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너무 오랜만이세요! 정말!!>
이프리트가 손짓으로 날려버린 좀비의 수는 못 해도 백만은 훌쩍 넘는다. 최소가 백만이다. 그렇다면 카르마 포인트가 뭐 억 단위가 쌓였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그린스킨이야 하나하나의 개체가 강력한 존재이기에 일반적인 병사 계급의 그린스킨이라도 평균 100이라는 수치를 주지만, 좀비는 아니다.
언젠가 말한 적 있는데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은 공정하다. 본래도 좀비 한 마리가 주는 카르마 포인트는 많지 않았는데, 좀비 독 그러니까 심연 독에 각성자가 면역이 되면서 좀비가 주는 카르마 포인트는 더 줄어들었다.
어디 그것뿐일까?
이것도 언급한 적이 있는데, 좀비를 비롯해 두 번째 침공하는 존재들을 죽이면 플러스 카르마와 마이너스 카르마를 동일하게 준다.
즉, 더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특수 좀비가 아닌, 일반 좀비 한 마리가 주는 카르마 포인트는 평균적으로 10정도다. 플러스와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 10씩.
적다고?
직접 각성자로 전장에 서면 그런 말이 안 나올 걸?
그린스킨을 죽이는데 필요한 마력이 레드 랭크 1이라고 한다면, 좀비는 화이트 랭크 20 정도면 된다.
마력만 따졌을 때 그렇다는 거다. 그린스킨은 두꺼운 근육과 질긴 외피 그리고 쇳덩어리 같은 뼈 때문에 근력도 필요하고 민첩도 필요하고 체력도 많이 든다. 마력은 당연하고.
그런데 좀비는?
날이 선 냉병기에 마력을 두르고 목을 자르거나, 머리를 터트리면 죽는다.
거기에 들어가는 힘? 언데드라 뼈도 삭았고, 피부는 누더기다. 어려울 게 없지.
좀비의 무서움은 혹시라도 전투 중에 좀비에게 물리거나 할퀴어지거나 혹은 그 피가 입으로 들어가서 좀비로 변해버리는 거다. 몇 번 말했다시피 이제 좀비가 가장 무서운 무기가 각성자에게 면역이 됐다.
그리고 바글바글한 좀비들. 좀비들끼리 서로 부딪치면서 다리가 부러지고 팔이 부러지는 일이 벌어질 정도로 바글바글한 좀비들을 앞에 두고 각성자는 무기만 휘두르면 된다.
큰 힘 들이지 않은 칼질 한 번에 좀비 네댓 마리가 죽어 나자빠진다. 카르마 포인트로 하면 50포인트 남짓.
각성자가 되어서 높아진 스탯으로 온종일도 휘두를 수 있는 정도의 칼질로 말이다.
그렇다면 바글바글한 좀비 떼에 각성자의 고유 능력을 덧씌운 전력을 담은 공격을 한다면?
한 번에 수십 마리의 좀비는 죽어 나간다. 지구의 의지의 사제들이라면? 수백 마리도 가능하다.
이러니 노다지라고 하는 게 아닐까?
“다시 내려오네.”
“으차! 그래도 잠깐 쉬었다고 컨디션이 더 좋아졌네?”
“자자. 일합시다~!”
이프리트의 힘에 의해 일시에 소거된 땅에 다시 좀비를 담은 운석이 장대 비처럼 쏟아지자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쉬던 각성자들이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자세를 잡는다.
“…어째 모양새가.”
예비군 훈련장에서 본 적 있는 것 같은 모양새다. 어딘가 모르게 건들거리고 묘하게 건성건성하면서 훈련 시작이라는 말에 하나둘 무거운 몸을 일으키는 모습처럼.
“온다아!!”
전투는 다시 시작됐다. 이프리트는 재차 나타난 좀비에 언짢은 것처럼 손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괜찮아.”
엘라가 그런 그녀를 말렸다.
“왜?”
“내가 힘들어. 아직 예전 무위를 전부 되찾은 게 아니라서.”
“칫. 알았어. 그럼 힘을 안 쓰고 소환되는 건 괜찮아? 응? 괜찮지? 응?”
마치 어서 괜찮다고 말하라는 듯이 재촉하며 묻는 이프리트의 말과 행동에 엘라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와아아!! 좋아! 그럼 난 영지를 좀 구경하다가 세계수 아래 가 있을 게!”
“그건 주인님께 허락을 얻어야지. 이피.”
“다시 날 애칭으로 불러주는구나?! 엘라! 기뻐!! 헤헤.”
“이피이~?”
엘라가 이름을 길게 늘여 부르면서 말을 돌리려는 이프리트를 지적하자,
“칫! 칫칫! 알았어! 엘라의 주인님아. 영지 둘러봐도 돼? 아! 세계수 아래서 쉬는 것도!”
한참을 칫칫 거리던 이프리트가 오랜만에 아빠에게 부탁하는 중학생 딸처럼 어색한 몸짓으로 허락을 구했다.
무려 불의 정령왕. 압도적인 강자의 부탁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일 법도 하지만,
“영지를 둘러보면서 인간을 해치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 수 있나?”
난 그러지 않았다.
“응! 당연하지!”
“세계수에서 쉬는 건 괜찮은데, 흥분해서 세계수를 조금이라도 태워 먹으면 엘라가 널 죽일 지도 몰라.”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그리고 경고를 전한 말에 이프리트는 ‘1+1=17’이라는 수식을 본 수학자 같은 얼굴로 답했다.
“엘라의 주인님아. 어떤 것부터 지적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일단 엘라가 나를 죽일 수 없고. 무엇보다 세계수는 정령의 힘에 조금의 생채기도 나지 않는다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넌 세계수에 불을 지를 수 없다?”
“맞아!”
그건 나도 몰랐던 사실이지만, 이대로 그렇구나, 내가 실수했네, 라고 넘어가기엔 이프리트의 막무가내 같은 성격이 꺼림칙하다.
‘분명히 저건 사고를 칠 상(相)이야.’
“세계수는 괜찮을 수 있지만, 그 주변은? 세계수 바로 옆에 내성이 있고, 그 주변에 주요 영지 시설이 있어. 거기도 불이 안 붙어?”
“거긴……! 붙겠지? 하지만!”
“하지만 넌 그러지 않을 거다? 불의 정령왕이잖아? 방금 손짓으로 수백만 마리의 좀비를 태운 것처럼, 너의 부주의한 행동이 무슨 일을 불러올지 모른다고. 특히나 세계수 아래에는 아직 어린 엘프와 인간이 많아. 교육과 휴식의 장소니까.”
“…….”
“내 말은 조심하라는 거야. 영지 안에서. 어린 엘프나 인간은 너보다 약해. 훨씬 약해. 네가 짜증을 내는 것만으로 가까이 있던 애들이 다칠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거야.”
“그거라면……. 이해했어! 안 그럴게!”
“좋아. 나도 그럼 허락할게. 어디든 다녀도 좋아. 아! 창고하고 성소는 안 돼.”
“응? 알았어!”
“이유라도 듣고 수긍하라고. 창고에는 휘발유가 아직 많이 남았어. 그래서 안 된다고 하는 거고. 성소는 네가 못 들어가. 나랑 동행해야 해.”
“음……! 알았어!”
“너……. 알아들은 거야?”
“그럼!”
못 알아들었네.
[전혀 못 알아들었어요.]
“그럼 이따 봐!! 엘라!”
성벽 위에서 몸을 날린 이프리트는 추락하지 않고 아이언맨이 떠오를 정도로 빠르게 영지 안쪽으로 날아갔다.
“다른 정령왕도 저래?”
“음……. 노아스는 말이 없는 편이에요. 가끔 이상한 농담을 하는데. 나름대로 그게 귀여워요. 실피드는 눈치가 빠르고 발랄해요. 이피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이에요. 이피가 철없는 아이라면 실피는 밝은 아이 같달까요?”
“그래? 물의 정령왕은?”
“엘라임, 엘리는……. 요조숙녀예요. 약간 허당끼가 있긴 하지만.”
엘라의 설명과 중간중간 존재하는 약간의 침묵으로 알 수 있었다. 정령왕들은 하나 같이 개성이 강하다는 걸.
“나중에 만나보면 알겠지. 그럼 다들 사냥을 잘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난 다른 것부터 좀 할까? [상점]하고 [자판기]를 어디에 설치해야 잘 했다고 소문이 나려나?”
[마스터. 그것들을 하시기 전에 [성소]부터 방문하시는 게 어떠실까요?]
‘성소? 나 아직 쿨 다 안 돌았는데? 180일인가 그렇지 않나?’
[그린 랭크잖아요.]
자세한 설명은 할 수 없다는 걸 암시하는 짧은 설명이었지만, 군주의 에고는 기사 여왕 등장 이후, 유난히 눈치를 보면서 내게 도움을 주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러지 뭐.’
“올리비아! 유다연!”
“네. 보스.”
“저 불렀어요?”
올리비아는 성벽 위에서, 유다연은 성벽 아래서 각자 좀비를 사냥하던 둘은 빠르게 다가왔다.
“전장이 너무 멀어졌어!”
“아……!”
올리비아는 내가 한 지적을 바로 알아들었다. 전장이 너무 넓어졌다. 각성자의 수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점점 각성자에 따라 전선이 팽창하니까 성벽에서 멀어진다.
그 말은,
“이거 잘못하면 아군 사격이 벌어질 수 있어. 비각성자들 아래로 내려야 해!”
비각성자들을 성벽 아래로 내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각성자들은 비각성자들 호위에 신경 써. 적어도 대전이 때 영지로 온 비각성자들은 이번에 모두 각성할 수 있어야 해. 앞으로 세상은 각성은 필수니까. 꼭 전투를 하라는 게 아니라, 좀비에게 물려 좀비가 되지 않기 위해서.”
목에 힘을 주지 않고 한 말임에도 비각성자들은 똑똑히 들었는지 하나 같이 머리를 끄덕인다. 하긴 이제 저들도 알 거다. 이 멸망과 전투에서 각성은 의식주 만큼이나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것이라는 걸.
저들 중에는 몇 번이나 각성자가 되려고 시도한 자들도 끼여있었으니까.
“네. 신경 쓸 게요. 보스.”
“오카이! 내가 축복해줄게!!”
유다연이 어딘가 과하게 업된 텐션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좋아. 좀비라고 무시하지 마. 굉장히 날래니까. 대신에 각성자들이 사지를 잘라 포장해 던져줄 거야. 석궁을 단단히 고정하고 침착하게 머리를 노려. 머리. 못 맞추겠으면 조금 가까이 가도 돼. 팔 다리가 잘렸을 테니까. 알겠어?”
“네에!”
“영주 님 멋져요!”
“하하하하!”
전투를 그것도 좀비라는 괴물과 전투를 앞두고 있음에도 긴장한 영지민이 한 명도 없다.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한숨을 쉬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 출발.”
“예에!”
“한다! 각성!”
“나도!”
…
“어휴. 왜?”
“뭔가 기분 나쁜 생각을 한 것 같은데? 오빠가.”
어째 영지민들이 모두 유다연을 닮아가는 것 같아서 한숨을 쉬고 있을 때, 당사자인 유다연이 귀신 같이 자신을 욕하는 걸 알아차리고는 성벽 아래에서 나를 째려본다.
“됐고. 앞에 봐. 좀비라고 무시하다가 물리지 말고.”
“응! 오빠!”
물론 진짜로 유다연이 좀비에게 당할 걸 걱정하는 건 아니다. 유다연의 사흘 밤을 새웠어도 좀비 따위에게 당할 리는 없다.
“그럼 각성자는 알아서 할 테고, 특수 개체는 엘븐나이츠가 처리할 테니까. 다 됐나?”
“네. 주인님.”
“좋아. [성소]부터 같이 가자.”
“네!”
엘라는 ‘같이’라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해사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녀와 성벽을 내려오기 무섭게 땅의 정령이 나와 엘라를 그야 말로 로켓 배송을 시켜버렸다. 전방에서 바람의 정령이 공기저항을 줄여주고, 땅이 스스로 움직이는 방식으로.
빠르게 도착한 성소의 문을 열기 무섭게,
『드디어 오셨군요!!]
성소를 처음 방문했을 때도 나왔던 목소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나를 반겼다.
“어? 어. 그래. 오긴 왔지.”
『너무 오랜만이세요! 정말!!』
이유는 모르겠는데, 혼나는 기분이 드는 건 착각일까? 성소의 시스템은 분명히 나를 원망하고 있었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