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역시 집값은 억억 해줘야 제맛이지.>
『등록 완료. 상품의 품질과 가치에 따라 [고급 자판기]에서 등록되는 물품의 가격이 결정됩니다. 7분 41.81초가 소요됩니다.』
8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를 때까지 나는 멍하니 성벽에서 대기한 게 아니라, 자판기가 설치된 내성으로 이동했다.
내성문 옆에서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는 [자판기]였던 것을 보면서,
“와. 이거 왜 더 커졌어? 옆으로?”
아직 안을 살펴볼 수 없음에도 다섯 배는 커진 것만으로도 엄청 기대가 되게 하는 [고급 자판기]의 모습에 탄성을 멈추지 못했다. 기존의 [자판기]도 미국 드라마에서 나오는 큰 자판기의 네 배는 됨직했는데, 그 [자판기]의 다섯 배 이상 커진 [고급 자판기]라니.
‘흥분을 안 할 수가 있겠냐고!’
[고급 자판기]에서 흘러나오던 여러 빛이 하나씩 사라진다고 느껴질 무렵,
『완료.』
물품 등록이 완료되었다는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고급 자판기]가 온전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자판기]일 때와 다르게 검은색 무광의 몸체에 거대하고 기다란 전면부 패널은 동시에 수십 명이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크기를 제공한다.
보통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멀티 자판기의 가로 길이가 1.6~2m 사이다. [자판기]는 그런 미국 멀티 자판기의 5배가 넘는 가로 11m의 재원이었는데,
“이건 62m네요.”
[고급 자판기]는 그 가로 크기만 해도 엄청나다. 괜히 ‘고오오오급’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나온 게 아니라는 듯이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그래서 동시에 서른 명이 달려들어 살피고 있음에도 오히려 자리가 살짝 남기까지 한다.
“어디 보자. 어라?”
기존의 [자판기]에서 대분류로 [식품]만 존재했는데, [고급 자판기]에는 [식품]과 함께 [의복] 그리고 [잡화]라는 대분류가 추가로 등록되어 있다.
[식품]과 [의복] 그리고 [잡화]라는 대분류 중, [의복]을 선택하면 하위 카테고리로 [아우터], [상의], [하의], [양말/속옷]이라는 하위 카테고리가 나타난다.
반면 [잡화]를 선택하면,
“[신발]이랑 [모자/장갑], [시계/쥬얼리]라고?”
무려 신발이 등록되어 있다.
혹시나 분류만 그렇게 되고 상품은 등록되지 않은 건가 싶어서 다시 [의복] 카테고리로 넘어가 [양말/속옷]을 선택하자,
“…하하. 미쳤네.”
내가 걱정하며 그린스킨 침공에도 열심히 모았던 양말과 속옷들이 성별과 사이즈 별로 모두 등록되어 있었다.
언젠가 언급한 적이 있을 거다. 각성자가 가장 먼저 원하는 아이템은 무기가 아니라 신발이라고. 각성자는 마력을 다룬다. 그리고 마기를 다루는 침략자들과 전투가 일상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신발이 닳아 없어지거나 못 쓰게 되는 속도가 멸망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러니 단순히 닳아 없어지는 수준에서는 파괴가 되지 않는 아이템화가 간절하다.
그렇지 않으면 맨발로 다녀야 할 테니까. 실제로 회귀 전에는 맨발로 다니는 각성자가 절반 이상이었고.
각성자가 유리나 돌 조각 밟는다고 상처가 난다거나 그러진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싶은 열망이 있다. 멸망이 시작된 이후, 각성자와 생존자에게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멸망 전에 즐기던 것들이다.
웃기게도 [고급 자판기]를 둘러본 지의사(지구의 의지의 사제들)이 가장 열광한 것은 속옷도 신발도 아니다. 그들은 당연히 신발은 아이템이었고, 상·하의도 아이템화가 되어 있었으니까.
“어머. 이 시계. 엄청 예쁘다!”
“이 팔찌. 내 스타일이야! 응응!”
“세상에 ‘리차드 밀’을 자판기에서 뽑는다고? 나달의 시계를?!”
…
시계/쥬얼리 탭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말했잖은가. 종말의 세계에서 악다구니를 쓰면서 보내면 보낼수록 이전 세상에서 즐기던 것들을 더 갈망하게 된다고.
그리고 난 저런 사치품에 카르마 포인트를 쓰는 것을,
“지금 뭐 하는 거야?”
“오, 오빠.”
“빨리들 골라야 할 거 아냐! 아직 핼러윈 보상으로 아이템을 추가로 지급하는 거 안 나왔잖아. 장신구로 삼고 아이템화 되어야 스크래치나 파괴에 면역이 될 거 아냐!”
전혀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이라는 종족은 태생이 개복치나 다를 것 없이 태어났기에 어떻게든 스트레스를 풀어줘야 한다. 원래는 그린스킨이나 좀비, 악마를 때려잡는 것으로 최대한 풀고 그다음은 먹는 거나 섹스로 풀어서 멸망한 세상에서 버티곤 했다.
그런데 저런 걸 구매하고 착용하고 또 모으는 것만으로도 풀린다면? 감지덕지 아니겠어?
“꺄아!! 내가 이래서 오빠를 사랑한다니까! 난 저거 부쉐론 다이아몬드 귀걸이!”
“하하하. 그, 그렇다면 저도. 팔찌를 살짝 보고 오겠습니다. 보스.”
“와! 리차드밀 맥라렌! 이 시계 60만 달러짜린데! 이걸 자판기에서 뽑아?!”
…
[자판기]가 [고급 자판기]로 업그레이드되기까지 10분이나 흘렀음에도 앞서 등장한 추가 카르마 포인트 지급이나, 핼로윈 추가 보상으로 아이템 지급이 아직 진행되지 않은 것은 어쩌면 [고급 자판기]에서 아이템화가 될 상품을 구매해 미리 준비하라는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의 배려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추가로 약 3시간이 더 흐른 뒤에야,
『이벤트 추가 카르마 포인트 산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이요한 님께서 이벤트 붐(Boom)으로 획득한 카르마 포인트는 플러스 카르마 50,945,127 포인트, 마이너스 카르마 50,945,127 포인트입니다. 따라서 10%에 해당하는 플러스 카르마 5,094,512 포인트와 마이너스 카르마 5,094,512 포인트를 추가로 지급합니다.』
『이요한 님께서 이벤트 메가 붐(Mega―Boom)으로 획득한 카르마 포인트는 플러스 카르마 76,417,690 포인트, 마이너스 카르마 76,417,690 포인트입니다. 따라서 20%에 해당하는 플러스 카르마 15,283,538 포인트와 마이너스 카르마 15,283,538 포인트를 추가로 지급합니다.』
『이요한 님께서 이벤트 페스티벌(Festival)로 획득한 카르마 포인트는 플러스 카르마 114,626,535 포인트, 마이너스 카르마 114,626,535 포인트입니다. 따라서 30%에 해당하는 플러스 카르마 34,387,960 포인트와 마이너스 카르마 34,387,960 포인트를 추가로 지급합니다.』
『이요한 님께서 이벤트 카니발(Carnival)로 획득한 카르마 포인트는 플러스 카르마 229,253,070 포인트, 마이너스 카르마 229,253,070 포인트입니다. 따라서 40%에 해당하는 플러스 카르마 91,701,228 포인트와 마이너스 카르마 91,701,228 포인트를 추가로 지급합니다.』
『합계 플러스 카르마 146,467,238 포인트와 마이너스 카르마 146,467,238 포인트를 추가로 지급해드렸습니다.』
『추가로 지급 예정이 밀려 있던 플러스 카르마 30,227,750 포인트 역시 이번에 일괄 지급합니다.』
“허, 허허허. 미쳤네.”
대충 계산해보자면 아까 핼러윈으로 획득한 카르마 포인트가 5억 7천이라고 했고, 나머지 이벤트로 획득한 포인트가 4억 7천 정도니까.
“10억?”
내가 이벤트 동안 획득한 카르마 포인트가 플러스마이너스 각각 10억 카르마 포인트라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깨달았다.
“와. 이 양아치 같은 영지 건물. 씨X. 와. 10억씩 20억을 먹었는데. 블루(Blue) 랭크로 올릴 엄두가 안 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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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자 정보〉
1. 이름(Name): 이요한
2. 칭호(Title): [지구가 도와주는] [장비 전문가] [―]
2. 국가(Nation): 대한민국
3. 소속(Clan): 유토피아
4. 직업(Class): 영주(領主)
5. 카르마(Karma)
[선업(Plus Karma) 53,934,733]
[악업(Minus Karma) 149,147,041]
[특수 카르마 포인트 751,000,000]
[획득 예정 선업 30,227,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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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추가로 카르마 포인트를 획득하기 전에 이벤트가 끝나는 순간 내가 보유하고 있던 카르마 포인트다.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는 5천만,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는 1억 5천 남짓.
마이너스 카르마는 영지 건물을 올리는 데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왜 저러냐고?
어디에 다 썼냐고?
고용비다. 멸망 전이나 멸망 이후나 인건비가 가장 무섭다.
내가 말했잖은가. 모두 감시할 거라고.
숲의 감시자, 엘라가 와쳐라고 부르는 이 특별한 유닛을 2만 기나 소환했으니까. 한 기에 2만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 총 4억 포인트를 여기에 쏟아부었다.
인간 불신에 끝을 달리는 거 아니냐고? 이제는 그만 털어낼 때도 되지 않았냐고?
털어냈기 때문에 이 정도인 거다. 현재 영지에는 210만이 넘는 생존자가 존재한다. 각성자는 이벤트가 진행될수록 빠르게 늘어서 정확하진 않지만, 20%에 해당하는 40만 정도는 될 거다.
200만을 상대로 감시 임무를 담당할 와쳐가 2만. 한 명당 100명을 감시해야 하는 셈인데, 만약 회귀 직전이었다면 난 와쳐만 소환했을지도 모른다.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는 더 가관인 게 정작 한 명에 500만 포인트의 [연구원]이나 그린 랭크로 [행정청]이 업그레이드되고 고용 비용이 2배가 올라 50만 포인트나 되는 [전문직원], [집사]는 얼마 안 들었다. 300만 포인트의 [전문의]도 10명 정도밖에 고용하지 않아서 3천만을 쓴 게 고작이다.
그럼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를 가장 많이 어디에 썼냐?
[집]이다. 빌어먹을 [집]. 이것도 멸망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행정청]이 그린(Green) 랭크가 되고, [집]도 당연히 랭크가 상승했다. [행정청]과 랭크를 공유하니까.
그러면서 기존의 옐로(Yellow) 랭크였던 [집]은 그린 랭크로 업그레이드해 줘야 했고, 그린 랭크의 [집]은 집값이 5배로 뛰었다.
단층집은 2만에서 10만으로, 이층집은 5만에서 25만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그린 랭크가 되니까 삼층집을 지을 수가 있더라고. 한 채에 100만 포인트에.
단층집을 추가로 1천 채를 지었고, 이층집 500채, 삼층집 250채를 지었더니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가 억 단위로 뭉텅뭉텅 사라지더라고. 1억, 1억 5천, 2억 5천 이렇게.
‘역시 집값은 억억 해줘야 제맛이지.’
빌어먹을 이런 농담을 하고 있다니까?
너무 멍청한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차라리 그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로 블루(Blue) 랭크로 영지를 올려야 하는 게 아니냐고 지적할 수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집]부터 지은 건 영지민에게 안정감을 주는 게 첫 번째 목적이었다. 몇 번이나 언급했는데, 이런 세상에서는 소소한 것에서 위로를 받곤 한다. [집]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집]부터 지른 이유는,
“[집]의 임대와 매매 대금은 매달 세금 정산에 추가됩니다. 영주님.”
귀여운 사막여우 수인인 [전문직원]의 말처럼 한 달 안에 50% 이상을 돌려받고, 임대 그러니까 월세로 지내는 영지민도 많으니 이자처럼 꼬박꼬박 세금을 받을 때 임대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올 돈이라고. 그래서 가뜩이나 사방에서 좀비가 무지막지하게 떨어지는 영지 안에서 불안해하는 영지민을 위해서 [집]을 잔뜩 설치한 거다.
그리고 그 선택은 확실히 옳았다고 자평한다. 왜냐하면,
“오늘 파티 고?!”
“고고!”
“맥주 조진다!!”
…
자판기에서 필요한 걸 구매하고 삼삼오오 모여서 나누는 대화만 봐도 알 수 있으니까. 저들은 무려 즐거워하고 있었다.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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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자 정보〉
1. 이름(Name): 이요한
2. 칭호(Title): [지구가 도와주는] [장비 전문가] [―]
2. 국가(Nation): 대한민국
3. 소속(Clan): 유토피아
4. 직업(Class): 영주(領主)
5. 카르마(Karma)
[선업(Plus Karma) 230,629,721(▲176,694,988)]
[악업(Minus Karma) 295,614,279(▲146,467,238)]
[특수 카르마 포인트 751,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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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포인트가 다시 억 단위로 모였으니, 또 써야지.
『이벤트 핼러윈(Halloween)의 효과로 소환된 심연의 추방자에게 얻은 카르마 포인트에 따라 장비를 지급하겠습니다.』
장비를 받은 이후에.
『이요한 님께서 이벤트 핼러윈(Halloween)으로 획득한 카르마 포인트는 플러스 카르마 573,132,675 포인트, 마이너스 카르마 573,132,675 포인트입니다.』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에 해당하는 장비를 구현 중입니다.』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눈앞에 빛이 생성된다. 붉은색이다. 나뿐만이 아니다. 좀비를 한 마리라도 잡은 각성자는 하나 같이 붉은색 빛이 몸 곳곳에서 빛나고 있었다.
다만 내가 저들과 다른 점이라면,
“이번에도 뭔가 보석 같은 건가?”
난 몸이 아니라 눈앞에서 빛이 모이고 있다는 점이다.
붉은색은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지나갔다. 노란색 역시도 순식간에 노랗게 변했다가 초록색이 되었다. 그리고 초록색도 훌쩍 지나 파란색 빛으로 변했다.
일반(Normal) 등급에서 민담(Folktale) 등급과 역사(History) 등급까지 순식간에 지나 설화(Legenda) 등급을 뜻하는 파란색이 된 거다.
평소라면 호들갑을 떨었을 테지만 그러지 않은 이유는,
“뭐, 이 정도는 당연하지.”
자그마치 카르마 포인트가 5억 7천이다. 그런데 고작 설화 등급?
프스스스스―.
푸른색으로 빛나던 빛 덩어리가 내 속마음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선명한 보랏빛으로 변했다.
선명하고 짙은 보랏빛은 주먹만 한 크기의 보석이 되었다.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에 해당하는 장비 구현이 완료되었습니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