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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130화 (130/183)

130화

<내 몸에서 냄새가 심하게 나나?>

소피아의 지론, ‘마음껏 힘을 발산하면 뭐든지 다 된다.’는 생각보다 효과가 있었다.

“이게 왜……? 돼?”

그냥 효과가 있는 게 아니라, 생각한 것과 아득한 거리감이 느껴질 정도로 효과가 좋았다.

스―팍! 스읏―빡!

심지어 소피아가 준 메이스를 뒤로 던지고 주먹으로 좀비를 두들겨 패는 것도 가능해졌다.

음? 그건 원래 가능한 거 아니냐고?

내가 말했잖은가. 좀비를 두들겨 패고 있다고. 죽이는 게 아니라.

그래. 절반은 썩어 문드러진 시체와 다름없는 좀비를 죽지 않게 힘을 조절하며 패는 중이다. 어쩌면 이 과정 역시도 가신인 엘라와 소피아 덕분에 사사(師事)라는 효과도 영향을 미쳤을 거다.

둘은 이미 아주 예전에 블루 랭크를 돌파한 존재니까. 실제로 무시무시해서 휘두르기 꺼려졌던 메이스는 첫날 6시간 만에 능숙하게 다루게 되었고, 이틀을 꼬박 휘두르자 [오러]를 씌우는 여러 파생 기술이 가능해졌고, 사흘째에 메이스를 내려놨다.

그리고 지금까지 주먹과 발길질 중이다. 이제는 좀비를 쉬이 터트리지 않고 샌드백처럼 아껴(?) 팰 수 있게 됐다.

잘 된 것 일다. 다행이고. 원했던 상황이기도 하다. 다만 한 가지 문제라면,

“오! 영주님 생각보다 재능이 있으시네요?! 보름은 걸릴 줄 알았는데. 열흘도 안 됐는데 적응을 끝낼 줄이야.”

내가 [내성]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9일하고 11시간 07분 52초 동안 좀비 무더기 한가운데서 강제 부비부비를 하고 있다는 거다.

스읏―푸확!

“아오! 터졌어!”

9일 넘게 잠도 못 자고 이 짓을 하고 있다는 걸 떠올리고 감정이 격해진 순간 힘이 들어가면서 좀비가 터져 버렸다.

“아오. 기분 더러워!!”

터져 나간 좀비의 썩은 살점과 뼈가 몸과 얼굴에 묻어 찝찝함과 짜증을 동시에 전해줄 때,

“엘라임.”

“알았어요. 엘라.”

무려 엘라가 소환한 물의 정령왕이 힘을 일으켜 몸을 씻기고 말려줘서 악취는 없지만, 좀비의 살점에 달라붙었던 기억은 고스란히 기억에 저장되고 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수천 번의 기억이.

“돌겠네. 이게 맞아? 사람이 욱하면 힘을 더 쓸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아니죠. 마스터를 괜히 마스터라고 불리는 게 아니에요. 영주님은 이제 몸을 밀리미터 단위로 다룰 수 있다고요. 원한다면 오러로 구름을 꿰뚫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원치 않는다면 코앞에서 날린 주먹에도 상하지 않게 할 수 있어요.”

문득 든 생각인데, 어쩌면 소피아의 적성은 성녀 따위가 아닐 수도 있다. 응. 확실히. 성녀를 ‘따위’로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그녀는 본능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몸을 쓰는 법에 능숙하다 못해 천재적이다.

소피아는 성녀로 간택 받지 못했더라도 이름을 날리거나 차원의 역사에 기록을 남기는 강자가 되었을 거다.

“음? 글쎄요?”

다시 새로운 좀비를 두들기면서 그런 내 생각을 묻자 저런 애매한 답변이 돌아온다.

“저는 이런 능력이 있다는 걸 모르고 살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능력? 재능? 이런 몸을 쓰는 법은 오히려 차원 멸망의 끝에 배우게 된 거라서요. 공허와 싸우면서 병아리의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이어서. 헤헤.”

소피아의 말은 따지자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뜻이었다. 이런 쓸데없는 말을 왜 하냐고?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으니까.

“오케이! 끝!!”

정확히 30분. 중간에 딴소리를 하기도 하고, 소피아와 엘라의 질문에 답도 하고, 가끔 킹 받게 하는 소피아의 농담에도 어울려주면서도 쉬지 않고 두들긴 좀비를 죽이지 않고 끝냈다.

“고생하셨어요! 영주님!”

“좋아! 아주 좋아! 자극적인 매운 라면이랑 기름기가 절절한 치킨에 시린 맥주를 마시고,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한숨을 푹 잘 거야.”

“그렇게 하세요. 영주님.”

웬일인지 소피아가 순순히 대꾸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진하게 그리면서.

“뭐, 상관없지. 이젠.”

경쾌한 발걸음으로 안전지대 안으로 들어와 영지를 향해 걸으면서 [영지 관리] 메뉴를 열었다.

“어디 보자. 아! 맞다! 특수 스탯이 블루 랭크로 올라갈 때도 문제가 생겨?”

“그건 아닙니다만…….”

“뭐야. 그 불길한 줄임표는?”

“신체 스탯이 육체와 마력의 성장이라면, 특수 스탯은 격의 성장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엘라가 하고 싶은 말은 아마도 하루 이틀은 감기에 걸린 것처럼 몸이 불편할 거라는 거예요.”

“정말?”

“네. 그렇습니다. 주인님. 최소한 안전한 곳에서 시도해주세요.”

“그건 당연하지. 이번에 나도 진짜 깜짝 놀랐다고.”

그렇게 두런두런 엘라와 소피아를 각각 양옆에 대동하고 내성으로 향하는 길에,

“어! 보스! 드디어 끝나셨습니까? 아! 저, 저는 먼저 바쁜 일이 있어서.”

날 발견하고 반가워하며 다가오던 네이선이 뒤늦게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반대 방향으로 휙 돌아서 멀어졌다.

“어라? 오라버니?! 훈련 끝났어요……어어어어우와아아! 나 화장실!”

새롭게 받은 아이템인 할버드를 한 손으로 훙훙 휘두르던 릴리도 나를 발견하고 다가오다가 태극권이라도 맞은 것처럼 반대 방향으로 달려간다. 화장실을 찾으면서 영지 방향이 아니라, 좀비가 있는 쪽으로 가는 건 무슨 경우지? 인도 출신이야?

그런 상황은 영지 안으로 들어서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이상했던 건,

“오빠아아아! 우와! 끝났어요?! 수고했어요! 안녕!!”

유다연이다. 누가 봐도 수상한 행동과 말투 그리고 어색한 몸짓? 평소처럼 주인을 맞이하는 댕댕이처럼 달려들었다가 눈이 사정없이 떨리는 것 같더니 ‘안녕!!’이라는 엄청 어색한 인사를 남기고 내게서 전력으로 멀어진다.

“혹시 말이야.”

움찔―!

내성으로 향하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자 두 여인이 모두 몸을 움찔 떤다.

“내 몸에서 냄새가 심하게 나나? 아! 옷에서 나는 건가? 아이템? 이거? 초경량 방검방탄복에서? 이거 아이템이 아니니까?”

내 질문에 잔뜩 일그러진 소피아의 얼굴을 보니 역시 맞는 것 같다. 아무래도 냄새가 심하게 나는 게. 그동안 좀비 틈에서 오래 있어서 코가 마비돼 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걸 테고.

“밥보다 일단 씻어야겠다! 서두르자!”

“…네. 주인님.”

“끅! 네. 영주님.”

소피아가 딸꾹질을 할 정도로 숨을 참고 있었다는 것에 미안함을 느꼈다. 그래. 분명히 그랬었다!

식사를 거르고―블루 랭크에 오른 이후, 열흘이 넘게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는데도 멀쩡하니까― 6층에 있는 내 방에 딸린 넓은 욕실로 직행했다.

욕조에 잔뜩 뜨거운 물을 받았다. [내성]에 작동되는 여러 생활 마법 중 하나로 원하는 온도의 물이 성인 네 명이 들어가도 남을 정도의 커다란 욕조에 순식간에 차오른다.

욕조에 입욕제를 잔뜩 풀어놓고, 들어가기 전에 샤워까지 말끔히 끝내고 몸을 담그는 순간,

스읏―.

예리해진 감각에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성]에는 여러 생활 마법이 있었고, 블루 랭크에 오르기 전이었다면 듣지 못했을 정도로 [내성]의 방문들은 소리가 나지 않았다.

지금도 문에서 소리가 났다기보다는 문이 열리면서 생긴 공기의 변화에서 난 소리를 잡아낸 것이었다.

찰박―. 찰박.

바닥에 맺힌 물을 맨발로 밟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걱정? 그런 건 하지 않는다. 적의를 가진 존재가 [내성]으로 들어올 가능성은 0에 수렴하니까.

“주인님.”

그리고 역시나 그곳에는 적이 아니라, 얇은 수건을 걸친 엘리아나가 기다란 욕조 테이블에 와인과 식사가 담긴 접시를 들고 다소곳이 서 있었다.

“…좋아. 이젠 알겠어.”

“…….”

“다들 내 몸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도망친 게 아니라는 걸.”

“…….”

* * *

이요한이 낯이 뜨거워지는 깨달음을 얻은 상황에 대해서 알려면 며칠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요한이 메이스를 손에서 던져버린 이후, 좀비들과 본격적으로 몸의 대화를 하기 시작했을 무렵 늦은 저녁.

지의사들이 모두 [내성] 1층 한쪽에 있는 넓은 식당에 모여 있었다. 언젠가 이런 장면을 본 것 같다면 착각이 아니다.

이요한이 블루 랭크에 올라 쓰러진 첫날 밤에도 이렇게 모였었다. 그때와 차이가 있다면 그때는 주요 고용인도 참석했지만, 오늘 이곳에는 오로지 지의사들만 모였다는 것이다.

“다 모였어요.”

이사벨라 노아가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식당의 천장을 향해서 말하자,

[좋아요. 반가워요. 여러분.]

천장에서 고고하고 단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려 바람의 상급 정령 실라이론을 이용한 원거리 통신이다. 하급인 실프를 이용하면 간단한 정보만 일방적으로 전달할 뿐이지만, 상급 정령은 ‘소리’에 한해서라면 과학의 산물인 전화기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오늘 모인 이유를 알고 있겠죠?]

“당연하죠!!”

“그렇습니다.”

특이한 것은 엘라의 질문에 대답하는 이들은 지의사 중에서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안 그래도 무언가 이상하고 불편한 표정이던 남자들 중 헌터가 손을 들었다.

“저기요.”

[뭐죠?]

“나는 아니, 우리는 왜 부른 거예요? 그, 그, Shoot the foot! 괴상한 주제의 회의에 우리가 필요가 있어요?”

[당연히 필요하죠.]

“당연하죠!”

엘라는 차분하게, 그리고 유다연은 맹렬하게 헌터의 불만을 잠재웠다.

“…우리는 남잔데?”

[그거랑 무관합니다. 당신들 역시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합니다.]

“다들 공범이 되는 거야! 그래야 비밀을 누설하는 입을 막을 수 있어!”

유다연은 이제 존댓말도 생략하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들이 이렇게 모인 이유는 뭘까? 여자들은 목소리를 높이고, 남자들을 꺼림칙해 하는 이유는?

[영주 부인 후보자가 결정될 때까지 누구도 이 방을 나설 수 없어요.]

“오늘 기필코 결판을 낼 거야! 정실 전쟁의 끝을 보게써!!”

바로 저런 주제이기 때문이다.

“아 도른자야. 이 도른자야. 그러니까 우리는 빠지고 싶다고오!!!”

[안 돼요.]

“안 돼! 남아!!”

헌터는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무시하고 당장이라도 자신의 뒤에 있는 식당 문을 박차고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잡히겠지. 어휴. 우리 영주님 불쌍해서 어쩌냐…….’

헌터의 불만이 처참하게 침몰한 후,

“그런데요. 궁금한 게 있어요. 엘리아나 언니. 지금까지 가만히 계시다가 왜 갑자기 본부인 자리를 노리는 거죠? 이제 와서? 그것도 본격적으로? 소피아 언니도 그렇고요.”

유다연이 작은 입을 열어 이 강압적인 회의가 벌어지게 된 원인에 관해 물었다.

[그건 주인님이 이제 마스터에 도달하셨기 때문이에요.]

순순히 답해주는 엘리아나. 그러나 대답을 들은 지의사들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거랑… 이거랑… 상관이… 있어요?”

유다연이 당장이라도 화를 내고 싶은 걸 참아가며 물었을 때,

[이해를 못 하시는군요. 좋아요. 이런 자리를 마련한 마당에 더는 점잔을 떠는 것도 웃기겠군요. 직설적으로 말할게요. 주인님께서 마스터에 오르셨기 때문에 이제 저는 주인님은 저와 정사를 치르시다가 다치실 일이 없었다고 하면 이해가 되나요?]

“엑~?!!!”

[아! 하나 더. 주인님께서 마스터에 오르셨기에 임신 확률이 엄청 올라갔어요. 그것도 이유 중 하나입니다.]

“…졌다.”

유다연은 개처럼 패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십분 공감을 한 얼굴로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다른 지구의 의지의 사제들도 같은 얼굴이었다.

다만 차이라면 여자들은 진짜 ‘와! 졌다. 졌어! 저걸 어떻게 이겨?!’라는 얼굴이라면, 남자들은 ‘도른 여자 옆에 도른 여자라니! 우리 영주님 불쌍해!’라는 속마음이 드러나는 얼굴이었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얼굴인 건 비슷하지만.

[그렇다면 제가 첫 번째라고 인정하시나요?]

“조, 좋아!”

[저와 소피아가 첫 번째와 두 번째로 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주인님은 마스터에 막 오르셨고, 그래서 정사 중에 어떤 사고가 벌어질지 알 수 없어요. 흥분한 주인님의 힘에 여러분의 연약한 육체가 상할지도 몰라요. 저희가 먼저 확실하게 체험하고 알려드릴게요.]

“그, 그만 때려요. 다연이는 이미 죽었다고요.”

릴리 로즈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끝으로 식당에는 제법 오랜 시간의 불편한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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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I.

1. 인도에서는 화장실은 신성하지 않은 것이라고 여겨 집에 만들지 않거나 집 바깥에 멀리 두거나 그냥 노상에서 볼일을 해결한다고 한다. 정부가 화장실 1억 개를 지원했지만, 소용없었다고.

2. 소피아는 냄새가 나서 인상을 쓴 게 아니라, 웃음을 참는 중이었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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