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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76화 (76/183)

76화

<이제 그만 꿈에서 깨어나세요. 여긴 아포칼립스의 지구입니다.>

오랜만에 푹 자고 일어난 이른 아침의 공기가 서늘하다. 실제로 온도가 낮은 건 아니다. 내성에는 온갖 생활 마법이 적용되어 안락한 환경을 제공한다.

이불 속에서 나오자마자 느껴지는 서늘함의 정체는 아마도 오늘부터 시작될 전쟁 때문일 거다. 김종은 그 돼지 새끼가 일으키는 전쟁 말이다.

어떻게 오늘이라고 확신하냐고?

엘리아나의 정령인 실라페가 이틀 전부터 김종은을 감시했다. 그래. 김준이 북한에서 대규모 그린스킨을 관찰한 지 이틀이 지났다. 그리고 놈들은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중이다.

몇 번인가 말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나라는 남자는 태생이 쫄보다. 이건 자칭이건 타칭이건 인정해야 한다.

그렇기에 전투가 아니라, 전쟁을 앞둔 이른 아침이 평소와 같게 느껴질 수가 없는 쫄보다. 나는.

다만 내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는 내가 할 일을 남에게 미루는 걸 극도로 혐오한다는 것 정도랄까?

사실 따지고 보면 별거 없다. 상대적으로 전력은 아군이 우위에 있다. 다만 김준의 원정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아군의 희생자라는 존재가 천생 쫄보인 내 어깨를 짓누른다.

그래서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이 시각에 여러 생활 마법이 작동되는 내성의 가장 좋은 방에서 깨어나서 추위를 느끼는 거다.

“먀아~!”

귀여운 목걸이를 하고 몸을 둥글게 말고 내게 붙어 있던 설기가 내가 일어나서 온기가 사라져서 투정을 부리는 것처럼 울면서 내게 달려든다.

“그래. 그래. 아빠 여기 있어.”

“먀~아.”

평소처럼 품에 안겨 몸을 식빵처럼 말고는 눈을 감고 새근새근 숨을 쉬는 모습만 보면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아침처럼 느껴진다.

“고맙다.”

“먀아~.”

말랑말랑한 설기의 발바닥을 누르면서 긴장감이 가득한 시간을 흘려보낸다.

“주인님.”

시간이 된 것 같다. 엘라가 나를 부르러 온 걸 보면. 쫄보처럼 걱정하고 떠는 건 어디까지나 내 방 안에서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아직도 졸고 있는 설기를 조심히 품에 안고, 침대 한쪽에 걸쳐 놓은 장비를 착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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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정갑(頭釘甲) 세트 [Rank: History]]

찰갑이 발전 및 변형된 갑옷으로 동양 갑옷 진화의 최종 테크이며, 화살을 막아내는 갑옷이라고 불렸다.

※ 상의와 하의 그리고 투구까지 착용해야 비로소 세트 효과가 발동됩니다.

1. 원거리 공격 내성이 상승합니다.

2. 물리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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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틀에 걸친 그린스킨의 침공을 막아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템으로 변했다. 입고 있던 방검복 상하의와 착용하고 있던 전술 헬멧― IHPS 방탄 헬멧에 추가 방탄판, 바이저, 턱 보호대, 야간 를 장착한 헬멧―이 각각 두정갑 상의, 하의 그리고 투구로 아이템화되었다.

그동안 이상한 아이템만 먹다가 기본적인 방어구가 등장하자 나보다 지켜보던 각성자들이 환호하며 기뻐했던 게 떠올라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가자.”

“네. 주인님.”

노크를 하고 들어와 장비를 착용할 때까지 기다려 준 엘라를 뒤에 대동하고 공간 이동으로 내성 밖으로 향했다. 방을 나서는 순간부터, 미련은 버렸다.

‘전쟁이다.’

전투가 아니라, 전쟁이다.

“가자.”

평소라면 아침은 먹었냐, 잠은 잘 잤냐, 같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을 테지만.

‘후우.’

북문으로 향하는 길에 하나둘 따라붙었던 인원은 빠르게 인원을 불려 나갔다. 이번 전쟁은 북쪽 성벽에서만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다만 영지 범위가 생각보다 엄청 넓어서 북쪽 성벽 전체와 동북·서북 성벽에 병력을 집중시켰다.

기존 영지민과 원정대와 함께 합류해 행정청 직원들의 심사를 통과하고 영지민으로 등록된 생존자는 495,883명.

엄청 많은 것 같지만, 멸망이 일어나기 전 남한의 인구는 5천만을 넘었다. 비록 원정대가 대도시 위주로 훑었고, 생존자 중에서도 마이너스 카르마가 플러스 카르마보다 높은 사람은 걸렀다고 해도 1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더욱이 고유 능력 [영지]로 첫날 소환된 이들은 대부분이 외국인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비율은 더 줄어든다.

그리고 각성자는 기존의 영지민 소속 각성자와 원정대가 추가로 데려온 각성자를 더해 모두 31,074명.

3만이 넘는 각성자가 있는 쉘터? 회귀 전을 통틀어도 풍문으로도 들은 적이 없다. 아마 오늘 전투가 끝나고 가이아 게시판에 영상이 올라가면 난리가 날 거다.

“주인님.”

“오빠.”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오르는대로 흐름을 따라가다가 보니 어느새 북문 성벽 위에 서게 됐다. 옆에는 엘리아나와 유다연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직은 잠잠히 흐르는 강물을 너머의 풍경이지만, 이제 옐로 랭크에 이른 육체가 알려온다. 전쟁은 곧 시작일 거라고. 저기 너머에서 지독하고 더러운 살기가 일렁거린다고.

“다들 슬슬 전투 준비하라고 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으니까.”

“네. 오빠.”

미명을 밝히는 해와 함께 넘실대는 살기와 마기가 한여름의 지글지글한 아지렁이처럼 일렁인다. 진짜 얼마 안 남았다.

“후우…….”

[마스터.]

왜? 오늘은 정신 없다. 장난 받아줄 힘이 없어.

[마스터는 마스터가 신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건 또 무슨 똥멍청이가 같은 소리야? 내가 왜 신이야? 그냥 평범한 인간보다 못하다고 자기 비하 중인데.

[그런데 왜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세요?]

내가? 내가 언제?

[차원 침공이 시작되고 죽은 인간의 수가 얼마나 될 것 같으세요? 천만? 1억? 지금까지 지구의 의지가 추산한 바로는 40억이에요. 절반 이상의 인간이 죽었죠. 아마 이제 그 숫자가 더 많아지겠고요. 1년을 넘기지 않고 지구의 인구는 1억이라는 선도 지키지 못하고 무너질 거예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모든 인간을 다 살릴 순 없어요. 그게 마스터의 영지에 속한 인간이라고 해도요. 전쟁을 염두에 두시면서 아군의 희생이 0이길 바라는 건 신이나 할 법한 생각이에요.]

“후우…….”

나도 안다. 회귀 전에 쉘터를 지키면서 충분히 경험했던 일이기도 하고. 그래. 안다.

‘하지만 아는 것과 바라는 것은 다를 수 있는 거지.’

[물론 저도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마스터의 그런 마음이 최근까지도 마스터를 고깝게 보던 지구의 의지들의 시각을 돌려놓기에 충분했으니까요. 인간에게 배신 당해서 회귀한 마스터가 인간혐오에 걸리기는커녕 자신의 울타리에 들어온 인간을 살리기 위해 이렇게 마음을 쓰는 모습을 보고 어떤 지구의 의지가 반하지 않겠어요?]

‘반하기까지 했나? 그건 좀.’

장난으로 넘어가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평소처럼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이대로는 위험해요. 마스터. 노력하는 건 좋아요.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살리는 게 뭐가 나쁘겠어요? 그러나 그 이상은 망상이에요. 마스터는 신이 아니에요.]

반지의 에고, 지구의 의지 중 군주(君主)의 파편이 전달하는 충고는 유난히도 아팠다.

[마스터. 이제 그만 꿈에서 깨어나세요. 여긴 아포칼립스의 지구입니다.]

지금까지 승승장구하며 압도적으로 치고나갔던 게 마치 꿈이라고 말하는 그의 통렬한 한 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열이 있는 것처럼 어지럽던 시야가 또렷해지고, 멀미라를 하는 것처럼 울렁이던 속도 진정됐다.

“후우…….”

세 번의 한숨이었지만, 이번에 내쉰 숨은 한숨이라고 보다는 큰 숨에 가까웠다. 크게 내쉬고 많이 들이마시는 공기에 점점 시야는 또렷해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그래. 그래야지.’

딱히 고마움을 전하진 않았다. 아직 시작도 안 한 전쟁인데 벌써부터 감사를 입에 담는 건 어불성설이니.

“주인님. 옵니다.”

전쟁이 시작된다. 막연하게 느껴지던 악의가 또렷해지면서 강 너머에서 녹회색 덩어리가 꿈틀대는 게 보였다. 엄밀히 따지면 그건 엄청난 숫자의 그린스킨이 꿈틀거리는 거대한 부정형 단세포 생물처럼 보이는 거였다.

“오빠!”

“보스…….”

뒤늦게 발현한 유다연과 올리비아를 비롯한 지구의 의지의 사제들이 하나둘 압도적인 숫자에 기겁하고 있을 때,

“…미친놈이네. 저거.”

‘픽’하고 마른 웃음이 새어 나올 정도로 모든 긴장감을 날려버릴 정도로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응? 왜?”

“저기 보여?”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수백만의 그린스킨이다. 그냥 인간 군인도 수백만이면 질릴 정도인데, 덩치가 인간보다 2배 이상 크고 흉악하게 생긴 그린스킨이 수백만이다. 아무렇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그런 유다연이었기에 내가 긴장감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어이없어하는 말을 놓치지 않았다. 유다연뿐만 아니라 지구의 의지의 사제들도 모두 내게 집중하고 있었기에 내가 웃는 모습에 의아해하면서도 기대하고 있었다.

“어디? 어디?”

“저기. 뒤쪽에. 다른 곳보다 조금 높은 거.”

“…저거 뭐예요? 가마 같은 건가? 그 막 사극에 나오는?”

“맞아. 저기 위에 반쯤 누워 있는 돼지가 그 돼지 같은데?”

내가 유다연에게 설명하는 동안 그린스킨 무리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하나둘 내가 설명하는 게 무엇인지 찾아냈다.

그리고는,

“…왠지 저기서 ‘나는 관대하다~.’라고 해줘야 할 것 같은 몰골인데?”

누군가 중얼거린 말에 다들 빵 터져 버리고 말았다. 영화 300에 나오는 페르시아 황제 크세르크시스의 대사다. 정확하게는 ‘I am a generous God. 나는 관대한 신이다.’이지만.

그린스킨이 넓은 한강―파주랑 북한 경계는 임진강, 김포와 북한 경계는 한강―을 앞에 두고 걸음을 멈췄다.

“남조선 동무들을 잘 들으라우! 지금이라도 우리 위대한 지도자 동지께 충성하므는, 죄를 묻지 않갔어. 김준이라는 아새끼는 뒈져야겠지마는! 기거이 어쩔 수 없는 거이지! 위대한 수령 동지와 함께 하면 희망찬 미래와 영광이 있을 거이야. 잘 결심하라우!”

가장 앞에서 꽥꽥 소리를 지르는 놈은 우리 관심 밖이었다. 돼지 놈이 강렬하게 시선을 강탈하는 중이었으니.

“…뭔 대남 선전을 로켓단 대사로 해?”

그것도 아닌가? 근처에 있던 꼬맹이 각성자 녀석이 저렇게 투덜대는 걸 보면.

“어라? 니가 대남선전이라는 말을 어떻게 알아? 유준호, 너 솔직히 말해. 너 15살 아니고, 35살이지?”

유다연이 자신과 성이 같은 유준호를 평소에도 애늙은이 같다느니, 인생 3회차 같다느니 같은 소리를 하면서 시비를 거는 게 일상이었다. 평소라면 또 애를 괴롭힌다고 핀잔을 들었을 일이지만, 전쟁을 앞둔 직후라서일까? 그 일상의 모습을 다들 소중한 보물을 보는 것처럼 지켜봤다.

“슬슬 시끄럽다. 저기까지 저격 할 수 있는 사람? 선착순 한 명.”

“저요!”

“제가 해보겠습니다.”

도로시와 루크가 서로 해보겠다고 팔을 들고 나섰다.

“루크 너 가능해? 도로시는 저격 계열 궁수 클래스니까 이해하는데.”

“저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제가 죽이는 게 더 화려하지 않겠습니까? 파파팍! 이펙트도 있고?”

빛의 추적자. 마력을 빛 속성으로 다루는 궁수 계열 클래스.

루크의 말도 제법 그럴듯하다.

“그럼 그렇게 해. 시끄러워 죽겠네.”

“예.”

루크가 그대로 성벽 난간에 기대 아이템화된 활시위를 잔뜩 당겼다. 평소와 다르게 시위에 커다란 화살을 매기고 마력을 잔뜩 주입한 후, 부드럽게 시위를 잡은 손가락을 풀었다.

아이템이 된 활시위의 힘과 마력이 힘이 더해져 순식간에 한강 너머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빽빽 지리는 놈의 입을 꿰뚫었다.

그래.

입을 관통해서 목 뒤로 화살이 나온 거다. 더욱이 앞서 말했듯이 루크의 클래스는 빛의 추적자. 황금빛 마력이 흩날리면서 추가 피해를 입혔다.

한강 너머의 그린스킨과 침식자의 분위기가 일순간 고요해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기도 하지만, 루크의 말처럼 이펙트가 너무 화려했다.

성벽 위에 있는 어린 각성자들이 ‘대박!’이라거나, ‘나 저거 –던-에서 봤어! 비슷한 스킬!’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호들갑을 떨면서 루크에게로 달려들었을 정도로.

“이, 이, 종간나 새끼들이이!!”

저기 멀리 강 너머에서 째지는 목소리에 분노보다 수치심이 더 진한 것 같은 건 착각이려나?

[아닙니다. 착각.]

그래. 나도 그런 것 같아.

“수성이라고 공격하길 기다리란 법 있어? 리치가 닿는 각성자들은 공격해. 무리하지 말고. 놀리듯이. 열받으라는 듯이. 뭔지 알지?”

“네에!”

“네!”

“때렸죠?”

“그냥 처맞죠?”

“아무고토 못하죠?”

“개킹맞쥬?”

물론 난 아직도 쟤들이 왜 저러는지 모르겠고 이해도 안 되지만, 사기가 오르니 그걸로 됐다.

“예비 각성자들은 대기 해. 아직이야.”

더욱이 난 이 전쟁에서 마냥 맞아주다가 간신히 방어하고 그러는 그림만 그리지 않았다. 충성 스탯 제한을 85에서 80으로 낮췄기에 성벽 위에서는 각성자 만큼의 예비 각성자가 가득했다.

“온다.”

저 멀리서 무지성으로 강으로 뛰어드는 그린스킨이 보인다.

“그거 언제든 발동할 수 있게 준비해놔.”

“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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