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2차전 고?>
“…좋아. 이젠 알겠어.”
“…….”
“다들 내 몸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도망친 게 아니라는 걸.”
“…….”
“일단 들어와.”
“고맙습니다. 주인님.”
강제적인 상황에서 획득한 허락임에도 허락은 허락이라는 건지 엘라의 얼굴에는 홍조와 함께 행복한 미소가 나타났다.
“이건 진짜 병신 같은 질문이라는 거 아는데. 혹시나 해서 묻는 거야. 본심은 아니야. 오해하지 말고 들어.”
“네. 주인님.”
“인간들 사이에서, 그러니까 우리 지구에서 이런 정도의 대쉬는 서로 굉장히 친밀한 관계가 되는 거고, 면밀히 서로의 알몸을 주무르고, 세밀히 서로의 몸을 탐닉하면서, 농밀한 관계를 나누는 그런 사이가 되는 거야. 알고 있어?”
난 하이엘프나 엘프들은 친한 사이에 같이 목욕하는 문화가 있는 게 아니냐는 식으로 돌려 말한 거다. 지금 내 앞에서 이런 식이면 이후 벌어질 일은 어른의 그것이라는 걸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고.
당황해서 말이 굉장히 길어지는 건 오래된 습관이었다.
아무튼,
“네. 전 주인님의 여자가 되고 싶어요.”
엘라는 자신의 지금 행동은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오해가 아니라는 걸 순순히 인정했다.
비겁해 보인다고? 남자가 이 정도로 판이 깔렸으면 뭐 어쩌고 해야 한다고?
내가 가장 혐오하는 게 어린아이를 학대하는 것과 위력으로 상대를 성적으로 학대하는 거다. 남자든 여자든.
엘리아나가 나를 좋아하는 거? 몰랐냐고? 내가 빡대가리도 아니고 그걸 몰랐을까. 눈치를 그렇지 주는데?
하지만 확실하게 내가 먼저 다가가거나 티를 내지 않은 건, 어쨌든 그녀는 나를 ‘주인님’이라고 부르고, 그녀는 나를 통해서 차원의 틈에서 빠져나왔으며, 세계수도 내 영지에 심었고, 마지막까지 함께 하던 동료 엘븐나이츠도 내가 소환했다.
이런 상황인데? 내가 먼저 다가가? 이렇게 찾아왔다고 ‘오! 이따다끼마쓰!’이러면서 바로 달려들어?
‘어휴.’
“솔직히 나도 좋아. 그런데 넌 괜찮아?”
“네? 저, 저도……. 좋아요. 좋아해요. 주인님.”
“그렇단 말이지?”
“네. 제가, 제가 첫 번째에요.”
그리고 나와 엘라는 다음 날 새벽이 돼서야 눈을 붙였고, 10시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눈을 뜬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지난날 광란의 흔적들이었다.
‘아. 저질렀구나.’
그 흔적들을 보면서 난 그동안 지켜오던 선 하나를 넘어버렸다는 걸 인지하고 인정했다. 종말의 세상 이전에도 죽음의 위협을 맞닥뜨려 누군가를 죽이고 살아남는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성적으로 방출하는 거다.
엘라의 몸은 신비로웠고, 엄청났다. 어떤 것도 다 받아줄 수 있었고, 어떤 자세도 다 가능했다.
“아―. 큽. 흠흠. 아아.”
잠긴 목을 풀어낼 때쯤.
움찔―.
바로 옆에 누워 있던 엘라의 몸이 움직이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일어난 거 다 알아.”
“…안녕히 주무셨어요? 주인님?”
어제 온갖 체위를 다 했음에도 아침의 엘라는 볼에 홍조를 띠고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인 채로 이불을 끌어안아 자신의 몸을 가렸다.
그 모습이 오히려 더 요염하고 색정적으로 느껴졌다면 내가 변태인 걸까?
“2차전 고?”
나도 모르게 그렇게 병신 같은 말을 해버렸는데,
“…고고.”
엘라가 또 그걸 받는다.
결국 점심을 먹을 때가 돼서야 나와 엘라는 방에서 나올 수 있었다. 1층에 내려와 식당으로 들어선 순간,
우뚝―!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분주하고 소란스럽던 식당에 침묵의 폭탄이 터졌다. 일제히 행동을 멈추고 문을 막 열고 들어서는 나와 엘라를 바라보는 이들의 눈빛.
어제까지의 나였다면 이런 노골적인 관심에 주춤거렸을 텐데,
“뭘 봐?”
오늘의 나는 다르다. 뭔가 한 꺼풀 벗어 버린 것 같달까?
“주인님.”
“응?”
“어떠신가요?”
“…지금?”
“네?”
“그걸 지금 여기서 묻는다고? 엘라 너! 엄청 개방적이구나?!”
“네?”
“나야 좋았지. 엄청 좋았어. 이제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 끝내줬다고!”
“…으아아아! 아뇨! 아닙니다. 주인님! 그게 아니라! 그……!”
“영혼이요. 또는 정신. 스트레스. 해방감. 뭐 이런 걸 물어보는 거예요. 우리 선배님은요. 좋은 아점입니다. 영주님.”
그제야 난 엘라가 편안해진 내 얼굴을 보고 질문한 거라는 걸 깨달았다.
‘가볍지.’
스트레스로 무겁던 머리가 가벼워졌다. 쿨 샴푸를 덕지덕지 바른 두피에 선풍기를 최대한으로 틀고 머리를 말리는 느낌? 알게 모르게 날카롭던 신경이 사라졌다.
특히나 열흘에 가깝게 좀비 떼 속에서 몸과 정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인 그 날에.
회귀 이후 실로 오랜만에, 회귀 전 식물인간이었던 때까지 치면 근 15년 만에 치른 정사.
말할 필요가 있을까? 영혼의 해방감을 만끽하는 중이지. 다만,
“엄……. 미안해. 엘라. 내가 지금 좀 하이한 상태라서 그래. 사과할게. 미안.”
얼굴이 거의 익을 정도로 빨갛게 변한 엘라에게 미안할 뿐이다.
“괘, 괜찮아요. 저도 조, 좋았어요.”
그걸 또 받아주네. 와, 솔직히 아까 ‘2차전 고’를 받아 준 것만 해도 엄청난 건데.
“저기요. 영주님. 똑똑?”
“응?”
“그러다 눈에서 떨어진 꿀이 김치찜으로 들어가겠어요. 정신 좀 차리세요. 선배님도요! 다음 주는 제 차례라고요!”
“그래. 미…? 뭐? 뭐라고?”
소피아가 아무렇지 않게 엄청난 소리를 한 것 같은데? 왜 아무도 그걸 이상해하지 않는 거지? 나만 이상해? 엘라도, 당사자인 소피아도, 그리고 어느새 옆에 쟁반을 놓고 앉아 커틀렛을 크게 베어 물고 있는 유다연까지도 태연하다.
이쯤 되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뭐지? 이거? 뭔가 이 분위기……. 나를 제외한 단톡방이 있는 것 같은 분위긴데?
“뭐야? 이 분위기? 아니, 그 전에 다음 주? 네 차례?”
“선배님? 말씀 안 드렸어요?”
“으응……. 말을 꺼낼 겨를도 없이…….”
땅그랑―!
유다연이 포크를 떨어뜨렸고,
“아하~. 말을 꺼낼 겨를도 없이 아주 즐기셨다? 뜨거우셨다? ‘회의’에서 정한 걸 전하지 않고 마냥 행복하셨다?”
소피아는 선배님이라고 부르며 존중하던 모습을 벗어던지고 잔뜩 비꼬고 있었고,
“어머! 어머! 어머머머머!!”
유부녀 서다혜는 ‘어머’라는 단어만 반복하면서 리리노의 눈을 가렸다. 아니, 아줌마. 눈을 왜 가려요? 가리려면 귀를 막아야지?
‘혼란하구만.’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스터.]
바람직하긴 미친. 이게 뭐야? 며칠 전에는 뜬금없이 장르가 무협이더니, 이제는 뭐 로맨스야? 아니면 야설? 이거 15세야 이 미친 것들아!!
“제대로!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이야기해!”
“지금요?”
진짜 지금 하냐고 뭔가 엄청난 문제가 있는 상황이라는 걸 암시하는 뉘앙스로 되묻는 소피아의 말에,
“웅? 영쭈님!”
바로 옆에 리리노와 또래의 어린아이들이 설기와 설기의 새끼를 품에 안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는 걸 인지했다. 블루 랭크에 도달한 마스터의 기감을 속이고 접근하다니. 우리 리리노와 쪼꼬미들, 천재인가?
딱―! 딱―!
“영주님! 정신 차리세요! 정신!”
소피아의 핑거스냅에 아이들에게서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린 후,
“밥 먹고 내 방으로 와.”
그렇게 지시를 변경해야 했다.
“아, 그럼 영주님. 그것도 안 하셨겠네요?”
“그거라니? 중의적 의미가 가득 담길 단어를 쓰지 마! 여러 가지가 떠오른다고!”
“오호~. 뭔지 궁금하지만, 지금은 넘어가고요. 특수 스탯 상승을 여쭙는 거예요.”
“안… 했는데?”
안 했다는 내 답에 소피아의 눈이 엘라에게 닿는다. 소피아의 눈에서 레이저라도 쏜 걸까? 엘라는 그녀의 시선이 닿자 얼굴과 목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에휴. 영주님. 지금 기분 어떠세요? 엄청 좋죠? 막 이상하게 하이하고, 사소한 것에도 딴생각이 엄청 빠르게 일어나고요?”
“어, 어어. 맞아.”
“스트레스를 아주 제대로 날리셨나 보네요. 지금도 좋아요. 식사는 다 하신 것 같으니까. 바로 올리셔도 되겠어요.”
“지금?”
“네.”
“한다?”
“네에.”
왠지 점점 소피아가 나를 한심하게 보는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충성 스탯 만땅인데?
“또, 또. 정신 챙기셔요. 영주님.”
아, 또 딴생각. 자꾸 생각이 옆으로 빠진다.
“특수 스탯 전부 블루 랭크로 상승시키겠어.”
『신체 스탯 [위엄], [교감], [친화]를 100포인트 상승시키겠습니까?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 칠천이백만(72,000,000) 포인트가 소비됩니다.』
“와. 미친.”
보통 특수 스탯은 하나다. 각성자는 다 그렇다. 솔직히 나 빼고 전부 그렇다고 조심스럽게 확신해 본다.
왜냐하면, 마치 짠 것처럼 신체 스탯 5 올리는데 필요한 카르마 포인트와 특수 스탯 1 올리는 들어가는 카르마 포인트가 같다. 마이너스와 플러스의 차이만 있을 뿐. 그리고 신체 스탯은 다섯(5) 종류다.
그래서 본래의 나라면 2,400만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가 필요했을 거다. [문을 여는 열쇠]의 영향으로 특수 스탯이 세 가지가 아니었다면.
‘7,200만. 어휴.’
“진행시켜.”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 칠천이백만(72,000,000)이 차감됩니다.』
『특수 스탯 [위엄]이 그린(Green) 랭크 99에 도달했습니다!』
『특수 스탯 [교감]이 그린(Green) 랭크 99에 도달했습니다!』
『특수 스탯 [친화]가 그린(Green) 랭크 99에 도달했습니다!』
『특수 스탯이 첫 번째 벽에 도달했습니다. 벽을 넘기 위해서는 깨달음이나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 1,000만이 필요합니다.』
와. 그나마 양심이 있는 걸까? 2천만이 아니라, 천만이다. 와~. 고오오오오맙다. 아주.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 천만(10,000,000)이 차감됩니다.』
『모든 조건 통과.』
『특수 스탯이 그린(Green)에서 블루(Blue)로 벽을 넘기 직전입니다.』
『신체 스탯이 첫 번째 벽을 넘었음을 확인합니다.』
『특수 스탯의 진화를 즉시 진행합니다.』
“큽?”
지독하고 날카로운 짧은 두통이 일시에 찾아왔다가 사라졌다.
『완료.』
그리고 저 시스템의 메시지처럼 업그레이드가 끝나고 내가 마주한 세상은,
“뭐야? 이게?”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