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드워프의 맥주 약속, 엘프의 진실 서약 그리고 놈(Gnome)의 보증>
100명이나 되는 [차원 용병]의 등장은 영지민들, 그러니까 지구인들에게는 신선하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종말 전에 전 세계인에게 가장 유명한 화두이자 논쟁거리는,
귀신은 실존하는가?
라는 것과,
외계인이 존재하는가? UFO는 실존하는가?
라는 것이었다.
이제 이런 세상이 되고 난 뒤에야 그 논쟁은 종결되었다. 귀신은 실존한다. 언데드 계열의 고스트가 지금도 성벽 저 멀리 안전지대 영역 밖에서 날아다니고 있으니까.
그리고 외계인의 존재는 그린스킨과 좀비를 과연 외계인으로 봐야 하는가로 서로 티격태격하던 이들도 [차원 용병]의 등장과 함께 논란을 끝냈다.
올빼미를 닮은 조인족은 물론이고 상상으로만 그리던 파란 피부의 외계인도 등장했기에.
“그런데 저렇게 다 줘도 되려나? 나중에 우리를 상대로 사용할 수도 있잖아? 용병이니까?”
“네?”
“내 질문이 그런 표정을 할 정도로 이상했어?”
내 의문을 들은 [마법사]들의 얼굴에는 뭐 이런 멍청한 생물이 다 있나, 하는 얼굴이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아……. 영주님은 차원 바깥의 존재와 대면이 처음이시죠. 제가 전에 [차원 용병]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들이 계약과 마법의 신을 섬기고 있다고 했던 것 기억하시나요?”
“아. 응. 기억하지.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도 언급한 신이잖아?”
“맞습니다. 그리고 차원을 침공하는 이들은 모두 계약의 신께 강력한 제재를 받은 이력이 있는 이들입니다. 위대한 현자가 말했습니다.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이 만약 지금의 두 배 정도만 됐다면 침략자들은 고사했을 거라고.”
“그 말은 [차원 용병]이 심연의 추방자 차원에 고용될 걱정은 하지 말아라?”
“그렇습니다.”
“흠.”
“이번에 100명이나 되는 [차원 용병]이 영주님의 의뢰에 위장 슈트만 받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말씀드렸던 대로 이 축복받은 영지에서 제작한 어보미네이션 위장 슈트가 뛰어난 아티팩트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사보타주를 실행할 차원이 계약의 신께 제재를 받은 차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좋아. [차원 용병]의 일이 더 수월하게 진행되도록 우리도 노력을 해야겠지?”
그리고 그날부터 영지 소속으로 있는 전투 병력은 모두 영지 밖으로 나갔다. 영지가 갑자기 블루 랭크로 오르면서 기존 그린 랭크에서 1.8배였던 영지 범위가 2.5배로 늘어나면서 안전지대도 덩달아 넓어졌는데, 그게 비좁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좀비를 사냥하게 권고했다.
말이 권고지 거의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걸 나도 알고 있었지만, 이번 일은 중요했기에 무시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사보타주가 가능하다는 말을 들은 이후, 카르마 포인트도 카르마 포인트인데 내가 이 일에 열정을 다하고, 영지의 잠재력을 집중하는 건,
“불합리하잖아?”
이 전쟁이, 이 침공과 침략이,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네?”
소피아가 갑자기 혼잣말하는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기에 안 그래도 어딘가 하소연도 하고 싶고, 이 감정을 같이 나누고 싶은 참이기에 바로 입을 열었다.
“이 전쟁 말이야. 아니, 차원 침공. 이거 너무 불합리하지 않아?”
“불합리하죠. 우리는 멀쩡히 잘살고 있는데. 갑자기 들이닥친 거니까.”
“아니. 아니. 물론 그런 부분도 불합리한데, 내가 말하는 건 이건 어쨌든 전쟁이잖아? 차원과 차원으로 보면 전투에 가깝고? 맞지?”
“그…렇죠? 따지고 보면?”
“자고로 전투와 전쟁의 묘미가 뭐야? 일진일퇴(一進一退 ;한 번 나아가고 한 번 물러난다). 서로 가열차게 주고받는 치열한 공방(攻防 ;공격과 방어). 그런 거 아니겠어? 그런데 이 새끼들은 왜?”
“예?”
“왜 이 새끼들은 지들만 공격하냐고. 왜 우리는 방어만 해야 해? 뭐, 샌드백이야? 축제에서 물풍선 간판이야? 왜 우리만 처맞아?”
“아……!”
“그래서 사보타주가 가능하다는 말에 이거다 싶었지. 전쟁이라면, 남을 때렸으면, 지들도 맞을 수 있다는 걸 알려줘야지. 언데드니까 뼈에 새겨주겠어.”
“이, 이런 걸 사이다라고 하는 건가요? 다연이가 그러던데? 뭔가 시원하고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
“그래. 사이다다!”
“사이다!! 사이다 최고예요! 이따 내성으로 복귀할 때 자판기에서 뽑아 먹겠어요!”
소피아가 사이다 중독 증상을 보이는 건 중요한 게 아니다. 그거 많이 먹는다고 살이 찌거나 이가 썩을 염려가 없는 사람이니까.
무슨 말을 하고 있었더라? 아! 그래. 영지의 전력을 집중시킨 이유를 말하고 있었지.
그래. 솔직히 벨이 꼴려서 이번 일을 적극적으로 그리고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거다. 뭐? 왜?
“잘 되겠지?”
“네. 잘 될 거예요. 그 놈 마법사가 장담했으니까요. 우리 차원에서는 그런 말이 있거든요. 드워프의 맥주 약속, 엘프의 진실 서약 그리고 놈(Gnome)의 보증은 의심하지 말라.”
“응? 드워프랑 엘프는 대충 오케이. 이해했어. 그런데 놈의 보증? 그게 왜?”
“놈이라는 종족은 좋게 말하면 자유분방하고, 나쁘게 말하면 난봉꾼이거든요. 그렇기에 대화의 화법이 두루뭉술하고 확정되지 않는 말투를 써요. 그런 놈이 보증할 정도로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일은 평생에 한 번도 없는 놈 종족이 있을 정도예요.”
“그거 정상이야?”
“뭐, 종족 간의 문화 차이니까요. 놈 종족에서는 그게 일상인가 봐요. ‘내일 점심에 만나.’라고 약속을 잡으면 약속 시간이 11시부터 오후 2시 사이에 만나기만 하면 되는 그런 느낌…….”
뭐야. 그게. 설명만 들었는데도 빡쳐.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싶은 문화야.
“아무튼! 제 말은요. 믿을 만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차원 용병]이 가져다줄 선물을 기대하면서 즐겨요! 영주님!”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일이 성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카르마 포인트 폭탄을 기대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좀 냉정한 이야기이지만, 설사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영주님께는 아무런 해가 없어요. 들켜서 [차원 용병]이 전멸한다고 해도 카르마 포인트의 손해나 영지에 피해가 오는 건 아니니까요.”
“그건……. 맞지.”
그녀의 말처럼 냉정하지만,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다. 하다못해 [기사단 숙소]에서 소환한 기사라고 해도 죽으면 고용하는데 들어간 카르마 포인트가 날아가니 손해였지만, [차원 용병]은 아니다.
작전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차원 용병]을 고용할 때 카르마 포인트가 필요하다. 일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말이다. 그리고 그 고용 비용은 영지에서 제작한 위장 슈트로 치렀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사람 마음이 그게 아니지.”
비록 내 영지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게 그렇지가 않다. 엄연히 살아 있고, 생각하며, 감정을 표현하는 생명체이며 지성체인데.
“그리고 뭔가 그들을 숫자나 데이터 같은 걸로 대하면 내 안에 새긴 기준점이 바뀔 것 같아서 좀 그래.”
이것도 내가 그들은 위선적으로 나마 걱정하는 이유였다. [차원 용병]을 단순히 카르마 포인트로 보기 시작한다면 기준점이라는 게 사라질 것만 같아서.
* * *
전 차원을 상대로 활동하는 [차원 용병]의 등급은 뜻밖에도 세 개만 존재한다.
가장 낮은 단계이자 입문 단계가 미스릴.
그다음으로 가장 많은 인원이 분포해 있는 단계이자 중간 단계인 아다만티움.
마지막으로 [차원 용병] 전체 중, 2% 정도만 속해 있는 단계이자 최종 단계인 오리하르콘.
어째서 일반적인 계급 체계인 아이언부터 시작해서 브론즈, 실버, 골드 따위로 진행하지 않는 거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 이유는 애초에 [차원 용병]이 되기 위한 기본 조건이 높기 때문이다.
[차원 용병] 모집 요강의 최소 조건이 그린(Green) 랭크의 마력과 신체 스탯이었으니까. 그야말로 최소 조건 말이다.
일반적으로 [차원 용병]은 가장 낮은 등급인 미스릴 등급만 하더라도 8할이 블루(Blue) 랭크 이상의 강자들로 이뤄졌다.
그렇기에 [차원 용병]이 돈이나 화폐가 아니라 급여로 무려 카르마 포인트를 받는 거다. 그건 다시 말하면 카르마 포인트를 보상으로 받을 만큼 어려운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존재들이 [차원 용병]이라는 뜻이기도 하기에 강자인 게 어쩌면 당연할 수밖에 없다.
[차원 용병]이 되는 이유는 셀 수도 없이 다양하다. 그만큼 [차원 용병]의 과거나 사연은 엮으면 천일야화 뺨따귀를 후려갈길 정도이고.
이런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종족이 가입한 [차원 용병]이 한마음으로 싫어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빌어먹을 초록 빡대가리, 시체쟁이, 미치광이 새끼들.”
이다. 순서대로 그린스킨, 심연의 추방자, 그리고 혼돈의 지배자다.
차원을 침공하는 이들이자, [차원 용병]에게 악의 고리라고 불리는 이들을 그들은 증오하고 혐오한다.
지구라는 작은 차원에서 온 특별한 지원 의뢰에 백 명이나 되는 아다만티움 등급의 [차원 용병]이 몰린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올빼미 조인족 출신의 베테랑 아다만티움 [차원 용병] 녹투오스는 이번 작전에서 백 명의 차원 용병을 이끄는 임시 리더로 추대되었다.
“다들 알겠지만, 이런 작전은 무리하면 안 돼. 무리해서 무언가를 더 해보려고 하지 말라는 거야.”
“알고 있어. 여기 애송이는 한 명도 없다고.”
아다만티움 등급의 [차원 용병]만 모였기에 언뜻 들으면 그 반론이 맞는 말 같지만,
“맞는 말이지. 처맞는 말. 닥쳐. 케로스. 경솔하게 날뛰다가 이번에도 작전에 지장을 주면 네가 자랑하는 그 뿔, 뽑아버릴 거니까.”
코뿔소와 사자를 섞어 놓은 것 같은 수인에게 윽박지른 녹투오스는 진지한 눈으로 [차원 용병]들과 눈을 맞췄다.
“이런 기회가 없어. 자신의 차원을 방어하기도 힘든 차원인이 이런 수준의 카르마 포인트를 내놓고 의뢰를 할 수 있는 기회? 애초에 평범한 차원의 지성체가 우리 [차원 용병]과 연결할 방법 자체가 없다고.”
“그건 그렇지.”
“그런데 이 작은 차원의 인간 종족에서 그런 기적적인 일이 벌어졌어. 그러니 다들 신중하게 작전에 임해. 빌어먹을 시체쟁이 새끼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기회가 흔할 것 같아? 이런 훌륭한 위장 슈트를 구할 방법은? 있겠어??”
“없지. 없어. 정말 빌어먹을 냄새야.”
“마력을 일부 마기로 변화해주는 이 시스템도 독특하다고.”
“아까 뒤에 애송이가 이걸 뒤집어쓴 걸 마주했는데, 나도 모르게 목을 자를뻔했다고. 시체 골렘인 줄.”
…
…
이들이 헤임달에 탑승하기까지 준비 기간으로 잡은 기간은 열흘. 이 숙련된 용병들은 그동안 술이나 퍼먹으며 놀고 자빠져 있지 않았다.
“난 이번에 내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마력 폭탄도 사용할 거야. 다들 들어는 봤나? 전쟁 차원에서 둠에서만 제작되는 대(對) 비공정 폭탄. 저번 의뢰에서 몇 개 얻었지.”
“난 그런 장황한 건 준비 안 했어. 대신에 우리가 일으킨 테러 이후에 행성 자체에 독을 남기는 걸 준비했지. 그렇다고 진짜 독은 아니고. 시체쟁이 놈들에게만 독이 되는 거지.”
“너? 설마 그거 그거야?”
“이거 아는구나? 광신도의 혈액에서 키운 씨앗이야. 죽음의 기운을 만나면 아주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지.”
“그거……. 엄청 비싸지 않아? 천만 카르마 포인트 정도는 줘야 할 건데? 데스 필드에 뿌리면 죽음의 기운을 빨아먹고 언데드에게 치명적인 독을 내뿜는다던데?”
“응. 근데 이거 재배한 양반이 리치 군주에게 엄청난 원한이 있어. 이번 임무 설명해줬더니, 이걸 주더라도. 다들 받아. 그 양반이 나눠주라고 했으니까.”
“오오!! 나도 줘! 내가 기필코 데스 나이트 투구 속에 뿌리고 온다!”
너도나도 말을 꺼내며 녹토우스에게 동조하는 [차원 용병]은 차원 통로 비프로스트를 타고 이동하는 특수 이동 수단 헤임달에 모이기 전까지 서로 준비한 무기나 정보를 적극적으로 나누면서 작전을 준비했다.
“좋아. 빌어먹을 카르마 포인트의 노예 놈들아!”
“누가 누구한테? 진짜 악독한 카르마 포인트 노예가 누군데?”
“작전이 시작되기까지 1분 남았다.”
“오오오오!!”
“이번에 실수하는 놈은 내가 기필코 [차원 용병 게시판]에 박제해 준다. 어떤 실수를 했는지.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덜 피해를 줬는지. 이름과 면상을 똑똑히 박아주겠어!!”
“미친놈. 어휴. 저 성격은 진짜.”
“대신!!”
투덜대던 이들이 녹투오스의 외침에 조용해졌다. 차원과 차원을 넘나드는 통로 비프토로스를 오가는 특별한 운송 수단 헤임달 내부에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고요가 자리하고 있다.
“이번 일을 잘 끝내면 내가 거하게 한턱 낸다. 게슈틴안나에서!”
“오오오오오!!!”
“다 뒤졌다! 다 때려 부순다!”
[차원 용병]의 단골 주점이자, 차원 곳곳의 특이한 술을 모두 즐길 수 있는 주점 게슈틴안나를 언급하고 [차원 용병]들이 모두 한참 호들갑을 떠는 사이,
『작전 지역까지 10초 남았습니다.』
이들은 리치 군주가 다스리는 차원 심연의 추방자 차원에 들어서고 있었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