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수치사 하는 최초의 각성자로 기록되는 게 아닐까?>
“내가 죽으면 다잉 메시지로 범인은 소피아라고 적을 거야.”
“걱정하지 마세요. 신은 죽지 않아요. 영원불멸이라고요.”
“그럼 난 신이 될 수 없겠네?”
“아뇨. 영주님은 영원불멸할 거예요. 그리고 저는 영주님의 두 번째 부인이자, 성녀가 되어 함께 오래도록 곁을 지킬 거예요. 제 촉이 그렇대요.”
“그 촉 똥촉인 듯.”
“흥응~. 흥흥응~.”
소피아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는 것 같았다. 그녀의 눈은 이제 푸른색 마력이 흘러나올 정도로 반짝이면서 진심 모드가 되었음에도 콧노래를 멈추지 않을 만큼 즐거워 보였다.
다만 그녀가 즐거워할수록 의도치 않게 내게 데미지가 온다는 게 문제다. 그것도 멘탈에 금이 가는 데미지가.
“이러다가 진짜로 수치사 하는 최초의 각성자로 기록되는 게 아닐까?”
소피아에게 억지로 붙들려 하나의 새로운 종교의―무려 내가 신인 사이비스러운― 탄생을 지켜본 시간은 단언컨대 내 인생에서 가장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손과 발이 실시간으로 닳아 없어지는 환상통이 생기는 기분이었으니.
“그럼 이제 영주님.”
“어. 그래. 마음대로 해. 빛도 내가 만들었다고 해도 좋아.”
“오! 좋아요! 하긴 영주 님께서 [영지]를 만들지 않았다면 이런 빛은 어디서 구하겠어요? 그건 나중에 추가할게요.”
추가할 거냐. 빌어먹을. 농담을 빙자한 비꼼을 모르는 거냐?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거냐?
“그것보다요. 이제 정하셔야 해요.”
“뭘? 종교 이름?”
“그것도 중요한데요. 그것보다 이거요. 베네핏이요.”
“베네핏?”
다른 말로 혜택이다. 앞서 [정복 군주의 인장]의 에고도 언급했고, 소피아도 언급한 혜택. 그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일까?
이해가 안 된다는 상황을 고스란히 드러내 자신을 바라보는 내 눈을 보더니,
“영주님. 종교는 왜 생겼을까요? 어떻게 종교라는 걸 만들 생각을 했을까요?”
차분해진 소피아가 던진 질문은 고차원적이었다.
“음? 그거야. 뭐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뭐랄까.”
솔직히 종교의 기원이 어디인지는 학자도 밝히지 못하는 문제라고 알고 있다. 종교라는 것이 수학처럼 어디부터 종교고 그 이전은 종교가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그 경계가 분명하지 않으니까.
“그럼 더 쉽게요. 동물이나 곤충은 그러지 않는데, 왜 인간이나 유사 인류에게만 종교라는 문화 체계가 생길까요?”
“설마 그게 베네핏, 그러니까 혜택 때문이다.”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고대에 불을 숭상했다거나, 번개를 숭배했다거나, 소를 섬기는 일들도 다 저걸 믿으면 나와 내 가족이, 부족이 노여움을 피하고 안전할 수 있다! 혹은 농사를 망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생각에서 출발하는 거죠.”
눈이 반짝인다는 관용어구가 있다. 지금 소피아의 눈이 그렇다. 반짝반짝 빛을 내며 나를 올려다보는 눈동자에서 흥미와 흥분이라는 이름의 별이 떠 있었다.
“음. 그래서 종교 창설에 베네핏이 당연하다?”
“아니죠!”
“아니야?”
“종교 창설에 가장 중요한 게 베네핏이라는 소리죠!”
“음.”
“쉽게 정하기 힘드시면 제가 몇 가지 괜찮을 걸 추려볼까요?”
‘제발 허락해! 나에게 맡겨줘!’라고 말하고 있는 눈을 보면서 어떻게 거절할까? 고개를 끄덕여 허락하자마자,
『[영지 관리]의 숨겨진 기능. 종교관 창설 메뉴를 불러옵니다.』
『종교관 창설은 몇 가지 단계를 거쳐 완성됩니다.』
『[영주]의 가신 소피아 로렌의 등급이 최고 등급 권한까지 격상됩니다.』
이런 시스템 메시지가 출력되고 소피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메시지를 다루기 시작했다.
“어? 이거 괜찮네요. 다산(多産). 세계수와 시너지를 일으킨다면…….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거예요.”
“그렇군.”
“오! 이런 것도 있네요? 전쟁 군주. 괜찮네요. 현재 영주님과 우리 영지의 상황을 고려하면요. 버프가 아니라, 신자의 수에 따라서 영구적으로 전투력이 상승하는 거니까요.”
“음.”
“오! 이것도!”
소피아는 열을 내며 좋아하고, 나는 멍청하게 ‘음’, ‘그래.’ 같은 추임새를 넣으면서 적당히 대꾸해주고 있었다.
중요한 상황인데 너무 대응이 멍청한 거 아니냐고? 진지하게 하라고?
내가 영지가 그린(Green) 랭크가 되고 성소에서 성소 담당 시스템에게도 말했다시피 난 내가 잘 모르는 전문적인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는 걸 안다. 그리고 종교에 관해서는 성녀인 소피아가 누구보다 전문가다.
‘물론 그 전문가가 신뢰할 수 있어야 하지만.’
“음? 오! 오오!! 영주님! 이거요! 이거예요!”
이것 봐라. 금방 결론이 나오지 않나.
“뭔데?”
“이거요! 신성(神聖).”
“신성? 신성력 할 때 그 신성?”
“네. 신성(神性)이 아니라, 신성(神聖). 성스럽고 깨끗한 기운을 뜻하는 단어요.”
처음에는 왜 소피아가 이렇게 흥분했는지 바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마력 성질이 변하는 거야? 아니면 추가되는 거야?”
블루 랭크에 오른 특수 스탯의 영향으로 격이 상승한 내 머리는 그 효과를 바로 이해했고 소피아가 보고 있는 베네핏을 나 역시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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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핏 ― 신성(神聖)
이 특별한 혜택은 신자의 마력에 특별함을 부여한다. 신을 믿는 것만으로 신자의 마력은 성스럽고 깨끗한 기운을 가진다. 성스러운 마력은 삿된 것을 배척하고, 악을 경멸하며, 마(魔)를 부수는 힘을 가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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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이걸 단지 종교를 믿는 것만으로?”
설명이 더 길게 이어지고 있지만, 앞에 나열된 내용만으로도 나를 기겁하게 하기에 충분했으며, 내용을 곱씹을수록 이걸 어떻게 쓸지, 이게 불러올 효과들이 빠르게 연상되기 시작했다.
“미친!”
“아! 역시 그럼 그렇지. 조건이 없는 게 아니네요. 뒤에 보니까. 베네핏의 양과 질은 신자의 수에 따라서 결정되는 게 아니에요. 오로지 신자 개개인의 믿음의 순수성에 따라서 질이 달라져요.”
“믿음의 순수성?”
“음. 얼마나 진실하게 신을 믿는가에 대한 정도?”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얼마나 순수하게 신을 믿는지?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숫자요? 숫자? 아! 숫자! 충성 스탯! 영주님은 충성 스탯이 있어요! 와아~! 이거 정말 좋은데요?”
“충성 스탯이?”
“네! 우리가 설정하려는 종교관에서 신은 영주님이라고 했잖아요?”
“그랬지. 그래서 내가 수치 사할 뻔했고.”
“헤헤헤. 그러니까 신을 향한 믿음의 순수성은 충성 스탯이라고 봐도 무방한 거죠. 따라서 충성 스탯이 높을수록 혜택의 질과 양은 강해진다는 거예요. 그 말은 곧 충성 스탯이 높은 영지민일수록 더 강해진다는 뜻이고요.”
“아!”
소피아의 호들갑이 괜한 게 아니다. 이건 엄청 좋은 거다. 충성 스탯이 90 이상인 이들의 행동은 대동소이하다. 그들은 마치 광신도처럼 영주인 나를 욕하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 이들이 더 강해진다면? 좀비와 악마에게 치명적인 마력을 다루면서?
“그걸로 하지.”
“탁월한 선택이세요! 그럼 이제 교리를 선택해야 하는데요.”
“교리?”
“네. 엄밀히 따지면 규칙 같은 거죠. 예를 들면 ‘하루에 한 번 살아 있는 신인 영주님께 기도하라. 그리하면 더 강해질 것이다.’라는 식이죠. 다만 교리라는 건 일종의 규칙이자 규범이에요.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들. 그러니까 조금 고민해서 정하는 게 좋을 거예요.”
“음. 몇 개까지?”
“많이 정할 수도 있는데. 서너 개 정도가 딱 좋아요.”
“좋아. 그러면 우선하나. 영주와 지의사 그리고 영주가 소환한 존재에게 신체적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이게 가장 첫 번째야.”
내가 길게 생각하지 않고 말하자 여러 의미가 담긴 눈빛으로 빤히 보더니,
“영주님은 배신에 대한 두려움이 깊으시네요.”
어딘가 평소의 밝은 소피아와 다른, 이질적인 무언가가 덧씌워진 것 같은 목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감정이 담기지 않았으며 눈앞에 있는 텍스트를 그대로 읽는 것 같은 목소리가.
“…….”
한참을 말없이 내 눈을 응시하던 소피아는,
“그런 말랑한 교리가 아니라, ‘영주에게 절대 충성을 다한다.’ 같은 게 어떠세요?”
다시 평소의 발랄한 소피아의 목소리로 묻는다. 드라마를 처음 본 소녀처럼 눈을 반짝이면서.
“아니. 그건 악용될 소지가 있어.”
“음? 음! 음! 측근이 배신할 경우를 걱정하시는군요. 그들의 명령으로 영주나 간부를 공격할 경우는 교리를 위반하는 게 아니니까? 역시.”
소피아는 혼자 질문하고 대답하다가 끝에는 감탄하면서 더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다가,
“좋아요. 첫 번째 교리는 그것이에요. 어디 보자……. 베넷핏 설정했고, 제1교리 설정했고, 뭐가 남았나……. 아! 성지(聖地). 성지를 정해야죠! 성지는 당연히.”
“영지. 세계수 주변.”
“그럼 내성 전체로 할게요! 그럼 종교 이름을 정해야 하는데요. 생각해두신 거라도 있으세요?”
“없는데?”
“그럼 요한교!”
“놉.”
“싫으세요? 그러면……. 이요한교?”
“응. 안 돼.”
“칫. 그럼 요한러버? 포에버 요한? 세최강 요한? 요한 오빠?!”
“…그만해.”
너 혹시 사람이 수치사로 죽을 수 있는지 없는지 실험하는 건 아니지? 응?
“그럼 뭐요! 영주님은 뭐가 좋은데요!”
“희망, 풍요 이런 뜻을 가진 이름으로 지어. 이름이 뭐가 중요해. 네 말처럼 베네핏이 중요하지.”
“…칫.”
굉장히 아쉬워하면서 혀를 차는 소피아를 보다가,
‘도대체 왜 아쉬워하는 거야?’
문득 이 상황이 너무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니까.
“그럼……. 풍요. 비옥. 행복. 복. 행운. 성공. 이런 뜻을 가진 고대어는 어떠세요?”
“음? 좋아.”
“펠리키타스(Felícĭtas). 펠리키타스예요. 너무 길면 펠리타.”
처음 듣는 단어다. 라틴어를 닮은 것 같은 단어를 몇 번 발음해보고는,
“마음에 들어.”
“그럼 그렇게 설정할게요. 이거 한 번 정하면 바꿀 수도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빛요한교’는 어때요?”
“안 돼.”
“쳇쳇.”
『영지 종교관 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투덜대는 것과 별개로 소피아는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고 빠르게 처리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소피아만 볼 수 있는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영지] 권역 전체에 공지합니다.』
『[쉘터 ― 영지]의 종교관 「펠리타교」가 창시되었습니다.』
『펠리타교는 ‘풍요’, ‘행복’, ‘행운’을 상징하는 종교입니다.』
『펠리타교의 제1교리는 「이요한을 경외하고 섬기며, 이요한과 지구의 의지의 사제들과 영주가 소환한 존재에게 신체적·정신적 위해를 가할 수 없다.」입니다.』
“…헐?”
내 이름이 떡하니 박혀 있을 줄이야. 이러면 내가 가이아 게시판에 종교쟁이는 다 죽인다고 말했던 게 내로남불이 되는 셈이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그래. 요한 포에버교가 아닌 게 어디야.’
부르르.
만약 종교 이름을 정할 때, 유다연이랑 제시 모건에 릴리 로즈가 옆에 있었다면 저 이름으로 결정됐을 수도 있었다는 걸 떠올리자 소름이 끼쳤다.
‘그래.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펠리타교에서 섬기는 존재는 [쉘터 ― 영지: 유토피아]의 영주 이요한입니다.』
…라고 생각했던 몇 초 전의 내 명치를 아주 세게 때려 버리고 싶다. 아아! 아아아아아!!
“으어어어어. 차라리 죽을까? 응? 성벽에서 뛰어내리면?”
“영주님 신체 스탯은 이제 블루(Blue) 랭크라 절대 안 죽어요. 머리부터 떨어져도 혹 정도 나고 멀쩡할 거예요. 영주님.”
젠장! 소피아가 얄밉게 비실비실 웃으며 하는 말에 꿀밤이 마렵다는 게 이런 건가 싶다.
『펠리타교가 가진 능력은 「신성(神聖)」입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는 듯이 갑자기 나타난 딱딱한 메시지가 사라지기 무섭게,
『영지 일부가 종교 시설 「성지(聖地)」로 지정되었습니다.』
『영지의 주인이 종교 지도자이며, 섬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영지민을 대상으로 특수 스탯 「충성」이 개방되었음이 확인했습니다.』
[영지 관리] 시스템 메시지가 출력된다. 시스템 메시지와 다르게 공손하고 나긋나긋한 말투의 메시지는,
『영지민 전용 히든 스탯 「충성」이 종교 스탯 「신앙」으로 변환됩니다. 비각성자와 각성자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영지민의 카르마 포인트 창에 신앙 스탯이 수치화됩니다. 신앙 스탯은 최소 0부터 최대 100까지로 책정됩니다.』
충성 스탯을 신앙 스탯으로 변화되었다는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와……. 돌겠네.”
“오빠아아아아아!!”
이거 보라지. 바로 신호가 오잖은가.
“오빠! 오빠! 이거 진짜예요? 레알? 참? 트루?”
“진짜입니다. 영주님은 이제 신이 되셨어요! 인간 세상의 신!”
“오오오오오!!”
구 도른자 옆에 신 도르자라니. 난 여기서 도망가겠어!
덜컥!
“어딜!”
“도망가요!”
몰래 빠져나가려던 내 전술 방검복을 부여잡은 야무진 손만 없었다면 난 분명히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을 거다. 분명히.
‘차라리 죽여줘.’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