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성공 보너스를 지급하겠습니다>
『계약 완료를 확인하기 위한 [차원 용병]이 소환됩니다.』
메시지가 출력됨과 동시에 이전과 마찬가지로 영지 건물 [용병 길드] 앞에 백 명의 [차원 용병]이 갑자기 나타났다.
역전의 용사들.
차원 침공 방어전 최초의 사보타주라는 일을 해낸 이들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가까이 가던 나는 [차원 용병]들의 분위기가 뭔가 앞서 만났을 때와 다르다는 걸 느꼈다.
‘뭐지? 누가 죽었나?’
블루 랭크에 오른 신체 스탯으로 빠르게 수를 셌다.
‘100명인데?’
하지만 사망자는 없었다. 얼핏 살핀 것으로 보면 큰 부상을 당한 용병도 없었고.
“분위기가 이상하네요? 혹시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어쩔 수 없이 수고했다는 말보다 이 말을 먼저 꺼낼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분위기는 우중충하고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보였으니까.
“아! 아닙니다. 고용주님.”
올빼미 머리에 등에 날개가 달린 중년의 조인족 남자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내게 대답했다.
“분위기가 안 좋은데요.”
“아. 흐음.”
그제야 남자는 [차원 용병]이 넋이 나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말을 삼켰다.
“고용주님. 혹시 술 있습니까?”
“술이요?”
“네. 아무래도 저것들과 한잔해야 할 것 같아서요. 혹시 너무 과한 요구였다면 거절하셔도 됩니다. 저희는 본래 대기하던 차원으로 돌아가서 술을 마셔도 되니까요. 아, 이거 말을 하고 보니 제가 너무 과한 요구를…….”
“아뇨. 괜찮아요. 술 많아요.”
아마 일반적인 쉘터였다면, 아포칼립스에 술을 달라고 하는 건 굉장한 실례였을 테지만, 우리는 괜찮다.
“맥주부터 와인에 위스키까지. 술은 종류별로 있어요. 이리 오세요. 그렇지 않아도 저도 궁금했거든요. 사보타주에 대해서.”
“알겠습니다.”
공손하게 대답한 조인족 남자는 바로 몸을 돌려,
파앙―!!
손뼉을 마주쳐 폭음을 만들었다. 무언가 터지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차원 용병]들의 시선이 모이자,
“이 빌어먹을 놈들아! 고용주께서 한잔 사신단다!”
그렇게 크게 외치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나를 따라왔다.
“한잔……? 여기 침공받는 차원 아니야? 그런데 술이 있어?”
“이런 데서 마시는 술이 또 진국이지.”
“맞아. 이런 난리 통에도 아껴둔 술이라는 거잖아?”
“희소성이 대단하겠지?”
“난 간다.”
“아 저 개또라이새끼. 이럴 때만 존나 빨라!!”
…
그리고 [차원 용병] 사이에서 잠깐의 침묵이 머물다가 사라지고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조인족의 뒤를 따라붙었다.
“죄송합니다. 원체 시끄러운 놈들이라.”
“그런 건 괜찮아요. 우리도 항상 시끄러운 편이니까.”
“그렇…습니까?”
그제야 영지가 눈에 들어오는지 내성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영지 주변을 보기 시작했다.
“집……? 집이 있네요.”
[집]을 보며 놀라다가,
“3층 저택……이? 있네요?”
삼층집을 보고는 이해할 수 없는 생물을 본 것 같은 기괴한 표정이 되었다. 영지를 순찰하는 [병영]의 [파수꾼]을 보면서 또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린 것 같은 얼굴이 되더니,
“그러고 보니까. 영지가 엄청……. 엄청? 평화롭다? 이게 맞나 싶지만, 평화롭네요?”
영지 분위기가 화기애애한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저기 고용주님.”
“네?”
“이곳 차원은 전쟁 중이 아닌가요?”
“전쟁이라고 할까요? 멸망을 막기 위해서 노력하는 중이라는 게 더 맞지 않을까요?”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제가 아는 게 맞는데. 그런데 이곳 분위기는 이상……? 으헥?!! 세, 세, 세!!”
“영감. 왜 그래? 뭘 보고 놀……. 허미 씨벌! 저거 세, 세계수지? 맞지?!”
“개또라이새끼. 또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어. 세계수가 왜 있……? 있네?”
“세계수다!”
…
우르르 몰려들어 [내성] 경계를 둘러싸고 있는 담장 너머로 보이는 세계수에 기겁하거나 놀라고 있다.
“고, 공용주! 저, 저, 저기 있는 저것이 세, 세계수가 마, 맞습니까?”
조인족 남자는 자신이 나를 고용주님이 아니라 ‘공용주’라고 불렀다는 걸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놀란 얼굴이었다.
“세계수가 맞습니다. 신기하십니까?”
“이, 이런 미친!”
그는 세계수라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아니, 그런데 이 양반들은 아까부터 왜 이렇게 놀라?
“일단 안에 술과 안주를 준비해두었습니다. 가시죠.”
“아, 네. 죄, 죄송합니다. 멍청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고용주님.”
[차원 용병]은 내성 안으로 들어와서 더 호들갑을 떨었다.
“어, 어어?! 인간 아이?! 엘프 아이?!”
“세계수 그늘을 아이들에게 내줬어?!! 왜?!”
“미치겠네. 여기 뭐야?!”
“우리 아들도 딱 저만한데…….”
…
이들에게는 세계수 아래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노는 게 엄청 이상해 보이는 것 같았다.
“잠깐만. 저기 말이 아니네?”
“응? 어? 그러네?”
“날개? 페가수스?”
“아닌데? 머리에 뿔도 있는데? 유니콘 아니야?”
뒤늦게 [차원 용병]들은 아이의 치댐을 받아주면서도 싫은 기색 하나 없는 [엘더 페가수스]를 보면서 얼빠진 소리를 해댔다.
“…엘더 페가수스.”
[차원 용병]의 리더처럼 보였던, 누군가 ‘영감님’이라고 불러서 이해할 수 없게 했던 중년의 조인족 남자가 정체를 제대로 알고 있었다.
“맞아요. [엘더 페가수스]. 우리 영지 소속 기사단의 기승수죠.”
“…여긴 미쳤어.”
그는 그렇게 말하며 생각하는 걸 포기한 얼굴이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왠지 [내성]에서 나오던 엘라와 내 옆에서 말없이 걷던 소피아는 알 것 같은 얼굴이었다.
“뭐.”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겠나. 엄청난 일을 하고 온 [차원 용병]의 안색이 좋지 않아서 걱정이었는데, 그걸 떨쳐 낸 것 같은 게 중요하지.
“가시죠. 술은 종류별로 준비했다고 하니까.”
“아, 네. 더는 놀라지 않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다짐하면서 날개를 접고 [내성] 안으로 조심히 들어왔다. 자신을 맞이하는 묘인족 [집사]와 [메이드]의 모습에 또 한 번 놀란 것처럼 숨을 급히 들키던 그는 자신이 한 말이 떠올랐는지,
“흠흠. 노, 놀라지 않았습니다.”
라는 비겁한 변명을 하면서 식당으로 향했다.
“우우우. 추하다! 영감!”
“아다만티움 계급 [차원 용병]이 저런 비겁한 모습이라니!”
“우우우! 날깨 떼어버려라!”
…
물론 뒤를 따르는 같은 [차원 용병] 동료들의 악질적인 놀림에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얼굴이 되었지만, 그는 꿋꿋하게 버텼다.
하지만,
“미친!! 이런 술을 카르마 포인트만 있으면 마실 수 있어?!!! 여긴 미쳤어어!! 이, 이거 이름이 뭐라고?”
그는 맥캘란 제네시스 디켄터를 마시더니 저렇게 외쳤다.
“하하하하.”
난 사실 잘 모른다. 애초에 술을 별로 즐기지도 않고. 위스키를 비롯한 와인과 맥주 같은 술은 모두 올리비아가 준비했다.
“맥캘란 제네시스 디켄터입니다. 참고로 종말이 시작되기 전에도 단 600병만 생산된 겁니다. 당시 지구의 인구가 77억이 넘었는데 말이죠.”
“오오오오!!”
저러다 판매도 하겠다? 하긴 올리비아가 술에 진심인 것처럼 보였다.
‘뭐라고 했더라? 나쁜 위스키는 없다였나?’
“세상에 나쁜 위스키는 없습니다. 좋은 위스키와 더 좋은 위스키가 있을 뿐이지!”
“오오오오!!”
그래. 저거다. 냉철한 얼굴로 저 말을 하면서 옥션에서 1억이 넘는 위스키를 아무렇지 않게 사서 챙겨놓더라니까?
“지금은 영주님의 능력으로 카르마 포인트만 있으면 언제든 즐길 수 있습니다. 단 3만 포인트에 모십니다.”
“오오오오오오오!!”
미치겠네. 진짜 영업을 뛰고 있네? 뭐, 들어서 알겠지만, 생각보다 알코올 농도가 높고 비싼 술은 카르마 포인트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3만 포인트다. 3만 포인트.
단층집이 10만 포인트인데.
엄청 비싸지. 물론 저걸 혼자 사서 한 번에 한 병을 다 마시는 사람은 없겠……?
“한 병 더!!”
“나도!”
“난 이걸로! 빨간 거!”
…
있네. 그것도 많네.
미친 사람들이네. 아니, 사람은 아닌가? 미친 수인족들이네.
“아! 이런! 내 정신 좀 봐! 지금 술만 풀 때가 아닌데. 죄송합니다. 고용주님!”
“아아. 괜찮아요. 다들 어려운 일 하고 오셨는데요. 뭘.”
“아……. 어려운 일……. 어려운 일이었죠. 어려운 일.”
푸념에 가깝게 몇 번이나 중얼거린 그는 자신의 과거를 조금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한 잔, 두 잔, 술이 들어갈수록 풀어내는 속도는 빨라졌고 사보타주를 진행하면서 벌어진 일들에까지 설명이 이어졌다.
“상상할 수나 있겠습니까? 감정이 사라진 리치라니? 산자를 향한 악의라던가, 지식에 대한 탐욕 같은 게 없는 그런 언데드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언데드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온전히 감정을 드러낼 때가, 자신의 소멸을 원할 때라니.”
“흠.”
긴 이야기를 하는 동안 어느새 주변은 고요해졌다. 사보타주가 성공적으로 완료되었음을 알리는 바람의 정령에 영지로 복귀한 이들도 하나둘 식당으로 모여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음에도 어떤 반응도 나오지 않았다.
“그놈은 제 원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원수를 갚았습니다. 이제 차원 어디에도 머리에 검은 보석을 박은 아크 리치 데이몬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슴이 헛헛하네요.”
언뜻 들으면 저게 무슨 소린가 할 거다. 소멸을 바라는 언데드라니. 병약 소녀가 되고 싶은 트롤 같은 소리 같잖나.
그러나 나는 간절히 소멸을 바랐다는 그 리치에게 공감되는 면이 있었다.
‘나도 그랬지. 회귀 전에.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복수를 후회하시나요?”
“아닙니다.”
그는 내 질문을 칼같이 끊어내며 부정했다.
“그럼 복수의 과정이 너무 쉬워서 아쉬운 건가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복수의 대상이 너무 쉽게 죽어서 아쉬운 거군요.”
“…….”
중년의 조인족은 말하지 않았지만, 대답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는 상대가 조금 더 발버둥 치고 살려고 애원하길 바랐을 거다. 그게 복수를 꿈꾸는 자들의 소망이니까.
용서를 빈다? 아니면 이미 회개를 했으니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것만큼 빡치는 게 있을까? 내가 용서를 안 했는데, 누가 미리 용서를 해?!
아마 지금 이 남자가 느끼는 허무함은 복수의 과정이 생각했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허무하기 때문에 오는 허무와 무기력함일 것이다.
이럴 때는,
“손자는 보고 오셨나요?”
복수의 근원이 되었던 것을 일깨워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아! 아아! 그, 그렇군요! 깨어났다는 소식은 헤임달 안에서 들었습니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군요.”
마시던 술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키다가 휘청거린 그는 마력을 일으켜 취기를 모두 날려버렸다.
“잠시만요.”
이대로 보내도 된다. 의뢰 비용은 미리 지불했고, 그러니 의뢰가 완료되었다는 내용을 공지하면 서로 끝이다.
하지만,
『차원 전쟁 역사에서 최초로 시도한 역습과 후방 교란에 대한 1차 보상 책정이 끝났습니다.』
『사보타주에 의한 ‘직접적인’ 「심연의 추방자」 차원의 파괴에 대한 보상을 먼저 하겠습니다.』
『파괴된 시설과 폭발로 사망한 언데드에 대한 카르마 포인트 책정을 끝냈습니다.』
『특수 카르마 포인트 107억(10,700,000,000) 포인트를 지급합니다.』
『언데드라는 특정성에 플러스 카르마와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가 동시에 포함되어 있음을 물론이고, 행성을 강제로 감싸고 있던 역겨운 시체 덩어리 역시 파괴되었기에 양쪽 카르마 포인트로 분리하지 않고 특수 카르마 포인트로 통합하여 지급합니다.』
조금 전, 그가 깊은 허무에 빠져 있음으로 식당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을 때,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그냥 보낼 수가 있겠냐고.
“성공 보너스를 지급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