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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146화 (146/183)

146화

<예언이 실현되었다>

갑작스럽게 행성 전체에 일어난 막대한 신성력과 마력의 폭발.

그 여파인지 리치 군주가 나타나지 않았고, 평소 행성에서 일어나는 일을 대부분 처리하던 데이몬이 무슨 이유에선지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 누더기 행성의 혼란은 극에 달했다.

언데드인 이들이 혼란스러워한다는 것이 어떻게 들으면 어울리지 않는 주어와 서술어다.

혼란스럽다는 말은 사고(思考: 생각하고 궁리함)하는 존재가 사고(事故: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를 만나면서 생각이 꼬이는 것을 뜻하는데, 언데드의 8할은 사고를 하지 않는다.

돌진하라면 돌진하고, 멈추라면 멈춘다. 공격과 방어 그리고 대기 정도만 한다.

그런 언데드만 모인 차원에 혼란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아야 맞다. 하지만 지금은 혼란스럽다.

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심연의 추방자 차원의 지배자인 리치 군주 때문이 아니다. 사라진 데이몬 때문이다.

생산성이라고는 1도 없는 이 행성이 수천, 수만 년 동안 멸망하지 않고 지속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데이몬 때문이다. 그는 심연의 추방자가 다스리는 차원의 모든 것을 주관하는 CPU였으며, 메인보드였다.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이 평가하기를 리치 군주는 데이몬이라는 기이한 존재에게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기라고 한 게 괜한 말이 아니다.

데이몬 이외에도 아크 리치는 존재하고 생각하고 사고할 수 있는 고위 언데드가 적지 않지만, 갑자기 벌어진 테러에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무엇보다 침공을 받아 본 경험이 없었다. 리치 군주의 세력은 항상 침공하는 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미친놈이 차원 방어를 하기도 바쁜데, 역으로 침공해서 테러를 자행하겠나?

무엇보다 차원이라는 게 같은 대륙에 붙어서 가상의 경계선을 긋고 ‘여기부터 우리 땅!’이라고 하는 식도 아니고 어디에 있는지 알지도 못하며, 설사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차원과 차원을 건너는 건 보통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다.

단순히 힘이 강하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이론만 빠삭하게 안다고 되는 것도 역시 아니다.

어렵다. 아니. 어렵다는 말은 너무 약하고 불가능하다는 말이 더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차원 침공에 제정신일 언데드가 있을까?

“데, 데이몬님은?”

“구, 군주님께 보고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오?”

“누가 할 건데!”

“빌어먹을! 폭발부터 막아!”

“보고부터 해야 한다니까아아!!”“데이몬 님부터 찾아야 한다고!!”

난장판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인지 고위 언데드가 속속 탑 입구로 달려와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소란에도 리치 군주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일단 물러나자.”

탑 꼭대기에서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힘이 넘실대고 있었다. 고위 언데드는 최소 세 번 이상 리치 군주를 대면해봤기에 안다. 저것이 리치 군주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때 흘러나오는 힘이고, 저 마기에 닿는 것만으로도 몸이 부서진다는 것을.

데이몬 다음으로 제작한 언데드이자 어비스 나이트라는 특이한 개체로 성장했으며, 오네로라는 이름을 받은 단 두 명뿐인 언데드. 그의 경고에,

“네? 허억?!”

“으어어.”

“튀, 튀어!”

여러 반응을 보이며 탑에서 멀어졌다. 특히나 몇 번이나 소멸 직전까지 갔던 고위 언데드들은 도망치라는 말에도 트라우마가 나타난 것처럼 잔뜩 겁을 먹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벌벌 떨기만 했다.

그런 그들을 잡아끌고 물러난 이들은 점점 그 크기를 불려가는 마기에 겁을 먹고 자신들도 모르게, 본능에 이끄는 대로 점점 더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이제는 탑이 아득하게 보일 때까지 물러난 이들의 눈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탑만 눈에 담았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사방에서 터지는 신성력과 마력 따위는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그 폭발의 여파로 행성을 뒤덮고 있던 살덩어리가 흩어지고, 그 아래 깔린 단단한 흙과 바위가 드러난 것도 관심 없었다.

“저, 저, 저거……!”

“더 물러나야 하는 거 아니야?”

“오, 오, 오네로님! 데, 데이몬님은 어디에?”

오네로와 데이몬이라는 이름을 들은 고위 언데드들은 이 순간을 타파할 유일한 희망을 들은 것처럼 어비스 나이트인 오네로에게 모였다.

“나도 모른다.”

“에?”

그 대답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을 수 없는 일. 이 말은 실수나 당황해서 나온 잘못된 단어 선택이 아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 그럴 수가 있습니까? 데이몬님과 오네로님 그리고 군주께서는 항상 서로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리치 군주가 최초로 제작한 스켈레톤 메이지와 스켈레톤 워리어는 서로 영혼이 연결되어 있다고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데이몬의 존재감이 잡히지 않는다.”

오네로의 대답에 중구난방으로 떠들던 언데드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오네로에게 존재감이 잡히지 않는 데이몬.

그리고 이 난리에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리치 군주.

마지막으로 행정을 반파시키고도 남을 것 같은 리치 군주의 마기.

“뭐, 뭔가 X 된 것 같은데?”

이름을 받지 못한 아크 리치의 중얼거림이 차원 침공 최전선에 서면 모두를 공포에 떨게 만들 고위 언데드들을 속마음을 대변했다.

그리고 그 순간,

─────────!!

넘실거리며 위협적이고 불안하게 꿈틀대던 마기가 폭발했다. 소리보다 먼저 폭발이 행성을 휩쓸고 난 뒤에야,

콰아아아아아아앙―!!!

폭음이 들려왔다. 탑 주변에 있는 반경 수십km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나마 탑이라는 건축물이 구름을 관통할 정도로 하늘 높은 곳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땅 위에서 저런 게 폭발했다면?

누더기 행성 자체가 반으로 쪼개졌을 거다.

“설마 그 예언이 진짜란 말인가.”

[죽음의 누더기를 뒤집어쓴 날짐승이 너를 소멸로 이끌리라.]

데이몬이 녹투오스에게 말했던 그 예언을 오네로도 같이 들었다. 그리고 데이몬의 존재감이 사라진 순간 오네로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길한 예감을 애써 무시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럴 리가 없다.”

그 예언의 시작은 데이몬의 소멸이었지만, 예언의 끝에는,

[죽음의 누더기를 뒤집어쓴 날짐승이 너를 소멸로 이끄리라.

너의 소멸과 함께 추방자는 비루하게 영락하며.

그의 손이 닿은 모든 것은 무로 돌아가리라.]

초월자인 리치 군주와 차원의 끝을 예언하고 있었다.

너무 오래 지나 잊었던 예언이 왜 하필 지금 떠오른 것일까? 오네로는 아까부터 계속 자신의 몸을 타고 흐르는 불길함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서서 견디는 것밖에는.

오네로 뿐만이 아니라, 그 곁에 선 다른 언데드들도 마찬가지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망연자실했다. 그러나 그들은 행성의 1할이 먼지도 남기지 못하고 소멸하고, 3할이 반파되었다는 것에 놀랄 틈도 없었다.

[데이모오오오오온―!!!]

리치 군주가 지금까지 본 적 없을 정도로 분노하며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데이몬을 찾고 있었으니까.

“……음.”

그리고 그런 자신의 주인의 모습을 보면서 오네로는 직감했다.

‘예언이 실현되었다.’

데이몬과 자신이 들었던 예언이 실현되었음을.

“아아. 군주시여…….”

그리고 분노에 미쳐 자신의 차원을 파괴하고 있는 리치 군주를 애타게 불러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오네로는 데이몬과 함께 이름을 받았으나, 데이몬과는 아득한 차이가 나는 언데드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리치 군주의 행성 누더기는 사보타주에 의해 피해보다 리치 군주의 폭주에 의한 피해가 더 컸고, 지금도 실시간으로 계속 커지는 중이다.

[차원 용병]과 데이몬이 심연의 추방자 차원을 벗어나고 30분도 안 돼서 벌어진 일이었다.

* * *

설기가 본격적으로 행동했다는 걸 카르마 포인트의 폭발적인 움직임으로 알아차렸듯이, 엘븐나이츠와 창천의 날개 기사단이 좀비를 때려잡기 시작한 것 역시 카르마 포인트의 폭발적인 증가로 바로 알게 됐다.

카르마 포인트 획득 양이 엄청난 속도로 증가했지만, 아직 본전도 못 찾았다. 무슨 본전이냐고?

두 기사단의 출정을 위해서 [마구간]에서 고용해준 탈 것에 들어간 포인트 말이다.

‘엘라 때와는 또 다르다니.’

엘라는 하이 엘프 전용으로 [사케르 순록]을 10% 가격에 구매했지만, 하이 엘프가 아닌 일반 엘프는 그런 게 없었다. 제값을 다 내고 사야 했다.

마리 당 180만.

그나마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에 여유가 있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호기롭게 말한 것과 다르게 원하는 탈 것을 마련해주지 못하는 민망한 상황이 벌어졌을 수도 있다.

엘븐나이츠 200여 명 중, 영지에 남아서 어린 엘프 교육을 담당할 인원 57명을 제외한 151명에게 [사케르 순록]을 수여해주느라 들어간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는 2억 7,100만 포인트여야 했다.

다만 여기에도 [연구원] 효과가 적용돼서 2억 1,472만 2,000포인트를 사용했다.

창천의 날개는 [엘더 페가수스]를 선택했다. 높디높은 성벽 위에서 전투에 익숙한 창천의 날개 기사단은 이동속도도 빠르고, 하늘에서 호버링을 할 수 있으며, 마기에 대한 저항력이 엄청 높은데다가 자체적으로 여러 버프와 속성 공격까지 주는 [엘더 페가수스]로 이뤄진 진짜 기사단이 되었다.

얼마였냐고?

어휴. 말도 마라. 그냥 페가수스도 아니고 앞에 ‘엘더’라는 칭호가 붙었잖냐.

[엘더 페가수스] 한 마리에 150만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가 필요했다. 그나마도 본래는 220만인데, 현재 [마구간]에 보호하고 있는 [엘더 페가수스] 전체를 고용하면 150만으로 할인해 준다고 해서 그렇게 저렴해진 거다.

[마구간]에서 보호하고 있는 [엘더 페가수스]의 개체는 199마리.

본래 2억 9,850만 카르마 포인트가 필요했지만, [연구원] 고용 효과로 21% 할인해서 2억 3,481만 5천 포인트가 들어갔다. 창천의 날개 기사단이 187명이었기에 이들에게 한 명씩 분배하고 남은 [엘더 페가수스]는 12마리다.

그래서 남은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가 19,753,953 포인트였다. 2천만도 안 남았다. 5억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 있었는데.

아, 남은 [엘더 페가수스]는 뭐 하냐고?

“뾰쪽아. 나랑 놀아?”

“뽀쪽이 아니야. 페가페가야.”

“난 뾰쪽이라고 부를 건데?”

“안 돼!”

세계수의 그늘 밑에서 애기들하고 놀아주는 중이다. 인간 애들만 있는 것도 아니다. 엘프와 인간 아이가 서로 어우러져서 놀고 있다.

[엘더 페가수스]는 속성 친화력이 높은 환수였기에 어려서부터 함께 하면 여러 좋은 효과가 생긴다나? 무엇보다 영성이 열린 [엘더 페가수스]와 친해지면 저주나 악기 같은 것에 면역력이 생겨 좋단다.

누가 그랬냐고?

“영주님. 우리 흰둥이 착하죠?”

내 옆에서 [엘더 페가수스]를 타고 그 목을 쓰다듬고 있는 소피아가 그랬다. 소피아도 창천의 날개 중 한 명이니 당연히 그녀에게도 [엘더 페가수스]를 수여하는 게 맞는데.

“이름이 흰둥이야?”

“네! 귀엽죠?!”

그녀가 타고 있는 [엘더 페가수스]의 표정이 와작 찌그러진 것 같은데? 착각인가?

[착각이 아닙니다. 마스터.]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흰둥이라니. 누가 봐도 대충 지었다는 느낌이잖아?

소피아의 작명 센스에 혀를 내두르는 순간,

『차원 전쟁 역사에서 최초로 역습을 성공하셨습니다!』

『이는 차원 전쟁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업적입니다!』

『별도의 보상 이외에도 당신의 업적은 차원 역사에 기록됩니다!』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 메시지가 등장했다.

“오호?!”

카르마 포인트 폭탄을 기대하면 되는 건가?

『「심연의 추방자」 차원의 파괴가 실시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보상 카르마 포인트 책정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파괴가? 실시간? 그게 뭔?”

『계약 완료를 확인하기 위한 [차원 용병]이 소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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