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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91화 (91/183)

91화

<또라이 일정 성분비의 법칙>

누가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가이아 게시판에서 시작해 침공이 멈춘 기간을 ‘평화의 날’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린스킨이 사라지고 무려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지구는 정말 평화로운 지구 같았다. 오죽하면 11월에 접어들어 추워지기 시작했음에도 영지를 찾아오는 이들의 얼굴에는 추위 따위는 범접할 수 없는 희망이 가득했다.

첫날에 원정대가 데려오지 않은, 자발적으로 이동해 영지로 도착한 인원은 정확하게 2,933명이었다.

놀랍지 않은가? 살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가.

솔직히 나는 그 결과를 듣고는 굉장히 놀랐다.

3천 명에 가까운 인원 중, 영지로 진입이 허락된 사람은 천오백 명이 조금 넘었다. 거의 절반. 엄청 적은 것 같지만, 나로서는 엄청 많은 거였다. 이번 사건을 겪고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가 필요했기 때문에 허들을 낮췄기에 이 정도나 받을 수 있었던 거다.

그래도 개쓰레기 인성 터진 것과 종교쟁이는 여전히 받지 않았다.

다만 전처럼 플러스 카르마가 압도적으로 높은 사람만 가려 받는 게 아니라, 적당히 플러스 카르마가 마이너스 카르마 보다 높기만 하면 일단 ‘비각성자’에 한해서는 영지 안으로 들어서는 걸 허락했다.

각성자는?

각성자는 제법 심도 있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 어쩔 수 없는 게 권창현 같은 인간을 살해해서 강해지는 클래스는 가려야 하니까. 클래스를 밝히고, 엘프의 질문을 거짓 없이 답하고 통과한 각성자만이 영지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그럼 탈락한 사람들은 어쩌냐고?

일단 살인이나 강간 같은 중범죄 비각성자들은 그 자리에서 목이 잘렸다. 놔두면 언젠가 암 덩어리가 되는 놈들이니까.

종교쟁이들은 김포시와 강화도 밖으로 나가라고 경고했다. 단지 종교를 믿는 것만으로 너무한 박해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에 너희는 어땠지?”

단순히 그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 종교인들의 반발은 확연하게 줄었고, 그걸 지켜보던 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호흡기 전염병에도 그런 난리를 핀 너흰데. 지금 이 상황에서 과연 내 지시를 따를까? 내가 예배 따위 집어치우고 그 시간에 일하라고 하면? 할 거야? 안 할 거잖아? 그래서 그러는 거야.”

여기까지 말했을 때는 정적이었고,

“아! 그리고 난 이해나 협조를 바라는 게 아니야. 내 땅에 너희 같은 쓰레기를 들이지 않겠다는 거야. 이를테면 스티브 유의 입국 금지랑 같은 거지. 그러니까 꺼져.”

이 말을 끝냈을 때 종교쟁이들은 몰아치는 마력과 살기에 비명을 지르며 도주했다.

아무튼 첫 번째 날 등장한 종교적인 신념을 내세워 테러를 일삼던 놈의 반쯤 시체인 걸 성벽에 매달아 반면교사로 삼아 경고했을 때, 영지에서 난리를 치는 놈은 없을 거라고 단정했다.

그리고 이틀째 날에 3배나 되는 사람이 영지로 몰려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역시 그 생각이 옳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사흘째 되는 날.

“여기 대표가 누구냐능?! 나오라능!!”

개씹덕 새끼가 나타나서 ‘주인장 나와!’를 외칠 때, 깨달았다.

“아……. 또라이 일정 성분비의 법칙은 지구가 망해가도 적용중이구나. 대단하네. 진짜.”

세상은 여전하고, 인간은 정말이지 쓸데없는 종족일지도 모른다고.

“왔다. 이 X새끼야.”

성문에서 빽빽대며 씹덕체를 쓰는 백인놈……? 백인?

“너냐능?”

“아니, 누가 봐도 미국 제스처를 써대며 말할 것처럼 느끼하게 생긴 놈이 말투는 왜 저래?”

“노아 짱을 내놓으라능!”

“…너 내말 안 듣냐? 니가 불렀잖아. 이 새끼야! 그리고 노아 짱이 누군데?”

“네 옆에 있는 노아 짱!”

뚱뚱하지도 않다. 근육질의 모델처럼 생긴 금발 백인 놈이 씹덕체로 ‘짱짱’ 거리니까,

“아, 저 주둥이부터 좀 어떻게 해봐.”

그 명령에 가뜩이나 죽일까? 더 참아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하며 살기를 피웠다 꺼트렸다를 반복하던 엘프 하나가,

“노에스! 저거 묻어버려!!”

땅의 상급 정령을 소환했다. 앞서 첫날 테러범을 불과 물의 정령으로 고문한 엘프가 바로 그녀였지만, 그녀의 주 속성 정령을 불도 물도 아닌 땅이었다.

무려 상급의 정령이 나왔다. 당연하겠지만, 각성자라고 해도 그 힘을 거스를 수 없다. 왜냐하면, 엘븐 나이츠는 [기사단 숙소]와 동일한 랭크, 옐로(Yellow) 랭크이며 모두 스탯이 99에 육박하니까.

들썩―. 들썩.

“으아아아아아!!”

하지만 기이하게도 저 백인은 상급 땅의 정령인 노에스의 힘에 미약하게나마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이익! 노아 짜아아아아아응!!”

미친놈인가? 진짜. 어휴. 보는 내가 다 부끄럽다.

“주인님. 죽여도?”

엘라가 주인님이라고 부른 이후, 엘븐나이츠는 대부분은 나를 주인님이라고 불렀다. 노아는 이미 시위에 화살을 건 채로 짧게 물었다. 냉기가 절절하게 흐르는 그녀의 모습은 멀리서 보더라도 ‘혐오’라는 감정을 드러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단호했다.

그리고 그건 저 밑에서 끙끙대고 있던 놈도 볼 수 있었다. 오죽하면 생존자들이 저 기이하면서 어딘가 익숙한 백인과 거리를 두느라 성문을 향한 줄이 기이하게 구브러졌겠나.

“잠깐만.”

평소라면 고민도 하지 않고 쓸데없이 소란을 일으키는 놈을 죽이라고 했을 거다. 이 세상은 그런 세상이니까. 인권이나 도덕이니 이런 것이 야생의 것으로 떨어진.

그런데,

‘이상하네? 왜 점점 얼굴이 익숙하지?’

저 얼굴이 익숙하다는 게 문제다. 어디선가 분명히 본 것 같은, 그것도 호감이 섞인 기시감이었기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난리에도 죽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백인. 씹덕 말투? 그리고 생각보다 강한 힘? 백인? 백인. 백인. 미국. 영국. 미국? 아!’

“플레이어!”

회귀한 그날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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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휴……. 다 좋아. 좋다고. 그런데 왜 하필 나야? 다른 놈들 많잖아! 그 누구야. 미국의 그놈. 플레이어? 게이머? 그 새끼는?”

“걔는 진짜 그냥 개씹덕이에요. 완전 병신이라고요. 그 새끼 회귀시켰으면 사람 살릴 생각 안 하고 게임할 생각부터 했을 걸요?”

“그, 그래. 씹덕인 건 인정. 어휴. 등신 새끼. 그러면……. 그,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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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유다연의 대화에도 나왔던 놈이다. 회귀 전, 영국의 엑스칼리버의 주인인 그 기사여왕과 더불에 지구의 각성자 중, 수위를 다투던 강자.

플레이어 혹은 게이머라고 불린 각성자다.

“이몸을 아냐능?”

“넌 씨발! 입 좀 다물어! 이 병신 새끼야! 분위기 파악을 좀 하고.”

넌씨눈을 날려주자 놈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는지 입을 다물고 눈치를 본다. 그리고 게이머 주변에 있는 백인들도 어딘가 분위기가 다급해진 분위기다.

저 빌어먹을 놈의 정체를 알고 나니까 더 선택이 애매해졌다. 어중하간한 똘기 충만한 각성자라면 그냥 내쫓으면 된다.

그런데 저 새끼는 둘 중 하나다. 받아들이거나, 죽이거나.

저 놈은 여러 사고를 치는 놈인데,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사고를 칠 놈이다. 그런 주제에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그럴 힘을 가진 특별한 클래스의 각성자.

‘죽이자.’

죽이겠다고 마음을 먹기 무섭게,

“자, 잠깐!”

병신 같은 놈이 고개를 맹렬히 흔들면서 발버둥쳤다.

“왜?”

“…살려주세요.”

이 새끼가?

“멀쩡하게 말할 수 있네?”

“도, 동양에서는 이렇게 말하면 좋아하고 금방 친해진다고…….”

“어떤 미친놈이 그래? 누가 들어도 극혐인데.”

“예?! 그, 그럴 리가……. 우리 길드원이 거짓말을 했을 리가 없는데.”

“병신 같은 소리는 그만하고. 살고 싶다고?”

“네? 네! 사, 살고 싶습니다!”

당연히 살고 싶겠지. 지금 이 난리 속에서 이렇게 노력하는 게 다 살겠다고 하는 거니까.

“하아……. 당연히 살고 싶지. 나도 살고 싶고! 그딴 당연한 대답을 기대한 게 아니잖냐. 이 새끼야. 내가 왜 널 살려줘야 하냐고! 그걸 묻는 질문이잖아! 이 빡대가리 새끼야!”

“히익!!”

“생각을 하고 대답을 해! 뱉어놓고 생각하지 말고!”

아 저 노답새끼를 어쩐다. 예전에도 괴물을 잘 때려잡지만, 일상 브이 로그 같은 부분에서 엄청 욕을 먹었던 놈이다.

엘프를 찾아서 쉘터를 나간다거나, 무슨 게임 초회판을 위해서 그린스킨이 진을 친 도시로 혼자 쳐들어가거나 하는 짓을 말이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회귀 전이야 지구에서 가장 강한 각성자 중 하나가 저렇게 나사가 빠진 것처럼 멍청하게 굴어서 짜증났다면, 지금은 저런 놈 하나 죽어도 대세에 영향이 없다고 판단하니까.

“저, 저, 잘 싸웁니다!”

“응. 우리도 잘 싸워요. 그것도 겁나게. 그리고 넌 지금 우리 중 한 명의 손짓에 잡혀 있고요.”

“돈? 저 돈 많아요!”

“응. 나도 돈 많아요. 겁나 많아.”

“…….”

“없지? 그럼 그냥 죽…….”

“있습니다!”

놈이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갑자기 고개를 치켜들고 버둥댄다. 무시하고 죽이라고 명령하려는 찰나,

“저, 물약! 물약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놈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제법 충격적이었다.

물약.

게임 용어다. 포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여하튼,

“정말?”

이 아포칼립스는 일부 시스템은 게임을 닮았지만, 게임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 게 바로 포션의 유무다. 포션 비슷한 것도 없다.

아마 나중에 개방되는 영지 건물에서 제작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지금은 없다는 거다.

어떻게 확신하냐고?

아니, 씨, 체집할 ‘꺼리’라도 있어야 포션이 제작될 거라는 기대라도 하지. 마기에 오염된 지구는 쉘터가 아니면 물도 함부로 마실 수 없다. 그런데 무슨 포션을 기대하겠는가.

“해봐. 노아. 저거 좀 꺼내봐.”

“네. 주인님.”

노아가 노에스에게 부탁해 다시 땅 위로 올라온 게이머는,

“상점. 하급 체력 포션 구매.”

라고 중얼거렸다. 그랬더니 놈의 손에 정말 게임에서 볼 법한 붉은색 약병이 나타났다.

“허? 저 또라이 새끼. 진짜.”

저런 좋은 능력을 가지고 왜 저런 병신 같은 짓을 일삼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완벽하게 재능을 낭비하고 있는 놈의 행동을 떠올리고는 골이 아파왔다.

“그냥 죽이죠. 주인님.”

노아는 여전히 굉장히 혐오스러운 생물을 본 것처럼 눈을 찌푸리고 죽이자고 말했다. 엘라가 내 의견을 모두 수용한다면 노아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피력한다. 종종 ‘주인님. 주인님이면 주인님이라는 호칭답게 적극적으로 자빠트리는 게 어떨까요?’라는 괴상한 말을 하곤 하지만.

“그럴까?”

“워, 워!! 다른 물약도 있습니다!!”

그리고는 푸른색 물약과 노란색 물약 그리고 청명한 하늘색 물약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다. 순서대로 마력 회복 물약, 스테미너 회복 물약, 상태 이상 회복 물약이란다. 등급은 모두 하급이고.

“…일단 안으로 들어와. 이야기를 들어나 보자.”

“가,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씹덕 말투 쓰지 말고, 엘븐나이츠를 비롯해서 영지민에게 찝적대지도 말고.”

“네, 네네! 감사, 감사합니다!”

게이머가 허리를 접으며 백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감사 인사를 하면서 성문으로 접근하는 순간,

“나도 그 이야기에 좀 끼워줄래?”

미성이면서도 탁한 모순적인 톤의 여자 목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이번에는 고민하지 않고 그냥 죽여야지 생각하고 등을 돌렸다. 거기에는 머리에 뒤집어쓴 후드를 걷으면서 드러난 여자가 있었다. 양쪽 허리에 두 자루의 검을 차고, 등에는 기다란 장검을 비껴 맨 독특한 모습의 그 여자는,

“기사 여왕?”

내가 아는 여자다. 불행하게도.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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