이하고 듣는 것만으로도 불쾌한 운율을 가진 흥얼거림의 끝에 핏빛 마기가 쏟아지자, 리철우의 잘린 목이 스르륵 움직여 몸통에 붙었다.
아직 살아난 건 아니지만, ‘보존’이라는 주술 언어는 침식자였던 것이 되기 직전에서 리철우의 상태를 고정했다.
그리고 조심히 리철우의 시체를 들고 주석궁 밖으로 나선 김종은 앞에 바들바들 떠는 북한의 생존자들이 모여 있었다.
“다들 영광으로 알라. 우리 인민 영웅 리철우 동지를 살리기 위한 일이니까니.”
“자, 장군님. 아, 아이만이라도! 제가 대신하겠습니다!”
“뭔 개소리네? 아이가 가장 중요하다! 아이의 원초적인 원념이 혁명 전사 리철우를 다시 살릴 것이다.”
“아악!! 아빠아아아아―!!
그가 말한 제물은 아이다. 그것도 되도록 어린 아이들.
미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이 나라가 독재자를 신성시하면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북한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비명에 아이 아빠가 주술진 안으로 뛰어든다. 마치 쥐어 짜내듯이 모공에서 뽑아낸 어린 아이의 피가 시체처럼 누워 있는 리철우의 몸으로 스며든다.
“━━, ━━━! ━━━, ━━!! Auferstehung.”
그리고 주술진이 발동되었을 때부터 웅얼거리며 주문을 외우던 김종은의 주변으로 리철우의 몸을 뒤덮은 피에서 흘러나온 피 안개가 맴돌다가 다시 리철우의 코로 스며들었다. 모든 피가 그렇게 스며들자,
“크윽!”
작은 뼈와 왜소한 말라붙은 체구들 사이에서 리철우가 눈을 떴다.
“일어났느냐.”
“위원장 동지.”
김종은은 리철우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들었다. 남조선 각성자 놈이 이상한 능력을 써서 자신의 목을 잘랐다는 것과 그놈의 이름이 김준이라는 것까지.
“위원장 동지. 제 손으로 그 애미나이를 죽일 겁니다.”
“기래. 기래야지. 기래야 혁명 전사 리철우지.”
“제가 당했지만, 이미 남조선 놈들도 전멸을 면치 못했을 겁네다.”
물론 리철우는 설기가 도착하기 전에 복귀했기에 저런 착각이 나오는 거지만,
“기래?! 아주 좋구나야!”
그걸 모르는 김종은과 리철우는 행복 회로를 돌렸다.
물론 주술 의식을 발현한 주석궁 너머에 바글바글한 천만이 넘는 병력을 생각하면 막무가내식의 행복 회로는 아닐 수도 있다.
아무튼 행복 회로인지 아니면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이었는지는 곧 밝혀질 거다.
“모두 준비시키라우. 남조선을 정복하갔어! 조상님들께서도 이루지 못한 역사적인 위업을 달성해 적화통일로 조선의 기치를 세우갔어!
“제가 앞장 서갔습니다!”
“기래. 기래야, 내 호위부장이고 오른팔이지!”
아마 이 대화를 이요한이 들었다면 지랄에 염병을 떨고 있다고 말했겠지만, 지금 둘이 대화를 나누는 곳은 오직 둘뿐이었으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지랄 염병을 쌍으로 떨고 앉았네. 병신들.]
대신이라고 해야 할까? 둘의 행태를 지켜보는 지구의 의지 재신이 통렬하게 이요한이 했을 법한 욕을 시원하게 날려줬다.
[너넨 뒤졌다! 딱 기다려! 다들 모여!!]
재신은 이번 원정으로 20만에 가까운 생존자를 모은 이요한 덕분에 여기저기 퍼져서 한숨 돌리고 있는 지구의 의지를 모두 소집했다. 아직은 놀 때가 아니다.
* * *
원정단이 속속 복귀하고 있다. 얼추 봤을 때 천 명은 넘는다고 봤는데. 천 명이 아니라 만 단위였다.
가장 적은 인원을 구출한 원정단도 1만 하고 408명이었고, 가장 많은 인원을 구출해 호위한 원정단은 가장 가까운 곳인 경기도 남부를 다녀왔음에도 가장 늦게 도착한 샤디아 니아지의 원정단으로 3만 8,033명이었다.
샤디아 니아지는 자신이 정령사이기에 그나마 이 많은 인원을 데려올 수 있었다며, 성벽 안으로 도착한 것과 동시에 바닥에 주저앉아 기절할 것 같은 얼굴을 했다.
“고생했어. 자. 이거라도 마셔.”
“아. 요한. 고마워.”
창고에 챙겨 놓은 시원한 이온 음료를 출고해서 건네주는 모습에 다른 지구의 의지의 사제들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을 정도로 샤디아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뭘 어떻게 한 거야?”
“아? 아아. 아이들은 차에 태웠는데. 각성하지 못한 사람이 많았어. 평범한 성인들이라고 해도 경기도 남부에서 여기까지 걷는 게 보통 일도 아니고. 그 때 생각이 났거든. 엘리아나님이 보여주신 거. 무빙워크.”
“땅의 정령으로 땅을 움직이는 그거?”
“응. 될 것 같았어. 그린스킨은 가는 길에 얼추 정리를 했으니까. 오면서 내가 차에 타서 정령만 소환하면 될 것 같았는데. 아고. 노임으로는 그걸 계속 유지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구.”
노임. 땅의 중급 정령을 벌써 소환할 정도로 재능이 출중한 샤디아 니아지였지만, 경기도 남부의 여러 도시를 거치면서 정령을 계속 유지하는 건 단순히 ‘보통 일이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가 아니었다.
“그게 돼?”
“응. 덕분에 이렇게 말라비틀어진 사막 모레 상태가 됐지만, 요한이 직접 준 음료수도 마실 수 있으니까. 좋다! 읏챠!”
두바이 출신의 샤디아의 찰진 비유처럼 그녀의 상태는 금방이라도 기절 할 것처럼 좋지 않았다.
“많이 늘었네요. 샤디아 양.”
“정말요?! 그래 보이나요? 엘리아나 스승님?”
“네. 확실히 늘었어요. 다만 오늘은 푹 쉬는 게 좋겠어요. 운다인.”
물의 중급 정령이 포르를 하고 나타나더니 엘리아나가 별 다른 명령을 하지 않았음에도 샤디아 의 몸으로 날아가 그녀의 몸을 타고 춤을 춘다. 운다인의 몸짓에 따라 사람 하나가 들어가도 충분히 익사할 정도의 물기둥이 나타나 샤디아를 감쌌다가 사라진다.
“오?!”
땀과 먼지 범벅이던 옷과 얼굴이 깨끗해진 샤디아가 신기하다는 듯이 자신의 몸을 만져보다가 고혹적으로 웃으면서,
“요한? 지금이야. 오늘이라면 난 반항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노곤하다고. 내 방으로 와서 날 덮……!”
“애들이 다 듣고 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서둘러 입을 막았기에망정이지, 이 사막 국가 출신의 말괄량이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나를 ‘요한’이라고 부르면서 반말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입에 필터가 없다.
“알았어요. 아무튼, 요한. 오늘이 기회라는 거 잊지 마?”
“그딴 기회 필요 없으니까. 빨리 가서 자! 저녁 거르지 말고!!”
“응응.”
샤디아가 그렇게 먼저 들어가고, 다른 지구의 의지의 사제들이 보고를 위해 다가올 때,
우우우웅―.
마력이 진동하면서 동시에 내 앞에 빛이 모여들었다.
“어라?”
이런 전조증상을 가진 게 어떤 건지 모를 리가 없다. 부지런한 각성자라면 이미 한 번 이상 경험했을 증상이었으니까.
“아이템?”
아이템이 생성되기 전에 생기는 현상이다.
점점 모이면서 반짝이던 빛이 붉게 물든다. 여기서 멈추면 이렇게 생성된 아이템은 일반(Normal) 등급이 된다.
“아니지. 잠깐만. 이상한데? 원래 아이템은 이렇게 무에서 유로 태어나는 게 아닌데? 창세 등급 때를 제외하면?”
그럼 창세 등급 아니겠냐고? 물론 내가 최근 사흘 동안 그린스킨을 오지게 잡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창세 등급이 나왔으면, 회귀 전 창세 등급이 나오지 않았을 이유가 없다.
[정복 군주의 인장]은 그야 말로 침공 첫날, 천부장 급의 그린스킨을 한 방에 여럿 끔살해서 업적과 함께 태어난 거다.
‘뭐, 지구의 의지들이 1열 직관을 위해서 서로 경쟁한 것도 있겠지만.’
그러니 이런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어느새 붉게 물들었던 빛은 노란색에서 초록색으로 변했다. 민담(Folktale) 등급을 지나 역사(History) 등급까지 온 거다.
이미 몇 번 경험을 하기도 했고, 이번 원정단에서 마찬가지로 그린스킨을 때려 잡으면서 최소 민담 등급의 아이템을 얻은 각성자가 많다는 걸 막 보고도 들었던 만큼, 각성자들은 점점 색이 변하는 아이템 생성 과정에 눈을 빛내며 모여들었다.
“어디까지 가려고?”
초록색 정도에서 그칠 줄 알았다. 그런데 빛은 계속 반짝이며 더 빛을 뿜어내고 있었고 파란색으로 변했다. 벌써 설화(Legenda) 등급이다.
‘야 이거 괜찮은 거냐?’
[……]
평소라면 바로 끼어들어 참견을 해댔을 정복군주의 인장 에고가 아무런 말이 없다. 아니, 반응이 없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이상하게 불안하면서도 기대가 되는 상황에서 가슴 앞에 모인 빛은 멈추지 않았다.
“응? 더 가? 여기서 더 가면?”
“신화(Mythology).”
신화를 뜻하는 보라색으로 물들자마자 빛이 점점 사라지고 허공에 둥둥 뜬 채로 하나의 아이템이 되었다.
“…목걸이?”
작고 앙증맞은 목걸이. 팔찌라고 생각될 정도로 짧은 목걸이가 목걸이라고 판단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목걸이 중앙에 방울과 함께 금으로 된 고양이 발 모양의 귀여운 인식표가 달려 있었다.
“아!”
인식표에 각인된 이름은 설기. 그제야 왜 내 가슴 앞에서 아이템이 생성된 건지 깨달았다.
“우리 설기 건가 본데? 이 목걸이?!”
“먀아~?!”
자기 이름이 불려서일까? 아니면 우리 설기는 천재묘니까 말을 알아들었을까? 품에 안겨서 몸을 말고 고롱고롱 졸고 있던 설기가 고개를 들면서 반색했다.
“아구아구. 우리 설기. 자기 이야기하는 걸 알았어요? 이게 설기 건 줄 알았구나? 응? 역시 천재묘! 이게 뭘까? 응? 한 번 볼…? 미친?!”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