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어휴. 내숭쟁이 녀석들.>
리치 군주가 다스리는 주 행성 누더기에서 아크 리치 데이몬과 조인족 녹투오스가 정신 나갈 것 같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침공이 이뤄지는 전장인 차원 지구에서는 눈에 보일 정도로 격렬한 전투가 진행 중이었다.
넓어진 전장마저 비좁게 느껴질 정도로 각성자가 날뛰었고, 새롭게 각성하는 이들이 빠르게 늘어갔다.
그러나 그런 건 그동안의 경험에 비춰보면 일상이었고, 특별하다고 말할 수 없는 활동이었다. 이요한이 사보타주가 잘 될 수 있도록 시선을 모은다고 한 건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엘라. 엘븐나이츠는 어디쯤이야?”
“바다를 건넜어요.”
“소피아. 창천의 날개는?”
“비슷해요. 러시아? 이쪽으로 향한 것 같은데요?”
엘븐나이츠는 바다를 지나 중국 동쪽에 도착했고, 창천의 날개는 [마구간]에서 고용한 탈것을 타고 러시아 쪽으로 향했다.
영지 주변을 영지민이 사냥하는 데 열중한다면, 그보다 더 넓은 범위로 무력 수색을 이어가는 건 특별한 기사단들이었다.
또한,
“엘라. 설기는? 어디에 있어?”
꽤 오랫동안 잠이 들었다가 깨어난 설기는 새끼들을 데리고 사냥에 나갔다.
“남쪽으로 향했어요. 바다를 지났습니다.”
“어쩐지. 카르마 포인트가 미친 듯이 오른다 했어.”
귀여운 설기는 깨어난 이후로 무언가 조금 변했다. 전이라면 부탁하지 않으면 이요한의 품에 안겨 식빵을 굽고 있었을 텐데, 이번에는 자발적으로 나서서 멀리 원정을 떠났다.
바라를 건너 남쪽으로. 일본이었던 땅을 지나 인도네시아와 동남아로 향하는 설기의 등에는 이제 막 태어난 지 한 달이 되지 않은 해츨링 세 마리가 타고 있었다.
“그나저나 우리 찹쌀이랑, 달이랑, 방울이는 괜찮을까요?”
설기가 순백의 털에 ‘백설기’에서 이름을 따왔듯이 그의 해츨링도 다 떡 이름에서 유래했다.
설기랑 가장 많이 닮은 티 하나 없이 새하얀 녀석은 찹쌀떡에서 따서 찹쌀이.
달잔 기지 떡처럼 눈 위에 눈썹처럼 작지만 선명한 점이 하나씩 있어서 달잔 기지 떡을 닮았다고 해서 달이.
그리고 눈 주변에 작은 주름이 잡힌 녀석은 방울 기정 떡을 떠오르게 한다고 해서 방울이로 정해졌다.
세 해츨링은 둘 중 한 자리를 고수했다. 설기의 품이나, 내 몸에 엉겨 붙거나.
‘분명히 싫어하는 것 같았는데.’
특히나 방울이는 가기 싫다는 듯이 울기까지 한 것 같은데, 설기는 가차 없었다. 입으로 물어 자신의 등으로 던져놓고는 그대로 날아갔다.
“괜찮을 거야. 듣기로는 드래곤에 비견되는 존재라던데?”
“하지만 우리 하찮은 쪼꼬미들은 아직 아가라고요.”
“뭐, 설기가 설마 다치게 하겠어?”
“그노무시키는 속을 알 수가 없어요!”
유다연이 말썽꾸러기라서 속을 썩이지만, 사랑스러운 개구쟁이 막내딸처럼 생각하는 설기는 확실히 그녀에게는 의뭉스러운 행동을 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건 유다연의 말과 다른 느낌의 의뭉스러움이었다.
‘오히려 설기가 유다연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는데.’
“어쨌든 괜찮을 거야.”
“어떻게 알아요?”
“지금 막 카르마 포인트가 엄청 들어오기 시작했거든.”
“아하.”
지금까지와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속도로 카르마 포인트가 빠르게 들어온다. 설기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 * *
설기라는 이름을 받은 자이언트 윙 샤벨타이거는 강제로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면서 새롭게 받은 보상이나 마찬가지인 자신의 동족을 며칠 동안 살펴봤다.
일단 외모는 귀여웠다. 종말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어서인지 유난히 지구라는 차원은 귀여운 것에 약했다. 그래서일까?
‘후움.’
열흘에 가까운 시간 동안 살핀 동족이 설기는 참 못마땅했다. 그래. 그건 못마땅함이었다. 짜증이나 분노 같은 게 아니라.
‘너무 온순해.’
그 이유도 다른 게 아니다. 포식자의 포식자. 생태계 최정점에 선 자이언트 윙 샤벨타이거가 지금은,
‘그냥 고양이 같군.’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됐다. 오죽하면 살이 찐 녀석도 있을 정도였으니, 설기가 느끼는 못마땅함은 합당했다.
‘주인에게 말을 좀 전해야겠구나.’
철없는 아이를 보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한숨을 쉬던 설기의 귀에 주인의 말이 확하고 들어온 건 그로부터 얼마 뒤였다.
“영지 전체에 권고해. 적극적으로 사냥하라고. 그리고 엘븐나이츠와 창천의 날개는 멀리까지 나가서 좀비 좀 치워버려. 마구간에서 원하는 탈 것이 있으면 말하고. 고용해줄 테니까.”
그 말을 듣자마자 설기는,
“먀아~!”
귀여운 목소리로 자신의 주인에게 말했다. 자신도 참여하고 싶다고. 그때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던 주인의 모습은 기분 좋은 재미를 주었다.
아무튼, 설기의 요청을 이요한은 당연히 받아들였다. 이요한만큼 설기의 강함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 이도 없었으니까.
다만,
“먀아~.”
“응? 정말? 하찮이들을 데려간다고? 괜찮겠어?”
설기가 해츨링도 같이 간다고 했을 때, 당황한 것 같았지만,
“뭐, 우리 설기가 더 잘 알겠지. 다치지 않게 데려와야 해. 알았지?”
끝내 허락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먀.”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먀아~. 먀먀.”
반드시 한 사람의 몫을 하게 만들고야 말겠다고 말했을 때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터트렸지만, 설기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곧장 해츨링 세 마리를 등에 태우고 일본이었던 지역으로 향했다.
“먕?!”
“먕먕!”
“먀양!”
세 마리의 해츨링, 특히나 방울이는 유독 이요한과 떨어지는 걸 싫어했지만,
“먀아.”
[내숭 떨지 마. 이것들아.]
설기는 해츨링의 어리광을 받아주지 않았다. 설기는 오히려 가증스럽다고 느꼈다.
“먀!”
[나도 어릴 때가 있었어!]
“먀먀?!”
[그런데 내 앞에서 어리광을 부려?!]
일본을 향해 빠르게 날아가면서 호통을 친 결과일까? 그의 등에서 이요한이 있는 유토피아를 보며 울던 해츨링들이 조용해졌다.
“먕.”
[에잉.]
“먕먕.”
[다 들켰다.]
“먀앙…….”
[아빠…….]
찹쌀이와 달이는 내숭을 떨고 있는 게 맞지만, 방울이는 진짜 이요한과 떨어지는 게 싫었던 거였다.
[이제 도착하는 곳에 가면 역겨운 생물들이 많을 거다. 보이는 족족 죽이는 거다. 가장 적게 죽인 녀석은……. 사흘 동안 간식 금지다.]
[말도 안 돼!]
[1등은? 1등은?]
[난 아빠 보고 싶어.]
[나를 제외하고 1등을 하면 주인에게 부탁해서 특별식을 주겠다.]
[트윽별?]
[특별?]
[아빠?]
[하아……. 젠장. 특별식이다. 주인이 잘한 일이 있을 때마다 주는 것인데. 츄르라고 하는 것이다.]
[츄릅?!]
[츄으?]
[아빠!]
설기는 벌써부터 뭔가 혼란스럽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제 와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자이언트 윙 샤벨타이거의 가죽이 좀비 따위에게 흠집이 날 일은 없을 거고.
[분명히 말하는데. 다치는 녀석은 일주일 동안 한 주먹의 사료만 먹을 줄 알아!]
[흥!]
[설기. 미워.]
[힝…. 아빠.]
[다 왔다.]
설기가 그 말을 꺼내면서 땅에 내려앉은 곳은 혼슈라고 불리는 옛 일본의 본섬이 있는 곳이었다.
“먀.”
[시작한다.]
그 말과 함께 세 해츨링을 떨어뜨린 설기의 날개가 한 번 펄렀인다.
파앙―!!
폭죽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설기의 모습이 사라지고, 설기가 지나간 자리에는 온몸이 으깨진 좀비였던 것들과 악마였던 것들의 흔적만 남는다.
“먕.”
[어휴.]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한 찹쌀이는 설기가 날아간 반대 방향을 바라보며 앙증맞은 날개를 펄럭였다. 그러자,
후웅―!
손바닥 위에도 올라가던 작은 크기의 찹쌀이가, 두 손에 올려놓고 식빵 자세로 자고 있으면 뭉쳐놓은 찹쌀떡 같다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게 만들던 하찮은 꼬물이가 대형 버스보다 더 크게 변했다.
“먀.”
[난 이쪽이야.]
그 말과 함께 날개를 펄럭이는 소리와,
파칙!
찹쌀이가 지나간 자리에는 푸른색 뇌전이 흔적처럼 남기고 사라졌다.
남은 둘은 서로 어디로 갈지 속닥거렸다. 그리고 달이는,
“먕.”
[난 저기로.]
혼슈의 동쪽에 있는 큐슈 방향을 가리키며 말하자,
“먀앙. 먕”
[난 저쪽으로 갈게. 아빠랑 가까운 곳이야.]
방울이는 훗카이도를 가리키며 날개를 펼쳤다.
둘이 동시에 날개를 펄럭이자 찹쌀이 때와 마찬가지로 대형 버스 크기로 커진 둘은 각자 선택한 방향을 향해 날아갔는데,
화르르르―.
달이 뒤에는 선명한 잔불이 꼬리를 물었고,
슈우우우콱!
방울이는 앞뒤로 투명한 바람의 칼날이 흔적을 남겼다.
무엇이 되었든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아마 이 모습을 이요한이 봤다면,
[어휴. 내숭쟁이 녀석들.]
실망했을 거라는 거다. 그리고 설기의 말이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