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창천의 날개 기사단>
“제가, 저희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영주 님.”
“더 쉬어도 되는데?”
“아닙니다.”
“그럼, 어디 보자……. 그래. 저기. 저거 보여요? 덩치가 커다란 저거.”
영주가 가리킨 것은 좀비의 네 배는 족히 될 것 같은 덩치의 무언가였다.
“저거……. 혹시 저것‘도’ 좀비입니까?”
“응. 특수 개체. 저것 말고도 여러 특수 개체들이 있어. 아무튼, 저거 어때? 상대할 수 있겠어?”
“가뿐합니다.”
“그럼, 저기 좀비들 한복판에서 전투를 벌이는 건 어때?”
“문제 없습니다.”
“그래? 그럼 엘븐나이츠는 좀 넉넉하게 쉴 수 있겠다. 너희도 마찬가지고. 잠시만. 올리비아!!”
영주의 부름에 성벽 위에서 왼손으로 마법을 날리고, 오른손으로는 허공에 둥실둥실 떠 있는 책에 무언가를 기록하던 여인이 점멸하듯이 나타났다.
“여기 이쪽 기사단분들에게 카메라 달아드려.”
“네. 대장. 소피아의 동료시죠? 자. 이건 간단한 마법을 부여한 카메랍니다.”
올리비아라고 불린 마법사는 너무 태연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가슴에 부착한 카메라에 대해서 설명했다. 성벽 밖에 우글대는 좀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서.
“그러니까 이게 좀비를 얼마나 잡았는지 집계한다는 겁니까? 그렇게 집계된 수에 따라서 여러 혜택이 주어지고?”
“네. 이런 세상이 아니었다면 돈으로 드렸을 텐데. 알겠지만, 이제 돈은 가치가 없습니다. 다만 영지 내에서 무언가를 구매하거나 할 때 쓸 수 있는 재화를 드리거나, 영주 님 관리에 있는 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왜?”
제니퍼의 질문에 올리비아는 카메라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갑옷이나 어깨끈에 부착하면서 대답했다.
“각성자들은 자신이 사냥한 침략자에 카르마 포인트로 보상을 받아서 따로 무언가를 해줄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엘븐 나이츠와 당신들 그리고 엘리아나와 소피아가 사냥하는 침략자에 대한 보상은 모두 영주 님께 귀속되기에 영주 님께서 이런 시스템을 마련하셨습니다.”
하지만 제니퍼가 물어본 건 그게 아니었다.
“아니. 제가 궁금한 건 그쪽이 아닙니다. 왜 영주 님께서 굳이 저희까지 신경을 쓰시는지.”
제니퍼는 바보가 아니다. 소피아처럼 세상 해맑게 ‘영주 님이 최고야!’라고 외치는 머릿속이 꽃밭일 수 없는 성격이다. 그녀가 판단하기에 영주 님이라고 불리는 저 인간 덕분에 자신들이 존재할 수 있는 거다.
즉,
“굳이 이런 걸 해주지 않으셔도 저희는 영주 님께 충성을 다 할 겁니다.”
영주 님은 이런 걸 해줄 필요가 없다. 이전에 평화롭던 세상에서 기사가 군주에게 충성을 바치고 군주는 기사의 생활을 책임지는 형태의 계약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긴 하죠. 우리 보스의 능력으로 당신들을 소환했고, 소환하면서 카르마 포인트를 많이 소비했다고 알고 있으니까요. 보스는 당신들에게 대가를 주지 않아도 돼요.”
“하지만 주지 않을 이유도 없지.”
제니퍼가 듣고 싶었던 대답은 어느새 멀리 떨어졌던 영주가 다가오면서 그의 입을 통해 나왔다.
“그쪽이 소피아가 말한 총사령관인가 보네?”
“네. 영주 님. 혹시 제 질문이 불쾌하셨다면…….”
“아니. 그렇진 않아. 앞으로 궁금한 건 자주 물어보고, 조언을 해줄 게 있다면 적극적으로 해주라고. 난 그런 걸 좋아하거든. 전문가에게 전문적인 분야를 맡기는 걸. 앞에 ‘믿을 수 있는’이라는 수식어가 필요하겠지만.”
“아.”
“일단 답부터 하자면, 내가 방금 한 말의 반복일 텐데. 그게 효율적이기 때문이지.”
“효율적이란 말씀이십니까?”
“그래. 각성자들은 카르마 포인트로 자신의 스탯이나 스킬에 투자하면서 알아서 강해질 수 있어.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지. 지금도 봐. 난 네 이름이 제니퍼라는 것과 멸망의 앞에서 대항하는 총사령관이었다는 것 밖에 아는 게 없어. 네가 어떤 스킬을 다루는지, 말 같은 걸 타면 전투력이 더 올라가는지 알 수가 없다고.”
“아! 저는…….”
자신에 대해서 말하려던 제니퍼를 손을 펴서 말린 영주는 계속 대답을 이어갔다.
“그러니 자신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그걸 알아서 준비하도록 하는 거지. 적을 처리한 것에 대한 대가로. 다행히 이 영지는 기묘한 것들이 많거든. 탈 수 있는 기승물이 단순히 말뿐만 아니라, 마수나 영물 같은 것도 있고. 대장간에서 마력을 부여하거나 과학을 접목시킨 것들도 있고. 연구시설에는 여러 연구가 진행 중이기도 하고.”
“그럼 그걸 찾아서 저희가 더 강해지시길 원하시는 겁니까?”
“맞아. 난 너희가 더 강해지길 바라.”
“왜……?”
솔직히 제니퍼는 눈앞에 있는 이 영주라는 남자가 여러모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의 세상이 종말을 향해 갈 때, 가장 큰 걸림돌은 공허의 종자들도 아니고, 괴물도 아니었다. 같은 편이라고 믿었던 권력을 쥔 것들. 그 병신들이 제일 큰 걸림돌이었다.
그들은 전선에 있는 자신들이 강해지는 늘 경계했었다. 병적일 정도로.
“그래야 더 안전하잖아? ‘우리’가.”
“우리…인 겁니까?”
“응. 내가 깊은 인간 불신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데, 그중에서 몇몇은 제외거든. 지금 옆에 있는 올리비아를 포함한 초창기 멤버와 내가 소환한 너희들. 그러니 난 너희가 더 강해지길 바라. 특수 개체를 사냥해. 그리고 너희가 사냥한 개체가 준 카르마 포인트를 이용해서 더 강해져. 날뛰어도 좋아.”
제니퍼는 그제야 비로소 눈앞에 있는 자신의 주인이나 마찬가지인 남자에 대해서 조금은 알 것 같았다.
“Yes. my Lord.”
실로 오랜만에 기사로서 바치는 공경의 자세로 땅에 닿은 한쪽 무릎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기운에 제니퍼는 안도했다. 이런 군주라면 이 희망의 땅이 절대로 사라지지 않겠다고.
“창천의 날개 정렬.”
“정렬!”
“정렬!”
…
공허의 잔재와 전쟁에서 수십 년 동안 일진일퇴를 하며 대륙을 지켜온 인류연합의 마지막 기사단이 대한민국에 등장했다.
성벽 위에서 가만히 전장을 바라보던 제니퍼가 검을 뽑아 들고,
“적을 섬멸하라.”
그렇게 외치며 성벽에서 훌쩍 뛰어내리자,
“우와아아아!”
“좋아! 다 죽었어!”
“오랜만인데?”
…
각양각색의 복장과 종족을 가진 이들이 능력에 맞게 전장으로 튀어나갔다.
“야야! 앤! 너는 활쟁이잖아! 왜 너까지 뛰어내려!!”
“응? 좀비 대가리에 화살을 직접 박아넣는 재미를 마크 네가 알아?!”
“미친.”
“왜? 뭐? 왜!”
가죽 경장의 뒷덜미를 잡혀서 허공에서 대롱대롱 발을 구르는 붉은 머리의 여자를 다시 성벽에 내려준 마크는,
“미친 소리는 그쯤 하고 여기서 활이나 쏴!”
그러게 말하면 한숨을 쉬고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쳇! 이 영지에는 이상하게 활을 다루는 사람이 많아서 별로 주목받지 못 할 것 같은데. 칫칫.”
투덜거리면서도 앤은 등에 비껴 맨 활을 풀러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거기까지는 이상할 게 없는, 그녀의 말처럼 이상하리만치 활쟁이가 많은 이 영지에서 익숙한 모습이긴 한데,
“응?”
앤이 겨냥한 곳이 문제다. 그녀는 좀비가 득실득실한 전방이 아니라, 하늘을 향해 활을 치켜들었으니까.
“마크! 요한! 알아서 피해라!!”
좀비 사이로 파고들어 창과 검을 휘두르던 두 남자는 앤의 목소리에,
“아! 왜! 이쪽인데!!”
“애―앤!!”
기겁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 둘이 물러난 순간,
슈슈슈슈슈슈슈슈슉!
하늘에서 푸른 비가 좀비들 머리 위로 쏟아졌다. 그건 푸른색 마력으로 농밀하게 뒤덮인 무시무시한 화살의 비였다. 그리고 하나하나가 블루 랭크 마력을 담고 있던 화살비가 좀비와 닿기 직전 허공에서 폭발했고,
콰콰콰쾅―! 콰아아앙!!
수십 개의 클레이모어가 동시에 터진 것 같은 폭음이 들려오며 수십 미터 반경의 있던 좀비와 특수 개체 그리고 건물이 무너졌다.
“휴우. 좀비는 학살하는 맛이 있다니까.”
앤이 자신이 만든 광경에 만족하며 붉은 단발을 쓸어넘기며 만족해 할 때,
“이 미친년아!!”
“죽을 뻔했잖아!”
그 반경에 포함될 뻔한 마크와 요한이라는 두 남자는 성벽 밑에서 앤을 올려다보며 욕 하고 있었다.
“안 죽었잖아? 그리고 맞았어도 안 죽었을 거잖아?”
앤이 뭐가 문제냐는 듯이 반문한 순간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모두’가 감탄했다. 그녀의 인성에.
“열심히 사냥해서 나 장비 맞출 거야. 영주 님 완전 마음에 들어! 내 스타일! 그러니까 마크, 요한. 다른 데서 놀아. 이번에는 절대로, 절대로 소피아를 두고 죽지 않아.”
영주 님에 대해서 말할 때와 마크와 요한에게 말할 때의 얼굴이 180°로 달라진다. 스타를 만난 순박한 소녀의 얼굴과 한심한 백수 오빠를 바라보는 여동생의 얼굴이 동시에 나타났다고 할까?
“어휴. 저 또라이. 저거. 죽다 살아났는데도 어째 변한 게 없냐.”
“앤이 변해서 소피아처럼 된다? 그건 그것대로 소름인데?”
마크와 요한은 잠시 그 모습을 상상했다가 못 볼 것 본 것처럼 고개를 흔들고는,
“뭐, 강해지는 데는 나도 동의하니까. 우리는 푸른 하늘을 염원하는 창천의 날개니까 말이지?”
“그래. 너도 고생해라. 빌어먹을 좀비! 다시 봐도 역겹네!”
둘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갈라졌고 좀비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앤에게 뭐라고 했던 둘 역시도 주변 지형을 파괴할 정도로 강력함을 선보였다.
전장에 쏟아지는 좀비는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줄어들고 있다. 당연하겠지만, 창천의 날개 기사단이 합류한 순간 영지 소속 각성자가 잡을 좀비의 숫자는 줄어든다.
하지만 괜찮다.
이미 초반에 엄청난 카르마 포인트를 획득한 영지 소속 각성자들은 좀비가 줄어든 상황을 듣고는 오히려 다른 방안을 제시했다.
일과처럼 오전 8시에 출근해서 오후 1시까지 좀비를 처치하는 오전 반과 오후 1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까지 전선에 참여하는 오후 반으로 나눠서 각성자가 전선에 참여하고 그 이외의 시간은 엘라와 소피아가 담당하기로 한 것.
각성자들은 오전 혹은 오후 반 하나만 선택해도 되고, 두 시간 모두 참여해도 된다. 그리고 그 이외의 시간에는 각자 편하게 쉬거나 아니면 나름대로 영지에서 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래. 즐기는 거다. 다른 쉘터에서처럼 이 종말을 버티는 게 아니라 ‘일상’이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쓰이던 종말 이전의 생활처럼 말이다.
그 이면에는,
“오빠! 오빠! 저 [자판기]에서 콜라 사주세요!”
“콜라? 그래. 어떤 콜라?”
“어머. 오빠. 콜라는 당연히 빨간색 콜라죠! 파란색 콜라는 이단이에요!!”
[자판기]와 [상점]이 있다. 무려 권능을 다루는 그린스킨 황족 처치 보상으로 카르마 시스템에게 직접 받은 보상이.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