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흐느끼는 짐승. 우는 악마.>
전달 사항을 전해 들은 영지민 중, 행정청 직원의 기준을 통과한 이들이 북쪽 성문을 나선다. 그 무리 중 가장 먼저 성벽을 나선 건 유전병이 있다는 아내를 각성시키기 위해 부탁했던 젊은 남자와 그의 아내였다.
근육질의 몸매의 남자와 다르게 아내는 확실히 연약해 보였다. 창백한 피부와 푸석푸석한 머리카락, 그리고 제대로 걷기도 힘들어 보이는 걸음걸이.
“걱정하지 마. 당신은 언제나처럼 나만 믿어. 내가 누구야!”
“우리 서방 대단한 건 알지. 그래도 여보. 무리하지 않기로 했잖아요.”
“무리하는 거 아니래도? 나 누군지 몰라? 독고야. 독고.”
“피이―. 독고는 무슨. 언제적 독고야? 자기 고딩 때니까 벌써 10년도 전이네. 그때는 매일 싸움만 하는 당신이랑 결혼하게 될 줄 몰랐는데. 이제 자기의 ‘독고’는 그냥 자기 성씨일 뿐이잖아?”
부부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나서는 그들은 비각성자를 보호하며 천천히 전투가 벌어지는 곳을 향해 걸으며 추억을 회상하는 것으로 공포를 이겨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툭―.
그들 앞에 무언가가 떨어졌다. 그건 사지가 잘린 좀비였다.
“좀비!”
앞에 서 있던 각성자가 자신도 모르게 손에 쥐고 있던 어설프게 만든 창을 내지를 뻔했다.
“이거 설마?”
그제야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 풀리면서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보였다. 자신의 가족뿐만 아니라 성벽을 나온 다른 일행의 앞에 떨어지는 좀비들이.
“영주님?”
남편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확인하고서야 이 좀비가 자신 아니, 아내를 위한 것이라는 걸 확신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언제 올라왔는 북쪽 성벽에 오연하게 서서 전장을 내려다보는 영주인 이요한이 거기 있었다.
“자기?”
아내의 부름에 비로소 정신을 차린 남편이 아내를 대신해서 들고 왔던 석궁을 아내의 손에 쥐여줬다.
“할 수 있지?”
“어머? 서방은 내가 누군지 몰라? 나 독고 아내야.”
조금 전 남편을 타박했던 것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자신감을 보이는 여인의 미소는 참 힘이 없으면서도 힘이 있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팔로도 당차게 말하는 아내를 보면서 근육질의 거인 같은 남자의 눈에는 눈물이 흘렀다.
텅―. 텅―!
거의 총에 비견될 정도로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발사된 두 발의 석궁 볼트.
비록 바들바들 떨리는 팔이었지만, 인간이 만든 도구는 사지가 잘려 버둥대는 좀비를 죽이는데 딱 그 두 발이면 충분했다.
두 발의 석궁 볼트가 좀비의 생명을 끊어놓기 무섭게,
“여보!”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안절부절못하던 남자의 아내는 석궁을 쥔 그대로 쓰러졌다. 당연히 바로 옆에 붙어 있던 남편이 아내를 잘 받아서 바닥에 조심히 눕혔지만,
“여보……. 으으.”
각성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남자는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한 것처럼 보였다.
비각성자가 기절하는 건 각성하는 과정의 필요조건이다. 몸이 마력을 받아들이면서 오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기절한다.
그러나 남자는 그걸 알면서도 종종 쓰러지던 아내를 떠올리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나가던 여자가,
“아저씨. 괜찮아요. 각성하는 거예요.”
라고 말해주자,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아아. 다, 다행.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아뇨! 제가 한 게 아닌데요. 뭐. 감사는 우리 요한 오빠에게!”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 만약을 위한 조치로 치료 주문을 쓰러진 아내에게 부여하고 다시 좀비가 득실대는 전선으로 향했다.
“진짜……. 진짜 됐어.”
불안함에 그렁그렁 맺혔던 눈물이 기어이 투박하고 거친 남자의 얼굴을 타고 흐른다. 그동안 연약한 아내가 겪었던 피난 생활의 힘겨움과 괴물이 아니라 병으로 아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사라지면서 뒤죽박죽 섞인 여러 감정이 눈물로 나오는 것처럼.
거악 같은 남자의 눈에서 한두 방을 흘러나오던 눈물은 기어이 폭포수가 되었고, 바위와 같은 남자의 목에서는 꺼이꺼이 우는 소리가 흘러나오게 했다.
“서…방. 왜 울어?”
“으어어어!! 으어어어엉!”
아내가 각성을 마치고 정신을 차린 후에도, 남자는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 * *
‘미친. 저 미친놈이 왜 여기 있어?’
처음에 아내를 위해서 내게 다가왔던 남자, 어딘가 익숙했던 외형에 잠시 궁금증이 떠올랐으나 무시하고 넘어갔던 남자에게 호기심이 생겨 성벽에 올랐다. 그리고 남자의 짐승 같은 울음을 듣는 순간 비로소 어긋났던 퍼즐이 완성되는 것처럼 남자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흐느끼는 짐승. 우는 악마. 독고서인.
회귀 전, 내가 죽는 순간까지도 살아 있던 회색분자. 약탈자가 아님에도 인간을 죽이고, 쉘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오래도록 생존했고, 인간을 죽이고 다녔음에도 눈에 보이는 그린스킨과 악마를 산채로 찢어발긴 괴물.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최선인, 움직이는 재앙과 같은 존재.
항상 슬퍼하고 애통해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짐승 같은 남자.
그게 바로 우는 악마라고 불린 이유이며, 동시에 흐느끼는 짐승이라는 이명으로도 불린 이유였다.
‘그런데 그 독고서인이 저놈이라고? 완전 다른데? 하나부터 열까지?’
무엇보다 클래스가 다르다. 이전 독고서인의 클래스는 로열 버서커, 지금 독고서인의 클래스는 평범한 노멀 클래스인 워리어.
이러니 모르지. 젠장.
애초에 가이아 게시판에 나온 독고서인의 모습은 봉두난발에 붉게 달아오른 눈동자였다. 한마디로 미친놈이었다고. 게다가 살기를 줄줄이 흘리고 다니는 방사능 같은 놈이었지, 방금처럼 우물쭈물하며 눈치를 보는 놈이 아니었다고.
성벽을 향해 걸어오는 독고서인 부부가 보인다.
성문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성벽 앞으로 다가온 독고서인이 허리를 숙인다. 걸어 다니는 재앙이라 불리던 남자가 한참을 허리를 숙이고 또 울고 있다.
독고서인의 클래스는 아까 확인한 대로 워리어.
옆에 있는 아내는,
‘호오? 요리사?’
농부 만큼이나 중요한 생산 계열 클래스인 요리사다.
“뭐하나?”
그 모습에 나오는 말이 자연스레 뾰족해진다. 왠지 모르게 회귀 전 보았던 그 독고서인과 다른 게 다행이면서도 어딘가 심통이 난다고 할까?
“예?”
“각성하면 끝이야? 강해져야 아내를 지킬 거 아냐? 그리고 네 와이프는 각성만 하면 돼? 카르마 포인트를 획득해야 각성한 클래스를 다룰 거 아냐! 네 와이프 클래스가 뭐야?”
내가 성격이 나쁘다고? 그걸 이제 알았나? 멸망을 맞이한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간인데 성격이 좋을 리가 없잖아?
“예?!”
“뭘 또 예, 예 거리고 있어. 당장 안 튀어가?! 카르마 포인트를 벌어야 할 거 아냐!!”
“가, 갑니다!!”
“야!”
저 미친놈이.
“엑?!”
아내의 손을 잡고 뒤돌아서 무턱대고 전선으로 뛰려는 놈을 급히 불러세웠다.
“네 아내는 전투 계열이 아니잖아?! 어딜 데려가려는 거야? 이 미친놈아!!”
그의 아내, 서다혜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자의 클래스인 요리사는 당연히 전투 계열 각성자가 아니다. 요리사는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클래스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보호 받아야 하고.
“아!? 에엑?!”
저 멍청한 근육 덩어리가 제 아내가 뭐로 각성한 지도 몰랐는지 자기 손을 잡은 아내와 나를 번갈아 보다가 놀라서 황급히 손을 놓는다.
“서방님~. 소첩이 항상 그랬잖아요~. 당황하면 뇌가 아니라 근육의 명령을 듣는 버릇부터 고치라고!”
“어? 어어.”
“어휴. 이 덩치만 큰 곰돌이 같으니라고.”
“미안해. 여보.”
“알았어. 대신 다치지 말고 돌아와야 해. 알았지?”
독고서인을 저렇게 다룰 수 있는 여자가 있다니. 아마 회귀 전에 이 영상을 보여줬으면 환상 마법 따위로 개수작 부리지 말라는 댓글이 우르르 달렸을 거다.
그리고 독고서인의 아내인 서다혜가 성벽 위의 나를 보고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는 뽀르르 종종걸음으로 걸어 북문을 지나 성벽 위로 올라왔다.
“영주님!”
“네?”
독고서인을 무슨 개냥이 다루듯이 다뤄서일까? 아니면 너무 자연스럽게 내 인지 범위 안으로 들어와서일까? 나도 모르게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세요? 제가 원래도 손맛이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요. 이번에 요리사로 각성했지 뭐예요?! 다 해드릴게요! 한식, 양식은 다 돼요. 그리고 일식도 어느 정도 할 줄 알아요. 중식은 자장, 짬뽕 그리고 탕수육 정도밖에 못하지만요. 뭐 드시고 싶으세요?”
“국밥?”
“어머! 우리 영주 님도 국밥충이시구나~. 그럼 소고기가 많은 것 같으니까, 이따 배달해드릴게요~.”
세상에 국밥‘충’이라니.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다니. 멸망 전이라고 해도 실례가 된다고 생각할 법한 단어를 이 시기에 나한테? 진짜 간덩이가 붓다 못해, 간이 나이고 내가 간인 물아일체의 경지가 아니고서야.
“국밥충이 뭔가요? 주인님?”
엘라의 질문에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엘븐나이츠들도 궁금하다는 듯이 눈을 빛내며 묻는데 거기다 대고,
‘국밥만 좋아하는 사람을 조금 비아냥거리면서 말하는 거야.’
라고 하면 당장 활시위를 당길 걸?
대충 둘러대고 전투가 벌어지는 전선으로 시선을 돌렸다.
독고서인을 호통을 쳐서 전선으로 보내고, 서다혜는 영지 안쪽으로 사라지는 동안 나도 마냥 멍을 때리고 있지 않았다.
어차피 카르마 포인트가 쌓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판이기에,
“네. 잘하고 계셔요. 주인님. 무조건 마력을 많이 부여한다고 좋은 게 아니에요. 그리고 정령에게 명령하세요. 화살에 깃들라고.”
엘라에게 충성 스탯 MAX의 가신 효과인 사사(師事)를 통해 정령 궁술을 배우기로 했다.
“명령? 원래 엘프는 정령을 친구처럼 여긴다고 하지 않아?”
“맞아요.”
“그런데 왜 명령을? 그러다가 정령들이 나를 싫어하는 거 아냐?”
“정령은 제 친구죠.”
“맞지.”
“주인님은 제 주인님이시고요.”
“그것도 맞지?”
“그럼 제 친구인 정령의 주인님이시기도 하니까. 명령하셔도 돼요.”
기적의 삼단논법이다. 이야. 내가 그걸 몰랐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