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8,379년 5개월 11일. 9시간 26분 38초.>
“어서 오라. 내 그대를 실로, 진실토록, 오래도록 기다렸다. 나의 종말이여.”
녹투오스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한 충격에 걸음을 멈췄다. 은밀하게 이동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이 안에서 그를 납치할 생각이었다. 죽이면 리치 군주가 알아차릴 테니까.
그를 위해서 준비해온 아티팩트도 있다. 앞서 [차원 용병]이 모였을 때 사용한 차폐 장치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특이하게 마력은 운용할 수 있지만, 범위 내에 마기를 동결하고 외부로 통하는 모든 수단의 의념을 차단하는 1억 카르마 포인트의 일회용 아티팩트.
여기서 놀랄 부분은 1억 카르마 포인트가 아니라, 일회용임에도 1억 카르마 포인트나 한다는 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아티팩트는 무려 권능이 부여된 아티팩트다.
녹투오스는 충격에 놀란 감정을 추스르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이 기괴하고 기분 나쁜 건물 안에 있는 것이 살아 있는 그린스킨이라는 걸 재빨리 확인하자마자 위장 슈트를 벗으며 물었다.
“내가 누군지 아는가?”
“모른다.”
마치 자신을 기다려 온 것처럼 말했던 데이몬의 대답은 자신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 대답에 녹투오스는 치미는 살기를 참을 수가 없었다.
“나를! 나를 똑바로 보라!! 나를 모르는가!!!”
웅얼웅얼 울릴 정도로 거친 음성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데이몬은 텅 빈 해골 안쪽에서 살벌하게 검은빛으로 빛나는 마안으로 빤히 녹투오스를 살폈고,
“역시 모른다.”
그를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렇구나.”
그리고 그 대답에 녹투오스는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 됐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벨트에 달린 여러 주머니 중 하나에 손을 넣었다.
“그럼 죽어라.”
그가 꺼낸 것은 앞서 언급한 그 아티팩트였다. 일회용임에도 1억 카르마 포인트나 하는 고가의 아티팩트.
“그만.”
놀랍게도 그 고요한 외침에 네이비 랭크에 발을 살짝 담근 녹투오스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이익!!”
“아직은 때가 아니다. 당장 여기서 나를 죽인다면? 네가 바라는 것이 어그러질 텐데. 괜찮나?”
데이몬의 말은 녹투오스의 심부를 찌르는 비수가 되었다. 어떻게서든 몸을 풀려고 힘을 쓰던 그가 온몸에 힘을 풀어버렸다.
“일단 좀 앉지. 아, 의자가 없군. 우리 종족은 보통 앉는 걸 하지 않아서 말이야. 서거나 혹은 눕거나. 둘 중 하나라서 어쩔 수 없지. 서서 대화를 마저 이어갈까?”
마치 농담이라도 한 것인 양 뼈만 남은 어깨를 으쓱한 데이몬은 벽으로 다가가 몇 가지 조치를 취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네게서 느껴지는 지독한 원망, 원한, 살기, 악의 같은 것들이 느껴져. 아마도 내게 원한이 있는 존재겠지. 그리고 너 정도의 강자라면 몇몇 기억나는 사례들이 있어.”
불과 몇 분 전, 녹투오스를 모른다고 말했던 것과 상반되는 내용이 대화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너 정도의 강자, 조인족이라는 특징, 거기에 몇 가지 조건을 더하면 추론하는 건 가능하지. 너는 아마 수인족의 차원에서 왔겠지. 차원의 절반이 죽음의 땅이 되었던. 그리고 나중에 차원을 버린 수인족의 왕, 펜리르의 휘하겠고.”
“…….”
“그래. 그런 소문을 들어본 적이 있어.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과 함께 계약과 마법의 신을 섬기는 용병들이 사는 차원이 존재한다지? 차원을 떠도는 방랑자들의 쉼터이며, 동시에 카르마 포인트의 노예들이 존재하는 차원이라고?”
데이몬의 말은 모두 맞다. 거대한 위상 차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차원의 주인은 무려 신이다. 그것도 계약과 마법을 주관하는 신.
신이 그런 차원을 만든 것은 창조주의 명령 때문이었고, 창조주는 차원 전쟁의 여파로 터전을 잃고 차원과 함께 사라지는 존재를 가엽게 여겼다.
그럼 차원 전쟁을 안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녹투오스도 그렇게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차원을 넘나들며 차원이라는 것에 대해서 감을 잡게 되면 생각한다.
차원 전쟁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차원 전쟁은 인간으로 치면 독감 백신 같은 것이었으니까. 전쟁이 없이 그저 고요 있는 차원에서는 전쟁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은 차원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심각해지면 손을 쓸 틈도 없이 100% 파멸이다.
그렇기에 전쟁을 기획했다. 적법한 계약에 따라 진행되는 전쟁은 차원의 면역력과 자정 능력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켜주기에.
그 계약에 장난을 친 놈들이 바로 여기 있는 리치 군주를 포함한 세 개의 차원이었다는 건 지금 상황에서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무튼, 그렇게 계약과 마법의 신이 만든 차원에서는 카르마 포인트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강해지기도 한다.
이요한이 고용하는 고용인들이 머무는 곳도 바로 그 위상 차원이다. 그렇기에 [장인]이나 [요리사], [메이드]를 고용하는데 필요한 게 카르마 포인트일 수밖에 없는 거다.
“흠. 한번 보고 싶었는데. 그럴 수는 없겠지.”
“왜지? 원한다면 내가 친히 너를 초대하지.”
“끌끌끌. 그럴 수 없음이야. 내가 이 차원에서 벗어나는 순간 우리 군주께서는 알아차리실 테니까.”
“…….”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자고. 솔직히 말하자면, ‘동등한 수준’에서의 대화라는 걸 해보는 게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질 않거든. 그래서 내가 조금 신이 났어. 이해를 바라.”
“…미친놈.”
“맞아. 미쳤지. 미치지 않고서야 버틸 수 없는 삶이었으니까. 이보게. 자네는 상상할 수 있겠나? 자그마치 만 년이 넘는 세월이네. 만 년.”
“뭐가?”
“내가 우리 군주님 휘하에서 언데드로 살아온 세월이 말일세.”
“…뭐?!”
“처음에 나는 스켈레톤 마법사였네. 알지? 마력탄 밖에 사용할 줄 모르는 그런 흔하디흔한 스켈레톤 마법사. 그때부터 난 나라는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네. 신기하지 않은가? 우리 군주께서 처음 레이즈 스켈레톤으로 일으킨 해골이 흔한 전사도 아니고 메이지인 것도 신기할 터인데, 그 메이지가 사고를 하고 있으니 말이야.”
“자랑이 하고 싶은가? 너는 특별했다고? 너를 죽이러 온 나를 묶어놓고?”
“아! 오해는 하지 말게. 자넬 마비시킨 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사고를 칠 걸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니. 난 자넬 오래 기다려왔거든.”
“나를? 기다렸다?”
“그 이야기는 뒤에 나오네. 자, 들어보게. 사고를 할 수 있는 언데드. 그런데 이 언데드를 소환한 잠재력은 충만하지만 어설픈 하위 사령술사. 어떤 일이 벌어질까? 행복한 삶이 시작될까? 그럴 리가 없지. 알잖는가. 사령술사들이 어떤 존재들인지. 군주께서는 신기한 나를 고위 사령술사에게 보여주고 계약을 맺었지. 군주님께서는 고위 주문을 배우게 됐고, 난 온갖 실험을 당했지. 다른 마법사도 아닌 사령술사들에게.”
“…….”
“그거 아나? 난 생각도 없이 멍청하게 사령술사의 명령에 움직이는 하위 언데드가 부러웠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군주님이 군주가 되신 이후에는 내가 실험에 쓰이는 일은 없어졌네. 그리고 깨달았지. 차라리 실험체일 때가 더 좋았음을.”
녹투오스는 마치 말을 하지 못해 죽은 귀신이 들린 것처럼 쉴새 없이 입을 놀리는 아크 리치를 보면서 상식의 혼란에서 오는 정신적인 충격을 몇 번이나 받아야 했다.
뭐? 사령술사가 계약을 맺어서 어쩐다고? 이게 뭔 개소리야?
“솔직히 이해하네. 나도 리치가 되고, 아크 리치가 된 후에 하급 언데드를 상대로 이런저런 실험을 했으니까. 이해해. 하지만 내가 군주님의 권능으로 성장할수록 내게 주어지는 업무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네.”
“업무?”
“그래. 업무. 전투가 아니라 업무네. 차원 침공을 위한 계획. 차원 침공 이후 카르마 포인트 정산. 그린스킨 차원과 계약 및 보급품 정산 등등. 수도 없이 많은 업무. 그걸 모두 해야 하네. 언데드는 잠이 없지. 알지?”
“그렇겠지. 이미 죽은 존재이니.”
“그러니 난 수천 년 동안 24시간 일을 해야 하네. 그것도 멍청하게 시키는 일만 하는 언데드가 아니라, 사고가 가능한 언데드라서 계략을 짜내고, 아이디어를 내고, 업무의 효율을 고민해야 해.”
“…그런 것 치고는 말투가 지극히 차분한데? 조금도 화가 담겨 있지 않아.”
“24시간 쉬지 않고 8,379년 5개월 11일. 9시간 26분 38초.”
“뭐?”
“그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일을 하면 감정이라는 것은 사라지게 되네. 일할 때마다 칭찬을 받는 것도 아니고, 살짝만 일이 틀어져도 소멸 직전까지 가는 군주님의 분노를 견뎌야 하지. 그러니 내게 감정은 없네. 난 그저 일할 뿐이야. 그리고 간절히 소망하고 기다리지.”
“무엇을?”
“끝을.”
“…….”
“나라는 존재의 종말을 기다린다네. 언젠가 엘프가 다스리는 차원을 침공한 적이 있네. 거기서 만난 하이 엘프가 내게 예언을 했네. ‘죽음의 누더기를 뒤집어쓴 날짐승이 너를 소멸로 이끌리라.’라고.”
“그게 나다?”
“그래. 너지. 올빼미 족의 조인족 족장. 녹투오스. 난 자네를 천 년이 넘게 기다렸네.”
녹투오스는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다. 다만 그 전에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었다.
“네 말이 맞다. 나는 펜리르 님의 차원에 살던 조인족이다. 그리고 넌 내 손자에게 저주를 내렸지. 이것도 기억하지 못하나?”
“솔직히 말하면 기억나지 않아. 자그마치 9천 년이네. 내가 차원 침공에 참여한 기간이. 그동안 내가 뿌린 저주가 얼마나 될 것 같은가?”
“좋아. 기억하지 못해도 상관없어. 이것만 확인하지. 네가 죽으면, 내 손자는, 저주는 풀어지나?”
“저주를 푸는 방법을 알려줄까? 저주는 강력한 신성력으로 해주하거나……(블라블라),”
녹투오스는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또 입을 놀리는 아크 리치를 보며 질려버렸다.
‘미친놈이군.’
“…그리고 마지막이 저주를 건 주체를 소멸시키는 것이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죽음이 아닌, 소멸이어야 하네. 대체로 저주는 ‘영혼’을 주체로 이뤄지는 계약이니까. 죽어서 해결되는 경우도 종종 있으나, 나처럼 고위 언데드라면 영혼까지 확실하게 소멸시켜야 하네.”
소멸을 언급하는 아크 리치 데이몬의 눈이 반짝인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절대로.
‘미친. 자살희망자 언데드라니!’
“뭐, 아무래도 좋아. 그딴 건. 그러니까 너를 소멸시키면 내 손자는 멀쩡해진다는 건가?”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더 정확히는 술자의 소멸로 저주가 해주되면서 계약의 일방적인 파기가 일어나게 되고, 계약의 파기는.”
“위약금이나 페널티가 발생하지.”
“맞네. 하지만 페널티를 부과받아야 할 난 소멸한 상태지. 그렇다면? 그동안 저주로 고통받은 이에게 반대로 여러 이득이 페널티를 대신해서 주어지게 되지. 운이 좋다면 천고의 기재가 될 수도 있음이야.”
녹투오스는 그거면 충분했다. 그는 더는 바라지 않았다. 설사 자신이 저 아크 리치를 소멸시키는 과정에서 죽임을 당한다고 해도 행복하게 웃으며 죽을 수 있었다.
“그럼 언제부터 시작할 거지?”
“아까 내가 말했지. 내가 차원을 벗어나는 순간, 우리 군주께서는 알아차릴 것이라고.”
“그랬지. 기억한다.”
“거기에 추가하지. 내가 차원 안에서 죽을 위기에 처하면 군주께서 나타나신다네. 그리고 군주께서 나타나신다면 자네는 반드시 언데드가 될 걸세. 권능이란 그런 것이네.”
“음.”
아니라고 반박하지 못했다. 녹투오스도 권능을 다루는 존재를 알고 있다. 가까이서 모시기도 했다. 그가 살던 차원의 왕인 펜리르가 바로 그런 존재였기에.
“중요한 건 타이밍이네. 콤마 초 단위로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타이밍이 필요해.”
“타이밍? 무슨 타이밍을 말하는 거냐?”
“자네들이 준비해온 이것들.”
언제 챙겼을까? 아까 벽을 쓰다듬으면서 챙긴 걸까? 녹투오스가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벽에 몰래 박아놓은 폭탄들이 모두 데이몬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이것들이 터지는 것과 내가 차원의 경계 밖으로 벗어나는 순간이 일치해야 하네. 그래야 자네는 나를 소멸시키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네.”
데이몬이라는 아크 리치는,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우리 군주께서는 참을성이 없는 대신 마이너스 카르마를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보유하고 계시지. 언데드의 땅이니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악업을 쌓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너무나도 완벽하게,
“오늘 군주께서 카르마 포인트를 대거 투입해서 이 시설 안에 있는 시범 케이스 생강시를 완성하길 원하셨다네. 어쩌면 이것이 운명일까?”
자신의 소멸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있었다.
“다른 시설은 상관없어. 카르마 포인트를 대거 투자한 이 시설이 완벽하게 파괴되고 안에 있는 이 살아 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피조물이 한 줌의 핏물이 되는 순간과 내가 차원 경계를 벗어나는 순간이 일치해야 하네.”
“미친…….”
자신의 소멸을 간절히 바라는 기괴한 언데드의 광기에 복수심에 불타던 녹투오스조차 질려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3.71초 안에 나를 소멸시켜야 해. 난 반항하지 않을 거야. 다만 이런 조잡한 신성력과 마력으로는 나를 소멸시킬 수 없네. 설마 준비한 게 이게 끝이 아니겠지?”
그리고 녹투오스가 소피아에게 부탁해서 특별히 받아온 고밀도로 신성력이 농축된 세계수의 가지를 꺼낸 순간,
“아아아아아.”
아이러니하게도 감정이 사라졌다고 말했던 데이몬의 음성에 ‘희망’이 담겼다. 너무나 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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