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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136화 (136/183)

136화

<퇴근 직전에 서류를 잔뜩 받은 직장인의 뒷모습이 떠올랐다면 착각일까?>

“권능이 뭐라고 생각하나? 누구 말해볼 사람? 없어? 개소리도 괜찮아. 내가 그런 거 은근히 잘 참으니까.”

“용기 있는 시스템이 이렇게 없다니. 이번 기수는 실망이군.”

“권능이 고유 능력과 질적으로 다른 결정적인 차이점은 자신이 정한 규칙을 ‘강제’하는 것에 있다.”

“조금 더 늘려서 설명하면, 권능이란, 섭리를 거슬러 자신의 규칙이나 설정을 강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그렇기에 권능은 대단한 힘이며, 동시에 위험한 힘이다. 자칫하면 차원이 쪼개질 수 있으니까.”

“오늘부터 시작될 이 강의에서 여러분은 권능의 종류와 역사적으로 등장한 권능을 다루는 개차반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배우게 된다.”

― 시스템 아카데미 「권능학개론」 강의 서문 중에서 발췌.

* * *

혐오라는 단어를 현실로 구현해 놓은 것 같은 행성.

심연의 추방자들이 살아가는 차원이다.

차원의 가장 높은 곳, 거대한 뼈로 지은 탑의 꼭대기에 그가 있다.

생명에 등을 돌린 자.

부정한 피가 흐르는 자.

차원의 의지를 배반한 자.

죽음의 기사이며 동시에 어둠의 마도사.

리치 군주(The Lich Sovereign).

리치 군주는 현재 차원 침공에 대한 보고를 듣는 중이었다. 언데드로 변한 그는 무한의 삶을 살아가기에 느긋하기 그지없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해할 수 없군. 지구라는 차원이 이 정도의 잠재력을 지녔던가? 여(余)가 파악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나?”

하지만 얼마 전 벌어진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의 방문 이후, 리치 군주는 한국인이 빙의된 것처럼 빨리빨리를 시전했다.

“다시 말해보라. 여가 들은 게 맞나? 19%라고……?”

그는 언데드이지만, 뛰어난 마도사였다. 즉, 멍청한 그린스킨 황제와 다른 종족이라는 뜻이다.

리치 군주는 현자보다 뛰어난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차원의 지배자들도 인정하는 편이다. 그렇기에 휘하 아크 리치의 보고는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보고였다.

“여의 귀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차원 침식률은 첫날 이후 거의 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렷다? 오히려 그린스킨, 그 뇌까지 근육인 놈들 때보다 더 낮은 것 같으니. 어떻게 생각하느냐?”

“…죄송합니다.”

“여가 듣고 싶은 것이 너의 사과가 아니니. 네 생각을 묻었느니라.”

질책이 섞인 리치 군주의 말에 아크 리치라는 무려 8서클 흑마법을 다루는 불사의 존재가 두려움에 떨며 몸을 움츠린다.

“이번 차원 계약에서…….”

“그래.”

“추가한 특약이…….”

“아아. 그것 말이더냐? 흠. 마력을 다루는 차원 거주인에게 심연 독에 저항하는 기프트를 부여하는 것이었나?”

“그러합니다.”

톡―. 톡톡―.

리치 군주가 순백의 뼈로 만들어진 거대한 용상의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상하지 않으냐. 고작해야 인간이다. 연약한 인간이지. 심연 독의 면역? 그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여의 군단은 진화한다.”

그렇다. 리치 군주의 군단, 그러니까 좀비를 비롯한 언데드들이 이면 계약까지 해가면서 여러 차원을 침공하는 이유는 리치 군주의 권능 때문이다. 성장이 제한된 언데드에게 성장이라는 공존할 수 없는 법칙을 부여하기에.

“인간에게 목이 잘려 나뒹구는 병사? 있을 수 있지. 당연하다. 하나, 결국에는 인간이라는 연약한 종족은 시체의 파도에 휩쓸려 나자빠질 모래알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러합니다. 다만…….”

“그래? 호오? 그린스킨의 망둥이를 죽인 인간이 존재한다?”

아크 리치라고 해도 리치 군주의 권능으로 진화하고, 그의 권속이었기에 길게 말을 하지 않아도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기이한 대화가 이어졌지만, 그걸 리치 군주도 아크 리치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정도의 인간이 존재한단 말인가? 그럼 이전 이벤트 계약 위반 건도 그 인간이겠구나. 그렇지 않으냐.”

으르렁거리듯 ‘인간’이라는 단어에 분노를 담았으나, 그날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의 힘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것이 떠오르면서 뒤로 갈수록 은은한 두려움이 섞여 나온다.

“그럴 것으로 사려되옵니다.”

“그렇다면……. 그러하다면, 그 인간을 잡고 진화한 여의 군단은 어떠한 존재로 거듭날 것 같으냐?”

그것을 숨기기 위함일까? 리치 군주는 희망을 담았다. 진하고 진득하게.

“감히 짐작할 수 없사옵니다.”

“그렇지! 그렇지!”

흥분에 겨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리치 군주의 안광에 섬뜩하고 어두운 보랏빛 기운이 서렸다가 사라진다.

“기대되는구나.”

“…….”

아이처럼 방방 뛰며 반짝이는 눈으로 기대를 품고 있는 리치 군주의 모습은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웃음이 지어질 장면이건만, 그 앞에 있는 아크 리치는 두려움에 떨며 몸을 더욱 낮춘다.

그러는 사이에 기대에 기대가 더해지면서 리치 군주의 상상력을 끝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결국에는,

“아아.”

마치 사정의 끝을 맞이한 것처럼 쾌락과 함께 기운이 폭사하듯이 터져 나온다. 그 여파로 그가 조금 전까지 앉아 있던 화이트 드래곤 뼈로 제작한 용상이 박살 나고, 탑이 무너진다.

아크 리치가 두려움에 떨며 몸을 잔뜩 낮춘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무너진 탑이나 부서진 용상은 그의 관심을 티끌만큼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리치 군주의 관심은 오로지 단 하나였다. 그린스킨의 황제가 직접 엄선해서 뿌린 씨에서 태어나 권능을 다루게 된 혈족을 처단한 인간.

경험치에 눈이 돌아간 게이머처럼 리치 군주는 그 특별한 인간의 생기를 빼앗고, 영혼을 흡수하고, 뼈와 살을 뜯어 먹고 특별해질 자신의 군단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다.

“리빙 헬 나이트의 완성까지는 얼마나 남았느냐?”

“아직…….”

“얼마나 걸릴 것 같으냐.”

“명확하지 않사옵…….”

한쪽 팔이 잘게 부서져 먼지가 되었고, 두개골에도 금이 간 상태였지만 아크 리치는 리치 군주의 질문에 바로바로 대답을 이어나갔다. 물론 그 대답을 끝까지 듣지 않고 권속의 생각을 읽어 계속 질문을 던지는 리치 군주는,

“이런.”

자신의 질문을 받아주던 아크 리치가 소멸 직전에서야 권속의 상태를 인지했다.

“여는 아직 들을 말이 더 남았음이니. 일어나라.”

무감정한 리치 군주의 ‘명령’에 소멸해 무로 돌아가던 아크 리치의 뼈가 재생되고 꺼져가던 눈에 남색 불꽃이 피어오른다.

“군주님의 은혜가 하해와…….”

“되었다. 그것보다 자원을 더 지원해주면 생산을 앞당길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긴 하옵니다만.”

“그럼 되었다.”

“하지만.”

“그건 괜찮다. 멍청한 그린스킨 놈에게 얻은 생자(生者)와 특약을 맺으며 얻은 카르마 포인트가 넉넉하니 문제 될 것이 없지. 더욱이 그린스킨이지 않느냐. 단순한 좀비로 만들어도 특별한 존재가 될 터인데. 카르마 포인트를 추가한 리빙 헬 나이트라니.”

“그렇습니다.”

아크 리치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는 멍청한 언데드가 아니다. 생각보다 자주 리치 군주의 결정에 다른 방법도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존재다. 그렇기에 그가 차원 침공을 총괄하고 리치 군주와 대면해 보고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패하게 되면…….”

파삭―!

아크 리치의 갈비뼈가 일시에 모두 부러지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린다.

단순히 ‘실패’를 지적했을 뿐인데, 리치 군주가 일으킨 분노에 아크 리치의 갈비뼈가 부서진 거다. 각성자로 치면 무려 네이비 랭크에 필적할 법한 아크 리치가.

“감히 여의 행사에 실패를 입에 담지 마라.”

실패라는 단어는 불과 얼마 전, 일어난 카르마 포인트와 대면을 떠올리게 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에 느꼈던 고차원적인 힘에 대한 두려움을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군주시여.”

“너의 존재를 어여삐 여기지만, 그것과 실패를 떠올리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니. 주의하거라.”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다시 리빙 헬 나이트 제작 중인 놈들 중, 가장 어린놈 두 놈만 먼저 집중 제작하는 방식은 어떠하냐? 그리하면 자원도 절약되고 카르마 포인트도 그리 많이 들지 않을 것인데?”

“합당하십니다.”

“그럼 다음 공격은……. 51군단에게 출정을 허한다고 전하거라.”

“황천 기사단 말씀이십니까?”

“그래.”

아크 리치가 왜 다시 물어볼까? 그건 확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놀라서 그런 거다. 그만큼 51군단은 이곳, 심연의 추방자들이 머무는 차원에서도 특별하다.

리치 군주의 권능으로 성장 가능성이 열린 언데드들은 각자 생전에 열망이나 원한 혹은 기억의 편린 등에 의해 그 성장 방향이 결정되곤 했다.

아크 리치인 자신도 죽기 전까지 서클을 높이기 위해 발악하다가 죽은 기억에 의존해 리치가 되었고, 아크 리치로 진화했다.

각자 분야가 나뉘면서 좀비나 스켈레톤에서 출발한 언데드 중, 살아 있는 존재와 전투에서 파괴되지 않고 살아 업을 쌓으면 여러 상위 언데드로 진화한다.

그리고 황천 기사단은 생전 살육과 파괴, 온갖 악의적인 일을 행한 살인마들이 언데드가 되어 진화한 케이스다.

헬 나이트.

지옥의 불을 몸에 두르고 다니는 데스나이트라고 상상하면 얼추 맞다. 물론 그것보다는 훨씬 강하지만. 그리고 생전에 기억이나 열망이 살인, 살육, 파괴, 정복 같은 것이기에 이들은 하나 같이 무언가를 짓밟고 파괴하는데 특화되어 있다.

“그리하면…….”

“아아. 그 특별한 인간의 시체도 건지지 못할 거라는 게냐? 그럴 리가 있느냐. 그린스킨 황족을 이긴 인간인데.”

“그렇다면…….”

“왜냐니? 당연히 성을 끼고 있는 모습이 아니꼽기 때문이다. 51군단이 나서서 성을 파괴한 후, 내 역작, 그린스킨 황족으로 만든 특별한 작품이 나타나는 게다.”

“아.”

특별한 역작. 그린스킨 황제의 핏줄, 권능을 다루는 그린스킨을 살아 있는 상태로 언데드로 만드는 작업을 말한다.

“어떤 것 같으냐? 실로 그 결과가 기대되지 않느냐? 이런 설렘이라니! 사라진 심장이 뛰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구나.”

콰콰콰콰콰콰!!

리치 군주는 끝내 그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고, 그 주변에 있던 모든 것이 흘러나온 힘의 여파로 소멸했다.

높이 솟은 뼈 탑은 상층부가 누가 파먹은 것처럼 사라졌고, 데이몬이라는 이름을 받은 아크 리치는 라이프 베슬만 남기고 소멸 직전에까지 몰렸다. 그것도 아크 리치인 데이몬이 순간에 남은 마력을 모두 쏟아내 방어 마법을 펼쳤기에 직전에서 그친 거지, 그대로 멍하니 있었으면 사라진 탑의 일부처럼 먼지가 되었을 거다.

“쯧. 여의 측근이 이리 약해빠져서야.”

자신의 힘이 과했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은 리치 군주는 라이프 베슬에 힘을 부여했고,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폭력에서 벗어나 무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데이몬은 다시 아크 리치의 몸을 되찾았다.

“어서 일을 진행하거라. 기다림이 괴로우니.”

“명을 받들겠습니다.”

아크 리치는 어딘가 힘이 빠진 걸음으로 무너진 탑의 경계를 통해 밖으로 날아갔다. 어딘가 퇴근 직전에 서류를 잔뜩 받은 직장인의 뒷모습이 떠올랐다면 착각일까?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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