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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96화 (96/183)

96화

<아포칼립스와 종교>

내가 인간에 대한 실망을 한 건 이미 오래 전이다. 회귀 전에 이미 충분히 실망을 맛 봤다.

그렇잖은가.

자신들을 위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포기하며 쉘터를 넓히고 관리한 게 나라는 인간이다. 그런데 그런 나를 뒤통수쳐서 식물인간으로 만들고는 빨대를 꽂고 10년 가까운 세월을 권력을 누린 게 인간이다. 그것도 믿었던 이들.

그러니 내가 인간에게 기대가 있겠나?

종교쟁이를 왜 내보냈냐고? 종교인은 반드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문제를 일으킨다. 특히나 그 믿음의 정도고 신실하면 신실할수록. 반드시.

그래서 처음에 납치라는 말을 했을 때도 평화의 날 이후 영지 주변을 순찰하는 순찰대에게 맡겨도 될 거라는 생각을 하고 넘기려고 했다. 그 주체가 종교인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이야기를 듣자마자 달려온 것도 그래서였다.

“납치라고?”

“영주님. 오셨습니까?”

“어. 오늘도 노아가 성문 담당이야? 내가 올 때마다 성문 담당인 것 같네?”

“…제가 맡을 때마다 사고가 터지는 것 같아 송구합니다.”

“응?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네. 감사합니다.”

진짜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닌데, 어째 돌려 까는 모양새가 됐다.

“엘라. 웃지만 말고 아니라고 좀 해줘.”

난감한데 속도 모르고 그저 쿡쿡 거리면서 입을 가리고 웃는 엘라를 괜히 타박했는데,

“주인님. 노아도 알고 있는 거예요. 장난 치는 겁니다. 쿠쿠쿡.”

“…진짜?”

“엘프는 참과 거짓을 본능적으로 구분할 줄 아니까요.”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저렇게 말하는 게 장난츨 친 거라고? 아니 왜?

“흠흠.”

살짝 붉게 달아오른 볼을 만지며 헛기침을 하면서 내 눈을 피하는 걸 보니 엘라의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럼 다행인가? 편해졌다는 뜻이니까? 난 아직도 마기스테르 빼면 엘븐나이츠가 좀 어색해서.”

“오히려 저희가 어려워합니다. 영주님께서는 성녀님의 주인님이시니까요. 다만 저 같은 경우는 며칠 전에 그 이상한 말투를 쓰는 남자를 영주님이 말로 패주신 이후에 좀 편해졌습니다.”

“아아. 그 새끼. 그 새끼 요즘 뭐하지? 시간 날 때마다 갈궈줘야 하는데.”

게이머 놈이 어디 짱박혀 있는지 며칠 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눈에 보일 때마다 말로 갈궈서 나를 피해다니는 것 같은데.

“일단 이거부터 해결하고 그 새끼 찾으러 간다.”

“네. 영주님. 그때는 저도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게이머는 다들 별로 안 좋아하는데, 특히 유다연과 ‘노아짱’이라고 불린 노아가 가장 싫어한다. 유다연하고는 이미 1:1로 맞짱도 떴다. 게이머가 졌지. 온갖 버프와 신성 주문을 몸에 걸고 작은 유다연의 허리까지 오는 커다란 메이스를 들고 달려드는 모습에 기겁하며 도망다니기 바빴다.

“일단 납치부터 들어보고. 아이야. 괜찮니?”

몸을 낮춰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묻는 말에,

“네? 네, 네! 어, 어. 저는 괜찮아요. 어, 엄마랑 아빠가…….”

“그래. 그 이야기도 들었단다. 그럼 그 납치한 놈들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 나니?”

“네! 저 길 잘 찾아요!”

“그렇구나. 뭐라고 하면서 강제로 데려갔는지도 기억나니?”

“우움……. 좋은 말씀? 좋은 말? 전해준다고 했어요. 물도 준다고 했고요. 그리고 자기들이 유토피아에서 나왔다고도 했어요.”

“그래?”

흠칫.

‘유토피아에서 나왔다.’라는 말에 나를 비롯한 이들의 분위기가 바뀌자 아이가 놀라는 게 보여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몇 가지를 생각했다.

“올리비아. 지금 지의사(지구의 의지의 사제)들 다 뭐해?”

“…불러오겠습니다.”

올리비아 역시 잔뜩 굳은 얼굴로 누가 보더라도 ‘나 존나 빡쳤다!’라는 표정으로 영지 안으로 향했다.

“음……. 노아. 쉬고 있는 엘븐나이츠에게는 미안한데.”

“네. 모두 불러오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빈둥대는 꼴이 못마땅했습니다.”

얘는 성격이 나쁜 거야? 좋은 거야? 무표정한 얼굴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무섭다니까!

“쿠쿠쿡! 푸훕!”

엘라는 마치 내 속마음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입을 가리고 작게 웃다가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영주님.”

“저희 왔습니다.”

“오빠.”

지의사들이 모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쉬고 있던 엘븐나이츠가 전원 도착했다.

“오면서 설명은 들었지?”

“네.”

“아마도 납치를 하는 이유는 둘 정도일 거야. 종교라는 특징을 고려하면.”

“둘이요?”

“응. 하나는 인신공양.”

“…헐! 그거 그거잖아요! 막 심장 가르고! 막 제물로 바치고!”

“그렇지. 그것도 어쨌든 종교 중 하나니까.”

“미친.”

“그런데 ‘좋은 말씀’이니, ‘복음’이니 하는 걸 보면 그쪽은 가능성이 낮고 다른 하나인 신자 혹은 신도 확충이지 않을까?”

“무슨 신도를 그렇게 억지로 늘려? 그게 그렇게도 되는 거야?”

“뭐, 몇 가지 조건만 맞으면?”

회귀 전에도 저런 짓을 하는 놈들이 있었다. 사이비도 있었고, 멸망 전에 번듯하게 인정받던 종교도 있었다.

“쉘터 계열 각성자가 있을 거야. 그렇지 않았다면 억지로 성당 같은 곳으로 납치하진 않을 테니까.”

“음. 쉘터가 있으면 어떻게 해?”

“일단은…….”

* * *

지민석은 고작 일을 벌이고 6일만에 기존에 비해서 쉘터에 생존자의 수가 3배로 불어난 것을 보며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의 위치가 쉘터 안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지석민의 기분이 좋으면 분위기는 덩달아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납치해온 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면서 비명과 고함 그리고 울음이 연이어 들려오는 성당 안에서 기괴할 정도로 기존의 ‘신자’들은 포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목자님. 오늘도 평안하시죠?”

“네. 오늘도 평안합니다. 장로님.”

그러면서 서로 따뜻하게 인사를 주고받는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기괴하고 비틀려 있다.

“오늘 전도를 나간 형제, 자매님들이 오실 때가 되지 않았나요? 점심을 드셔야 할 텐데.”

“오늘은 더 열심히 한다고 다들 간단하게 주먹밥을 싸갔습니다.”

“아이고. 이런. 몸이 상하시면 안 될 텐데.”

“그래도 덕분에 길 잃은 양을 더 빨리 많이 인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목자라고 불리는 지석민과 김 장로라고 불리는 노인의 대화가 훈훈하게 끝이 맺을 무렵,

콰아앙―!!

성당 전체가 ‘부르르’ 떨리게 하는 폭음이 들려왔다. 성당이 이미 고유 능력으로 쉘터가 되었기에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무너지고도 남았을 충격이었다.

어떻게 아냐고?

“이, 이게 무슨 일……?!”

지석민의 눈앞에 경고 표시와 함께 쉘터의 내구도가 [31/100] 이렇게 표시되고 있었으니까.

쾅―! 콰아앙!!

그리고 두 번의 굉음이 울리고 난 후, 쉘터의 내구도는 0이 되었고 성당의 입구와 그 주변 벽이 무너지며 이 사달을 일으킨 원인이 된 이들이 나타났다.

“무, 무슨 짓이야!!”

장로라고 불린 노인이 여러 인종으로 이뤄진 이들을 삿대질하며 그렇게 외치자,

“여기가 납치범 소굴이라고 해서 잡으러 왔는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앞에 선 여자, 유다연이 그렇게 답했다. 납치범이라는 말에 하나 같이 움찔하면서 대꾸도 못하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맞네. 여기. 잡아와.”

“알았……! 잠깐만. 유다연 왜 네가 요한님처럼 명령이야? 죽을래?”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뛰쳐나가려던 지의사들은 광전사 릴리 로즈의 딴지에 삐끗했다. 만화처럼.

“그래서 안 갈 거야?”

“아니. 갈 거야! 그런데 왜 네가!”

유다연과 릴리 로즈의 투덕거림에 한숨을 흘린 이들은 그대로 성당 내부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성당 한쪽에서 온몸에 멍이 가득한 생존자를 발견하고는,

“이 미친 새끼들이!!”

눈이 돌아버렸다.

“야야! 나도 할 거야!!”

뒤늦게 뛰어든 릴리 로즈는 10살도 되지 않을 나이의 아이의 입술이 다 터지고 온몸에 가득한 피멍을 보고는,

“죽인다!!”

정말로 광(狂) 전사가 되어버렸다. 신도로 보이는 이들은 각성자, 비각성자를 가리지 않고 집어던졌다. 마치 흥분한 곰이 사람을 집어던진 것처럼 큰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덕에 비각성자는 최소 몇 군데 부러지거나 심하면 죽기까지 했다.

“쓰레기 같은 새끼들이!! 어떻게 애를 이렇게!!”

어린 아이를 학대하는 건 릴리 로즈에게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일이다. 그녀가 ‘백합(릴리)’과 ‘장미(로즈)’라는 꽃밭을 연상케 하는 작은 키와 인형 같은 외모를 가지고도 미칠 광(狂)자가 붙은 광전사가 된 것 역시 트라우마 때문이다.

그나마 그녀가 아직 등뒤에 맨 대검을 뽑지 않은 것은 성적으로 학대받은 아이가 없기 때문이다.

“죽어! 그냥 죽어어!!”

릴리의 고함과 함께 성당을 쉘터로 삶던 종교인들의 비명이 이어지는 사이,

“괜찮아요. 진짜 유토피아 소속 유다연입니다. 저 영상에서 보신 적 있으시죠?”

“치료해드릴게요. 네. 다 돼셨네요. 저분들을 따라가세요.”

“부러졌네요? 일단 뼈를 좀 맞추고 치료를 해야겠는데요? 좀 참으세요.”

유다연을 필두로 사제 계열 각성자들이 납치된 생존자들을 치료하고 엘븐나이츠에게 인계하고 엘븐나이츠들은 그들을 성당 밖으로 안내했다.

혹시라도 은근슬쩍 피해자 옆에 끼려고 하면,

“인간. 장래 희망이 자살인가?”

“왼손? 오른손? 어디를 덜 쓰지? 덜 쓰는 쪽으로 잘라줄게.”

이런 살벌한 말을 하며 사지 중 하나를 잘라버리곤 했다.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진짜로.

“저, 저도 피, 피해자예요!”

엘프 앞에서 거짓말이라니. 그게 무슨 집밥 백 선생님 앞에서 설탕 숨기는 소리냐고. 말도 안 되지.

지석민은 무너진 성당과 비병을 지르며 날아가는 신도들 그리고 조금 전까지 자신에게 웃으며 인사하던 신자들이 자신은 신자가 아니라고 거짓말 하는 모습을 보면서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게 무엇인지 체감했다.

그가 각성자가 아니었다면 자신이 만든 이상향이자 종교적인 안식처가 무너지고 부정되는 장면에 미쳐버렸을 수도 있다.

“흐응~? 네가 대빵이라는 거지? 이 납치 단체의?”

“으으으.”

어쩌면 미치는 게 나았을 지도 모르겠다. 엘븐 나이츠 중 절반이 포박한 지석민을 비롯한 빌런들과 납치당했던 이들을 데리고 영지로 향했다.

그리고 무너진 성당 앞에서 대기하기를 얼마.

“음?! 왜 성전이?!”

“뭐, 뭐야?! 당신들 뭐야!”

“유, 유, 유토피아다!”

전도라는 이름의 납치를 위해 나갔던 각성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들은,

“으아아악!!”

“꺄아아악!”

이전과 마찬가지로 하늘을 날았고, 포박되어 영지로 끌려갔다.

그날 밤.

포박되어 성문 앞에 무릎 꿇려진 이들을 내려다보는 이요한은 입에서는,

“쯧. 이러니. 내가 인간 불신이 안 생기겠냐고. 명색이 종교 지도자라는 사람이 납치, 감금, 폭행, 협박?”

더욱 짙어진 인간 불신에 대한 감상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다음 날.

“가이아 게시판에 영상 편집해서 올린 거 맞아? 왜 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지?”

“오빠. 멸망 이전에도 종교로 전쟁까지 일어났는데. 그런 광신도들을 일망타진한 게 오빠잖아요? 그럼 당연히 광신도에게 시달린 사람들이 피난 갈 곳은?”

“나다?”

“댓츠 롸잇!”

“…그래. 이제는 나도 모르겠다. 마음대로 해라.”

평화의 날이 이어질수록 영지로 향하는 이들의 수는 점점 늘어갔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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