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태터즈 호러 레이스(Tatters Horror Wraith)>
엘리아나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주인인 이요한보다 더 심각하게 생각했다. 주술사이기 때문에 김종은 바로 옆에 정령을 붙이진 못했지만, 그녀의 눈은 김종은이 무슨 수작을 부리던 즉각 알아차릴 수 있었다.
분명 그래야 했다.
하지만 그건 마법도 주술도 그리고 다른 어떤 기술도 아니었다. 정말 갑자기, 눈으로 보고 있었음에도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존재감 자체가 사라졌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단순히 강하고 말고의 문제로 해결되지 않는다.
세계수나 그에 준하는 존재.
혹은 자신을 소환한 시스템.
전자는 개입하지 않았을 테니, 후자일 거다. 그것도 이 지구라는 차원에 관여하고 있는 차원 시스템.
그럼 하나뿐이다.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
엘리아나의 추측은 80% 정도 사실에 근접했다. 김존은을 소환한 것은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 상에서 가능한 문제였으니까. 다만 남은 20%가 문제인데, 제스터가 김종은을 소환한 것은적법한 절차가 아니라 일종의 꼼수이자 버그 같은 거였다.
주술사라는 직종은 본래 기이한 힘으로 이미 죽은 존재나 제 4의 벽 같은 걸 넘어 다른 존재와 소통하는 걸 즐긴다.
장황한 설명을 하자면 너무 길어지니, 간단히 하지만 주술사라는 특이한 클래스와 피가 섞인 둘의 관계 덕분에 생긴 버그 같은 현상이었다.
“주인님.”
엘리아나는 전력으로 전장 전체를 탐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저기. 나타났어요.”
김종은이 다시 처음 그 자리에 나타났다. 마치 본래부터 그는 거기 있었던 것처럼. 단지 이전과 차이점이라면 어딘가 창백한 얼굴이라는 것 정도?
“응? 저거 뭐해?”
엘리아나와 이요한이 눈에 마력을 담아 노려보는 김종은은 잠시 멍한 얼굴을 하더니 자신의 오른손으로 내려다 본다. 그리고는,
푹―.
조금도, 한치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심장을 오른손으로 찔렀다. 아니, 오른손이 아니라,
“단검?”
“주술 예장으로 보여요. 주인님. 잠시만요.”
엘리아나는 아직 본신의 전력을 되찾지 못했으나, 블루 랭크 최종 스탯에 이르러 네이비 랭크를 코앞에 둔 상황이나 마찬가지인 초 블루 랭크 경지다. 그런 그녀의 경지가 전하는 경고를 무시하지 않았다.
“샐라임.”
불의 상급 정령이 나타나기 무섭게 언제 당겼는지 잔뜩 당긴 엘리아나의 화살로 스며든다.
“고마워. 샐라임.”
그녀의 감사의 말을 들은 샐라임이 반응하는 것처럼, 화살이 자르르 떨리더니 찰나에 사라진다. 엘리아나에게서 쏘아진 화살이 도달한 곳은 가슴에 뼈로 된 단검을 박고 그대로 서 있는 김종은을 향해서였다.
보통 빠른 움직임을 표현할 때 잔상이 남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엘리아나가 이번에 쏜 화살은 잔상조차 남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손에서 사라진 화살이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김종은의 가슴을 노렸다.
콰득―! 화르. 화르르르르르!!
정확하게는 김종은의 가슴에 박힌 주술 예장으로 보이는 단검을 정확하게 노렸다. 화살은 말도 안 되는 정확도로 단검의 손잡이를 때렸고, 화살에 머물고 있던 불의 상급 정령 샐라임이 단검은 물론이고 김종은까지 화염으로 집어삼켰다.
툭.
엘리아나는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도 전장의 소음을 뚫고 단검이 조금도 상하지 않은 상태로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선명하게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엔다이론. 노에스. 샐라임. 실라이론.”
엘리아나는 사대 속성의 상급 정령을 모두 소환해 이요한 주변을 겹겹이 애워싸 보호했다.
“엘라.”
“주인님.”
엘리아나는 이 상황에서 호들갑을 떨지 않고 담담히 자신을 바라보는 주인의 담대한 눈을 직시하며 불안함으로 두근거리던 심장이 잠잠해지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무언가 일어날 거예요. 주술은 이미 발동되었어요.”
엘리아나의 설명이 설명답지 않은 내용으로 흐려졌을 때,
[하아.]
방금까지 김종은이 있던 자리에서 열락의 끝에 찾아오는 쾌락과 해방이 담긴 진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김종은은 이 순간 자신을 불러들인 고블린을 닮은 대단한 존재가 자신에게 했던 ‘아프지 않고 자유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는 약속이 이뤄졌음을 실감했다.
두 발로 걷지 않아도 되도, 날붙이도 자신을 해할 수 없음을 김종은이었던 ‘것’은 본능적으로 알게 됐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지독한 쾌락을 경험한 것 같은 탄식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하아아―.]
“이건 어디……?”
“주인님. 위에요.”
정확하게는 김종은이 있던 곳의 하늘에서.
그 전까지는 이요한과 영지 소속 각성자들이 그린스킨과 침식자를 내려다봤다면, 지금 나타난 저것은 오히려 하늘에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게 뭐야?”
하늘에 떠서 오연하게 이쪽을 내려다보는 방사능 덩어리를 닮은 어두운 녹색의 희끄무레한 무언가는 존재만으로도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게 했다.
“태터즈 호러 레이스(Tatters Horror Wraith).”
끔찍한 누더기 레이스라고 하면 대충 맞을까? 실제로 그 이름처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과 역한 불쾌함이 치미는 것을 보면 참 어울리는 이름이다.
하지만,
“레이스? 레이스는 그린스킨이 아닐 건데?”
중요한 건 레이스(Wraith)라는 유령형 몬스터는 그린스킨이 아니라는 거다. 저 빌어먹을 모기 같은 새끼는 이후에 등장해야 하는 종족 중 하나다.
“그냥 레이스가 아니에요. 저것은.”
“끄아아악!”
“흐아아아.”
“끄으으으윽.”
…
하늘에 둥둥 떠서 인생의 마지막 담배를 피우는 사람 같은 표정을 짓던 레이스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움직였다.
이쪽으로 오는 게 아니라, 김종은이었던 것이었던 시기 자신을 호위하던 각성자과 침식자에게 달려가 누더기 같은 망토로 감싸고 그들의 생명력과 마력 그리고 마기를 가리지 않고 쪽 빨아 먹었다.
그렇다. 레이스라는 몬스터는 물리 공격은 그냥 씹어쳐드시고, 마법에도 저항력을 가지며, 그런 주제에 생명력과 마력을 뽑아서 쳐먹는 걸 좋아한다. 그 해리X터 시리즈에 나오는 아즈카반의 간수 비슷하게 생긴 놈들이다.
“레이스의 상위 개체인 호러 레이스(Horror Wraith). 그 호러 레이스 중에서도 돌연변이인 테터즈 계열의 호러 레이스예요. 저 테터즈 호러 레이스에게 죽임을 당하면…….”
엘리아나의 설명이 이어지는 와중에 녹색 누더기 망토에 휘감겨 모든 기운이 빨려 죽은 시체들 사이에서,
“하위 돌연변이 개체인 테터즈 레이스가 됩니다.”
누더기를 기워 놓은 것 같은 레이스가 탄생했다.
조금 전, 레이스는 물리 공격은 무시에 마법 공격도 저항한다고 했다. 그러면 레이스가 무적이냐? 그럴 리가 없다. 그럼 온 차원이 레이스로 뒤덮이게?
“유다연! 케일리, 클레어! 페넬로페! 셀마! 사나스!”
“저 불렀어요? 오빠?”
“여기요.”
“도착.”
“무슨 일이예요? 요한?”
“요한님?”
“잠시만요. 이 아이만 치료하고 갈게요!”
레이스는 성직자 계열이 사용하는 신성력, 이 신성력에 한여름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린다.
“저것들 보여? 저게 레이스라는 몬스터야. 유령이지.”
“유, 유령이요?!”
사나스 샤인스는 그 압도적인 미드가 출렁거릴 정도로 기겁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뒤로 물러나 봐야 갈 곳도 없는 성벽 위에서 말이다.
“그린스킨도 때려잡는 판에 뭔 유령을 무서워하고 있어?”
“그, 그래도 유령은 유령인 걸요?”
사나스가 두 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감싸쥐며 겁에 질린 모습을 하는데도 기이하게 미드가 더 강조되는 그림이 된다.
‘저건 본능적인 건가?’
이 급박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 연이어 나왔기 때문일까? 이요한은 물론이고 엘리아나마저도 조금은 그 긴장감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레이스에게는 물리 공격은 먹히지도 않을 거고, 속성 공격도 어느 정도 저항해. 그러나 딱 하나. 신성력은 쥐약이지.”
“오?! 오오!”
“그리고 레이스는 언데드 계열이라서 잡으면 플러스 카르마도 줄 걸?”
“오오오오!!”
유다연이 눈을 빛내며 적극적으로 나오는 것만 봐도 사제 계열 클래스는 영주 클래스만큼이나 랭크를 올리는 게 어렵다는 게 보였다.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가까이 접근하지 말고 멀리서 신성력으로 공격해. 그래. 연발 석궁 하나씩 들고 하면 되겠다.”
“네에!!”
가장 신난 유다연을 필두로 다들 하나씩 석궁과 볼트가 든 카트리지를 받아들고 성벽 위로 흩어졌다.
“주인님.”
“응?”
이요한이 이제는 그리 걱정할 게 없다는 식으로 넘어가려는 순간 엘리아나의 얼굴을 여전히 심각했다.
“저 레이스는 돌연변이입니다.”
이요한은 그게 뭐 어때서? 라고 물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가장 기대하고 있으면서 또 연발 석궁을 능숙하게 다루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유다연이 신성력을 주입한 볼트가 레이스를 명중했기 때문이다.
투둑―.
본래라면 신성력이 직격된 부위부터 불에 타서 고통에 사라졌어야 할 레이스가 누더기처럼 여러 개로 기워진 자신의 신체 일부를 떼어냄으로 살아남았다.
“…저래서 누더기(Tatters).”
“네. 주인님. 아무래도.”
엘리아나의 생략된 뒷말을 이요한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김종은이었던 것이 변해서 된 저 상위 레이스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레이스를 생산해낼 거다.
더욱이 레이스는 그린스킨과 달리 전장 유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망루가 무용지물이 되게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신성력을 지닌 각성자가 나서서 잡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저 누더기라는 특성을 가진 레이스를 잡기 위해서는 한 방이 아니라, 여러 번 명중을 시켜야 하고, 그건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잡는 속도보다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소리다. 그말은 곧,
“망설이면 큰일이 나겠지.”
그런 소리다. 망설이다가 뒤늦게 수습하려고 하면 더 큰 피해가 생기는.
“그래. 좋아. 그래도 오래 숨겼지. 엘라, 저거 처리하는 데 얼마나 걸려?”
“주인님께서 원하시면 그 순간 저것은 사라질 겁니다.”
“그럼 빨리 없애자. 벌써 100마리가 넘게 늘어났다. 레이스가.”
“네. 주인님.”
이요한을 향해 생긋 웃으며 대답한 엘리아나는, 그 대답을 기점으로 기세가 변했다. 그녀에게서 가장 가까운 곳부터 점점 전장이 멈추고 모두 엘리아나를 볼 정도로.
그녀의 전용 무기인 황금 활에 새파란 마력이 모여든다. 아무것도 걸지 않은 시위를 당기자 푸르다 못해 얼핏 남색 빛이 도는 화살이 하나 생성됐다.
라피스 라줄리―청금석, 동그랗게 깎으면 마치 우주에서 본 지구처럼 생긴 보석―의 청색을 떠오르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빛깔의 화살임에도 그 화살을 가까이서 본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만큼 파괴적인 힘을 지닌 화살이 하늘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며 인간과 침식자를 가리지 않고 집어삼키던 상급 레이스를 향해 날아갔다.
이전에 날린 화살과 다르게 이번에는 웬만한 각성자는 눈으로 쫓을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 날아갔다.
당연히 자신을 향한 공격을 테터즈 호러 레이스 역시 확인했다. 그 공격을 보고 막을 수 없다고 판단했던 걸까? 빠르게 멀어지며 하늘로 솟구쳤지만, 마치 그걸 기다렸다는 듯, 혹은 농락을 하려는 듯, 화살은 도망가는 테터즈 호러 레이스를 향해 점점 가까워졌다.
― Kerrrrrrrrrrrrrrr!!!!!!!
영혼을 바늘로 긁는 것처럼 소름이 끼치는 비명에 주변을 돌며 탐식하던 레이스들이 화살로 몰려든다.
그대로 몸을 부딪쳐서라도 화살의 진로를 막아보겠다는 심산이었지만, 라피스 라줄리를 닮은 화살은 레이스를 유인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듯이 레이스들이 날아오자 공간 이동을 한 것처럼 날아가 테터즈 호러 레이스의 머리에 박혔다.
화르―.
누더기 특성이 발현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농축된 블루 랭크 99의 마력 스탯이 폭발적으로 터져나오면서 그대로 레이스를 집어삼켰다.
『압도적인 업적!』
『이해할 수 없는 시기에 등장한 특수 개체이며 돌연변이인 태터즈 호러 레이스(Tatters Horror Wraith)를 척살하셨습니다!』
…
…
이요한은 자신의 앞에 나타난 메시지를 더 자세하게 확인하고 음미하고 싶었지만,
― 호오~? 어쩐지! 귀쟁이가 있었구나! 그것도 제법 강한!
갑자기 자신의 귓가에 들려오는 기이한 목소리에 메시지를 향해 뻗어가던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 감히 이런 개수작을! 기대하라. 쓸모없는 가축아. 내 귀쟁이와 함께 내 너를 장식품으로 만들 예정이니.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섬뜩한 경고는 그렇게 짧은 두 문장을 남기고 사라졌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