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30,000,000>
“오빠!!”
카르마 포인트를 정리하면서 내성으로 가서 좀 쉬려는 데, 유다연이 완전 해맑은 얼굴로 맹렬하게 달려온다.
“응?”
“포인트! 카르마 포인트! 카르마 포인트요!!”
넘어질 듯 달려와 내 팔을 잡고는 방방 뛰며 하는 말에는 많은 것이 생략되었지만, 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다 알아들었다.
“카르마 포인트 많이 먹었어?”
“네네! 단순히 많은 게 아니에요!”
“그래.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를 많이 먹었구나?”
“네네! 마자요! 어떻게 알았어요? 오빠?”
“어떻게 알긴? 나도 많이 먹었으니까 알지.”
“응? 벌써 카르마 포인트 확인했어요?”
확인 안 했다. 아니, 못했다. 하려는 데 니가 달려왔잖니. 물론 이런 속마음을 꺼내는 우를 범하진 않았지만.
“그런데 오빠.”
“응.”
“아까부터 이상했는데요. 카르마 포인트를 먹었다고 그러는 거 처음 들어요. 무슨 주식쟁이 아저씨들 같아.”
“그런가?”
모르는 척 말했지만, 정확히 일부러다.
우리는 큰 전쟁을 치렀다.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회귀 전에. 내가 아직 쉘터의 주인으로 있을 때.
66일이 한참 지난 어느 날, 생존자 무리가 쉘터로 다가왔다. 생존자를 받아들이는 게 좋은 건 당연한 일이었는데, 당시 생존자 무리는 자그마치 500명이 넘었다.
그러니 좋아하지 않을 리가 없잖은가. 가뜩이나 쉘터 발전을 위해서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가 부족할 때였고. 그리고 그 후 사흘은 우리에게 지옥이었다.
500여 명의 생존자 무리가 이동하면서 여러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따라서 그린스킨 무리‘들’이 우리 쉘터로 들이닥쳤다. 사흘을 쉬지 않고 전투만 했다.
그러고 나자 쉘터는 온갖 암울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끝내 질 거라는 패배감, 저 새끼들 때문에 그린스킨이 몰려왔다는 편 가르기, 이게 다 나 때문이라는 남 탓.
혼돈의 도가니가 가라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어쩌면 가라앉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전쟁이 본래 그런 거다.
우리는 이걸 재난이나 시련으로 보지 말고, 기회로 봐야 한다. 멸망 전 뭐가 가장 부러웠을까? 주식이나 코인 떡상으로 돈을 먹었다는 사람이 괜히 부럽잖은가?
그린스킨과 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몇 번이나 말했지만, 그린스킨뿐만 아니라 지구를 침공하는 놈들은 인간의 공포를 최고의 미식으로 여긴다. 자신을 보며 두려움에 떠는 인간을 음미하며 먹는다. 그래서 그린스킨은 인간을 바로 죽이지 않고, 사지부터 하나씩 떼어먹는 놈들도 있다.
“주식 같은 거야. 그것도 나락이 없는 원금 보장이 되는 인기 있는 상품.”
“어? 그런 건 보통 사기라던데요?”
“사기……. 사기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 이 상품은 실패하면 죽거든.”
“아~. 오빠. 뭐야, 그게.”
유다연이 농담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이다. 카르마 포인트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지만 실패하면 죽는다.
그게 바로 ‘그린스킨과 전쟁’이라는 원금 보장형 상품의 명칭이니까.
“얼마나 먹었는지는 말하지 말고. 이것만 말해 봐. 고유 능력 랭크. 그거 하나 올릴 정도는 돼?”
“그럼요! 그러니까 이렇게 신났지!”
그 정도면 유다연이 이렇게 방방 뛰는 것도 이해한다. 지금 유다연의 랭크가 오렌지니까. 벌써 옐로 랭크라는 거 아닌가. 두 번째 침공 세력이 등장하지 않았는데 옐로 랭크면.
“잘됐네.”
“으흐흐흐.”
“일단 씻고 쉬고 나서 차분하게 사용해. 잘 생각해서.”
“네에~. 저 먼저 가볼게요! 샤나스~. 같이 가아~.”
유다연이 올 때와 다르게 쫄랑쫄랑 뛰면서 저만치 앞에 가던 일행을 부르며 다가가는 모습은 뒷모습과 그 광경만 보면 저 무리가 멸망 전의 여대생들과 같았다.
“이 난리가 나지 않았다면, 다연이도, 샤나스도 대학을 다니고 있겠지.”
대학을 합격하면 보육원에서 연장해서 머물 수 있다고 알고 있었으니까. 유다연의 경우 보육원 땅 문제도 로또에 당첨된 내가 해결해 주면서 장학금도 지원했으니, 안정적으로 다녔을 수도 있을 거다. 이딴 괴물의 피를 뒤집어쓰는 삶이 아니라.
평범한 여대생들처럼 웃고, 공부하고, 취업 걱정을 하면서.
“이제 와서 이런 생각이 다 무슨 소용이냐. 멍청한 망상이지.”
이상하게 감상적이고 어딘가 이 상황이 불합리하다는 불만에 고개를 드는 헛된 희망을 푸념으로 흩트리고 내성으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카르마 포인트나 확인하기로 했다. 어차피 영지민을 밀어주느라 카르마 포인트는 얼마 못 벌었을 테니까.
“한 이천만 정도 먹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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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자 정보>
1. 이름(Name): 이요한
2. 칭호(Title): [지구가 도와주는] [장비 전문가] [―]
2. 국가(Nation): 대한민국
3. 소속(Clan): None
4. 직업(Class): 영주(領主)
5. 카르마(Karma)
[선업(Plus Karma) 37,464,636(▲30,000,000)]
[악업(Minus Karma) 76,831,944(▲67,762,937)]
6. 스탯(Status)
신체[Rank: Yellow]
[근력 2(▲1)] [민첩 3(▲2)] [체력 11(▲10)] [내구 1] [마력 11(▲10)]
특수[Rank: Yellow]
[위엄 1]
히든[Rank: Red]
[행운 11]
<고유 능력>
1. 영지(領地)[Rank: Y]
2. 만능(Almighty)[Rank: G]
<일반 능력>
1. 영지관리 [Rank: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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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게 뭐여. 씨벌.”
버근가? 예상보다 많다 정도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수준의 카르마 포인트가 보여 나도 모르게 잘 쓰지도 않는 욕이 튀어나왔다.
[마스터. 설명을 해드려도 될까요?]
“어? 어! 그래! 빨리 해줘! 너무 놀라서 꼴사납게 넘어질 뻔했다고!”
[네. 마스터.]
여전히 반지의 에고(Ego)가 등장했지만, 마찬가지로 이전과 달리 딱딱한 목소리는 어딘가 낯설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걸고넘어질 때가 아니다. 카르마 포인트가 어딘가 이상하다.
[마스터의 예상보다 높은 카르마 포인트의 수급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두 가지나?”
[네. 하나는 차원 동기화입니다.]
“그거? 그거 엘라가 잘 저지해서 분명히 실패했는데? 그래서 나중에는 차원 겹침만 이뤄졌잖아?”
[그렇습니다. 실로 훌륭한 대처였습니다. 다만 차원 동기화라는 것은 시도한 것만으로도 난이도가 상승합니다.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은 공정하고 명징한 시스템입니다. 상승한 난이도에 따라서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의 배수가 상승했습니다.]
음. 이해하고 납득할 만한 내용인데. 어째 말투에 아부가 섞여 있는 것 같은 건 착각인가?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을 빨아주는 것 같은?
[두 번째는 마스터께서, 정확하게는 마스터의 가신인 엘리아나가 처치한 태터즈 호러 레이스입니다.]
이 악물고 못 들은 척하는 것 봐. 딱 봐도 내 미간에 흡수된 것 같은 저장 장치? 카메라? 같은 거 때문에 저러는 것 같지만, 넘어가 주기로 했다.
[‘태터즈 호러 레이스’는 ‘호러 레이스’라는 특별한 언데드 영체 몬스터의 돌연변이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천만 정도의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와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엥? 그게 그 정도였어?”
[마스터께서는 그저 손을 놓고 있었지만, 당시 마스터의 가신인 하이엘프 엘리아나가 본신의 힘을 온전히 드러낸 것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아. 오케이.”
이해했다. 별 거 아닌 그린스킨은 ―어디까지나 엘라의 입장에서― 엘라의 존재를 들키지 않고 처리했다. 예를 들어 천급 간부들이나, 암살 일족의 부족장 같은 것들 말이다.
이번에도 한 방에 격살해서 그것들과 같은 급이라고 생각해버렸다.
[게다가.]
응? 뭐가 더 있어?
[이번에 등장한 그놈은 분명히 무언가 수작이 더해져 아직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종족입니다. 시체쟁이들은.]
“음. 그렇지?”
이제는 미간 사이로 사라진 저장 장치도 그래서 나타난 거니까.
[그런 존재를 마스터께서 격살하셨으니, 추가 배수가 붙었습니다.]
“그게 3천만이다?”
[네.]
음.
좋다는 생각보다 먼저 든 생각은 ‘3천만 포인트를 플러스와 마이너스로 줄 정도로 위험한 놈이었다.’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3천만이다. 3백만도 아니고.
[만약 그 몬스터가 마스터의 영지가 아니라, 다른 지역에 나타났다면 그 지역은 전부 태터즈 호러 레이스에게 영혼을 흡수당한 사람이 모두 태터즈 레이스가 되었을 거고, 결국 하나의 지역이 순식간에 태터즈 레이스로 뒤덮였을 겁니다.
[그렇게 레이스 수백 마리가 생기 이후라면, 현재 지구 각성자는 절대로 막을 수 없습니다. 마스터를 제외하면 말입니다. 만약 그 몬스터가 미국에서 발견됐다면, 마스터께서 손을 써보지 못한 상태로 수천 만의 레이스가 탄생했을 정도로 위험한 몬스터입니다.]
“음.”
생각만으로도 섬뜩하다. 잘못했으면 지구가 온통 레이스로 뒤덮일 뻔했다. 에고가 예를 들어 준 것처럼 만약 우리 영지가 아니라 다른 대륙이나 인도나 중국에 나타났다면?
“미친.”
거기까지 생각하자,
“이거 너무한 거 아냐? 도대체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다 같이 손 잡고 꿈과 행복이 가득한 언데드 월드로 들어갈 뻔했잖아!”
억울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렇잖아. 이런 상황인데 오히려 조사받아야 할 쪽은 저쪽인데, 내 미간에 이상한 거나 집어넣고 말이야!”
[마스터.]
안절부절못하는 에고가 만류의 의미로 나를 불렀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후우. X 같네. 진짜.”
어쩌면 전쟁이 끝난 것과 함께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터진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뭐? 그걸 알았다고 해서 지금 내 기분이 나아지나?
“…….”
그 뒤로 말없이 내성으로 향했다. 평소라면 갑자기 생긴 엄청난 카르마 포인트에 기분이 좋아서 히죽거렸을 텐데, 오늘은 왠지 저 막대한 카르마 포인트가 ‘돈으로 후려친다.’라는 말처럼 들려서 기분이 더러웠다.
마치 재벌에게 얻어터지고 치료비 하라고 수표를 뿌리는 영화에 나오는 그 얻어터진 피해자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이틀에 걸친 전쟁이 끝나고 하루를 내리 자고 이틀이 더 지난 후, 해가 진 늦은 밤이 되었을 때,
“그래. 나 주제에 찬 밥 더운 밥을 가릴 때냐. 에휴.”
난 싸대기를 맞더라도 카르마 포인트로 맞으면 감사합니다라고 절해야 할 때라는 걸 깨달으며 자괴감이 들었다.
뭔 소리냐고?
“이것들이 또 안 나오네?”
그린스킨이 또 안 나오기 시작했다. 이틀 내내 코빼기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날뿐만이 아니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에도, 열흘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그린스킨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 * *
파칙.
그런 그의 앞에 갑자기 검은 번개가 내려친다. 그리고 번개가 자리했던 곳에 처음부터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처럼 누군가 서 있었다.
“푸른 피의 고귀한 존재를 뵈어 영광입니다.”
이미 검은 뇌전이 내리쳤을 때부터 자세를 풀고 바닥에 넙죽 엎드린 제스터다. 그는 마치 지금 나타난 존재가 누군지 알고 있는 것처럼 예견하고 행동했다.
“네가 교활한 제스터라고 불린다는 그 고블린이냐?”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