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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142화 (142/183)

142화

<내 그대를 실로, 진실토록, 오래도록 기다렸다.>

리치 군주가 다스리는 차원은 당연한 소리겠지만, 생명체가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다. 공기 중에 산소는 희박하고, 유독 가스인 황이 잔뜩 섞여 있다.

마력 대신 마기가 가득하고, 죽음의 기운으로 점철된 데스 필드가 행성을 아우르고 있는 곳.

이곳이 바로 리치 군주의 땅이자, 리치 군주의 모태인 누더기 행성이다.

“항상 느끼는 건데, 여긴 항상 좆 같아.”

“그냥 좆 같기만 하냐? 난 존나 좆 같아.”

온몸에 어보미네이션, 합체 좀비 누더기 골렘 위장 슈트를 입고 있는 이들이 하나둘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면서 하루 동안 진행한 수색 내용을 교류하면서도 자신들도 모르게 투덜거렸다.

그만큼 이곳의 환경이 언데드가 아닌 이들에게 최악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숙련된 [차원 용병]들이 참기 힘들 정도로.

단순하게 비유하자면 군대에서 화생방 훈련을 위해 터트리는 CS 탄 수십 개와 오래 숙성된 인분 냄새가 섞인 곳에서 방독면이 없이 버티는 느낌의 수백 배의 고통?

“좋아. 말괄량이들. 이제 충분히 투덜댔나? 그럼 주워온 정보부터 내놔.”

“미친! 녹투오스 영감. 인정머리라고는 1도 없구만. 그리고 ‘주워온’이 표준업니다.”

“그딴 거 내가 알 게 뭐냐? 정보는?”

“여기 있수. 그것보다 영감은 이제 손자들 재롱이나 볼 때 아니야?”

올빼미 조인족 녹투오스는 [차원 용병] 사이에서도 ‘영감’이라고 불릴 정도로 베테랑에 오래 살아남은 존재였다.

카르마 포인트의 노예라고 불리는 [차원 용병] 사이에서도 그는 굳이 이런 일선에서 활동하는 작전에 끼어들지 않아도 될 정도로 충분한 카르마 포인트를 모은 강자이기도 하다. 무려 네이비 랭크에 발을 걸치고 있는 존재니까.

그런 그가 굳이 이번 작전에 자원한 이유는,

“…그 손자가 반쯤 언데드가 된 상태라는 걸 내가 말 안 했나? 그 수작을 부린 쓰레기가 여기 있다는 것도?”

“알아. 그걸 모르는 [차원 용병]은 애송이들뿐이라고. 내 말은 굳이 직접 발로 뛸 필요가 없다는 거잖소. 어떻게 생긴 놈인지 내가 그리고 우리가 다 아는데. 그 리치 새끼 심장에 신성 수류탄을 박아넣어 줄 거라니까?”

“됐어. 해도 내가 해. 그리고 이 빌어먹을 새대가리 새끼야! 리치 심장에 신성 수류탄을 박으면 작전이 들키게 되잖아!! 여기 언데드들은 리치 군주 개자식하고 다 연결되어 있는 거 몰라?!”

“누가 그걸 몰라?! 당연히 튀기 직전에 잡아다가 해야지!!”

“어휴. 이 답도 없는 새끼. 됐어. 그리고 복수는…….”

“영감 혼자 한다는 개소리는 하지도 마쇼. 솔직히 여기 모인 머저리 중에 영감에게 목숨 빚 안 진 놈은 없으니까. 그 대가리에 검은 보석 박혀 있는 리치 새끼. 반드시 찾아낼 겁니다.”

“…마음대로 해라! 이 빌어먹을 고블린 양말 같은 새끼들아! 그것보다 정보나 내놓으라고!”

“으헤헤헤. 당연히 그럴 것이지! 자! 여기! 내가 정말 대박 정보를 찾아왔다고!”

각자 준비해온 정보를 토대로 거대하고 기괴한 누더기 행성을 축소한 지도에 여러 포인트를 채워 가던 녹투오스는,

“뭐야? 이거?”

마치 상식이 비틀린 세상을 마주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뭔데? 그래? 영감? 어라?”

그리고 그런 녹투오스의 반응에 놀란 이들이 모였다가 그가 지도에 찍어놓은 점들을 보면서 같은 얼굴이 되었다.

“이게 맞아?”

“사전에 들은 누더기 행성 정보와 판이하게 다른데?”

“왜 이렇게 생산 시설이 많아?”

“언데드 차원에 생산 시설이 이렇게 많아?”

“어쩐지! 쉽게 생산 시설을 발견해서 운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것들 뭐지? 진짜?”

그들이 알고 있는 누더기 행성의 특징은 앞서 언급한 것들이다. 산소 대신 유황. 마력 대신 마기. 생명체가 살아갈 수 없는 데스 필드가 펼쳐진 기괴한 행성.

그렇기에 무언가를 ‘생산’하는 시설은 그리 많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추론은 사실이었다. 직접 관찰한 이들에게 얻은 정보니까.

그런데 지금 행성 전체로 흩어졌다가 사흘 만에 다시 모인 숙련된 [차원 용병]이 가져온 정보에 따르면 행성 전체적으로 생산 시설이 엄청 늘었다.

“왜?”

“응?”

“왜냐고. 왜 갑자기 차원의 긴 역사에서 축적된 정보와 상반되는 이런 일이 벌어졌냐고.”

“글쎄.”

녹투오스도 대답을 듣기 위해 질문한 건 아니다. 그냥 혼잣말로 상황을 이해하고 정리하려는 의미에서 중얼거리듯이 말한 거지만, 그걸 들은 [차원 용병]들은 또 각자 고민과 생각에 빠졌다.

“영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차폐 장치의 지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좋아. 일단 그러면 다들 자신이 찾은 생산 시설과 하급 이하의 언데를 쌓아놓은 곳에 폭탄을 설치해.”

“영감은?”

어딘가 비장한 녹투오스의 말투에 다들 그의 입을 노려봤다. 마치 ‘너 혼자 복수하려고?’라고 말하는 눈빛으로.

“난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야겠어.”

“하아. 빌어먹을. 영감탱이! 고집은 진짜.”

“끌끌끌. 그걸 이제 알았냐? 애송아? 정확히 기억해. 내일이야. 오래 머물면 들키게 되어 있어. 내일 이 시각. 우리가 처음으로 내렸던 그곳으로 헤임달이 올 거야. 늦지 마. 늦는 놈은 찾아서 죽도록 패버릴 거니까.”

“영감이나 늦지 마요!”

그렇게 누가 보더라도 기이하게 보일 어보미네이션의 모임이 끝나고 각자 지역으로 흩어졌다. 좀비나 구울이 아니라 중급 언데드인 어보미네이션이었기에 여기저기 이동하는 게 어색한 흐름이 아니었고, 그렇게 그들은 흩어졌다.

그렇게 멀어지는 어보미네이션들 사이에서 몇몇이 녹투오스의 뒷모습을 힐끔거렸다.

[어떻게 할 거야? 네오?]

[어떻게 하긴. 폭탄 빠르게 설치하고 영감을 찾는다. 저 영감. 분위기가 별로야. 마지막을 준비하는 호랑이 같다고.]

[…좋아. 누가 먼저 도착하나 내기할까?]

[하?! 너희 내가 누군지 잊었어? 나 조인조이야. 그것도 창공의 왕인 독수리 일족이라고.]

[그게 무슨 상관이야 미친놈아. 지금 다 같이 누더기 골렘을 뒤집어쓰고 있는 판인데.]

[그…건 그러네?]

[어휴. 저 빡대가리 새끼. 너 때문에 조인족을 싸잡아서 새대가리라고 욕하는 거 아냐! 이 빌어먹을 놈아!]

그렇게 쓸데없는 대화를 무려 ‘의념’ 혹은 ‘전음’을 통해 나누던 [차원 용병]은 각자 맡은 지역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모두가 사라진 자리에 가장 먼저 움직였던 [차원 용병]의 리더 녹투오스가 다시 나타났다.

“애송이들 주제에 누가 누굴 걱정하는 게냐.”

여기서 다른 [차원 용병]들이 나눈 대화를 짐작하는 것처럼 민망함과 고마움을 담은 마른 웃음을 흘려냈다. 거기까지다. 그가 위장 슈트 안에서 미소를 보인 것은.

차가운 얼굴이 된 녹투오스는 곧장 한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행성 곳곳으로 흩어진 이들과 반대로 그는 행성 중심에 있는 생산 시설로 걸음을 옮겼다.

다른 생산 시설과 비교해도 유난히 크고 웅장한 건물 벽에는 마법을 모르는 애송이가 보더라도 섬뜩함이 느껴질 정도로 기이한 문양이 피로 그려져 있었다.

점점 건물에 가까워질수록 위장 슈트 안 녹투오스의 얼굴을 일그러졌다. 벽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을 벽이 아니라, 꿈틀거리는 살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거대하고 꿈틀거리는 살덩어리 위에 피로 기이하고 불길한 마법진을 그려놓은 건물.

그 안으로 마법사 계열 언데드가 쉬지 않고 드나드는 것을 마치 석상이 된 것처럼 가만히 서서 지켜봤다.

이 기이한 행성에서는 종종 활동을 멈추고 절전모드에 들어가는 언데드가 있기에 골목 한쪽에 서서 가만히 있는 어보미네이션은 특별히 눈길을 끌지 않았다. 낮과 밤이 없는,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 차가운 행성이기에 시간의 흐름을 느끼기 어렵다.

다만 녹투오스는 무려 턱걸이라고 해도 네이비(Navy) 랭크에 이른 강자. 그는 정밀하게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며 무언가를 기다렸다.

“음.”

마치 죽은 것처럼 혹은 자는 것처럼 서 있던 녹투오스가 위장 슈트 안에서 간신히 터져 나오려는 음성을 삼키고 침음을 흘렸던 건 저 멀리서 언데드들을 모세의 기적처럼 가르며 다가오는 한 마리의 리치를 발견했을 때였다.

‘놈!’

고위 언데드의 상징인 어둠이 아우라처럼 흘러나오고, 생산성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차원에서 보기 드문 보석으로 치장된 지팡이를 들고 허공을 부유하며 이동하는 아크 리치.

무엇보다 녹투오스가 위장 슈트 안에서 그를 노려보는 것은,

‘데이몬!!’

그의 이마에 검은색 보석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녹투오스의 손자의 몸에 언데드화라는 저주를 심고 도주한 아크 리치라는 뜻이었으며,

‘기필코!’

그가 그토록 찾던 원수이자, 이 의뢰를 무료 봉사에 가장 먼저 수락한 이유이기도 하다.

‘죽인다.’

혹여 살기가 일어날까. 아니면 자신의 의지에 반응한 마력이 움직여 들킬까, 그는 몇 번이나 숨을 깊게 내쉬면서 속을 가라앉혔다.

“응?”

자신의 앞을 지나가던 아크 리치 데이몬이 움직임을 멈췄을 때, 녹투오스는 지극한 경지에 이른 존재답게 짧은 순간 몇 번이나 되는 고민을 했다.

‘이대로 대가릴 깰까? 아니지. 그럼 죽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나도 잡혀 언데드가 될 수 있어. 그럼 자폭? 같이 폭사할까? 그럼 확실하게 죽일 수 있다고 확신하기도 힘들고, 영혼이 남아 있으면 마찬가지로 언데드가 될 확률이 높아. 어쩐다?’

“호오?”

데이몬은 마치 무언가를 알아차린 것처럼 길에 서서 절전모드로 들어간 어보미네이션을 바라보며 흥미로운 탄성을 흘렸다.

“재미있구나. 꼭 성공하길 바란다.”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가던 길을 이어갔다. 언데드가 무언가에 흥미를 느낀다는 것은 이치에 어울리지 않지만, 데이몬은 무려 리치 군주가 가장 처음으로 만든 언데드라는 특수성을 가졌다.

그는 리치 군주가 필멸자에 불과할 때, 아무것도 아닌 사령술사 중 한 명일 때, 생성된 스켈레톤 마법사였다. 그렇기에 리치 군주 휘하에서 이름을 받은 단 두 명뿐인 언데드이며, 가장 오래 리치 군주를 모신 존재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언데드라기보다 오히려 사람에 가까운 존재였고, 그는 이제 사색과 감정을 풍부하게 지닌 언데드였다.

“꼭 성공했으면 좋겠구나.”

녹투오스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멀어지는 데이몬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뱉은 것도 잠시,

‘뭐지? 분명히 이 위장 슈트를 꿰뚫어 본 것 같았는데?’

데이몬이 순순히 물러난 것에 의문을 품었다.

그의 예상대로 데이몬은 실제로 위장 슈트 안에 살아 있는 존재가 있음을 알아챘다. 더 정확하게는 생명력을 지닌 존재가 뿜어내는 자신을 향한 악의를 본능적으로 읽어냈다. 언데드로 살아온 세월이 가져다준 원치 않는 본능이었다.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

그것은 데이몬만이 알 일이다. 녹투오스 역시도 더 생각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데이몬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 그동안 빨빨거리고 건물 안으로 들락날락하던 언데드들이 모두 건물에서 멀어졌기에.

‘움직인다.’

잠이 든 것처럼 벽에 기대 있던 어보미네이션이 기괴한 시설로 향했다. 살점으로 이뤄진 벽 안에 준비해온 물건의 타이머를 맞춰 심어 놓기를 반복하고 어째서인지 열린 문 앞에 섰을 때,

“어서 오라. 내 그대를 실로, 진실토록, 오래도록 기다렸다. 나의 종말이여.”

그의 원수 데이몬이 양팔을 벌리고 그를 반기며 환영했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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