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우리 신녀님의 주인님인 영주님.>
자신을 녹투오스라고 소개한 올빼미 조인족은 자신이 뱉은 말을 온전히 지켰다.
그는 자신과 동족이 머물 곳을 내성 안에 마련해주고, 자신의 손자와 손녀 그리고 성인식을 치르지 못한 종족의 아이들이 조금의 차별도 받지 않고 세계수의 그늘 밑에서 다른 종족 아이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확인하기 무섭게 날개를 펼치고 성벽 너머로 날아갔다.
그의 뒤를 따라 블루 랭크에 오른 강자들이 하늘을 날았다.
“우와! 새야! 새!”
“아니야! 새 아니야!”
“사람이야!”
“날개가 있는걸?”
“새사람이야! 새사람!”
…
세계수 아래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보며 난리가 난 것을 보며 동행한 조인족들은 이 영지가 얼마나 평화로운 곳인지를 간접적으로 실감했다.
“좋은 것 같아요. 이곳.”
특히나 조인족 여성이자 아이들의 엄마는 전쟁 중인 차원으로 향한다는 결정에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들이 지금 자신의 자녀들 나이일 때, 차원 전쟁으로 차원이 파괴되고 카르마 포인트로 모든 생활을 해야 하는 차원과 차원 사이에 떠 있는 섬, 아스가르드로 대피한 것이니까.
“맞아요. 여기라면 아스가르드보다 훨씬 좋아요.”
아스가르드.
계약의 신이 만들어 놓은 차원을 유영하는 섬.
생산 시설은 없다. 거기서 소비하는 모든 것은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에 의해 이동된다.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하나하나 모두가!
숨 쉬는 것조차 카르마 포인트가 든다는 말이 완전한 농담이 아닌 곳이 아스가르드였다. 무엇보다 그곳에는,
“일단 마력이, 자연력이 풍부해요.”
마력과 자연의 속성력이 없다.
인간에게는 별문제가 안 되겠지만, 나면서부터 바람을 타고, 자연에서 살며, 마력으로 숨을 쉬는 조인족에게 그것은 어인족에게 물을 뺏는 것과 다를 거 없다.
어인족은 물고기가 아니기에 물이 없다고 죽진 않겠지만, 엄청 불편하고 답답한 상황이 된다. 마치 산소가 희박한 고산지대에서 오래달리기를 해야 하는 것처럼.
조인족인 이들에게 차원의 부유 섬 아스가르드는 그런 느낌이었다.
“여기라면 우리 아이들도 ‘성장’할 수 있어요.”
“맞아. 더는 성인식을 미루지 않아도 될 거야.”
세계수의 그늘 아래서 종족을 구분하지 않고 대화를 나누며 웃고 뛰어놀다가 [엘더 페가수스]를 향해 조심히 다가가는 어린 동족을 보면서 그녀들은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아, 그런데 여기는 먹을 게 풍부할까요? 전쟁 중이면 농사는 어떻게?”
“걱정하지 마.”
걱정하는 이들 앞에 엘프 한 명이 나타나 그녀들의 불안을 끊어냈다.
“조인족?”
“엘…프? 그 검……. 엘븐나이츠?”
“맞아. 엘븐나이츠 2조장. 넬라라고 불러. 올빼미라……. 조인족이면 소릭스? 녹톼?”
“소릭스. 저희는 소릭스 일족이에요.”
소릭스와 녹톼.
조인족의 시초에서부터 내려오는 이 두 종족의 차이는,
“그럼 전투 계열이겠네? 부족 특성이? 녹톼는 장인 종족이니까?”
성향의 차이다. 전투에 특화된 종족인 소릭스와 생산과 채집, 제작 같은 것에 특화된 종족인 녹톼. 성향뿐만 아니라, 재능 역시도 소릭스는 전투에 재능을 보이고, 녹톼는 제작에 재능을 보인다.
“맞아요. 넬라 씨.”
“음. 좋아. 아주 바람직해. 아까 걱정에 대한 답을 하자면 이 차원은 전쟁 중인 게 맞아. 하지만 이 영지는 전쟁 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풍요롭지.”
“풍요롭다고요?”
“이상하지 않았어? 영지에 있는 아이들이나 어른들 말이야. 피폐하거나 초췌하지 않잖아? 오히려 아이들은 얼굴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씻지 못해서 더럽지도 않고, 옷도 깔끔해.”
넬라의 지적에 그제야 [내성]을 안내받으며 무심코 지나쳤던 장면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다들 그랬어요.”
“그렇지? 우리는 한 번도 굶지 않아. 원하는 음식을 대부분 먹을 수 있어. 그리고 이곳 지구라는 차원은 신기한 곳이야. 마법은 없는데, 마법 같은 일은 수도 없이 많거든. 예를 들면, 이것.”
치익―!
말을 멈춘 넬라는 허리춤에서 꺼낸 물건을 조작하자 압축된 공기가 새는 소리와 함께 거품이 올라오는 붉은색 캔을 건네며,
“마셔봐. 트라이. 트라이.”
마셔보기를 권했다.
“음? 읍?!”
대표로 붉은색 음료를 받아 입에 넣은 여인의 눈동자가 빠져나올 것처럼 눈이 커졌다.
“입안에서 반짝이는 맛이 나네요?! 그리고 달아요! 엄청!”
“그렇지? 이렇게 신기한 음식이 엄청 많은 차원이 바로 지구야.”
“하지만…….”
“전쟁 중이라고? 그러니까 신기하다는 거지. 우리 신녀님의 주인님인 영주님이 말이야. 전쟁 중인데, 어떻게 알고 이런 걸 미리 준비했는지, 이 신비한 영지에서는 이런 걸 저렴한 카르마 포인트로 구매할 수 있어. 영지 한쪽에는 넓은 농지와 광산이 있지. 거기서 온갖 재료를 얻을 수 있기도 하고.”
“당신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영지는 뭔가 이질적이군요.”
“맞아. 통찰력이 있네. 조인족의 마지막 주술사 일족이라서 그런가?”
지나가듯이, 흥미로운 대사를 들은 걸 되뇌는 것처럼 중얼거린 넬라의 말에 여성 조인족의 기세가 삽시간에 돌변한다.
“진정해. 아이들 놀라니까.”
그런 그녀의 변화를 예견이라도 한 것일까? 넬라는 부드럽게 마력을 일으켜 기세를 감싸서 정작 그녀가 말한 ‘아이들이’ 놀라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떻게 알았죠?”
“주술사 일족? 나도 좀 알 거든. 우리 차원이 망하기 전에 수인족과 좀 친했어. 물론 차원 자체가 다른 만큼 어느 정도 차이는 있겠지.”
“그런데요?”
“내 추측이나 감각은 틀릴 수 있지만, 우리 신녀님의 감각은 틀릴 수 없거든.”
그러면서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신녀님은 벌써 과거의 무위를 거의 찾으셨으니까.’라고 중얼거렸다.
“자!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당신이 말했다시피 이 영지는 무언가 기이하지. 신비하다는 말은 부족하고, 기이하다는 말이 어울려. 우리 신녀님의 주인님이 영주님이니 당연하겠지만.”
“예?”
신녀님의 주인님, 영주님, 같은 단어에 이해를 못 한 조인족 여인의 혼란스러운 눈빛을 손을 훼훼 흔들어 흩어버리고는,
“중요한 건 아니니까 넘어가. 넘어가.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영지는 그렇게 말할 정도로 축복받았다는 거야. 그걸 누가 만들었을까?”
“…만들어요? 만들었다고요? 이런 영지를?”
“맞아. 이 지구라는 차원에 침공한 적을 상대하기 위해 차원의 의지는 지구의 주력 세력인 인간에게 기프트를 선사했어. 일종의 강제 각성이지. 물론 특정 조건이 필요해. 악업이 낮아야 하고, 선업이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하지. 뭐, 그건 역시나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럼요?”
“우리 신녀님의 주인님인 영주님이…….”
“잠깐만요. 그 빌어먹을 호칭 좀 정리해요. 그냥 영주님으로 하던가요!”
“안 돼. 이건 매우 중요한 거야. 우리 신녀님의 주인님인 영주님을 노리는 암컷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거든. 우리 신녀님이 본처인데 말이지. 뭐, 그만큼 신녀님의 주인님인 영주님이 매력적이라는 거겠지? 그러니 이 호칭을 나는 포기할 생각이 없어. 절대로.”
소릭스 일족의 자랑스러운 주술사인 오페라는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가뜩이나 새로운 곳에 도착해서 정신이 없는데, 이 엘븐나이츠치고는 너무나도 가벼워 보이는 엘프가 ‘신녀님의 주인님인 영주님’을 반복하니까 정신을 하나도 없었다.
“다시 우리 이야기로 돌아오자고. 우리 신녀님의 주인님인 영주님은 최초로 기프트를 받은 분이고, 또 그만큼 유능하고 대단한 능력을 지니셨지. 이 영지는 우리 신녀님의 주인님인 영주님의 기프트에 의해서 지어지고 존재하며 유지되는 거야.”
“그건 불가능해!!”
“그렇지. 불가능하지.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힘. 뭐가 있겠어?”
“…카르마 포인트?”
“맞아.”
정답을 맞혀 즐겁다는 얼굴로 손뼉을 치는 넬라의 모습에 오페라는 힘이 빠져 화를 낼 기운도 없었다. 그 한없이 가벼운 언행에.
“이 영지는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탄생시킨 신과 같은 일이 벌어지는 곳이야. 내가 밟고 있는 이 땅과 저 멀리 마력 회로가 새겨진 높은 성벽도 실존하는 것들이야. 마력으로 짜올린 환상이나 가건물이 아니라는 거지. 그걸 한 명의 인간이 감당한다?”
“불가능해요.”
“그래. 불가능하지. 이는 모두 카르마 포인트의 기적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즉, 우리 신녀님의 주인님인 영주님은 카르마 포인트가 많이 필요해.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방어적인 입장이 아니라, 적극적인 공세를 펼쳐. 조인족.”
“…왜죠?”
“우리와 다르게 너희는 개개인이 카르마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다고 하던데? 맞지? 카르마 포인트 거래도 가능하고?”
“그래요. 당신은 아닌가요?”
“우리는 아니야. 하지만 그걸 불만으로 여기는 우리 동족은 한 명도 없어. 왜냐하면 내가 잡는 저 빌어먹을 것들에 대한 카르마 포인트를 우리 신녀님의 주인님인 영주님이 모두 가져가시니까. 그게 오히려 더 좋지. 그럼 이 ‘콜라’는 어디서 났느냐고?”
“예? 어, 예.”
“이건 당연히 우리 신녀님의 주인님인 영주님이 사주신 거지. 원하는 것을 요청하면 그걸 사주시지. 직접. 어때?”
“…뭐가요?”
“우리 신녀님의 주인님인 영주님이 직접 구해주신다니까?”
“알았어요. 좋겠네요.”
“맞아! 엄청난 거지! 이건! 아무튼, 그런 우리와 달리 너희는 카르마 포인트를 직접 사용하겠지. 그렇지만 여기 지구의 기프트를 받은 인간들처럼 강해지는 데 카르마 포인트를 쓸 일은 없을 거야. 그렇지?”
“강해지는 데 카르마 포인트를 사용한다고요?”
“그래. 신기하지 않니? 세상에! 카르마 포인트라면 뭐든지 가능하겠지만 이건 상상도……? 아니! 아니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네. 너 좀 한다?”
넬라는 ‘내가? 뭘?’이란 표정으로 얼이 빠져 자신을 바라보는 가증스러운―어디까지나 넬라의 입장에서―오페라를 한 번 째려본 후,
“열심히 사냥하고 더 많은 카르마 포인트를 사용해. 삼층집도 대여할 수 있고, 음식은 물론이고 옷과 신발 그리고 장신구 같은 것도 카르마 포인트로 구매할 수 있으니까.”
자신이 하려던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실라이론.”
바람의 상급 정령을 불러낸 넬라의 몸이 서서히 하늘로 날아오른다. 자신들을 부르는 손짓에 조인족들이 날개를 펄럭이며 일제히 날아오르는 장면은 장관이었다.
아래 있는 지구인들에게 엄청난 장관을 선사한 이들이 넬라와 나누는 대화는 특별한 게 아니었다.
“저기 성문 보여? 뭔가 이상하지 않아?”
“성문이요?”
넬라의 지적에 성문을 살피던 이들 중, 가장 젊은 조인족 여인이 특이한 점을 포착했다.
“성문을 통과하는 인간들이 깨끗해지고 있어요.”
그렇다. 한창 좀비와 뒹굴면서 온몸에 좀비의 피와 먼지, 땀 같은 온갖 흔적을 덕지덕지 바르고 있던 각성자들, 특히나 전사 클래스를 비롯한 근접 계열 각성자들의 몸이 성문을 통과하는 순간 깨끗해진다.
물론 샤워를 한 수준으로 변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영지의 도로에 피와 살점을 흘리지 않을 정도로 청결해진다.
“정령?”
“맞아. 하급 정령이지만. 운디네가 불을 뿌리고 샐러맨더와 실프가 물기를 말리면서 악취도 어느 정도 제거하고, 흔적을 노움이 땅에 묻어버리는 거야.”
“누가?”
“누가 하는 게 아니라. 정령이 자발적으로 돕는 거야. 이 영지 중앙에 뭐가 있는지 잊었어?”
“아, 세계수요?”
“맞아. 어머니의 나무가 있으니, 정령이 모일 수밖에 없고, 정령들은 우리 신녀님의 주인님인 영주님에게 아양을 떨면서 알아서 도움이 되기 위해서 노력 중이야. 비록 하급이지만, 놀이로 여기는 것 같기도 하고. 종종 수고하는 하급 정령에게 우리 신녀님의 주인님인 영주님이 칭찬을 해주시니까. 서로 하려고 아웅다웅한다니까? 귀여운 녀석들.”
누가 엘프 아니랄까 봐, 넬라는 조인족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정령이 까불거리면서 놀이를 겸해 영지에 도움을 주려는 행동에 엄마 미소를 지으며 기특해한다.
“너희도 저렇게 하라고. 이건 권고가 아니라 일종의 충고? 아니다. 충고라고 하면 좀 무서우니까, 팁? 먼저 영지에 정착한 선배의 팁? 이런 거라고 보는 게 맞겠다. 대충 지금까지 모은 카르마 포인트로 영지로 몰려오는 적을 방어하는 수준에서 살아도 돼. 그래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을 거야.”
그렇게 말하고 잠시 아련하게 하늘에서 영지를 둘러본 넬라는 끊었던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영지에 도움이 되려고 노력한다면 우리 신녀님의 주인님인 영주님은 조인족을 새로운 종족이 아니라, 같은 종족이라고 여기고 같이 고민해줄 거야. 그것만으로도 엄청 힘이 된다?”
넬라는 거기까지 말을 하고 자신이 할 말을 다 했다는 듯이 천천히 하늘에서 세계수로 하강했다.
“고마워요. 넬라 씨. 그런데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될까요?”
“왜 안 되겠어? 얼마든지.”
“우리가 영주님을……. 좋아요. 젠장. 우리가 당신의 신녀님의 주인님인 영주님을 믿는 건 차치하더라도 말이죠. 그분은 우리를 어떻게, 왜 믿고 있죠? 당장 여기서 우리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요?”
“아아. 그거? 걱정하지 마. 너희가 신녀님의 주인님인 영주님의 [영지민]이 되는 그 순간부터 우리 신녀님의 주인님인 영주님은 알고 계시니까.”
“뭐, 뭘요?”
“너희가 얼마나 신녀님의 주인님인 영주님께 [충성]하고 [믿고] 있는지를.”
넬라의 여유로운 대답에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려 드는 순간,
『호감도가 [충성] 스탯으로 치환됩니다.』
『[충성] 스탯이 [신앙] 스탯으로 치환됩니다.』
『[신앙] 스탯은 최소 –100부터 시작하며, 최대 수치는 100입니다.』
『당신의 [신앙] 스탯은 31입니다. 』
소릭스 일족의 유일한 주술사 오페라의 눈앞에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