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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89화 (89/183)

89화

<평범하지만 특별한>

평범하지만 특별한 하루의 아침이 밝아왔다. 종말이 시작되기 전과 같은 하루. 그때와 비교하면 차도 다니지 않고, 방송도 나오지 않아 훨씬 조용한 하루의 시작이었으나, 감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바라던 하루의 시작이었다.

이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는 아직 원정대에 발견되지 못해 합류하지 못한 생존자 그룹이나 약탈자 그룹이나 모두가 알고 있다. 그것도 절절할 경험을 통해서 말이다.

그리고 광역시가 아닌 곳에서 각자 쉘터를 꾸리고 있던 생존자 중에는 그린스킨이 없이 맞이하는 아침 해를 보며 눈물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마치 이요한이 회귀한 첫날 그랬던 것처럼.

고요하게 그러나 장엄하게 떠오르는 태양이 그린스킨이 없음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찬란하고 찬연하게 몸을 드러냈을 무렵,

“성벽 보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상자 치료 완료했습니다. 영주 님. 다행히도 이번 전투에서 사망자는 없습니다.”

“원정 파밍 준비 끝났습니다. 출발할까요?”

감상에 빠지기보다 이 순간조차 낭비할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이 할 일을 달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이요한의 영지, 유토피아에 소속된 각성자들이다.

특히나,

“파밍 빨리 끝내고 다시 그린스킨 놈들 나타나면 레벨업한다. 내가.”

“나부터 한다. 새치기 하지 마라.”

“아, 진짜, 이번에 아무것도 못 하고 구경하는 거 X 같더라. X나 킹받아서 뒈질뻔했네.”

“무너진 저 성벽을 볼 때마다 기분이 안 좋아. 그때 회장 아저씨 죽을 뻔했던 거지?”

최소 충성 스탯이 91이상이었으며, 지구의 의지의 사제들을 제외하고 가장 먼저 각성한 아이들이 대거 포함된 각성자들은 열정적인 것을 넘어 분노하고 있었다.

각성자가 된 이후, 충성 스탯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어느새 98, 97을 달성한 그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거인 괴물에 맞선 이요한의 뒷모습을 잊지 못했다.

대부분 십대 초중반인 초기 각성자들은 어리지만 영지에서 가장 강한 각성자들이다. 지구의 의지이 사제들은 아예 격이 다른 존재라서 각성자라고도 부르지 않으니까 틀린 말도 아니다.

괴물이 나타나기 전에 초기 각성자이자, ‘이요한 추종자’라고 불리는 이 어린 각성자들의 스탯은 무려 오렌지 랭크 중반이었다.

지구의 의지의 사제들이 옐로 랭크였던 걸 생각하면 뭐 대단하냐고 하겠지만, 대단한 게 맞다. 지구의 의지의 사제들은 하나 같이 특별한 클래스로 개화했지만, 이들은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그렇기에 이 추종자라는 어린 각성자들은 안다. 오렌지 랭크에 올랐음에도 여전히 자신들을 아이로 봐주고, 보호하려고 하는 이요한이 전투 계열 각성자가 아니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요한의 그런 행동이 좋았다. 본래가 출신(?)이 부모와 이별하고 보육시설에서 살아온 아이들에게 이요한의 행동은 꿈에 그리던 아버지의 것이었으니까.

“빌어먹을. 그린스킨. 이번에 다시 나오면 다 죽인다.”

“내가 먼저라고 했지. 그리고 넌 사제잖아. 뒤에서 힐이나 해라. 무슨 사제가 맨날 메이스를 들고 앞으로 튀어나가!”

“꺼져. 병신들아. 내가 마법으로 다 태워죽일 거니까.”

그런 아버지가 죽을 뻔했다. 자신들을 지키려다가.

전투 계열이라서 더 여실히 느껴졌던 걸까? 그 괴물의 분노한 목소리만 들어도 몸이 바들바들 떨렸었다. 그런 괴물을 맞이해 전투 계열이 아님에도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은 이요한의 모습은 이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동시에 드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일단 원정 파밍부터 잘 하자.”

“맞음. 그거부터임.”

“최소 21일이랬으니까 멀리 다녀올 수도 있겠다. 이번에는 좀 더 세밀하게?”

“응. 광역시는 저번에 다 돌았다고, 이번에는 더 세세하게 간다더라? 각성자도 엄청 늘었잖아?”

“조아쓰! 빨리 처리하고 그린스킨 때려 잡을 연습이나 하자!”

이천여 명의 어린 각성자들이 몸이 달아 들썩거릴 무렵, 이요한과 지구의 의지의 사제들은 한국 지도를 펼쳐놓고 구획을 세분화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우리 애기들을 이렇게 보내도 괜찮을까요? 우리 중 누구라도 따라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무엇보다 한국을 속속들이 훑는 이번 원정대에는 지구의 의지의 사제들이 인솔하지 않았다. 밖에서 서로 모여서 ‘그린스킨을 찢어 죽이네, 어쩌네.’하는 일명 ‘이요한의 추종자’인 어린 각성자들이 인솔할 예정이다.

이런 결정을 내린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크게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잘 할 거야. 어려서 그런가 배우는 게 엄청 빨라. 그리고 생각도 유연하고.”

나이가 어리지만, 그래서 더 맹렬히 이요한을 추종하는 이들을 간부급으로 일찍감치 키우기 위해서였다.

다른 하나는,

“무엇보다 어쩔 수 없어. 너희는 중국으로 가야하니까.”

지구의 의지의 사제들은 중국으로 가야한다. 침식자 무리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파악해야 하고, 무엇보다 생존자의 숫자가 만족할 만한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했기에.

중국이라는 나라의 유일한 이점이 인구수 아니겠는가. 수가 많은 만큼 후안무치한 놈들이 태반이겠지만, 소수라고 해도 적지 않은 사람이 기준을 통과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악독한 놈들은 미리 죽여놔야 한다.

그린스킨 이후 등장하는 괴물에게 악한 인간은 오히려 인간 편이 아니라, 괴물 편이 될 테니까.

“이번에 지방으로 향하는 아이들에게 음식도 음식인데, 의복처럼 유통 기한이 없는 필수품을 특별히 챙기라고 해줘.”

“네. 오빠. 그럼 저는 기다리고 있는 애들에게 전하고 올게요.”

“그래.”

각성자의 자발적인 지원 아래 원정 파밍은 광범위하게 시작됐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고 그린스킨 이후에 등장하는 것들에 의해 망가질 물건 들이다.

가공식품이 아니라, 원재료에 가까운 것들, 쌀이나 밀, 각종 향신료들, 그리고 아직은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방치된 옷가지들. 겨울이 다가오면 옷은 음식과 함께 정말 중요한 물건이 된다.

‘미리 확보해야지.’

여기서 의복은 단순히 겨울 패딩 같은 겉옷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겉옷보다 더 중요한 게 속옷이다. 특히나 여자들은 더 그렇다. 게다가 신발도 나중에는 품귀 현상이 일어난다.

그래서 생산 자체가 사라진 이후에 세상에서 가장 귀한 ‘아이템’ 파츠 중 하나가 바로 신발 쪽이다. 보통의 운동화나 군화가 격한 전투를 거치면서 닳는 것과 반대로 아이템은 일단 내구성 하나 만큼은 무한이라고 해도 무방하니까.

아이템의 기본 옵션이 바로 내구도 무한과 자동 청결 기능이다. 어쩌면 이런 기본 옵션 때문에 이반 아이템조차 드물게 나타나는 걸지도 모른다.

“원정은 클리어, 집도 카르마 포인트로 추가로 건설할 거고, 얼추 정리가 됐나? 이젠 성벽만 정리하면 되는 건가?”

“네. 주인님.”

“그런데 성벽을 정리할 수가 없네? 카르마 포인트가 애매해. 어휴.”

“주인님…….”

엘리아나가 이요한을 안쓰럽게 바라본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

이요한이 카르마 포인트 부족에 시달린 이유는 여러 가지 상황 때문이다.

일단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는 현재 성벽 밖에서 썩지도 않고, 그렇다고 흡수도 되지 않은 상태로 누워 있는 괴물 놈이 오기 전에,

[35,064,636]

가 있었다.

그러나 전쟁 중에 비록 사망한 영지민은 없었지만, 엘리아나와 공방에서 발생한 충격파에 부상을 입은 비각성자가 많았다. 자그마치 마기와 마력의 충돌에서 발생한 충격파이기에.

그래서 급하게 [치료소]를 건설해야 했다. 사제들로는 한계가 있을 정도였으니까. 50만에 조금 못 미치는 영지민 중, 전투 여파로 크고 작게 다친 이들이 10만 명이 넘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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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소[Rank: White]

1. 영지 범위 안에 치료소 랭크와 동일한 수준의 면역력 버프가 상시 적용됩니다.

2. 일정 랭크 이상으로 치료소 랭크가 상승하면, 치료소에서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를 소비하여 치료소 랭크와 동일한 랭크의 [의사]와 [전문의]를 고용할 수 있습니다.

3.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치료소를 통해 종교를 세울 수 있습니다. 종교를 세우면 [의사]와 [전문의]는 신성력을 사용하는 [사제]와 [대사제]로 변경됩니다.

4. 종교관이 세워진 이후, 일정 랭크 이상으로 치료소 랭크가 상승하면, 치료소에서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를 소비하여 [추기경]과 [이단 심문관]을 카르마 포인트로 고용할 수 있습니다.

5. 특수한 존재와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성녀 수호대]를 고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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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전국에서 생존자를 어렵게 데려왔는데, 전투 중도 아니고, 전투의 여파만으로 죽으면 그게 무슨 병신 짓이겠냐고.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치료소]를 건설했고, 급박한 상황에 맞춰 옐로 랭크까지 업그레이드 하는데 들어간 포인트가 [28,035,000]다.

그렇게 남은 포인트가 700만 정도였는데. 치료소만 있으면 뭐하겠냐고. 행정청처럼 [의사]와 [전문의]를 고용해야 했다.

의사는 한 명에 50만 포인트.

전문의는 한 명에 100만 포인트.

어쩌겠나?

남은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를 싹싹 긁어서 의사 10명에 전문의 2명을 고용했다.

다행이라면 효과가 엄청났다는 것 정도? 치료소와 랭크를 공유한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10만이 넘는 부상자 중, 경상자는 그날 저녁 전부 쾌차했다. 중상자나 내장이 다친 이들도 경상 수준으로 회복됐고.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

말도 마라.

빌어먹을 놈이 초반에 성벽 위에 배치한 병영에서 소환한 병사들을 손짓 한 번에 죽였잖은가.

그때 다행인지, 불행인지 영지민들에게 쉬게 하고 성벽 위의 경계를 병사들에게만 맡겨서 기존에 카르마 포인트를 소비해 소환하고 업그레이드까지 한 병사들의 9할이 날아갔다.

‘아……. 다시 생각해도 X 같네. 진짜.’

이요한은 그때를 떠올리면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병영에서 병사를 소환하고, 전국으로 원정을 나갈 아이들과 지구의 의지의 사제들에게 기사를 다섯 기씩 붙여줬다.

그렇게 검방병과 헌터, 파수꾼과 레인저에 기사까지 각각 500기 씩 고용하는 데 들어간 마이너스 포인트가 [26,940,000]였다.

결과적으로 이요한에게 남은 포인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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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자 정보〉

1. 이름(Name): 이요한

2. 칭호(Title): [지구가 도와주는] [장비 전문가] [―]

2. 국가(Nation): 대한민국

3. 소속(Clan): None

4. 직업(Class): 영주(領主)

5. 카르마(Karma)

[선업(Plus Karma) 29,636(▼35,035,000)]

[악업(Minus Karma) 271,944(▼26,9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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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 놓이게 됐다.

평소와 같았다면 상황이 이렇게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왜 포인트가 안 들어오냐고.’

전투가 끝나면 포인트가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직도 시체가 사라지지 않고 온전한 괴물 놈이 죽었음에도 저 무시무시한 메시지의 출력과 함께 카르마 포인트가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모든 각성자를 동원해 원정을 보냈다. 중국에까지.

그럼 영지는 누가 지키느냐고?

“으하하하하. 어머니의 나무라니!”

“그냥 어머니의 나무가 아니에요! 무려 ‘어린’ 어머니의 나무라고요! 대스승!”

“내가 어머니 나무가 커가는 모습을 직관하는 영광을 누리게 될 줄이야!”

“모두 주인님 덕분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아시겠어요?! 아시겠냐고요?!!”

저 해맑고 장난기 가득한 엘프들 덕분이다. 말하는 것만 들으면 조금 모자라고 과하게 밝은 아이들 같지만.

‘엄청 강하지.’

엘리아나를 소환하려다가 본 영상과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괴물 놈과 전투에서 보여준 모습만 보더라도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대비할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이다.

“주인님? 너무 시끄러운가요?”

이요한이 세계수 밑에서 호들갑을 떠는 미남, 미녀 바보들을 빤히 보자 엘리아나가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언니, 오빠를 지닌 일찍 철이 든 막내처럼 안절부절못하며 조심히 묻는다.

“아니. 냅둬. 세계수는 오랜만일 거 아냐?”

“그렇죠…….”

“그럼 됐어. 그리고 시끄럽지도 않아. 유다연이랑 올리비아가 평소에 떠는 부산에 비하면 저건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자 옆에서 바로,

“어머? 오빠! 지금 앞담 하는 거예요? 아무리 우리 사이가 특별하다지만, 아직 앞담까지 할 사이는 아니잖아요?! 하루 밤을 보내고 난 뒤라면 모를까?”

유다연이 뽀로로 달려와 재잘거린다. 그래. 이요한에게 이제 이 정도는 그냥 재잘거리는 수준이다.

“원정 준비 철저히 해. 다치지 말고.”

“으흐흐흐. 오빠. 걱정돼요?”

“당연히 걱정하지.”

“으흐흐흐. 좋아요! 조금 더! 더 저를 애틋하게 생각하라구요!!”

“…….”

한참을 재잘거리며 자신을 더 소중하고, 대범하게 대하라는 모순적인 논리를 펼치던 유다연이 올리비아에게 끌려나간 후 이요한은 회귀 전에도 경험하지 못한 믿을 수 없이 평화로운 오후를 만끽했다.

“꺄하하하!!”

“실프! 도와줘!”

“운디네! 나랑 놀아!”

“헤헤. 노우움~. 헤헤.”

엘리아나와 엘븐나이츠가 자신의 생명을 버려가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아직 성인식을 치르지 않은 작은 엘프들이 세계수 그늘 아래서 정령과 뛰어노는 모습을 감상하면서.

“엘라.”

“네. 주인님.”

같은 장면을, 같은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던 엘라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한다.

“사람들이 몰려올 거야. 준비해줘.”

그린스킨이 사라지고, 침략이 멈춘 지금 원정대에게 발견되지 못했거나, 이미 한 번 거절을 당했음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이 몰려들 거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이 땅을 향해서.

온갖 인간군상들이 모여서 난리를 피울 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점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주인님. 저희가 보필하겠어요.”

감각이 예민하고 정령과 소통하며 거짓말을 구별해내는 엘프가 내게 백여 명이나 있다는 거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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