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참 믿고 있었네. 믿고 있었어.>
『좋아요! 지금 시체랑 악마 나오는 타이밍이죠? 그렇다면 역시 저는 역시 이 사람, 성녀를 추천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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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방랑자 정보>
1. 이름(Name): 소피아 로렌(Sophia Loren)
2. 종족(Tribe): 인간(Human)
3. 소속(Clan): None
4. 직업(Class): 성녀(Saintess)
5. 신체(Status)
B등급
[근력 99] [민첩 99] [체력 99] [내구 99] [마력 99]
[신성 99]
<고유 능력>
1. 기적 [Rank: 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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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방랑자 정보 중, 두 개를 뒤로 물리고 하나의 상태창을 앞으로 내밀며 자신이 추천하는 이를 강조한다. 성소를 관장하는 시스템의 추천에 난,
“좋아. 그녀로 하지.”
고민하지 않고 바로 수락했다.
『인간 소피아 로렌으로 선택하시겠습니까?』
“그래.”
『정말…요? 이거 결정함 못 무르는 건 아시잖아요?』
“추천을 대충 했어?”
『아니요! 절대 아니에요!』
“그런데 뭘 그렇게 놀라? 더욱이 난 성소 유경험자야. 엘라라는 훌륭하고 뛰어난 선례가 있잖아. 내가 망설일 이유가 없지.”
『행…복하네요. 이런 영주님이라니! 좋아요! 빠르게 진행할게요!』
『성스러운 성녀, 빛의 구원자, 인간족의 희망, 인간 소피아 로렌을 소환합니다.』
우웅―. 우웅―.
시스템의 목소리에 맞춰 빼곡히 음각된 문양과 동심원들이 선명한 빛을 내뿜고 농밀하고 진한 마력이 모여들었다.
『소피아 로렌을 가신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입니다. 약간의 충격에 주의하십시오.』
전에 엘리아나 때와 마찬가지로 순백의 빛으로 물든 시야가 다시 밝아졌을 때, 눈에 들어온 세상은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다른 세상이었다.
* * *
거대한 성벽. 단순히 성을 감싸는 성벽이 아니라, 자연의 하나인 절벽과 협곡과 함께 지어진 거대하고 긴 성벽은 요새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성벽 위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인간의 숫자는 거대하고 긴 성벽에 비하면 너무 적었다. 200명에 못 미치는 숫자였으니까.
“성녀님.”
“대장군님. 마지막 전투가 코앞인데 그 성녀라는 호칭은 넣어두고 편하게 불러줄래요? 어릴 때처럼?”
“그래. 좋아. 소피.”
“제니퍼.”
성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여인은 금빛 갑옷 여기저기 묻은 피와 대조적으로 찰랑이는 은빛 머리카락이 날개 뼈가 있는 곳까지 내려오는 범상치 않아 보이는 여성이었다.
“세상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연애나 할 걸 그랬어. 제니퍼.”
“호호호. 성녀의 연애 상대라. 누가 될지 정말 궁금하네. 너 은근히 깨잖아.”
“어머. 남자들은 그런 여자를 좋아한다고 했다고. 고귀한 외모와 덤벙거리는 행동의 갭에서 오는 매력이라나 뭐라고 했는데? 앤이 그랬어.”
“앤의 말을 믿다니. 어리석어. 여기 있는 사람 중, 연애소설을 가장 열심히 탐독한 게 앤이라고. 그 말은 곧 연애를 책으로 배웠다는 거지.”
두 여인이 나누던 잡담에 주변에 긴장한 채로 있던 이들이 끼어들었다. 그들은 성벽 아래에 바글바글한 검은 괴물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신변잡기의 것을 주제로 대화를 이어갔다.
“제니퍼.”
“소피. 미리 사과할게.”
“응? 무슨 말이야?”
그 순간 성녀인 소피아 로렌을 향해 제니퍼의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잔상만 남기고 휘둘러진다. 영화나 만화에서만 봤던 손날치기에 의한 기절.
그것이 이뤄지기 무섭게 옆에 대기하고 있던 여자, 가벼운 경장을 입은 날렵한 여인이 소피아를 들어 빠르게 성벽을 내려갔다. 붉은 머리의 여인이 날렵하게 발을 놀려 순식간에 도착한 곳은 요새 중앙에 있는 지하.
원래부터 그런 용도였는지 모르겠지만, 반듯한 대리석 선반에 기절한 성녀를 올려놓은 여인은,
“소피. 그동안 너무 고생했어.”
난리가 난 와중에도 여전히 빛이 나는 풍성한 금발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마지막까지 너를 혼자 둬서 미안해. 하지만 우리는 너의 희생으로 시간을 벌고 싶지 않아. 다음 생에 만나면 내가 꼭 너와 어울리는 남자를 찾아줄게. 약속해. 사랑해. 내 친구.”
그리고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 지하를 나갔다. 빨간 머리의 그녀가 지하를 벗어나기 무섭게 기관이 작동하며 지하로 향하는 입구가 무너져내렸다.
“빌어먹을 종자들을 쓸어버려!!”
“우리는 인류 최후의 존재들이다! 한 명당 괴물 천 마리씩 죽이고 죽어! 그전엔 죽을 생각도 하지 마! 죽으면 다시 살려서 죽인다!!”
“성녀에게 영광을! 우릴 버린 신에게 저주를!!”
“쓸어버려!!”
200명이 채 안 되는 인간의 비명과 같은 외침은 깊은 절벽 아래에서 꾸역꾸역 성벽을 타고 올라오는 검은 물결과 같은 것들의 괴성에 파묻혀 공허하게 흩어졌다.
단순히 제삼자의 입장에서 지켜보는 것도 역하고 힘든 전투가 쉬지 않고 한동안 이어진다. 그리고 처음으로 검고 썩은 물 같은 괴물에게 잡힌 사람이 나오기 직전,
우우우웅―!
붉은 여인이 나오고 무너진 돌벽에서 빛의 기둥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소피?”
“성녀님?”
그 성스럽고 찬연하며 어딘가 시리고 푸른빛마저 도는 빛의 기둥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순간 전장은 시간 정지 마법이 발현된 것처럼 모든 것이 멈췄다.
그그그긍―!
무너진 돌덩어리가 흔들리며 드러난 입구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성녀의 두 눈엔 투명한 눈물이 아니라, 우유를 떠오르게 할 정도의 순백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 왜.”
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을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애틋하고 애절하게 던지면서,
“왜 우리를 버렸습니까!”
그녀는 정말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몸과 마음을 다해서.
“이제. 내가 당신들을 버리겠다.”
그녀의 결말은 엘리아나 때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엘리아나와 세계수는 성녀와 성녀가 담당하는 신처럼 초월적인 존재와 긴밀한 관계라는 건 비슷하지만, 엘리아나는 그녀의 신인 세계수에게 사랑을 받았고 성녀는 그녀의 신에게 버림을 받았다.
“빛이여!!”
찬연한 빛이 요새 안쪽에 있는 인간을 모두 감싸는 순간 세상에서 성녀와 인간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부디. 우리를 구원하소서. ‘인간족’의 등불이시여.]
이전 엘리아나 때처럼 영화가 끝난 것처럼 멈춰버린 장면에서 아련하게 들려오는 목소리.
* * *
스팟―!
멈춰버린 세상은 다시 빛이 되었고 새하얗던 시야는 전환되어 녹색 마력이 일렁이는 성소 안에 있었다. 그리고,
“아? 아?! 아!”
내 앞에는 갑자기 변환 환경에 이해하지 못하다가 순차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이해한 여인이 나타났다.
“아, 아아!”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곧장 나를 올려다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더니,
“나의, 그리고 인간족의 신을 배알하나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하며 내 앞에 오체투지를 하며 경건하게 절을 올린다.
‘야. 이거 그림이 이상하지 않아?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내가 눈빛으로 그런 생각을 담아 성소의 천장을 쏘아 보기 무섭게,
“잘못된 게 없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옳습니다.”
마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바닥에 대고 있던 이마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며 단호하게 말한다.
“…소피아 로렌?”
“예. 나의 신이시여.”
“아니. 그건 좀 위험한 것 같아. 신성모독 같은 느낌이라고. 내가 아무리 종교쟁이를 싫어해도 그건 좀 그래. 영주 님으로 하자.”
“주께서 명하시면. 기꺼이.”
어이. 그것도 좀 위험하다고. 주(主)라는 한자는 주인이라는 뜻인데, 그 뒤에 ‘님’자를 붙여서 유독 자신들만의 것인 양 들고 일어날 세력이 있어.
“가자. 천천히 영지 구경이라도 시켜주고 싶은데, 오늘은 날이 아니네. 밖에 좀비가 드글드글하거든.”
“좀비…요? 그 하급 언데드인 좀비 말씀하시는 거죠?”
“응.”
“그게 왜요?”
“응?”
“네?”
어쩐지 나와 소피아 사이에는 뭔가 커다란 문화 차이나 오해 같은 게 있는 것 같았다.
“좀비는 그냥 죽는 거잖아요.”
“그렇긴 하지.”
“그게 왜 방해가 되는 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영주님.”
“많아서?”
“신성력 앞에 좀비라는 하급 언데드의 숫자는 무의미합니다?”
나와 소피아의 대화는 어딘가 좀 바보스러웠다. 끝이 의문형으로 올라가는 것도 그랬고.
“제가 설명해도 될까요? 주인님?”
“어. 그래. 엘라.”
“어? 엘프?! 그것도 하이엘프? 그런데 주인님?! 이, 인간에게 엘프가! 그것도 하이엘프가 주인님?! 오! 영주님이시여! 당신은 도대체!!”
엘리아나가 나서는 순간 그녀를 보고 여러 방면에서 놀라며 마치 광신도처럼 두 손을 들고 감탄하던 소피아가 무언가를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이 나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보더니,
“혹시 영주 님은 귀축? 그래서 저도 막?! 묶어놓고?! 귀갑묶기?!”
“응. 아니야.”
“그, 그쵸?! 저는 미, 믿고 있었다고요!”
“그래. 참 믿고 있었네. 믿고 있었어.”
실없는 소릴 해댄다. 성녀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신성력을 다루면 다 저렇게 되는 건가? 유다연도 랭크가 오를수록 저러던데. 혹시……?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