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신화 등급을 뽑긴 뽑았는데, 비싼 쓰레기를 뽑았네.>
올리비아의 담당 지구의 의지인 비의(秘意)의 취향을 칭찬하는 마음을 갖는 사이,
“흠. 난 역시 대검보다는 도끼가 더 손맛이 있단 말이지.”
뒤에서 들려오는 섬뜩한 헛소리에 고개가 절로 돌아간다.
나나 올리비아처럼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로 방어구를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로 무기나 장신구를 받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든 카르마 포인트를 합해 무기나 방어구를 받은 사람도 있다.
대표적으로 창과 도끼의 합성품인 할버드의 날에 뺨을 비비는 광전사 릴리 로즈가 있다.
“릴리. 너 이번에 상대적으로 다른 지의사들에 비해서 좀비 많이 사냥하지 않았어?”
“네? 네. 많이 잡은 편인데요?”
그렇겠지. 좀비 독에 면역이 된 상태에서 좀비만 득실득실한 전장 한복판에 좀비 독 면역인 광전사를 풀어놓으면 어떻게 되겠나? 주변이 모두 좀비니 신경 쓸 필요가 뭐 있겠어. 그냥 다 쓸어버리면 되는데.
오히려 광전사 클래스인데도 억지로 버프를 받아 억누르던 것보다 이렇게 마음껏 발산하게 해주는 게 릴리 로즈에게는 더 좋은 일이니, 일석이조 혹은 일석삼조가 아니겠냐고.
“그런데 장비가 왜 그거 하나야?”
“네? 이거 엄청 좋은 장비예요!”
“그래? 보라색이 아닌 것 같은데? 등급은?”
“준 신화(Demi―Mythology)요. 그래서 네이비잖아요.”
“거짓말하지 마. 그런 등급이 어딨어?”
내가 회귀 전에도 준 신화라는 등급은 들어본 적도 없다. 어디서 사기를 치려고.
“진짜예요! 신화에 등장하는 무기이지만, 유명하지 않고 효과가 신화에는 미치지 못하는 무기라고요! 요한 오라버니. 디아뮈드 오 디나라는 켈트 영웅 알아요?”
“…그게 누군데?”
이 씹덕아라고 뒤에 나도 모르게 관용어구처럼 붙일 뻔했다. 디아 뭐?
“디아뮈드 오 디나. 이파아 기사단의 영웅이에요. 두 자루 창을 가졌는데 이건 그 창 중 하나인 게 다러그(Gáe Dearg)예요.”
“켈트 신화에서 유명한 영웅이면……? 쿠 홀린 아니야? 그리고 켈트 신화에서 유명한 창은 쿠 홀린의 게 볼그(Gáe Bolg)고? 어? 이름이 비슷하네?”
“오라버니. 원래 ‘게’라는 단어가 창을 뜻한다고요. 아무튼, 이 창은 마법을 파훼하는 능력이 있어요.”
“…좋은데? 엄청?”
“그쵸? 좀비랑 같이 나오는 게 악마라면서요? 요술 같은 거 쓰는 놈들? 이제 다 뒤졌다!”
다시 할버드 날에 뺨을 비비는 릴리 로즈에게서 본능적으로 멀어졌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내게 다가오며 히죽대는 유다연과 거리가 빠르게 좁혀졌다.
“으흐흐흐. 드디어 제 매력에 빠졌구나? 그쵸? 오빠?”
“도대체 뭘 얻었기에 그렇게 신이 났어?”
“이거요!”
[고급 자판기]에서부터 눈독을 들이던 귀걸이와 목걸이를 모두 착용하고 나타난 유다연은 그중에 다이아몬드가 박힌 화려한 목걸이를 잡고 흔들면서 잔뜩 들떠서 자랑하듯이 내밀었다.
“그게 뭔데?”
“브리싱가멘(Brísingamen)이라고 알아요? 오빠?”
“…그거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거 아냐? 프레이야의 목걸이?”
“맞아요! 맞아!”
브리싱가멘은 유명한 목걸이다. 북유럽 신화를 자세히는 몰라도 풍요의 여신이자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신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인 프레이야의 상징과 같은 목걸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다만,
“그러면 그거 신화 등급이라는 거잖아?”
신이 직접 착용하고 효과를 발현할 정도라면 신화 등급이라는 것이고,
“네!”
“네가 그 정도로 좀비를 때려잡았어? 릴리 로즈가 준 신화 등급이던데?”
그 말은 곧 생각보다 유다연이 릴리 로즈보다 더 많은 카르마 포인트를 획득했다는 뜻이었다.
“헤헤헤.”
그저 헤벌쭉 웃는 유다연의 모습에 평소 그녀를 무시하며 편견을 가지고 그녀를 대했던 걸 반성하며 사과하려는 찰나,
[하아……. 마스터. 유다연의 담당 지구의 의지가 재신(財神)입니다.]
군주의 에고가 내 착각 아닌 착각을 바로잡아줬다. 열심히 한 건 맞을 거다. 아무것도 없는데, 재신이라고 일방적으로 신화 등급 장비를 턱 하니 줄 순 없을 테니까. 아까 군주 에고가 말한 파괴(破壞)의 사건도 있고.
다만 결과보다 더 좋게 나온 거라는 거다. 릴리 로즈가 준 신화 등급이었다면, 유다연은 신화 등급 정도로. 더욱이 담당 지구의 의지가 재신 아닌가. 재신 특화라고 할까?
“아니, 잠깐만. 그런데 그거 효과가 무한한 아름다움을 가지게 된다 같은 거 아니었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프로디테의 허리띠 케스토스 히마스(ΚΕΣΤΟΣ ΙΜΑΣ)와 비슷한?”
“헤헤헤.”
“개쓰레기 템이네. 신화 등급을 뽑긴 뽑았는데, 비싼 쓰레기를 뽑았네.”
“아니에욧!!”
아니긴 맞구만. 개뿔. 그딴 걸 어디다 써? 종말 전이었다면 연예인이라도 하지.
유다연은 열심히 아이템 성능에 대해서 변명하듯이 설명했다. 단순히 아름다움을 유지시켜주는 게 아니라나?
아름답다는 건 신체가 균형을 이룬다는 뜻이고, 그렇기 때문에 신체의 불균형을 자동으로 잡아주고, 마력 회로를 통한 마력 유동이 더 원활하고 부드럽게 바뀌었단다.
무엇보다 풍요의 여신이 착용하던 목걸이였기 때문에 마력이 퍼센트로 상승하고, 전투 시 아군의 사기를 소폭 높여주며 마력 회복 속도도 소폭 높아진다나?
그럼 뭐해?
“응. 비싼 쓰레기~.”
“으으으으으! 아니라고욧!! 오빠는 여자의 마음을 몰라서 그래요! 저길 봐요!”
“응~. 안 봐.”
“고개 돌리지 말고 저기, 저기, 다 부러워하는 거 안 보여요?! 밤샘 전투에도 피부 트러블이 생기지 않고, 나이가 들어도 주름이 생기지 않는! 그야말로 여자라면 모두가 원하는 그런 특성!!”
“그래봐야 뭐해. 신화 등급 치고 전투 성능이 구린데.”
“으으으! 성능충!! 효율충!!”
“네네~. 다음 똥 아이템~.”
무려 신화(Mythology) 등급이다.
당장 내 아이템인 네메아의 사자 가죽은 차치하더라도 호신 전용 무기인 프라가라흐랑 비교해도 하늘과 땅의 성능 차이가 있다.
성능충이냐고? 성능충이다. (당당!) 묻기 전에 답한다. 효율충이다. (당당!)
종말의 세상에서 성능 말고 더 바랄 게 뭐가 있어? 사방에서 좀비가 들이닥치고 악마들이 나와 기괴한 요술을 부리는 세상에서.
“으휴. 나중에 분명히 이 목걸이를 재평가하는 날이 올 거예요! 분명히요!”
“응~. 아니야~. 그럴 일 없어.”
유다연이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쿵쿵 때리다가 여자들이 모인 곳으로 쿵쾅거리며 걸어간다. 자신이 삐졌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면서.
그러거나 말았거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유다연을 제외하면 다들 성능이 좋은 장비를 받은 건지 하나같이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포만감 같은 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으으. 지금 안전지대 적용 중이지? 어디까지지? 나가 볼까?”
“가자! 나 이거 써보고 싶어!”
“그러자. 잠깐 나가서 좀비랑 악마 좀 썰어 보고 오자.”
…
아니나 다를까.
기어이 참지 못하고 이제 막 이벤트가 끝났다는 걸 잊은 건지 우르르 영지 밖으로 향했다. 처음 몇 명이 움직이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다들 따라서 영지를 빠져나갔다.
“어휴. 저 전투광들. 쉬는 것도 훈련의 일환인데.”
그런 각성자들을 일별하고 내성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신체 스탯 모두 100포인트 상승.”
추가 보상으로 다시 2억이 넘게 모인 카르마 포인트를 사용했다. 난 이제 억 단위의 카르마 포인트가 있는 남자다. 고작 스탯 상승하는 것 정도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신체 스탯 [근력], [민첩], [체력], [내구], [마력]을 100포인트 상승시키겠습니까?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 이천사백만(24,000,000) 포인트가 차감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던 몇 초 전의 나를 증오해!!!
“뭐, 뭐야? 왜 2,400만이야? 옐로에서 그린으로 갈 때는 분명히 전부 다 해서 240만이었는데? 갑자기 10배가 튄다고?”
양아치냐?! 너네?!
『스탯 상승을 중지하시겠습니까?』
“…어휴. 아니요. 진행합시다. 시스템 양반.”
『신체 스탯 [근력]이 그린(Green) 랭크 99에 도달했습니다!』
『신체 스탯 [민첩]이 그린(Green) 랭크 99에 도달했습니다!』
『신체 스탯 [체력]이 그린(Green) 랭크 99에 도달했습니다!』
『신체 스탯 [내구]가 그린(Green) 랭크 99에 도달했습니다!』
『신체 스탯 [마력]이 그린(Green) 랭크 99에 도달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블루(Blue) 랭크로 올라갈 거라고 생각했던 스탯이 그린(Green) 랭크 99에서 멈췄다.
“뭐야? 왜 이래?”
『신체 스탯이 첫 번째 벽에 도달했습니다. 벽을 넘기 위해서는 깨달음이나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 이천만(20,000,000)이 필요합니다.』
“…벽?”
벽이라니? 무슨 벽을 말하는 거야? 깨달음? 이거 장르가 왜 갑자기 영지물에서 무협으로 바뀌어? 무슨 이십만도 아니고, 이백만도 아니고, 이천만이나 또 내래?
『포기하시겠습니까?』
“…아니. 일단 진행시켜.”
여기까지 와서 어떻게 포기하겠냐. 카르마 포인트가 없는 것도 아닌데.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 이천만(20,000,000)이 차감됩니다.』
『카르마 포인트를 사용해 벽을 넘기 위해서는 특수 스탯이 모두 동일 랭크여야 합니다.』
『특수 스탯 [위엄], [교감], [친화]가 모두 그린(Green) 랭크임을 확인했습니다.』
『모든 조건 통과.』
『신체 스탯이 그린(Green)에서 블루(Blue)로 벽을 넘기 직전입니다.』
『벽을 넘는 과정에서 약간의 고통이 따를 수 있습니다.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엉?”
『5.』
뭐, 뭔데? 뭔데 이렇게 겁을 줘? 그리고 솔직히 카르마 포인트 가져간 거에 대해서는 그냥 이렇게 얼렁뚱땅 넘어가는 거야?
『4.』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회귀 전에 블루 랭크는커녕 옐로 랭크에도 도달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내가 모르는 이런 게 나오는 건가?
『3.』
하긴 쉘터에 있는 누구도 블루 랭크에 도달하는 걸 보지 못했다. 쉘터가 아니라, 지구 전체로 봤을 때도 가이아 게시판에 블루 랭크 스탯을 달성한 이들에 대해서 언급한 걸 보지 못했다.
『2.』
블루 랭크에 도달했어도 말을 안 했겠지? 이런 특이한 일이 벌어지는데? 다른 때와 달리 이렇게 경고까지 보이는 상황에 엉뚱한 생각만 자꾸 떠오른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닌데.
『1.』
“엘라. 소피아. 내가…….”
『시작합니다.』
말을 끝내기도 전에 시스템은 무언가를 시작했고, 나는 갑자기 시야가 ‘핑―!’하고 돌아가면서 정신을 잃었다.
“주인님!”
“영주님?!”
시야가 돌아가고 정신이 침잠하는 순간에 다급하게 들려온 엘라와 소피아의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들은 목소리였다.
*
이요한이 길을 걷다가 정신을 잃은 직후,
“주인님!”
“영주님?!”
엘리아나와 소피아가 쓰러지는 이요한을 마력으로 받아냈다. 마치 허공에 보이지 않는 침대가 있는 것처럼 편안하고 반듯하게 누운 이요한의 모습에 둘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주인님…….”
“아이고. 영주님. 누가 길 한가운데서 벽을 넘어요!”
둘은 식겁했다는 듯이 놀라고 걱정스러운 감정이 목소리와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우리 영주님. 이런 부분에서는 상식이 부족하시네요. 깨어나면 선배님과 제가 좀 자세히 설명해드려야겠어요.”
“아, 그렇네요. 그래야겠어요. 후배님.”
“꼭이요. 세상에! 마스터(Master)의 벽을 넘는 걸 길을 걷다가 시도할 줄이야!”
“주인님…….”
둘은 걱정하면서도 이요한의 전신을 마력으로 꼼꼼하게 감싸고 [내성]을 향해 빠르고 신속하게 이동했다.
둘이 [내성] 문을 부술 듯이 열고 들어오는 모습에 [내성]에 소화된 [집사]와 [메이드] 모두가 놀라서 우르르 모여들었다.
“걱정하실 것 없어요. 주인님은 지금 벽을 넘고 계시는 거니까요.”
“…예??”
엘리아나가 안심시키기 위해서 꺼낸 말이 오히려 고용인들을 혼란으로 몰고 갔다. 그들의 상식선에서는 저런 식으로 벽을 넘지 않으니까. 아니, 저런 식으로는 벽을 넘을 수 없으니까.
“자세한 건 나중에 따로 설명할게요. 보니까 영주님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인간들은 다 똑같은 생각인 것 같더라고요. 교육을 위해서라도 한 번에 설명할 일이 있을 테니까. 그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예요. 중요한 건. 영주님은 괜찮으실 거라는 거예요.”
소피아의 설명에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 얼굴을 한 고용인들이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기에 물러났다.
다만,
“필요한 게 없으실까요? 벽을 넘으신 거면 영주님의 침실로 바로 이동하시나요?”
그들은 그들의 본분을 다해 이요한을 돕고자 했다. 차원의 방랑에서 벗어나 안온한 삶을 영유할 수 있는 원동력이자 근본이 이요한이기 때문이다.
“주인님께서 벽을 넘는 과정에는 우리가 개입할 수 없어요. 그러니 그 이후를 생각해서 준비해줘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엘리아나님.”
고양이 수인 [집사]가 대표로 대답하는 사이에 두 여인과 이요한은 영주의 침실이 있는 4층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영주의 침실로 들어가 침실에 있는 가구를 모두 치우고 교실 네 개를 붙여 놓은 것 같은 크기의 넓은 방 한가운데 이요한을 조심히 눕힌 둘은 그때부터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요한이 깨어나는 나흘 동안.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