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범인은 신성력>
아무리 쫄았다고 해도 믿을 수 없는 종족을 대거 그렇게 무턱대고 받으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실제로 영지민 중에서는 불안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간은 믿지 못하지만, 수인족은 믿는 거냐고?
“그럴 리가 없지.”
인간 불신이 단순히 종족으로서 ‘인간’에 한정된 게 아니다. 과거 [성소]에서 처음 엘라를 소환할 때조차 소환된 존재가 내 명령을 제대로 따를 것인가를 우려했던 사람이 나다.
『차원의 유랑자, 조인족 소릭스(Sōrix) 일족 58명이 [영지민]으로 편입을 요청합니다.』
『[영지] 자원 랭크. 블루(Blue) 입문.』
『[영지] 최대 무력 랭크. 바이올렛(Violet) 극상.』
『[영주] 무력 랭크. 블루(Blue) 극상.』
『소릭스 일족 평균 랭크. 그린(Green) 중상.』
『소릭스 일족 최대 무력 랭크. 네이비(Navy) 입문.』
『소릭스 일족 특수 개체. 한 명.』
『소릭스 일족 호감도. 최하 중중(中中). 최상 상상(上上). 평균 상하(上下).』
『영지 전력과 소릭스 일족의 전력 대비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지가 우세합니다.』
『[영지민]의 신분을 요청한 일족의 평균 호감도가 상하(上下) 등급, 70 이상입니다.』
『페널티 없이 소릭스 일족 74명에게 [영지민] 신분을 부여합니다.』
『[영지민]의 신분을 부여받은 소릭스 일족은 영지 법을 따릅니다.』
『소릭스 일족 74명의 [호감도]를 [충성] 스탯으로 치환하는 데 17분 41초가 필요합니다.』
『소릭스 일족 74명의 [충성] 스탯을 [신앙] 스태승로 치환하는 데 22분 59초가 필요합니다.』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과 지구의 의지가 그걸 두고 보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영지민으로 편입되면 당연히 충성 스탯이나 신앙 스탯이 출력될 거라는 건 확실한 사실이다.
그러니 그걸 토대로 저 종족을 살피면 알 수 있을 거다. 저들이 아군인지, 주변인인지, 아니면 다른 마음을 품은 적인지를.
“엘라. 숲의 감시자들, 왓쳐의 감시 대상에서 저 종족은 배제해.”
“네. 주인님.”
“응? 왜요? 영주님? 감시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엘라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녀가 내 의중을 짐작해서라기보다 엘라는 그저 내 명령이기에 따르겠다고 한 거다.
반면 소피아는 언제나처럼 궁금한 걸 물어야 직성이 풀리는 거고. 그녀는 나를 신이라고 말하고 실제로 신이라고 믿고 있다. 다만 그녀는 과거 경험 때문인지, 자신이 믿는 신이 전지전능한 존재라고 여기는 일반적인 성녀와 달랐다.
그렇기에 이렇게 매번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질문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이해하는 과정을 거쳤다.
아무튼,
“아까 말하는 거 들었지? 네이비(Navy) 랭크도 있고, 블루 랭크도 있대. 그러니 왓쳐가 감시하는 눈길이 아무리 은밀해도 들킬 거야. 왓쳐가 네이비 랭크가 되면 또 모를까. 그리고 집계가 끝나면 일괄적으로 알 수 있잖아? [신앙] 스탯만 봐도 대충 보이잖아?”
이유를 차분히 설명해주자 이해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던 소피아가,
“그럼 왜 기존 인간들은 [숲의 감시자]로 감시하시는 거예요?”
다른 질문을 던져온다. 요즘 소피아와 엘라 그리고 나까지 이렇게 셋이 있으면 이런 일이 일상이다.
“그거야 당연히 물량의 차이지. 신뢰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난 생존자는 숫자가 100만이 넘잖아. 요즘도 멀리 사냥을 나가면서 추가로 데려오는 생존자가 있어서 그 숫자가 더 늘어나고 있고. 반면 저 종족은 100명도 안 되니까.”
“오. 이해했어요!”
그렇게 의문을 해결한 소피아는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메모장을 열고 ‘토톡, 토독’ 하는 효과음을 연발하면서 무언가를 적어나갔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도대체 뭘 적는 거야?”
“…잠시만요. 음. 음. 다 됐다! 이거요?! 당연히 성서죠.”
“…선서?”
“성서(聖書). 신의 말씀을 기록한 성스러운 책.”
“…어휴.”
빌어먹을 신성력. 이게 다 신성력 때문이다. 신성력이 문제다. 무조건 문제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내성 옥상 정원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에 엘프와 조인족 여성들이 대화를 나누는 게 보였다.
“저기 저 여자, 2조장이지? 엘븐나이츠 2조장. 넬리아나?”
“네. 맞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이름이 비슷하네? 엘리아나? 넬리아나?”
“후훗. 넬라의 부모가 제 이름을 따서 지었으니까요. 비슷한 이름을 가진 아이들이 많아요. 마리아나도 있고, 누아나도 있어요.”
“아, 하긴. 엘라는 엘프에게 존경받는 하이 엘프였지? 음. 넬리아나는 성격이 어때?”
“주인님이 보시기엔 어떠세요?”
“글쎄? 지금 보이는 모습만 보면 전형적인 E인데? 외향적, 흔히 말하는 인싸.”
“그렇죠? 저 아이의 눈을 잘 보세요. 특히 동공을요.”
엘라의 말에 조인족 여성들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넬리아나의 눈을 주시했다. 블루 랭크에 오르며 변화한 신체는 미량의 마력만으로도 수십 배의 확대경으로 본 것처럼 넬라의 동공을 선명히 볼 수 있게 해준다.
“…웃고 있질 않네? 입은 웃는데? 동공은 엄청 빠르게 움직이고?”
“정보를 얻는 거예요. 가볍고 친한 모습으로 다가가서.”
“아아.”
그제야 위화감이 느껴지던 넬리아나의 행동과 분위기가 답을 찾은 것처럼 딱 들어맞았다. 정보를 얻고,
“정보만 얻는 게 아니네. 마력으로 들어보니까 대충 어떤 주제로 대화를 하는지 알겠어. 저건 일종의 암시 같은 느낌인 건가?”
정보를 주입한다. 사실이 대부분인 정보에 약간의 암시와 경고를 담아서.
“허 참. 엘프 중에 저런 캐릭터도 있었어?”
“후후후. 저희는 단순히 몬스터만 적이 아니었거든요. 아름다운 외모 덕분에 모든 종족이 잠재적인 적이나 마찬가지였어요. 특히나 인간이요.”
“어휴. 거기도 좆간이 또. 인간이 미안하다.”
“아니에요. 주인님은 달라요. 제가 확실하고 확연하게 알아요. 저희와 다크 엘프가 다른 것처럼.”
“그래.”
피식 웃으면서 불의 정령이 찻잔 주변에 웅크리고 있어서 아직도 온기가 식지 않은 차를 조심히 마셨다.
“그런데요, 선배님. 넬리아나라는 분은 왜 저 여자에게 다가간 거죠? 어려 보이는데요.”
누가 보더라도 다른 여자 조인족보다 젊어 보이는 여인과 주도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넬리아나의 행동에 소피아가 또 의문을 가진다.
“음……. 후배님 혹시 수인족 특유의 계급 체계에 대해서 알아?”
“아니요!”
당당하다. 그래. 모르는 게 죄는 아니니까. 당당할 수 있지. 우리 소피아. 참……. 애는 착한데.
“수인족에는 족장과 함께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특별한 계급이 있어. 아니지. 이 특별한 존재가 없으면 그 부족은 어쩔 수 없이 다른 부족과 통합해야 해. 그게 어떤 존재인지 알아?”
“몰라요! 알려주세요!”
“제사장 혹은 주술사라고 불리는 존재들이야. 부족 내에서 무력을 족장이 담당한다면, 내정과 제사, 교육, 의료 등을 담당해. 본래부터 본능에 충실한 수인족이기에 이성적인 주술사가 없는 부족은 끝이 좋지 않거든. 그걸 긴 수인족 역사에서 체득했지.”
“아아. 그러니까 저 제사장이라고 하는 여자만 구워삶으면 부족 전체의 방향을 조종할 수 있다?”
“맞아.”
“오오! 대단해요! 선배님!”
그러면서 다시 스마트폰을 꺼내 메모장을 꺼내 토톡거리면서 빠르게 메모를 이어나갔다.
“…지금은 뭘 적는 건데?”
내가 그렇게 물어보자,
“잠시만요. 으음. 음. 선배님. 주술사? 제사장?”
“주술사가 낫겠지? 사실 제사 같은 종교 행위를 하는 수인족 주술사는 몇 없거든.”
“네! 좋아요. 주술사가 있고…….”
내 질문을 무시하고 한참을 메모를 하더니,
“다 했다! 아, 뭐하는 거냐고 물어보신 거죠? 이건 사도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거예요. 성서에는 신의 말씀이나 행동도 기록하지만, 신을 따르는 사도에 대한 기록도 필요하거든요.”
라는 충격과 공포를 불러올 것 같은 말을 태연하게 해댔다. 만약 내가 죽게 된다면 그건 차원 침공을 일으킨 놈들 때문이 아니라, 수치사일 거다. 분명히. 다잉 메시지로 ‘범인은 신성력’이라고 쓸 거다. 무조건 쓸 거다.
그렇게 소피아와 엘라 그리고 나까지 셋이 차를 마시며 여러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음?”
세계수 아래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새로운 곳에 도착한 사람 특유의 그 조심스러움이 있었다. 물론 아이들은 제외하고. 그런데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조인족의 분위기가 잠깐이지만 확 튀었다.
그 말은 곧,
“[신앙] 스탯 오픈됐나 보다.”
호감도에서 치환이 진행되는 스탯 집계가 끝났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 순간,
“음?”
합류한 조인족 중, 가장 호감도가 낮은 중중(中中) 등급이던 여인이자, 엘라가 부족에 가장 필요한 주술사라고 말한 젊은 조인족이 화살처럼 나를 노려본다.
“주인님.”
그 시선을 나만 느낀 게 아니었는지 엘라가 몸을 기울여 시선을 가린다.
“괜찮아. 적대적인 눈빛은 아니었으니까. 그나저나 [신앙] 스탯이 낮게 나왔나 보네. 얼마나 나왔으려나?”
“영주님! [신앙] 스탯은 마이너스도 있죠?”
“그렇지. 소피아. 확인 좀 해줄래?”
“네!!”
펠리카 교단의 성녀인 소피아는 펠리카 교에 대한 믿음을 수치로 한 [신앙] 스탯을 확인할 수 있다. 나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어머?”
“왜?”
“31인데요? 영주님? 엄청 낮네요?”
“아아.”
어쩐지. 저 눈빛은 적대적인 게 아니라, 억울함이 담긴 눈빛이었나보다. 어떻게 한다……. 음.
“소피아.”
“네?”
“아마 지금 메시지를 확인하고 영지 밖으로 나갔던 조인족도 다 복귀할 거야. 그럼 모아놓고 설명 좀 해줘. [신앙] 스탯과 우리 영지 종교인 펠리카 교에 대해서.”
“오! 예배인가요!? 아니면 선교?!!”
“…아니야. 그냥 종교, 교리, 베네핏 그리고 신앙 스탯이 낮을 경우 받을 수 있는 불이익 등을 설명해주라는 거야.”
“그게 바로 예배죠!! 좋아! 다 죽었어!”
누굴 죽이려는 거냐? 그리고 도대체 뭐로 죽이려고? 설마 손에 들고 있는 그 두툼한 책은 아니겠지? 잠깐만 저 책은 어디서 나온 거야? 뭐 인벤토리라도 있어?
“오빠?! 오빠?! 정신 차려!”
“으, 으응? 뭐, 뭐야? 유다연 너 언제 왔어?”
“엘라 언니가 전체 메시지 돌렸잖아. 새로운 영지민 하고 첫 예배? 종교 행사? 같은 거 한다고. 다 모이라던데?”
“아…….”
위가 아프다. 위장약이 있던가. 돌겠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