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탱글탱글한?>
“그것보다 난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저 했으면 해. 사보타주라고 했던가?”
“네. 그렇습니다. 영주님의 영지는 그걸 실행하기에 충분한 역량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니, 우리가 그래?”
“네.”
“어디가?”
“일단 지금 저 멀리서 느껴지는 지독한 악의. 저건 분명히 언데드와 악마 종족이라고 판단됩니다.”
“맞아. 좀비와 악마 그리고 언데드가 종류별로 가득하지.”
“그렇다면 더 좋습니다. 이 영지에는 언데드에게 치명적인 것들이 가득하니까요.”
우리 영지에 그런 게 있어? 어디에?
“우선 영지에 뿌리내린 종교의 베네핏이 정말 좋은 선택을 하셨습니다. 성스러운 마력은 그 자체만으로 언데드에게 치명적입니다.”
“그, 그리고 세, 세계수가 있어요!”
“맞습니다. 레이디. 세계수는 그 자체만으로 정화와 생명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세계수에서 떨어진 부산물이 있으면 언데드에게 훌륭한 폭탄이 될 겁니다. 그건 레이디께서 충분히 제작할 수 있으실 테고요.”
“마, 맞아요…….”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하이엘프도 있고, 제대로 직시할 수도 없을 만큼 선명한 신성력을 보유한 성녀도 존재합니다. 이들의 힘을 폭탄에 담으면…….”
“어, 엄청 훌륭할 거예요!”
폭탄과 훌륭하다는 단어가 어울리는지는 차치하더라도,
“폭탄? 그걸 만들 수 있어?”
일단 폭탄을 만들어서 보여줘야 알 것 아닌가?
“아까 보니까 라쿤 종족이 영지에 있더군요. 대단한 장인 종족입니다. 그리고 제 입으로 말하기 낯부끄럽습니다만, 저 역시 제법 재주가 있습니다.”
“마, 맞아요. 얼티미트 노, 노움 종족은 마법사로서 유, 유명해요.”
“감사합니다. 레이디. 폭탄 안에 들어갈 화력을 여기 레이디께서 제작하시고, 폭탄 자체를 라쿤 장인이 만든다면, 저는 그것이 원할 때 터질 수 있게 하고, 터지기 전까지 들키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폭탄을 [차원 용병]의 손에 쥐여주고 사보타주를 명령한다?”
“그렇습니다.”
“[차원 용병]은 차원을 넘나들 수 있는 건가?”
“계약을 맺으면 가능합니다. 본래 그들은 차원을 유영하는 존재들이기도 하고, 모두 신성한 마법과 계약의 신을 섬기는 존재이니까요.”
“그래? 그럼 지금부터 뭘 준비하면 될까?”
“그럼 일단은……. [마법사]와 [연금술사]가 더 필요합니다.”
“좋아. 소환해주지. 아! 그전에……. 사보타주가 성공하면 카르마 포인트를 많이 얻을 수 있나?”
“…막대한 수준을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폭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요.”
“좋아. 전폭적으로 지원할게.”
『마이너스 카르마 오천구백이십오만(59,250,000) 포인트를 소비하여 [마법사] 열(10) 명을 고용합니다.』
『특수 카르마 오천구백이십오만(59,250,000) 포인트를 소비하여 [연금술사] 열(10) 명을 고용합니다
“[장인]과 상의해서 최대한 빨리 부탁해.”
우선 마법서와 연금술사 열 명을 추가로 고용했다.
“엘라. 소피아.”
“네. 주인님.”
“네~.”
“엘븐나이츠, 창천의 날개를 조금 멀리까지 보내도 될까?”
앉아서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지 않았다.
“편한 대로 쓰셔도 됩니다.”
“당연하죠! 안 그래도 요즘 포인트 벌이가 적다고 엄청 심심해요. 특히나 앤은 요즘에 콜라에 미쳐있어요. 걔가 하루에 마시는 콜라가 3L는 될 거예요. 어휴.”
“고마워. 일방적으로 보내는 건 아니고, 자원하는 사람만 보낼 거야. 카르마 포인트가 부족해.”
엘라와 소피아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저요! 저! 제가 갑니다!!”
찰랑이는 빨간 머리카락과 눈 밑에 주근깨와 어중간하게 날카로운 귀가 인상적인 하프엘프 앤이 손을 번쩍 들면서 나타났다.
“영주님! 제게 맡겨주세요! 장비만 어느 정도 지원해주시면 제가 카르마 포인트 폭탄을 선사해드릴게요!”
확실히 소환 이후 참가한 이벤트에서 폭격을 연상케 하는 공격을 하던 그녀라면 저런 자신감이 과한 게 아니다.
“고마워. 콜라는 원하는 만큼 마실 수 있게 해줄게.”
“예쓰!! 예쓰! 그리고 보니 저기 [연금술사]도 있으니까 특별한 화살촉을 요청해도 될까요? 좀비에게 쥐약인 신성력이 농축된 화살촉이면 좋을 것 같아요.”
“당연하지. 그런 건 마구마구 요청해.”
“오예! 오예! 이번에는 기여도 모아서 옷 사야지~. 스타킹이라는 것도 사볼 거야! 신기해!”
스, 스타킹이라. 좋은 선택이다. 그 취향을 적극적으로 존중하겠어.
[기사단 숙소]에서 소환한 기사단을 포함한 특수한 전력인 이들이 영지를 나서서 멀리 원정을 떠났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영주님. 이 영지는 도대체……!”
[마법사의 탑]에서 한참 연구 중이던 [마법사]가 나를 발견하고 다가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걸 발견했다는 듯이 말끝을 흐렸다.
“왜 그러는 건데?”
“차, 창고! 도로! 연구소! 대장간!”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입은 하나일 때 나오는 아무 말 대잔치를 [마법사]가 보여주고 있다.
“몬스터 부산물 연구 시스템?”
“예! 예! 그거요! 그거!!!”
답답한 속이 뻥 뚫렸다는 듯이 고개를 맹렬히 끄덕이면서 실핏줄이 터질 것처럼 잔뜩 충혈된 눈으로 ‘그거!’를 반복하는 놈 [마법사]는 어딘가 좀 꺼려지는 모습이었다.
“미쳤어요! 여긴 정말 미쳤어요!”
“음?”
“몬스터 사체를 얻을 수 있다니요!”
“그건 흔하잖아?”
“아니요! 이런 식은 아닙니다. 좀비를 예로 들어볼까요? 좀비를 사냥하면 몸 곳곳이 터져나가곤 합니다. 원하는 부위를 얻을 수 없고, 얻더라도 온전하지 않아요. 여러 가지가 섞여 있어서 후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절반 이상이 날아갑니다. 하지만 여긴……!!”
“온전하다?”
“네! 이것 보세요!”
그러면서 그는 너덜대는 회색 살점을 눈앞에 대고 흔들었다. 순간 갑툭튀 장난인가 싶어서 나도 모르게 뒤통수를 후려칠 뻔했다. [마법사]가 놈 족이라서 키가 작아서 놀라지 않아서 견딜 수 있었다.
“이 탱글탱글한 좀비의 살점!!”
미친놈인가 진짜? 처음에는 점잖은 척하더니 얘도 제정신이 아니네. 좀비 살덩어리에 ‘탱글탱글한’이라는 형용사가 어울려? 이게 맞아?
“이거라면 엄청난 퀄리티의 어보미네이션 슈트를 제작할 수 있습니다!”
“…슈트에 왜 그딴 이름이 붙는 건데?”
“심연의 추방자 차원에 효과적으로 잡입하는 데 이것만 한 게 없거든요.”
이제 내 말은 듣지도 않는구나. 그냥 나오는 대로 제 할 말만 하고 있다.
“만약 퀄리티 높은 슈트를 제공한다면 [차원 용병] 고용 비용이 훨씬 줄어들 겁니다!”
“…그래. 난 자넬 믿고 있었어. 처음부터. 진심이네.”
왜? 뭐? 난 처음부터 [마법사]를 믿고 있었다. 진짜다. 아주 잠시, 약간, 미세하게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감사합니다! 영주님! 저와 제 동료들은 이 축복받은 영지를 지켜낼 것입니다! 반드시!!”
저것 보라고. 영주인 나보다 더 이 영지가 소중하다는 듯이 눈에 불을 켜고 [마법사의 탑]을 향해 달려가던 [마법사]는 길에서 만난 [연금술사]와 열띤 대화를 나누더니,
쫘악!!!
농구 만화의 한 장면처럼 서로 거칠게 손바닥을 마주치고는 결의가 담긴 뒷모습을 보여주며 각자의 건물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 나흘이 지난 뒤,
“완성했습니다. 영주님.”
잔뜩 떡진 머리에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작은 체구의 놈 [마법사]가 주황색과 파란 대형 이사 박스 스무 개를 마력으로 띄워서 내게 가져왔다.
“뭐가 이렇게 많아?”
“여기부터 여기까지 주황색 박스에 담긴 건 폭탄입니다. 그리고 여기부터 여기, 파란색 박스에 담긴 건 전에 말씀드렸던 위장 슈트입니다.”
“호오? 그래?”
폭탄은 솔직히 내 관심이 아니다. 잘못 만지면 터질 수도 있어서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난 위장 슈트라고 말한 게 궁금했을 뿐이다. 놈 [마법사] 이온의 말을 인용하면 ‘탱글탱글한’ 좀비 피부로 뭘 어떻게 만들었을까?
기대를 가지고 파란 상자 뚜껑을 열자마자,
“오! 쉣!!”
후회했다. 코를 찌르는 악취와 혐오감이 드는 살덩어리에 후각과 시각이 동시에 테러를 당했기 때문이다.
“이, 이게 뭐야?”
“어떠세요? 보는 것만으로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혐오감이 올라오지 않으십니까?”
피곤에 쩌들었으나, 제품을 설명할 때는 두 눈에 불을 켜고 혐오스러운 물건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그에게서 나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럴 정도로 놈 마법사는 마치 매드 사이언티스트 같았다.
“이걸 입고 언데드 틈에 들어간다고 상상해보세요. 리치도 ‘어서 와! 친구!’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심지어 안에는 [연금술사] 레이디가 제작한 마기 방출과 마력 은닉 회로가 설정되어 있어서 절대 알아차리지 못할 겁니다.”
“…근데 이런 걸 입으려고 할까?”
“예? 누가 안 입는다는 말씀이신가요?”
“[차원 용병]이 말이야. 이런 걸 입고 작전을 수행하라고 하는데, 할까?”
“당연하죠! 오히려 의뢰비로 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영주님께서 잘 협상하셔서 추가로 카르마 포인트나 아니면 지명권을 받아내시는 게 좋습니다.”
작은 주먹으로 작은 가슴을 통통 치며 확신하는 행동에도 미심쩍었지만,
“그래. 알았어.”
일단 고생한 게 눈에 보였기에 수긍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바로 [용병 길드]에 들러 [의뢰]를 작성해 올리자마자,
『띠링―!』
『띠링―!』
『띠링―!』
…
갑자기 미친 듯이 알림 메시지가 눈과 귀를 어지럽혔다. 그제야 나는 이온이 한 호언장담이 근자감이 아니라, 레알 참 트루라는 걸 깨달았다.
“너, 너무 많은데?”
너무 많은 의뢰 참가 요청에 당황해하는 순간,
“몇 명입니까? 영주님?”
짧은 다리로 [용병 길드]까지 나를 따라온 이온이 마법사 로브를 펄럭이며 묻는다.
“글쎄? 한 오십 명은 넘는 것 같은데?”
“그 정도라면 모두 고용하십시오.”
“응?”
“카르마 포인트가 나갈 일이 없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저희가 준비한 어보미네이션 위장 슈트는 총 100벌입니다. 100명까지 받으셔도 됩니다. 폭탄 역시 넉넉히 준비했습니다. 어보미네이션 위장 슈트를 제공한다면 손수 폭탄이나 스크롤을 준비해 올 이들이 있을 겁니다.”
유능하다. 단순히 그런 말로 평가하기 미안할 정도로 유능하고 웬만한 변수는 모두 대처 가능할 정도로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에 감탄하는 내게,
“마법사라는 족속이 본래 그러합니다. 준비하는 변태거든요.”
라고 해맑게 웃으며 자신의 성과를 대수롭지 않게 평가했다. 그리고 이온을 비롯한 마법사들의 조언을 받아 총 100명의 [차원 용병]을 고용했다.
파아앗!
노란 마력의 잔향과 함께 등장한 각양각색의 100명이나 되는 [차원 용병]들.
그중에서 절반 이상이,
“새? 오, 올빼미?”
조(鳥: 새 조)인족이었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