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너희 좀 친다?>
자그마치 열흘하고 이틀이나 더 지속됐다. 그린스킨이 사라진 이후, 갑자기 전투가 멈춘 일명 ‘평화의 날’이라고 하는 기간이 말이다. 기존에 21일이라고 말한 최소한의 기간에서.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평화의 날이 유지되는 동안 한국을 기준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에서까지 우리 영지를 찾았다.
첫날 전직 테러범을 잡아낸 뒤, 나를 비롯한 우리 영지는 공식적으로 매우 강력한 경고를 남겼다. 이런 놈이라면 한국 땅을 밟을 생각조차 말라는 식이었다.
어떻게 보면 각성자가 된 후, 힘이 생겨 자신이 넘치는 이들이 보기에는 불편하고 불쾌한 내용의 경고였지만, 가이아 게시판 최상단에 걸리더니 그 아래 댓글은 모두 우호적이다 못해 찬양하는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
“왜 이래? 이거?”
“아? 아항! 오빠 당연히 좋아하죠.”
“당연하게 좋아한다고? 오면 죽인다는 말인데? 그냥 죽이는 것도 아니고 고문하듯이 해놓고 죽인다는 뜻인데?”
“참나. 오빠. 가이아 게시판을 보려면 기본적으로 각성자여야 하잖아요?”
“그렇지. 당연히.”
“오빠가 그랬잖아요~. 각성자는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과 지구의 의지가 판단하기에 최소한 플러스 카르마가 마이너스 카르마보다 높은 사람들이 되는 거라고.”
“어? 어. 그랬지. 아아.”
“그러니까요. 여기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누를 수 있는 건 최소한 각성자라는 거잖아요. 그런 각성자니까 애초에 저기에 해당 사항이 없죠. 물론 각성자 중에 쓰레기로 변한 연놈들도 있겠지만, 그런 놈들은 굳이 댓글을 달았겠어요?”
유다연이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이제 이해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일어난 이유 역시도.
“그러네. 요즘 내가 이렇게 정신이 없다. 아! 그것만이 아니겠네.”
“맞아요.”
“저 경고는 우리 영지는 저런 놈이 없다는 뜻이니까.”
“네. 보통의 각성자라면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도 안전해진다는 뜻이죠. 반길만 하지 않아요?”
“그래. 좋아할 만하다.”
그렇게 유다연을 비롯한 올리비아와 대화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는 건, 목표로 했던 100만이라는 생존자를 모았기 때문이고, 이상하게 이 평화가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미치겠네.’
회귀 전에는 이런 일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갑자기 맞이한 이 평화가 나는 왠지 계속 불안했다.
[마스터.]
그리고 그때, 평화의 날이 시작되고 33일이 되는 날이자, 기사 여왕이 영지에 등장했다가 쫓겨나고 한달이 되는 날, 사라진 것처럼 반응이 없던 반지의 에고가 나타났다.
‘오랜만이다.’
[오랜만입니다. 마스터. 이제 곧 지구의 의지가 진행한 회의 결과를 전할 수 있습니다.]
‘엉? 그게 뭔 소리야?’
뭘 이제 곧이야? 그냥 말하면 안……?
『안녕하십니까?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에서 안내드립니다.』
되겠구나. 함부로 떠들면.
뜬금없이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이 등판할 줄은 몰랐다. 하긴 평화의 날이 시작되는 순간에도 등장하긴 했으니까, 개연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
아무튼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이 등장했다는 건,
『멈췄던 계약을 다시 진행하겠습니다.』
이 전쟁이 다시 시작된다는 뜻이었다. 오히려 언제 끝날지 모를 제한된 평화가 끝났다는 것에 속이 다 후련했다면 내가 좀 이상한가 ?
하지만 후련함은 이내 곧 경악으로 바뀌었다. 그 목소리의 시스템 메시지는 지구인의 입장에서 심장이 위장까지 내려갈 법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꺼냈기 때문이다.
『멈췄던 계약의 진행에 앞서 몇 가지 문제를 정리하고 가겠습니다.』
『먼저 차원 계약자 그린스킨 측에서 ‘위반’ 사항을 인정했으며, 논의 끝에 그들은 ‘패배’를 선언했습니다.』
『패배에 따른 위약금으로 특수 카르마 포인트 10억을 그린스킨 진영의 패배 선언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 보상을 지급합니다.』
────────────────
〈기여도 랭킹〉
1위. 이요한 (75.1%)
2위. 네이선 깁스 (3.9%)
3위. 올리비아 오바테 (2.4%)
4위. 유다연 (1.9%)
5위. 캐롤라인 후드 (1.2%)
6위. 후아나 다이즈 (0.82%)
…
…
────────────────
『재차 말씀드리지만, 보상은 ‘기여도’에 따라서 지급됩니다. ‘순위’가 아니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차원 지구의 인간 종족 이요한 님. 기여도에 따른 보상으로 카르마 포인트를 지급합니다.』
『기여도 75.1% 확인. 특수 카르마 포인트 751,000,000 포인트를 지급합니다.』
『특수 카르마 포인트는 플러스와 마이너스 양쪽 모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카르마 포인트 폭탄을 투하했다. 7억이라는 엄청난 포인트를.
“에?”
『이요한 님.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인 저희가 기대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저는 언더독을 좋아하거든요. 힘 내세요.』
어라? 역시나 이 차원 시스템 평소에 나오던 시스템 메시지와 다르다. 감정이 느껴진달까?
“오우! What the heck! 보스! 저 카르마 포인트 2천 4백이나 받았습니다! 2,400만!!”
올리비아가 옆에서 괴성을 지르며 좋아하고,
“왜 내가 2등이지?”
무려 권능을 다루는 그린스킨의 황족의 공격을 직접 방어하며 양팔이 부서졌던 과거를 잊기라도 한 듯 자신의 순위를 믿지 못하는 네이선과,
“미친! 7천 포인트나 준다고?! 난 그냥 성벽 위에서 스킬 조금 쓴 거 밖에 없는데?”
“와. 나 열심히 했구나. 만이천이나 주네.”
명기된 순위권에 없더라도 극히 일부라도 0.0001%의 기여도를 받으면 1,000 카르마 포인트를 받는 만큼 기여도가 미미하더라도 단위가 단위인 만큼 생각보다 엄청난 카르마 포인트에 영지민들이 호들갑을 떠는 순간에,
『지금부터 멈췄던 계약을 속행합니다. 그린스킨을 이어 침공하는 존재는 ‘심연의 추방자’입니다.』
“하아.”
심연의 추방자. 알고 있다. 그린스킨이 난장판을 벌인 곳에 들이닥친 놈들이었으니까.
우선 가장 먼저 등장하는 건,
― 그어어어…….
― 크아아아…….
너덜너덜한 신체 부위, 창백한 피부, 도드라진 검은색 핏줄, 좀비다.
각성자가, 손에서 불이 나가고, 슈퍼 혈청을 맞은 군인보다 신체 능력이 뛰어난 이들이 즐비한 현시점에서 좀비가 뭐가 그리 문제냐고?
“아, 벌써부터 X 같아.”
니들이 좀비를 알아? 좀비의 가장 무서운 점은 바로,
“각성자 좀비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파.”
전염성이다. 각성자? 뭐, 어쩌라고. 각성자도 좀비에게 여러 번 물리고 신성력으로 치료를 받지 않으면 각성자 좀비가 되는 판인데.
그리고 좀비는 ‘많이’ 나온다. 물량의 대명사인 그린스킨? 그린스킨이 무섭고 괴랄하고 지독한 이유는 ‘어느 정도 강한 개체’가 쏟아진다는 거다. 반면 좀비는 하나하나의 개체가 그린스킨에 비해 약하지만, 그 수가 그린스킨의 몇 배는 되는 숫자가 등장한다. 끊임없이 쏟아지고, 좀비에게 물리면 좀비가 된다.
이 무슨 뭐 같은 창조경제냐고.
여기만 해도 뭐 같은데, 두 가지나 더 남았다. 이 빌어먹을 것들이 X 같은 이유가.
다음은 저 좀비들이 뒈지면서 남기는 시독이다. 이제 진짜 쉘터 안쪽이 아니면 인간은 물론이고 생물이 살아가기 힘든 환경이 된다는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연의 추방자가 더러운 결정적인 이유는,
“아, 여기서 그거 나오는 거죠? 악마종?”
악마종이 나온다는 거다. 정확하게는 악마를 닮은 놈들이다. 그렇다고 발록이나 바포메트 같은 거대종이 나오지는 않는다. 아니, 나올 수도 있는데 난 그것이 나왔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내가 보고 들은 것들은,
“어. 좆렘린이 나오지.”
그렘린처럼 작은 악마종이다. 성인의 무릎이나 허벅지 정도밖에 오지 않는 작은 개체들이 좀비들 사이사이에 숨어서 목을 노린다. 기묘한 요술을 사용하고, 기괴한 움직임을 보이며, 엄청 빠르다.
그래서 그 당시 영화 그렘린에 나오는 것을 닮은 그 빌어먹을 악마를 상대하던 각성자들은 하나 같이 악마종을 ‘좆램린’이라고 불렀다. 한 마디로 말해서 상대하기 일명 ‘지랄 같은’ 놈들이다.
『계약의 이행에 앞서 차원 공방전의 주체인 지구의 의지는 그린스킨에게 받은 위약금을 멸족 대상인 ‘인간’을 위해 사용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그에 따라 앞으로 이어질 두 번의 계약 이행이 시작될 때마다 각각 하나의 특약을 추가됩니다.』
『심연의 추방자의 계약 이행에 앞서 추가된 특약이 발동됩니다.』
『현재 존재하는 그리고 앞으로 추가로 탄생하는 모든 각성자는 일반 능력 [심연 독 면역]을 자동 개화합니다.』
“뭐?!”
이거,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마스터.]
어떻게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건지 이야기를 해줄 존재가 내 곁에 있어서 다행이다. 궁금해 뒈질 뻔했네.
[지금부터 지구의 의지가 결의한 회의 내용을 전달하겠습니다.]
어디, 한 달 동안 뭘 했나 들어나 볼까?
* * *
재신은 카르마 시스템이 차원 너머로 멀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여러 의미가 담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와. 진짜. 이런 말 하면 또 권능을 다루는 존재의 위엄이 어쩌고 하는 개 소리를 지껄일 거라는 거 아는데. 그래도 해야겠어. 아! 진심 개 좆 같은 한 달이었다아아악!!”
깊은 빡침과 후련함이 동시에 담긴 욕을 내뱉으면서.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흐아아아…….”
사흘 연속 야근을 한 직장인이 퇴근하는 버스에 올라 빈 자리에 간신히 앉은 것처럼 가슴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오는 숨을 내쉰 재신은 지난 한 달의 회의를 떠올렸다.
그저 평소와 같은 아니, 조금은 다르지만 크게 다르지 않은 그런 날이었다. 파괴(破壞)의 돌발행동은 그저 저녁 식탁에서 나누는 조금 특별한 가쉽 같은 거였으니까.
그러나 이요한 곁에 있어야 할 군주의 에고가 나타나면서부터 지구의 의지는 풍파를 맞이해야 했다.
“그 개자식 어딨어!!”
등장과 동시에 쌍욕을 날리는 에고의 행동에 평소라면 군주 본인도 아니고 에고 주제에 이게 무슨 짓이냐고 호통을 날렸을 지구의 의지들이 모두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던 건 군주의 에고가 내뿜는 살기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이었다.
눈앞에 그가 찾는 ‘그 개자식’이 있었다면 목을 따버릴 것처럼.
“개자식이라니? 누굴 말하는 건데?”
“파괴!! 파괴 말이야!!”
누군가 그렇게 물었을 때, 파괴를 언급했자 그때까지만 해도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지구의지들은,
“야야. 너 그거 뒷북이야. 우리가 잘 처리했어.”
“맞아. 파괴는 카르마 포인트 사용 금지 했어.”
“그리고 접촉도 금지했고.”
마지 뒷북을 치는 동생을 보는 것처럼 흐뭇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모든 일을 잘 처리했다는 듯이 자랑스러워하면서.
“뭔 개소리를 하고들 있어!!”
당연히 군주의 에고에게서 날아온 건 쌍욕이다. 그제야 왜 자신이 여기 와서 이 지랄발광을 하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이요한의 기분이 나쁘다는 것과 화가 나고 실망했다는 것까지.
“어, 어어. 아닌데?”
누군가는 그렇게 멍청한 소리를 했다. 자신들은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절대로 만약을 대비해서 기사 여왕이라고 불렸던 인간을 지원한 게 아니라고.
“아니면? 우리가 아니라고 하면 뭐가 달라져? 결과만 놓고 보면 이요한의 말이 틀린 게 없는데! 그리고 당사자기 그렇게 느꼈다는데?!!”
그제야 상황의 심각함을 인지한 지구의 의지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어쩌지? 파괴를 잡아다가 이요한 앞에 보여줄까? 그런 거 아니라고?”
“미친놈아!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이 지구에 있는 지금 우리가 직접 이요한을 만난다고? 우르르 몰려가서?! 무슨 오해를 받으려고!”
온갖 병신 같은 소리가 나오고, 그걸 반박하면서 또 병신 같은 의견이 나왔다.
결국,
“다들 조용!”
가만히 지켜보던 재신이 나서야 했다.
“다들 알지? 이요한이 그거 성질머리 더러운 거? 각성자가 되기 전에도 막 나 들이받았던 거 기억 안 나?”
“그럼 어쩌게?”
“일단 회의부터 하자. 우리가 받게 될 카르마 포인트가 얼마나 되는지. 그걸로 이요한이 만족할 만한 선물은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그렇게 시작된 지옥 같은 회의였다. 이요한이 충분히 만족할 만하면서 동시에 지구에 관심을 두고 있는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에게 시비를 걸리지 않을 수 있는 보상.
단순히 카르마 포인트를 대량으로 뿌린다는 일차원적인 보상으로는 어느 것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무려 25일을 회의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이 위약금과 패배 배상금을 받아왔을 때,
“다들 더는 이견이 없는 거지?”
재신은 정리된 보상 목록을 보면서 지친 숨을 내뱉었다. 모두 동의하는 지구의 의지를 보면서 그녀는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을 호출했다.
[불렀니?]
“그래. 전에 네가 그랬지? 위약금을 받으면 우리가 먹지 말고 고생한 인간에게 보상을 넘기라고.”
여전히 못마땅하다는 기색이 역력한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을 향해 재신은 지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그래. 그랬지. 왜 이제 와서 막상 카르마 포인트를 보니 아깝니?]
“전혀. 일단 그린스킨 침공에 기여도에 따라 특수 카르마 포인트를 10억 배정할게.”
첫 번째 보상안을 꺼냈을 때,
[나쁘지 않네. 그래도 많이 남는데? 그게 전부?]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이 처음으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할 수 없다는 듯,
“아니. 우리는 두 개의 특약을 추가하겠어.”
두 번째로 준비한 진짜 보상을 꺼냈을 때,
[…하. 너희 좀 친다?]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의 감탄을 들을 수 있었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