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충성 MAX를 성벽 위에서 새참 같은 국밥을 먹는 사람을 보다가 찍는다고?!>
“정령은 제 친구죠.”
“맞지.”
“주인님은 제 주인님이시고요.”
“그것도 맞지?”
“그럼 제 친구인 정령의 주인님이시기도 하니까. 명령하셔도 돼요.”
기적의 삼단논법이다. 이야. 내가 그걸 몰랐네?
“그…래?”
“네!”
고개를 맹렬하게 끄덕이면서 긍정하는 엘리아나에게 차마 그거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푸웁!”
“큭!”
“킥!”
…
옆에서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리는 엘븐나이츠의 엘프들을 애써 무시하면서 교육을 이어갔다. 무엇보다 엘라의 말대로 불과 바람의 정령에게 화살에 모이라고 지시하자,
“좋아요! 지금이에요!”
엘라가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외쳤다. 그에 한껏 당긴 시위를 잡고 있던 손을 놓자,
콰아아앙―!! 화―르르르르!!
멀리 좀비 떼 후미에 화염 폭풍이 몰아쳐 백여 마리의 좀비가 재가 되었고, 그 여파로 몸에 불이 붙은 좀비가 수백 마리다.
모이라는 의지만 일으켜도 정령력이 화살에 모이고, 그렇게 쏘아진 화살은 화염 폭풍을 일으켜 좀비 백여 마리를 한 줌의 재로 만들었다?
‘생각보다 엘라의 저 억지스러우면서 어딘가 이상한 가르침의 효과가 괜찮다는 건가?’
“오?!”
가장 먼저 그 장면을 만든 내가 놀라고,
“역시!”
엘라가 당연하다는 듯이 뿌듯해 하고,
“…영주 님 생각보다 재능 있으시네요?”
청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흐뭇하게 지켜보던 소피아가 감탄할 정도로 효과적이었다.
“뭐야, 뭐야? 방금 저거 영주 님이 쏘신 거?”
“우리 영주 님, 좀 치시네.”
“활 다루신 지 아직 1년도 안 된 거 아니야? 너 보다 나으신데?”
…
키득거리며 지켜보던 엘븐나이츠도 감탄할 정도로.
“아.”
내게 콩깍지가 쓰인 엘리아나가 아니라 엘븐나이츠가 그렇게 반응하는 걸 보고 깨달았다. 이게 바로 천재의 영역이라는 걸. 그렇다고 내가 천재라는 뜻은 아니다. 내가 활에 그 정도의 재능이 있었다면 진즉 양궁을 했겠지.
‘이게 그럼.’
이게 바로 영지와 가신 사이에 충성 스탯 100이 되면 주는 베네핏 사사(師事)의 효과라는 걸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흠. 이 정도면.”
이 정도라면 카르마 포인트를 무지막지하게 먹는 성소에 대한 불만이 조금은 깎아줘도 될 것 같다. 압도적인 강자를 부릴 수 있으면서 동시에 그들의 기술을 이렇게 쉽게 받아들 수 있으니까.
“나쁘지 않죠?”
“나쁘지 않다고?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정도가 아닌데?”
그 뒤로 고작 대여섯 번의 화살을 쐈을 때, 내 몸은 이미 활과 화살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추가로 스무 번 가량 좀비를 조질 무렵에는 적과의 거리에 대한 감각이 익숙해졌고, 백 발의 화살이 날아갔을 무렵에는 활 그리고 화살에 속성력을 담는 것과 공격에 대한 감각이 ‘숙달’ 됐다.
“역시 주인님은 대단하세요!”
“아니. 이건 내가 대단한 게 아니라, 네가 대단한 거야.”
“네?”
엘리아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할 무렵에,
“영주니임!”
존재 자체를 잊고 있던, 무려 영주에게 ‘국밥충’이라고 말한 마이웨이의 용자, 간과 몸이 하나가 된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른 존재이며, 울부짖는 짐승 독고서인을 댕댕이 다루듯이 다루는 서다혜가 성벽 위로 빠르게 올라왔다.
“자, 여기요.”
역시 각성자라는 걸까? 그녀는 양팔을 잔뜩 뻗어야 간신히 들 수 있는 긴 상을 아무렇지 않게 들고 성벽 위로 올라왔고, 순식간에 성벽 위에 거한 밥상이 차려졌다.
“배추랑 부추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겉절이를 급하게 담아봤어요. 배추겉절이하고 부추겉절이 잔뜩 넣고 한술 뜨세요. 깍두기는 담긴 했는데 맛이 익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헤헤.”
해맑다. 너무 해맑아서 저 성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좀비의 비명과 각성자의 능력에서 기인한 폭음이 윗집에서 튼 영화 소리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생길 정도다.
“진짜 국밥을 만들었어? 어떻게? 아니, 요리사니까 가능한가? 아! 아무튼, 신경 써줘서 고마워. 정말 잘 먹을게.”
“네! 후기도 들려주세요! 예쁜 아가씨들도요!”
“넌 내가 무섭다거나, 어렵지 않아?”
말갛게 우러난 국물에 하얀 쌀밥을 말면서 아무렇지 않게 묻자,
“무섭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죠. 왜 안 그렇겠어요?”
서다혜는 조금 전과 다를 거 없는 밝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런데?”
“그런데……. 그냥 고마워서요. 저나 제 남편이 가장 꿈꿔오던 일이 이제 가능해졌으니까요.”
“꿈꿔오던…일? 이 종말의 세상이?”
“아뇨. 아뇨. 호호. 제가 몸이 약하고 유전병이라서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 있었어요.”
“응?”
“임신이요!”
“풉!”
미친. 와 진짜 도무지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저 담대하다 못해 간덩이가 부어 버린 언행은 태어나면서부터 몸이 약해서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삶을 살아온 서다혜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걸 거다.
“어휴.”
유다연에 소피아라는 신성력 특화 돌+아이가 있어서 가뜩이나 정신이 없는데, 서다혜까지 붙어 있으면 도대체가.
“임신…….”
엘라는 몽롱하게 풀린 눈으로 임신이라는 단어를 반복하고 있는 걸 보면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 싶다.
“어떠세요? 입에 맞으세요? 요리사라는 클래스가 조리 시간을 엄청 줄여주면서 대용량 조리가 가능하더라고! 그래서 짧은 시간에 소머리 국밥을 할 수 있었다니까요?! 순대국밥 같은 건 순대를 구하기 어려워서요. 헤헤. 어때요? 그래서? 맛은 별점으로 치면 몇 점? 추가 했으면 하는 건 있어요? 예를 들면 고기를 더 넣어달라거나? 더 진했으면 좋겠다거나? 밥은요? 밥은 잘 됐어요? 질거나? 너무 되거나?”
그동안 어떻게 참았는지 쉬지 않고 물어오는 질문에 도대체 뭐부터 대답해야 하나 싶은 순간,
“죄, 죄송합니다!!!”
언제 다시 돌아왔는지 독고서인이 아내의 앞을 막아서며 허리를 숙이고 있다.
“어머? 서방? 언제 왔어? 밥 줄까?”
“가, 가만히 있어. 너는 도대체가 겁이 없어.”
“어머 이 양반이? 나처럼 여리여리한 여자한테 그게 무슨 소리야? 그리고 영주 님은 왜? 영주 님은 좋은 분이야. 무려 영주 님인데 국밥충이라고.”
“히익! 국, 국밥충? 추, 충이라니! 미, 미쳤어? 충이라고 하면 어떻게 해!!”
“왜?”
“추, 충은 그게……. 그렇잖아!”
“아! 맞네.”
“맞네에?!!! 가만히 좀 있어!”
처음에는 둘이 꽁냥대는 것처럼 소곤소곤 대화하더니 이제는 아예,
“지금 가만히 있으라고 한 거야?! 평생을 가만히 있었는데? 그리고 독고서인 너 나한테 큰 소리 쳤어?!”
둘이 대놓고 싸우고 있다. 엄밀히 따지면 싸운다기 보다 독고서인이 잠깐 큰소리를 냈다가 이후 대놓고 처맞는 중이다. 말로.
‘아니 그것보다. 저 새끼? 저거 계속 충충 거리면서 강조하는 거. 돌려까는 건가?’
“치울까요? 주인님?”
“아니. 냅둬. 어디까지 하나 보게. 이게 소머리 국밥이라는 거야. 일종의 스튜 비슷한 거지. 먹어 봐. 겉절이랑 같이 먹으니까 맛있네.”
“어머! 네! 주인님!”
둘이 떠들거나 말거나 겉절이를 젓가락으로 하나 집어 엘라의 국밥 위에 올려주자 신이 나서 국밥을 입에 넣는다.
“…생각보다 괜찮네요?”
“그렇지? 겉절이가 너무 매우면 그냥 소금만 넣고 국하고 밥만 먹어도 좋아.”
“네. 맞아요. 그렇게 맵지 않아요.”
“그래?”
엘라는 매울 것 같은 겉절이를 한국사람인 나보다 더 잘 먹는 것 같았다.
“네. 저는 엘프고, 이 아이들은 식물이잖아요?”
오히려,
“으엑?! 매, 매워!! 으아아아!”
서다혜가 ‘영주니이이임~’하면서 밥상을 들고 올 때부터 ‘뭐야? 뭔데요? 뭐예요?’ 이러면서 달려와 호기롭게 혼자 어른인 척하면서 겁 없이 새빨간 겉절이를 입에 넣은 소피아가 죽어가고 있었다.
“맵다니까. 어휴. 물 줘?”
“아뇨! 괘, 괜찮아요! 절대 괜찮아요!”
그러면서도 또 지는 게 싫은지 물은 또 사양하면서 새빨간 김치와 한참을 눈싸움을 한다.
[한쪽은 아침 드라마 같은 분위기고, 다른 한쪽은 예능이 나오는 방송을 동시 튼 것 같은 분위기가 무려 좀비가 몰려오는 성벽 위에 펼쳐지는데, 거기 앉아서 태연하게 식사하시는 영주 님도 보통은 아니시네요.]
‘무슨 소리! 내가 여기서 제일 정상인데!’
[…….]
‘뭐야? 왜 말이 없어?’
[당근당근당근당근당근당근당근당근당근당근당근당근당근당근당근.]
‘당근? 당근이 왜? 먹고 싶다고? 왜 계속 당근……? 하?! 너 그거 밈을 흉내 낸 거야? 당근을 흔들라는 그거?’
밥 먹다 말고 갑자기 끼어든 반지의 에고(Ego)와 투덕거리는 사이 어느새 자신들의 추태를 알아차렸는지 독고서인과 서다혜가 조용해졌다.
“끝났어?”
마침 밥도 다 먹어가는 터라 그렇게 물었더니,
“가, 감사합니다. 영주 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뜬금없이 독고서인이 성벽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까지 바닥에 닿게 절을 한다.
“…뭐?”
그런데 그게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는지,
『영지민 중, 최초로 충성 스탯 100에 도달한 존재가 등장했습니다.』
시스템이 증명한다.
『충성 스탯의 영향으로 영지민 ‘독고서인’의 클래스가 변경됩니다.』
『클래스 [워리어]가 [로열 가디언]으로 진화합니다.』
“헐? 지금? 이 타이밍에?”
“주인님? 클래스 진화인가요?”
아니! 이게 뭐냐?! 이게? 멋도 없고, 이상하고, 초라해.
충성 MAX를 성벽 위에서 새참 같은 국밥을 먹는 사람을 보다가 찍는다고?!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