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전 여기 누울게요.>
설기는 자신이 이름을 받은 순간 자이언트 윙 샤벨 타이거라라는 포식자로서의 자신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 바뀌었다는 걸 본능적으로 감지했지만, 그걸 거부하지 않았다. 거부할 수도 없었겠지만.
지금이야 이요한과 인간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귀염둥이지만, 그의 본 모습은 자신의 차원이 멸망하는 순간을 똑똑히 기억하는 존재였다. [마구간]의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말이다.
드래곤과 비슷한 지위를 누리는 최상위 포식자이자 균형 조절자로 태어났기 때문일 거다. 설기는 그런 경험을 했기에 자신의 주인인 이요한과 그의 영지에서 느껴지는 안온함과 평화로움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설기는 주인이 말하지 않아도 영지를 탐하는 그린스킨에게 적의를 보였고, 명령이 떨어지면 적극적으로 그린스킨을 처치했다.
만약 설기와 같은 차원에 살았던 이들, 고고한 포식자였던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봤다면 놀라 자빠졌을 만큼 온몸에 그린스킨의 피를 묻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적극적인 전투였다.
그랬던 설기가 진화를 위해 몸을 웅크려야 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이름을 받고 달라졌기 때문이다.
『당신의 종족 특성의 여파로 영지 랭크보다 더 높은 랭크의 전투력을 보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고유 능력 [영지]의 규칙에 위배됩니다.』
『하지만 이 상황이 발생하기까지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상 어떤 위법 행위도 없었음을 확인했습니다!』
『따라서 태고 종족 자이언트 윙 샤벨 타이거의 특성 [조율자]와 [하늘과 땅의 주인]의 발동을 중지하고 그 대가로 새로운 특성을 발동하여 영지 랭크 이상의 힘을 낼 수 없게 제한합니다.』
설기가 태고의 짐승이 아니라, 이요한에게 속한 탈 것이 되면서 일종의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한 거다.
[마구간]의 랭크는 몰라도 [영지] 랭크보다 더 높아질 수 없는 제약이 발생하면서 강제로 특성 봉인과 새로운 특성이 생성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걸 통해서 보면 이요한이 그린스킨 황족을 처치하고 받은 ‘특별한’ 고유 능력 [문을 여는 열쇠]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다. 시스템이 언급한 소환된 존재에게 영지의 랭크 제한을 초과하게 해주는 고유 능력이니까 말이다.
아무튼, 설기 앞에 저 메시지가 등장했을 때는 안타깝게도 이요한에게 [문을 여는 열쇠]가 없었고, 설기는 그렇게 잠들어야 했다.
설기는 잠이 든 시간 동안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자신의 어린 시절의 꿈을 꿨다. 막 태어난 차원에서 깨어난 어린 자신은 열정적으로 신생 차원을 누볐다. 거칠 것 없이, 가로막는 것을 모두 부수며 달렸던 시절을.
그런 그를 보며 차원에 막 생겨나던 생물들은 설기를 신으로 섬기기도 했었다.
‘좋구나.’
꿈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어릴 때를 지나 성년 그리고 노년의 순간에 차원의 멸망을 맞이하는 순간에서,
‘외롭구나.’
설기는 다시 외로움을 느꼈다. 드래곤에 비견될 정도로 강력한 존재였다. 1:1이라면 드래곤도 압살하는 자이언트 윙 샤벨타이거는 조율자이면서 포식자였다. 그렇기에 자이언트 윙 샤벨타이거라는 종족은 오직 설기 한 마리뿐이었다.
샤벨타이거는 있어도 자이언트 윙 샤벨 타이거는 오직 하나, 설기 뿐이었다. 모든 차원에서. 자이언트 윙 샤벨타이거는 허락받지 못했다. 동족을 늘리는 것을.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짙어져 고통으로 느껴질 때쯤,
『새로운 종족 특성을 설정 중입니다.』
『특이 사항 발견! 개체명 ‘설기’의 주인 이요한의 특별한 고유 능력 [문을 여는 열쇠]의 영향으로 랭크 제한이 일부 해제되었습니다!』
『특성 [조율자]를 제한합니다.』
『특성 [하늘과 땅의 주인]을 일부 제한합니다.』
『새로운 특성을 개화하는 대신 종족 페널티 [번식 불가]를 해제합니다.』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설기는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을 감싸고 있는 따뜻하고 포근한 이불과 안온한 방의 온도, 깨끗한 공기를 느끼며 자신이 돌아왔음을 인지했다.
‘주인?’
그 따스한 환경에 눈을 뜬 설기가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자신의 주인인 이요한이었다. 어쩌면 조금 전까지 홀로 고독하게 차원의 멸망을 바라보며 외로움에 파묻혀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이요한이라는 인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먀아~?”
『특이 사항을 적용하여 자이언트 윙 샤벨타이거 헤츨링 세 마리를 소환합니다.』
하지만 설기는 그의 주인을 만나러 갈 수가 없었다.
“먀?!”
그의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의 내용 때문이다.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의 메시지가 물에 탄 설탕처럼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신호로,
파아아아―!
눈을 멀게 할 것만 같은 녹색의 마법진이 세 개가 나타나 방안을 진한 녹색 빛으로 물들였다.
“먀아?! 먀!”
마치 ‘뭐냐? 뭔데?!!’라고 말하는 것처럼 울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날개를 펄럭이며 천장에 설기의 머리가 닿은 순간,
파아아아앗―!!
은은하게 발광하던 녹색 빛이 일시에 터지면서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설기를 꼭 빼닮은,
“먕~!”
“먕.”
“먀앙.”
그러나 설기보다 훨씬 작고 가냘픈 자이언트 윙 샤벨타이거 세 마리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었다.
『아! 추가 전달 사항을 전합니다. 당신의 현재 환경과 주거 환경을 고려하여 헤츨링을 폴리모프 상태로 소환해드렸습니다. 헤츨링은 생후 100일이 지나면 비로소 본래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먀?!”
설기가 도대체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냐고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에게 막 따지려는 찰나,
벌컥!
닫혀 있던 이요한의 방문이 벌컥 열리고 주인의 암컷 후보 3이 등장했다.
응? 왜 암컷 후보 3이냐고? 1과 2는 누구냐고?
1은 당연히 주인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며 세계수의 사랑을 받는 하이엘프다.
2는 영지의 많은 일을 살피는 올리비아라는 여자다. 특히나 입이 심심할 때면 언제나 맛있는 간식을 챙겨주는 착한 암컷이다.
설기는 사실 2와 3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어머?!!”
‘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지?’
저 암컷은 유독 호들갑이 심하던데.
“으헥?!!! 서, 서, 서, 설기!”
아니나 다를까.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한참을 말을 더듬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방을 빠져나갔다. 설기의 귀에는 누가 듣더라도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먀…아.”
한숨을 내쉰 설기가 아직도 눈을 반밖에 뜨지 못한 세 마리의 자이언트 윙 샤벨타이거 헤츨링에게 다가가 눈가를 혀로 핥아줬다. 그제야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는 작은 꼬물이들.
“먀야.”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고는 헤츨링 샤벨타이거의 몸을 바람으로 들어 올려 마찬가지로 방을 나서서 한참 호들갑을 떨고 있는 주인의 암컷 3호와 주인의 기운이 느껴지는 식당에 들어섰다.
“먀아~.”
“하하하. 우리 애기! 왜 왔어. 아빠가 갈 텐……? 잠깐만. 털 뭉치들? 들이라고?”
자신의 주인이 헤츨링들을 뒤늦게 알아본 것에 그 사정에 대해서 막 설명하려는데,
“너……. 임신했던 거니?”
“먀아~?”
잠깐 자는 사이에 주인이 상한 건가? 이상한 소리를 해댄다.
설기는 잠시 몸을 원래대로 키워 주인을 핥아줘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했다.
* * *
“오? 그랬어?”
[마구간]에서 설기를 고용하고 맺은 고용 계약은 설기와 나는 영혼이 연결되는 계약이었다. 그래서 설기의 감정은 따로 대화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깨어난 이후 설기는 [문을 여는 열쇠] 덕분인지 그린 랭크를 넘어 블루 랭크에 이르렀고, 그 영향인지,
“먀앙. 먀아앙. 먀앙. 먕먕먕먀앙.”
[그런 건데. 내가 낳은 게 아닌데. 그냥 생겼는데.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이 헤츨링이랬는데.]
이제 이렇게 텔레파시로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됐다.
“그랬구나. 우리 설기. 하지만 직접 낳진 않았어도 결국 이 아이들은 설기의 아이들인 거 아니야?”
“미앙…….”
[그건 맞는데…….]
“그럼 설기가 보살펴줘야지? 엄마나 아빠처럼? 그게 싫으면 형이나 누나는 어때?”
“먕~.”
[알았는데.]
설기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포옥 내쉬고는 자신 주변에 바짝 붙어서 식빵을 말고 있는 작은 샤벨타이거의 몸을 혀로 핥았다. 고양이가 주로 하는 그루밍처럼 보이는 행동에 설기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모인 지구의 의지의 사제들이 모두 어쩔 줄 몰라 했다.
“오빠. 오빠.”
“응?”
유다연이 내 팔을 톡톡 치면서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저기 쪼꼬만 아이 나 주면 안 돼? 응?”
작디작아 너무 하찮아 보이는 생명체를 보며 유다연은 눈을 떼지 못했다. 유다연뿐만이 아니다. 소식을 듣고 모인 지의사들 전부가 그랬다.
설기의 아이에―설기 말에 따르면 본인이 낳은 건 아니라고 하지만―에 대한 관심은 엄청났다.
설기가 작은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있을 때, 순백의 보드라운 털과 작은 덩치에 맞지 않게 세상 달관한 눈빛 때문에 도도하게 하찮다면, 설기의 헤츨링들은 그냥 하찮음 그 자체였다.
“응? 응? 오빠? 응?”
“설기 헤츨링이 물건이냐. 달라고 하게?”
“먀아~.”
[맞는데~.]
설기가 내 말에 동의하는 것과 동시에 하찮고 작은 세 명의 헤츨링들이,
“미앙~.”
“묘앙~.”
“먕~.”
따뜻한 우유를 열심히 먹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면서 하찮은 소리로 울었다.
“으어어.”
“꺄아아아아!!”
…
가만히 지켜보던 이들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마 설기만큼만 컸어도 서로 아이들을 안아보겠다고 달려들었을 거다.
“애들 놀란다. 그리고 이제 슬슬 나갈 시간 아니야? 이제 이벤트도 사흘밖에 안 남았잖아?”
“힝. 오늘만 쨀까요? 자체 휴강! 응? 어때요? 오빠?”
“여기가 대학교냐? 자체 휴강을 하게? 그리고 이벤트가 사흘밖에 안 남았다니까? 나중에 후회한다?”
“으으으으!! 알고 있어요! 알고 있다고요! 그래도 우리 하찮이들이!”
“하찮이……들?”
“네! 이렇게 순백의 하찮은 아기들과 헤어져야 한다니!! 좀비 새끼들 다 죽었다!”
유다연은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식당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내성 밖으로 향했다. 가장 극성스러운 유다연이 저러니 지의사들 모두가 나간 것 같지만,
“릴리?”
광전사 릴리 로즈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반짝이는 눈으로 아직도 작은 설기의 헤츨링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요한 오라버니.”
“음? 넌 안 가?”
“전 여기 누울게요.”
“…….”
누워? 왜? 뭔데? 여기가 뭐 유튜브 게시판이냐? 눕긴 뭘 누워?
“으어…….”
뽈뽈거리며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는 순백의 하찮이들을 빤히 보던 릴리는 아저씨 같은 소리를 내며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그래도 이런 분위기라니. 믿을 수가 없네.’
장난스럽게 작고 하찮은 생명체를 보며 행복해하는 모습이야말로 내가 회귀를 하고 자살하지 않고 살아가기로 마음먹으면서 꿈꿔오던 순간이었다.
사소한 것에 대한 행복을 느끼고 그걸 즐거워할 수 있는 일상과 삶.
그것이 성큼 다가왔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 오늘은 좀비 이벤트 종료까지 사흘 남은 아침이었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