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선배님? 후배님?>
엘리아나는 소피아에게 현재 영지 상황과 지구 전역에서 발생하는 침공에 대해 설명했다. 상당 부분 생략됐으나, 요점을 놓치지 않은 정확한 설명이었다.
“그러니까 이곳에도 빌어먹을 것들이 침공해온다는 거죠? 그린스킨은 이미 물리쳤고요? 그리고 영주 님은 영지민을 위해서 좀비를 더 깔끔하게 잡을 수 있는 엘리아나 선배를 두고 영지민에게만 온전히 맡기고 계시는 거고요?”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영주님. 영주님께서는 언데드에 대해서 큰 착각하고 계시는군요.”
성녀는 지금까지와 달리 단호한 얼굴과 냉정한 말투로 나를 직시하며 내 계획에 대해 지적했다.
“내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영지민의 카르마 포인트 회수는 엄청 중요한 문제야.”
“그걸 지적하는 게 아닙니다. 좀비는 사실 문제가 아닙니다. 살아 있는 좀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죠. 하지만 좀비가 죽으면서 남기는 것들이 문제예요.”
“좀비가 죽으면서 남기는 것들? 시체는 모두 지구에 흡수되지 않나? 어?”
그린스킨 때는 그랬다. 확신한다. 회귀 전 내가 직접 경험한 거였으니까. 문제는 좀비와 악마들에 대한 전투는 회귀 전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는 거다.
“언데드, 특히 최하급 언데드인 좀비는 차원이 전부 흡수하진 않아요. 그러니 좀비가 죽으면 남은 찌꺼기가 생겨요. 차원조차 흡수하지 않는 악독한.”
“그게 뭐지? 시독 같은 거 말하는 건가?”
“시독(屍毒), 사기(死氣) 이런 것도 문제입니다만.”
“입니다만?”
“그것보다 좀비나 언데드의 사체가 제대로 정화되지 않으면 언데드가 자연 발생하는 데스 스팟이 돼요. 그리고 거기서 더 심해지면 데스 필드가 활성화 됩니다. 산자는 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 중독된 것처럼 시들어가는 땅이죠.”
“내 영지에 들어오는 공기는 정화되는데?”
“맞아요. 저도 그렇게 들었어요. 세계수도 있다면서요? 그렇지만 그렇게 방치하면 우리는 포위되는 거예요. 영지를 감싼 데스 필드에 말이에요.”
소피아의 비유에 영지를 감싼 검고 불길한 땅이 떠오른다. 그것도 잘못해서 영지 밖으로 나가면 시독에 중독되는 검은 죽음의 땅.
“흠. 더럽네.”
“본래라면 저도 이런 걱정하지 않았을 거예요. 적당히 좀비를 잡고 태우면 되니까요. 그런데 지금 제가 이해를 제대로 했다면 14일은 이 난리가 지속된다는 거잖아요?”
“그렇지? 아, 좀비 찌꺼기를 태울 시간이 없구나.”
“네. 하루에 몇 차례, 주기적으로 파사의 힘으로 찌꺼기를 정화해야 해요. 여기서 파사의 힘이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상급 이상의 정령력, 그리고 화염과 뇌전 속성 마력, 마지막으로 신성력.”
확실히 그건 일리가 있는 내용이었다.
“제가 나서도 될까요? 영주 님?”
“그러자. 나가면서.”
성소를 나선 소피아는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세, 세상에! 맑은 공기! 아름다운 풍경?! 아니, 잠깐만요. 지금 밖에 좀비가 가득하다면서요? 그런데 다들 너무 평화로운 분위기 아니에요? 긴장하는 사람이 없네요?”
“그린스킨 때랑은 또 다르니까. 그린스킨에서는 권능을 쓰는 놈도 나온 적 있는데 뭐.”
“권능이요? 그럼 황제 혈족이라는 건데?! 그런 놈을 잡으셨어요? 어떻게요?”
“아, 엄밀히 따지면 내가 직접 잡은 건 아니지. 여기 엘라랑 엘븐나이츠가 잡았지. 우리 애들도 죽다가 살아났고. 난 그냥 뒤에 서 있기만 했지. 잔뜩 쫄아가지고.”
놀라는 소피아에게 당시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말해주는데,
“아닙니다.”
엘라가 바로 반박하고 나섰다. 단호박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라는 듯이.
“주인님께서 다 하셨습니다. 저와 엘븐나이츠는 모두 주인님의 힘에 의해 소환되었고, 일촉즉발의 위기의 순간 제일 앞에 서서 놈을 상대하셨으며, 기사단 200기를 소환해서 시간을 벌어주지 않으셨으면 패배했습니다. 우리.”
패배할 수도 있었다가 아니라, 패배했다는 단정에 소피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이 영지. 엄청나요. 침공이 시작되고 이런 영지가 있다는 건 보지도 듣지도 못 했어요. 이 안정감과 청명한 공기 그리고 물도 깨끗하고 땅도 조금도 오염되지 않았네요? 오염은커녕 오히려 지력이 넘치고 있어요! 원숭이가 농사를 지어도 풍년이 들 정도로요!”
“맞습니다. 후배님.”
“무엇보다 영지에 세계수가 있어서 더러운 기운은 근처도 오지 못하고, 성벽에는 저거 그린 랭크 마력이 흐르고 있네요? 대마도사가 있었다면 저걸로 대단위 마력 결계를 만들었을 거예요!”
“전부 옳은 말입니다. 후배님.”
“그런 영지를 만든 건 오로지 영주 님의 힘이겠죠? 차원의 틈에 갇혀 하염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며 괴로워하던 저희를 깨워주신 것도 영주 님이시고.”
“그것도 맞아요.”
“그럼 모두 영주 님 덕분이네요.”
“그렇습니다. 매우 그렇습니다.”
엘리아나와 소피아는 둘이 절정의 티키타카를 보이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는 사이에 내성에 있는 세계수 앞에 도달했다.
“영주 님.”
“여기서 할 거야?”
“네. 시작하겠습니다. 아, 그전에 선배님.”
“네. 후배님.”
선배님? 후배님?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계속 쏙닥거리더니 어느새 호칭이 선배님과 후배님으로 정해졌다. 신기하네. 솔직히 약간의 기싸움 같은 게 있을 줄 알았는데.
“혹시 물의 정령 소환해주실 수 있으세요?”
“물이요? 불이 아니라?”
“네. 제 정화는 불보다 물이 더 캐미가 좋거든요.”
“그럴게요. 엘라스트라.”
[나를 불렀니? 엘리아나?]
“어머. 최상급 정령! 역시 하이 엘프! 좋아요! 진짜 시작할게요!”
거기까지 말하고 눈을 감은 소피아의 주변으로 눈에 보일 정도로 순백의 아니, 우윳빛의 마력이 흘러나왔다. 보통 마력을 사용하면 해당 랭크에 달하는 마력의 색이 발현된다. 레드 랭크면 빨간색, 그린 랭크면 녹색으로.
하지만 성녀라는 클래스를 가진 소피아는 블루 랭크의 강자임에도 오히려 마력 색이 진한 우윳빛 색을 띠고 있었다.
“푸르가티오(Purgátĭo).”
진득한 신성력이 담겨 있는 소피아의 읊조림이 무슨 뜻인지 의문을 가지기도 전에,
[빛이여!]
부아아앙―.
마치 영주 전용 채널로 영지에 전달하는 것처럼, 머릿속에 울리는 선명한 외침과 함께 엄청난 농도의 신성력이 나와 엘라를 스치고 영지 전체로 퍼져나갔다.
『성녀의 고위 주문 「대(大) 정화」가 발현됐습니다.』
『영지에 머물던 물의 정령‘들’이 성녀의 주문에 호응합니다.』
『세계수가 성녀의 주문에 적극적으로 호응합니다.』
동시에 영지 관리 메시지가 경쟁하듯이 출력됐다.
『고위 주문 「대(大) 정화」의 영향으로 7일 동안 영지 안에서 면역력이 상승하고, 치료 효과가 증대되며, 마력 회복률이 상승합니다.』
거기서 그친 게 아니다. 영지 성벽을 넘어서 우윳빛 신성력은 점점 그 크기를 키워나가서 좀비들의 시체가 가득한 땅을 지나 각성자들이 전투하고 있는 전선에 도달했다.
그리고 신성력의 고리에 닿은 좀비 시체 찌꺼기는,
푸스스―.
잔뜩 쌓인 먼지에 바람이 닿은 것처럼 한 줌의 먼지가 돼서 가라앉았다.
단순히 좀비 시체 찌꺼기뿐만 아니라,
“어라?”
“오잉?”
…
좀비를 때려잡던 각성자들이 어리둥절할 정도로 좀비 역시 녹아내렸다.
가장 놀란 건 가장 선두에서 좀비를 때려잡던 각성자들이다. 그것도 근접 계열 각성자들. 하지만 그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잠시 멈칫했던 신성력의 고리는 재차 범위를 넓혀가며 빠르게 커졌다.
마치 수만의 좀비가 내뿜는 사기나 악기 같은 것들과 잠시 힘겨루기를 하는 것 같더니 이내 더 맹렬히 좀비들을 덮쳤다. 신성력의 고리가 훑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고온의 화장터에서 태운 순백의 뼛조각을 연상케 할 정도로 한 줌도 되지 않는 하얀 먼지가 전부였다.
순백의 고리가 점점 그 크기를 키우며 멀리, 더 멀리 뻗어나가면서 새하얀 가루가 마치 눈꽃처럼 휘날렸다.
“이게 뭐야?”
“아 포인트 달달했는데!”
“그래도 좀 쉬어야 할 타이밍이었어. 마력도 간당간당했다고.”
그 광경을 성벽 위에 올라서 엘라와 소피아와 함께 보는데 장관이었다.
[누가 긴장을 풀라고 했지? 하늘을 봐라.]
멀어지는 신성력을 보면서 긴장을 풀고 잡담을 나누던 이들에게 영주 전용 메시지로 경고를 날려줬다. 왜냐하면 하늘에서는 태양을 가리는 먹구름처럼 셀 수 없는 운석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으니까. 당연히 저건 진짜 운석이 아니라 좀비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는 거고.
“전투 준비!!”
“마력 잔량 체크 해! 멍청하게 달려들었다가 뒈지지 말고!”
“너! 마력 부족하면 물러나! 욕심부리다가 죽으면 무슨 소용이야!”
“아가야. 이리 와. 간단하게라도 씻자. 너 몰골이 그게 뭐야?!”
…
머리 위에서 수백, 수천 개의 운석이 떨어져 내리고 있음을 확인한 각성자들은 금방 분위기를 다잡았다. 물론 중간중간 어린 각성자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고.
“조심 좀 해라. 방심하다 죽지 말고. 좀.”
다시 진행중인 전투를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영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영지를 업그레이드 해야겠는데.”
[드디어 제가 필요한 순간입니까? 마스터?]
맞다. 이제부터는 카르마 포인트를 본격적으로 쓸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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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領地) [Rank: G]
1. 성벽(Rampart) [Rank: G(▲1)]
2. 성문(Gate) [Rank: Y]
3. 병영(Barracks) [Rank: Y]
4. 성소(Sanctum) [Rank: G(▲1)]5. 내성(Donjon) [Rank: Y]
6. 창고(Depot) [Rank: Y]
7. 농장(Plantation) [Rank: Y]
8. 행정청(Intendance) [Rank: Y]
9. 망루(Watchtower) [Rank: Y]
10. 광산(Mine) [Rank: Y]
11. 항만(Port) [Rank: Y]
12. 마구간(Stable) [Rank: Y]
13. 대장간(Smithy) [Rank: Y]
14. 도서관(Library) [Rank: Y]
15. 기사단 숙소(Commandery) [Rank: Y(▲3)]
16. 연구소(Institute) [Rank: -]
17. 치료소(Dressing Station) [Rank: Y(▲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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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능력 [영지 관리]를 켜자마자 현재 영지 내에 있는 주요 건물과 영지 전체가 축소된 녹색 홀로그램이 나타난다.
성벽은 방금 업그레이드를 마쳐서 영지 랭크와 같은 그린 랭크.
성소는 원래 영지와 랭크가 동기화 되니까 그린 랭크.
“그렇다면 어디 보자. 가장 먼저 그래.”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 250,000 포인트를 소비하여 [연구소]를 건설하시겠습니까?』
와. 화이트 랭크의 건물, 그것도 영지에 건물을 구현하는 최초 단계에 25만 카르마 포인트! 입이 떡 벌어진다. 진짜.
“진행시켜.”
그래도 뒤로 미룰 수도 없으니 진행하는 수밖에 없다.
『영지 건물 [연구소[Rank: White]]를 건설하기까지 1,499시간 59분 59초가 남았습니다.』
『가신(家臣) 두 명이 존재합니다. 영지 건물 건설 시간이 10% 단축됩니다.』
『장인이 고용된 옐로(Yellow) 랭크의 대장간이 존재합니다. 영지 건물 건설 시간이 8% 단축됩니다.』
『옐로(Yellow) 랭크의 행정청이 존재합니다. 영지 건물 건설 시간이 10% 단축됩니다.』
『옐로(Yellow) 랭크의 내성이 존재합니다. 영지 건물 건설 시간이 5% 단축됩니다.』
『총 건설 시간이 33% 단축됩니다.』
“호오?”
다행스럽게도 소피아를 소환한 것으로 가신이 한 명 추가된 효과가 생겼다. 기존에 메시지에는 ‘가신이 한 명 존재합니다.’로 시작하는데 반해 이번에는 가신이 두 명 존재한다고 나왔다.
가신이 두 명. 즉, 소피아를 소환함으로 건설 시간이 5% 더 단축되는 효과가 생겼다. 좋냐고? 엄청 좋지. 완전 개이득이지.
『1,004시간 59분 55초가 남았습니다.』
『카르마 포인트 167,500 포인트를 소비하여 건설대기 시간을 무시하고 즉시 건설 완료할 수 있습니다.』
“즉시 건설.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로.”
[기사단 숙소]와 [치료소]에 이어 그린 랭크에 해금된 영지 건물 [연구소]가 건설되는 순간이었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