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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87화 (87/183)

87화

<9,600,000>

몇 번이나 언급했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제스터는 대주술사다. 그린스킨이라는 본능에 충실한 일족에서 쉬이 배출할 수 없는 돌연변이 같은 존재이면서 또 특별한 존재다.

그렇기에 그는 무려 귀한 피, 푸른 피, 황제 일족과 대면할 영광을 누렸다. 그렇기에 오랜만에 체결된 차원 전쟁에 총사령관 중 하나를 차지할 수 있었고.

그렇다고 제스터가 총애를 받는 건 아니다. 대주술사를 넘어 그 위의 권능을 부리는 단계까지 간다면 모를까, 각성자로 치면 블루 랭크 수준에 불과한 대주술사를 ‘애지중지’할 이유가 없었다. 그린스킨의 황제 일족에게는.

그린스킨은 뇌를 본능에 맡기는 존재라는 이명이 있을 만큼,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종족이기에 황족들은 자신들을 제외한 그린스킨이 본능에 몸을 맡겨 황족에게 반기를 들지 못하게 하는 것에 엄청 힘을 쏟았다.

그렇기에 제스터는 대주술사임에도 그린스킨이라면 태어나면서부터 부여한 피에 새겨진 굴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제스터어!!]

황족의 핏줄. 가장 어린 황족이라지만, 황족은 황족이다. 그의 의지는 제스터가 거부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린스킨이라는 종족의 피와 영혼에 새겨진 굴종. 그것이 발동된다.

“크윽!”

제스터는 가장 빠르게 이 상황을 타게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다. 대주술사가 된 이후 그의 손을 거쳐간 수많은 그린스킨의 주술사들.

그 중에서도 지구에 내려가 주술의 경지를 높이기 위해 인간의 영혼과 피를 수집하는 주술사들은 모두 제스터와 연결되어 있다.

“ma━rty━ri━um.”

알아들을 수 없는 주술 언어. 그리고 주술을 전수하며 심어둔 트리거가 발동된다. 제스터에게 다행이라면 그가 발동시킨 주술 트리거를 심은 주술사는 모두 지구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제스터와 다르게 고귀한 존재와 같은 차원에 머물고 있기에 그나마 효율이 나쁘지 않다.

그가 심어 놓은 트리거에 따라 주술사들의 피와 살 그리고 영혼이 주술을 발동하는 에너지로 변해 고귀한 피를 가진 존재에게 쏟아진다.

트리거가 발동된 주술사들은 무언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그건 못해도 그들이 제대로 된 주술사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었던 직감이었다.

“크확?!”

그들은 죽고 싶지 않았다. 이런 죽음은 개죽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에. 살기 위해 자신들을 대신할 것을 찾았고, 주변에 있는 그린스킨을 보았다.

고통을 참아가며 주변에 있는 그린스킨을 흡수한다. 피와 살점 그리고 영혼까지 모조리.

하지만 앞서도 말했다시피 이런 식의 주술은 효율이 극악에 가깝다. 전환률이 2% 정도에도 미치지 못한다.

결국 주술사의 의지가 닿은 곳에 있는 그린스킨이 모두 사라진 이후, 주술사의 피와 영혼도 제스터가 발동한 주술의 재료가 된다.

주술사는 이렇게 소비하면 안 되는 자원이다. 수천억이 넘는 그린스킨에서도 주술사는 매우 희귀한 직업이니까. 하지만 제스터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황족이 내린 명령을 수행해야 한다는 영혼의 외침에 충실할 뿐이었다. 다행이라면 그린스킨의 종족 특성인 압도적인 물량과 기이한 생명력으로 급조한 극악 효율의 주술이라도 그 효과가 부족하지 않았다는 것일까?

제스터의 귀로 주술사들의 비명이 들려온다. 몇몇은 이유를 묻고, 몇몇은 제스터를 저주한다. 하지만 상관없다.

남은 시간 56초. → 106초.

주술이 제대로 발동되었으니까.

“더, 더 준비를. 쿨럭!”

피를 토하면서 혹시 몰라 준비한 주술 예장을 모조리 꺼내 가슴팍을 적신 자신의 피로 주술진을 그린다.

만약에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서.

* * *

“주인님.”

엘라의 두 눈은 조금 전과 또 달라졌다. 최상급 정령을 소환하고도 이전의 천(千)급 간부를 처리할 때와 달리 일격에 적을 처리하진 못했기에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던 때와 또 달랐고.

“저 놈은 이곳에 머물 수 있는 시간에 제한이 있어요.”

“그래? 하긴.”

생각해보면 너무 빠르게 나왔다. 벌써 나올 놈이 아니다. 아니, 애초에 귀족? 혈족? 왕족? 뭔지 모를 저런 놈이 나왔다는 기록은 보지도 못했다. 그건 놈이 나타나지 않았거나, 나타났더라도 기록을 남기지 못하고 몰살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정도라면 소문이라도 나야 한다. 어느 구역이 일대가 완전히 죽은 땅이 되었다는.

‘하지만 들어본 적이 없어.’

없다. 그런 소문은.

“그럼 버티면 된다?”

성벽에서 내려가라고 해도 말을 안 듣고 내 옆을 지키던 네이선이 되묻자,

“아니. 놈이 약해지는 순간을 노려서 죽인다.”

오히려 더 섬뜩한 소리를 한다.

“약해지는 순간?”

놈을 죽이는 건 당연히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런데 약해지는 순간이라니?

“차원의 법칙을 우회하고 이곳에 들어왔으니, 돌아갈 때도 정상적인 경로로 돌아갈 수 없어요. 차원의 벽을 우회해서 돌아가야만 하는 순간에는 오감이 뒤섞이고, 마력은 조금도 쓸 수 없죠. 그때가 놈이 약해지는 순간이에요.”

“그래?”

“네. 조금 전 몸이 이상해지는 것 보셨죠?”

“아! 그 통신 장애 같은 현상?”

인터넷 연결이 불안정할 때 나오는 영상처럼 몸에 노이즈가 보이는 현상이 있었다.

“맞아요. 그 전에.”

“음. 뭔지 알 것 같아. 그 전에 저 녀석을 상대해야 한다는 거지? 넌 일격을 위해서 힘을 아끼고?”

“…네.”

“얼마나?”

“글쎄요. 아무래도 저 놈이 저렇게 발광하는 걸 보면 그리 길지 않을 거예요. 길어야 1분?”

“그래…….”

난감하다. 진짜 제대로 화가 났는지 멀리서 있는 놈은 상처를 돌볼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그 정도는 쌉가능이지요~.”

그때 끼어드는 목소리는 성벽 아래로 피해 있던 유다연이다. 그리고 순식간에 성벽 위를 채우는 각성자들. 정확하게는 지구의 의지의 사제들이다.

“방어와 견제 정도는 정말 가능해요.”

“믿어보십시오.”

헌터의 활에서 빛의 화살이 날아가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엘븐나이츠.”

“예!”

“영지를 침범한 적을 죽여라. 대신.”

“대신이요?”

“다치지 말고.”

곳곳에서 웃음이 새어나온다. 어쩌면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엘븐나이츠는 병영에서 소환하는 병사들과 다르다.’

확실하지 않은 ‘감’이지만, 엘븐나이츠는 단순한 소환물이 아니다. 능동적으로 행동하고 각자 감정도 가지고 있다.

“주인님께서 다치지 말라신다. 다치는 놈은 다들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아, 대스승. 대스승이나 조심하시오. 이제 늙어서 활 시위를 당길 힘도 없는 양반이.”

“크하하하. 그건 맞지.”

“호호호.”

서로 하하호호 웃고 있는데 엘븐나이츠 사이에 피어오르는 기운은 살벌하기 그지 없었다. 그 살기는 모두 그린스킨의 왕족이라는 놈에게 향했다.

여기까지 길게 설명했지만, 얼마 걸리지 않았다. 놈이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죽어라.”

놈도 이제는 진심인 것이 보인다. 손을 휘감고 있는 탁한 남색 기운이 성벽이 아니라 성벽 위에 있는 우리를 노리고 있었으니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절체절명의 위기 같지만,

“너나 죽어라!”

이 성벽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엄연히 고유 능력 [영지]로 소환한 이능의 일환이다. 이게 단순히 높이 쌓은 건축물이었다면 지금까지 그린스킨의 침공에서 저들이 맹목적으로 성벽을 향해 달려들지만은 않았을 거고, 단순한 건축물이었다면 초기 일반인에 불가했던 이들이 그린스킨 주술사의 ‘화염’을 맞았을 때, 부상이 아니라 죽었을 거다.

쿵―! 으적!

네이선이 든 거대한 검으로 놈의 주먹을 막았다.

그 여파로 네이선의 두 팔이 부러졌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네이선의 최초 공격을 막고 팔이 부러졌다가 아니라, ‘막았다’는 부분이다.

어떻게?

성벽은 성벽 위에 선 ‘영지민’에게 성벽의 방어력을 일정 부분 공유한다. 그렇기에 화이트 랭크 성벽 위에 있던 것만으로도 그린스킨의 주술사가 날린 화염구를 맞고도 일반인이었던 이들이 죽지 않았던 거다.

이번도 마찬가지고.

펑―.

자신의 전력을 막아낼 줄 몰랐던지 당황한 놈의 덕을 호쾌하게 후려치는 것은 하이힐을 신은 여인의 발이다.

“익스플로전!”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던가? 누가 한 말인지 관심도 없지만, 이렇게 경함하고 보니 맞는 말이다. 턱을 맞은 공격과 눈을 노린 마법에 훌쩍 물러나는 놈을 따라서 화살과 마법이 날아든다.

이대로라면 버틸만 하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치워버렸다. 보통 이런 안일한 생각을 하면 꼭 문제가 생기곤 했으니까.

“발리스타. 기름 투척.”

방심 따위 멀리 치워버렸다. 발리스타에서 기름이 날아간다. 놈은 기름병을 처음부터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벽 위에서 날아오는 공격에 익숙해지면서 성큼성큼 성벽에 가까워졌다.

성벽에 가까워진 놈이 노린 것은 성벽 위의 우리가 아니다. 금이 간 성벽, 그 자체를 노렸다.

콰앙―.

한 번의 주먹질에 성벽에 간 금 주변으로 거미줄처럼 균일이 사방으로 늘어난다.

“불 질러.”

서둘러 불을 질렀다. 문제는 놈은 살가죽이 불타는 와중에도 주먹질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과 저 빌어먹을 놈은 화염 속에서도 이전 그린스킨과 달리 죽지 않는다는 거다.

그 사이에 성벽 위에서의 공격도 거세졌으나, 놈은 우직하고 빠르게 성벽을 강타했다. 그리고 결국,

우르르릉―.

성벽의 균열이 더는 막을 수 없을 만큼 커졌고, 성벽이 무너졌다. 다만 이미 예상하고 준비하고 있었기에 부상자는 없었지만,

“빌어먹을 괴물 놈.”

성벽이 무너진 게 문제다. 성벽이 있을 때와 달리 이 무너진 성벽을 안에 있는 영지를 지키기 위해서 막아야 하는 우리가 불리한 상황이다.

“오호?”

“성녀님의 주인님? 이거 뭡니까? 왜 강해졌죠?”

성벽이 무너진 순간 고유 능력 [만능(Almighty)]의 효과가 발현된다. 왕의 친정(親征). 신체 스탯 50% 상승과 특수 스탯 25% 상승이라는 효과에 엘븐나이츠와 지구의 의지의 사제들은 살 것 같다는 얼굴이 됐다.

하지만 상황이 낙관적이진 않다.

“주인님.”

“나서지 마.”

무너진 성벽에 나서려는 엘라를 만류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놈을 죽여야 한다. 이대로 도망가게 두면? 날아간 포인트는 차치하더라도 부상을 당하면서도 놈을 상대한 각성자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또한 영지민도 불안해 할 거다.

“그린스킨이라는 종족 진심 개 X 같다.”

짜증을 부릴 틈도 없다. 그 사이에 들이 닥친 놈을 향해 엘븐나이츠가 정령을 동원해 막고 있었다. 매초가 위기의 연속이다.

“기사 200기 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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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 숙소가 화이트 랭크였을 때, 소환할 수 있는 기사는 ‘수습 기사’다.

레드에 기사, 오렌지에 정예 기사, 옐로에 익스퍼트 기사를 소환할 수 있다. 한 명 소환하는데 들어가는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는 4만8천.

200기면 9백6십만. 엄청난 양이다.

하지만,

“소환해!”

마이너스 카르마는 어차피 많다. 원래라면 얻을 수 없을 정도로. 아끼다가 똥 된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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