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빛이 강림했다.>
좀비와 인간의 사투!
라고 말하기에는 일방적으로 인간에게 유리한 전장이다. 각성자와 좀비의 전투는 각성자와 ‘평범한 인간’의 전부보다 더 일방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몇 번이나 언급했듯이 좀비가 무서운 이유는 저돌적인 돌격성과 전염성 때문이지, 그 몸이 단단하거나 튼튼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살아 있는 인간보다 몸의 내구성은 더 약하다고 할까?
“와. 방금 봤어? 좀비한테 닿을 것 같으니까 몸으로 막아줬어!”
“팔다리 예쁘게 썰어준다. 저거 목만 베면 바로 각성인데?”
“와 저기 애기도 각성한다. 다섯 살? 여섯 살 정도 밖에 안 돼 보이는데.”
이요한이 성벽에서 자리를 비운 후, 시기적으로 늦게 영지로 합류해 영지민이 된 이들이 눈치를 보며 성벽 위로 올라와 성벽 너머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시간 전투를 보며 쑥덕거렸다. 성벽 위에서 전장을 내려다보는 것이기에 더 그런 분위기가 잘 읽혔다.
“야야. 저기! 영지민 모두 각성자로 만들어주려나 보네. 허.”
“우, 우리도 해주려나?”
“해주겠냐?”
그리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각성하는 기존의 비각성자를 보는 영지민들의 감정은,
“부럽다.”
“개부럽다.”
“그러게.”
감탄과 부러움의 연속이었다. 비각성자는 비각성자대로 부러워했고, 각성자는 자신이 각성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감탄을 흘렸다.
“효율적이네.”
“안전하고.”
“음.”
물론 모든 사람이 저 숙련된 각성 과정과 전투를 보면서 부러워만 하는 건 아니었다.
“난 이미 각성했는데.”
“나도.”
“내 고유 능력이면 좀비 완전 개좁밥인데. 싸그리 불태워 죽일 수 있는데.”
각성자들이 때려잡는 좀비를 보면서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이들도 있다.
“그럼 나가서 싸우면 되는 거 아냐?”
옆에 있던 누군가 그렇게 말했지만, 최근 그러니까 평화의 날에 합류한 각성자들은 함부로 나서지 않았다. 폭군 권창훈처럼 자리 개념 때문이냐고? 그럴 리가. 폭군이 특이한 거다. 오히려 전투를 열심히 하는 각성자는 이곳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든 환영 받을 거다.
“뭐야? 쫄?”
“쫄기는 누가 쫄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저 바글바글한 좀비 속으로 몸을 던질 엄두가 나지 않은 것도 물론 이유 중 하나일 거다.
하지만 그것보다 카르마 포인트를 많이 벌 수 있는 저 전장에 쉽사리 발을 들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뭘 믿고 저 난장판에 몸을 던지냐? 그러다가 옆에서 칼찌라도 훅 들어오면 죽는 건데.”
다른 각성자, 특히 이곳 유토피아 출신이 아닌 몇몇 그룹으로 뭉쳐 있는 다른 쉘터 출신 각성자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종말이 시작되고 100일이 넘게 지난 시점이다. 지금 같은 시점에서 각성자라면 같은 쉘터에서도 배신을 한 번 이상 당해 봤어야 한다. 한 번이면 오히려 양호하달까?
“좋겠다. 저렇게 일말의 두려움이나 꺼림칙함 없이 온전히 뒤를 맡길 수 있는 각성자가 1만 명이 넘는다는 거잖아?”
좀비 사이로 파고든, 누가 봐도 다른 각성자보다 강한 각성자가 생기면 이제 막 각성한 초보 각성자들이 그 뒤를 받히며 능력을 발현, 엄호한다.
“그러게. 난 저번 쉘터에서……. 어휴. 말을 말이야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올라온다.”
“왜?”
“이걸 게임처럼 생각하는 미친 애새끼가 있었거든. 뒤치기 해서 내가 가진 아이템을 줍줍하겠다고 그린스킨 떼랑 드잡이하는데 진짜로 등 뒤에서 공격하는데.”
“헐……. 그래서? 그래서?”
“다행이라면 다행인게. 난 초창기에 각성했고, 그 새끼는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애송이였거든. 난 그린스킨하고 전력으로 싸우느라고 온몸에 마력을 두르고 있었고.”
“아아. 뻔하네. 그럼.”
“그렇지.”
각성자들만 이해할 수 있는 대화는 자세한 설명이 없이 자기들끼리 알아들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각성자들은 다들 피식 웃으면서 뒷이야기를 알아차렸다.
“각성자만 아는 내용인가?”
“비각성자 아저씨. 그런 말 못 들어봤어? 마력 랭크 결정론?”
“음? 그게 뭔가?”
“저랭크 마력은 고랭크 마력을 침범할 수 없다. 가이아 게시판에 올리비아 수석 보좌관이 올린 내용이야. 화이트 랭크 마력으로는 레드 랭크 마력에 위해를 가할 수 없다는 이론이지.”
“음? 음. 오!”
“알아들었나 보네? 맞아. 저 아저씨가 말한 대로라면, 전신에 마력을 코팅한 상태였다면 뒤치기를 한 놈은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을 거야. 그럼 그 뒤는 뻔하지. 세상이 이렇게 되기 전이라면 경찰에 신고를 하거나 그랬겠지만, 이런 시대라면 뭐. 즉결처분이 당연하잖아? 맞지? 아저씨?”
사람들의 시선이 말을 꺼낸 창을 든 남자에게로 모였다.
“기대에 충족해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네. 난 그 애새끼를 죽이진 않았어.”
“엥? 진짜? 살렸다고? 뒤에서 칼 빵을 놓은 놈을? 혼또니?”
“그래. 레알 참트루로다가. 엄밀히 말하면 죽이지 ‘못’한 거지. 당시 내가 있던 쉘터는 다들 머릿속이 꽃밭이었거든. 애가 실수한 거 아니겠냐. 설마 죽이려고 했겠냐. 전투가 익숙하지 않아서 긴장한 거다. 그러니 네가 좀 이해를 해라. 뭐, 이런 식이어서.”
“웩! 개극혐이네. 난 거기 못 버텼을 듯.”
“맞아. 그래서 내가 내 발로 쉘터를 나왔어! 빠른 손절이었지. 그 덕분인지 몰라도 난 평화의 날 둘째 날에 유토피아에 도착했다고.”
“오! 전화위복인가?”
“오오오. 역시 탈좆소는 능지순!”
…
사람들이 왁자하게 떠들면서 아무런 내용이 아님에도 서로 과하게 으쌰으쌰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서먹서먹하던 이들이 친해지기 위해서 별 것 아닌 말에도 과하게 반응하며 분위기를 띄우는 것이리라.
“그렇지.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느끼고 있어.”
“그 정도로 이곳이 마음에 들었어?”
“음. 그것도 있긴 한데.”
남자는 말을 꺼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 잠깐의 침묵에 더 많은 시선이 모였고, 귀가 모여들었다.
“뭐, 말해도 되겠지. 평화의 날이 끝난 지금까지도, 이전 쉘터 출신 사람은 아직 한 명도 못 봤거든.”
그가 꺼낸 말이 뜻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자가 있던 쉘터가 전멸했다는 뜻이었다.
잠깐의 어색하고 불편한 침묵을 몰아낸 것은,
“영지로 돌아오는 각성자들은 뭐지?”
“아, 저 사람들 그거네. 생산직.”
“아아. 농부 같은 거?”
“아쉽겠다.”
영지 성문으로 속속 복귀하는 이들이 있었다. 각성했음에도 전투 계열이 아닌 이들. 누군가의 말처럼 아쉬워할 법도 한데,
“무슨 소리. 여기는 비전투 계열 각성자 엄청 대우해줘. 거기다가 뭐라더라? 영지 안에 농지나 농장 같은 거 있어서 카르마 포인트도 엄청 빠르게 얻는다던데? 고유 능력 랭크도 빠르게 오르고.”
“맞음. 내 친구가 어부였는데, 일주일도 안 되는 기간에 겁나 빨리 컸음.”
“그래서 비전투 계열 각성자는 충성심 장난 아니야. 영주님을 영주라고 부르면 난리나. 난 이요한이라고 했다가 멱살 잡혔다니까?”
이들 말처럼 전혀 그렇지 않았다. 빠르게 성문을 통해 영지 안에 진입하기 무섭게 각자 직업에 맞는 곳으로 향했다. 그 움직임이 너무 능숙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전에 각성한 경험자라고 해도 될 만큼 일사불란했다.
“뭔데? 여기? 진짜 유토피아야? 뭐 이리 체계적이고 도덕적이야? 이 망한 세상에서?”
“아아! 나도 사냥마렵다!”
“얼추 다 각성한 것 같지 않아? 뒤에 물러나 있는 사람이 없는데? 그럼 나도 끼어 볼까?”
영주인 이요한이 성소에 있는 사이 점점 늘어나는 각성자들 덕분에 각성은 더욱 빠르게 이뤄졌고 어느새 기존의 영지민 약 2만 명은 모두 각성자가 되었다. 그 2만 명 중, 4분의 1인 5천 명 정도가 생산 계열 각성자였다.
다른 쉘터였다면 생산 계열이라고 눈치를 봐야겠지만, 이 영지에서는 어떤 경우에서는 생산 계열 각성자가 더 대우를 받곤 한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백만이 넘는 생존자가 모인 시점에서 식량을 생산하고, 생필품을 조달하는 건 전투 계열이 아니라, 생산 계열 각성자가 하는 일이니까.
“난 저기에 합류해야겠어. 더 강해지고 싶으니까.”
뒤치기를 당했던 경험을 말했던 창을 든 남자 각성자는 생산 계열로 각성한 이들이 성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빤히 보다가 성벽을 내려갔다.
그렇게 전장에 합류한 남자는 금방 관심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그런데 여기 영주 님? 이요한 님? 그분도 싸움 잘해?”
이야기의 주제는 유토피아의 주인인 이요한에게로 옮겨갔다.
“이요한 영주 님이 아까 마력을 일으켜서 성벽에서 내려올 때 못 봤음?”
“응? 왜? 뭐 특별한 게 있었어?”
“영주 님 주변에 무려 ‘녹색’ 아지랑이가 일렁거렸어.”
쓸데없는 것처럼 보이는 대화에 어느새 주변 사람들이 집중한다. ‘녹색’ 아지랑이. 그것은 마력이 녹색이라는 뜻이고,
“그린(Green) 랭크라고?! 나 이제 레드(Red) 90대인데?”
“우리 쉘터에서 제일 쎈 사람이 오렌지(Orange)였어!”
“옐로(Yellow)라고 해도 기겁할 판인데. 그린(Green)?! 녹색이라고!”
그건 그의 랭크가 지금까지 여기 모인 각성자는 감시 상상도 해보지 못한 수준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요한의 영지에서야 그린스킨이 알아서 처들어 오기도 했고, 초반에 쉽게 카르마 포인트를 수급할 수 있었지만, 다른 쉘터들은 그게 아니다.
레드 랭크 1인 신체 스탯을 모두 옐로 1로 올리는데 들어가는 카르마 포인트는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로 10만이다.
특수 스탯도 하나씩 가지고 있을 테니, 그것까지 계산하면 또 10만이 필요하다. 플러스 혹은 마이너스 카르마가.
그러니 이곳까지 피신한 사람들 태반이 오렌지 랭크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수준인 게 어쩌면 당연할 거다.
그런데 이요한은 무려 그린 랭크.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카르마 포인트를 생각하면 기겁하는 반응이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진다.
전투 계열 각성자들만 따져도 벌써 1만 5천에 그들을 이끄는 영주는 벌써 그린 랭크 각성자.
“그럼……. 지구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닌 거네?”
이것들을 모두 떠올린 누군가 그렇게 중얼거렸을 때 주변에서 그 말을 들은 이들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나저나 영주 님은 언제 오시지? 어머니 각성해드리고 싶은데. 허락 안 하시려나?’
‘우리 딸. 이참에 각성시킬 수 있으면 했음 좋겠는데.’
‘각성하면 몸도 낫는다고 했지? 그렇다면 집사람의 유전병도?’
아직 각성하지 못한 사람을 가족으로 두고 있는 이들의 눈이 반짝거렸을 때,
[빛이여―!]
끝없이 떨어지는 좀비를 실은 운석들 때문에 먹구름이 낀 것처럼 어둡던 땅과 하늘을 환하게 밝히는 빛이 강림했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