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미쳤어! 여기는!>
차원의 부유섬. 고향을 사라진 이들의 안식처. 아스가르드에는 최근 한 가지 주제로 떠들썩했다.
그리고 그 소란은,
“녹투오스 영감이 정말 갔다고?”
“애초에 여길 벗어날 수도 있는 거였어?”
“여길 벗어날 수는 있지. 길을 알 수 없어서 문제지. [차원 용병] 의뢰가 아니라면 [헤임달]과 [비프로스트]는 작동하지 않으니까.”
“그래. 차원 좌표라도 명확히 알아야 방문 문의라도 넣을 수 있는데. 누가 알겠어. 그리고 좌표를 알아도 해당 차원의 의지가 허락할지도 의문이고.”
“그런데 녹투오스는 왜 간 거야? 그대로 십 년 정도만 활동하면 [오리하르콘] 랭크도 달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것보다 더 주목해야 할 건, 녹투오스가 혼자만 간 게 아니라, 부족 전체를 모두 이끌고 갔다는 거야. 다들 알지? 그 영감이 자신의 부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차원 용병들에게 더욱 크게 번질 수밖에 없었다. 녹투오스가 [아다만티움] 등급의 [차원 용병]이었다는 것도 그렇지만, 녹투오스만큼 오랜 기간 [차원 용병]으로 활동하며 생존한 이들이 많지 않았기에 더욱 그렇다.
그가 오래도록 살아남았다는 것은 신중하고 현명하다는 의미였으니까 말이다.
“확실히 부족까지 데리고 갈 정도면 미래를 맡긴다는 뜻인데. 녹투오스 영감. 손자에게 걸린 저주가 해주된 것도 이번에 간 그 차원 때문이라지?”
“이번에 참여한 놈들 말로는 보너스로 20억 카르마 포인트를 뿌렸다는데? 한 명당 2천만씩.”
“그거 과장된 소문 아니야?”
“아닐걸? 이번에 의뢰 참여한 놈 중에 내가 아는 놈들 있는데, 그놈들 다 강해졌어. 헤리스 놈은 블루 랭크 입문이었던 놈이 초입을 지나 중위에 간신히 발을 걸친 걸 확인했어.”
“확인했다고? 어떻게?”
“직접 손을 섞었지?”
“…너 블루 랭크 초입이잖아?”
“맞아. 그리고 깨졌지. 대차게. 아오! 나보다 약한 놈이었는데! 젠장! 그 의뢰 내가 참가했어야 했어!”
누군가 그렇게 분통을 터트렸지만, 자신이 패배했다는 걸 입에 담는 순간 그의 말을 사실이 되었다. 따로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 말이다. 블루 랭크에 오른 자, 마스터는 그런 존재다.
“잠깐만. 그럼 이게 어떻게 되는 거야?”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 우리랑 상관없는 일이 되는 거지.”
“아니, 그게 아니라. 하나씩 정리해 보자고. 일단 신중한 영감이 선택한 차원이라는 게 첫 번째지. 그리고 의뢰 보상 이상으로 성과가 있으면 정당한 보상을 주는 존재가 다스리는 차원이라는 게 두 번째.”
“거기 전쟁 중이라던데? 차원 전쟁? 이번에 의뢰 역시 그 과정에서 진행한 거라더군. 그곳의 영주가.”
“그런데 카르마 포인트를 20억이나 뿌렸다?”
마법사로 보이는 작은 키의 놈(Gnome) 종족의 [차원 용병]이 푸른 마력 코팅이 반짝이는 안경을 손가락으로 올리며 마력을 투사했다.
마력은 유려하게 움직여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에 대한 요약을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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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 전체 이주 → 자연력 등급 최소 상중(上中). 기초 생활용품 충분.
차원 전쟁이 한창인 차원으로 이주 → 승리 가능성 8할 이상.
차원 전쟁 중에 카르마 포인트 대거 지급 → 카르마 포인트 대량 획득한 영주 → 차원에서 가장 강한 영주로 예상.
녹투오스 손자의 저주 해주 → 빌어먹을 언데드 상당한 피해. 검은 보석의 아크 리치 소멸(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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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보면 짐작했겠지만, 녹투오스 영감. 정말 최고의 선택을 최선의 때에 해냈어.”
“최고의 선택은 이해하는데 최선의 때는 뭐야?”
“너라면 전쟁 중인 차원으로 이주하겠다고 네이비 랭크 한 명에 블루 랭크 다섯 이상, 그리고 성인식을 치른 이들 전원이 그린 랭크인 종족 전체가 찾아오면 어떨 것 같아? 약점이 될 수 있는 아이들까지 우르르 데리고서?”
“어……. 음. 반갑다! 친구야?”
“그래. 반갑겠지. 원수라도 친구 먹고 싶을 만큼 고맙겠고. 그리고 이렇게 바로 움직인 녹투오스 영감은 친구를 먹겠지? 승리가 확실한 차원의 가장 높은 수준으로 짐작되는 영주랑.”
“아아.”
“정말 최선의 때를 골랐네. 영감쟁이. 연륜은 무시할 수 없는 건가?”
“우리도 가자!”
“어휴. 이 미친놈아. 가긴 어딜 가.”
“거기! 영감이 간 차원!”
“아까 뭘 들은 거야? 이 빡대가리 새끼는. 의뢰가 아닌 경우 차원 좌표를 확실히 알고 있어야 그나마 출입 문의라도 할 수 있다니까? 너 그 차원이 어디 있는 건지 알아?”
“나? 모르지.”
“근데 가자는 소리가 나와?!”
“난 모르지만, 헤리스 놈은 알겠지. 그놈이 모르면 그 의뢰에 참석한 용병 중에 아는 놈이 있을 거고.”
“!!!!”
각자 생각을 말하며 중얼거리던 [차원 용병]의 입이 일제히 다물어진다. 그리고 찾아온 찰나의 정적.
“비켜!!”
“내가 간다!!”
…
그 정적이 마치 이 혼란의 전조라도 되는 것처럼 [차원 용병]이 자리를 박차고 문으로 나갔다.
차원의 틈을 유영하며 부유하는 차원 섬 아스가르드에 찾아온 때아닌 이슈는 정적인 차원 섬을 실로 오랜만에 혼란과 소란으로 들끓게 했다.
* * *
소피아가 흥분하며 준비한 종교 예식이자, 펠리카 교단의 첫 번째 종교 예식은 생각보다 상식적으로 진행됐다.
꾸준히 생존자가 모이면서 영지의 인구는 270만이 막 넘은 시점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일 수 있는 곳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모두 [치료소]로 모이세요.”
세상에 [치료소] 안에 다 들어가더라니까?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 말에,
“종교를 창시했으면, 종교 시설이 있어야죠. 그리고 그런 시설은 영지에 한 곳뿐이에요. 왜 [치료소]에서 [추기경]이나 [이단 심문관] 같은 걸 고용할 수 있겠어요?”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보면서 그렇게 되묻는다. 마치 ‘오라방 차잖아? 근데 왜 오라방이 몰라?’라고 말하며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내는 어느 작가의 못된 여동생을 닮은 눈을 하고서.
‘야, 너 눈을 왜 그렇게 떠?’
“알고 있었어. 아마도?”
“우리 영주님은 은근히 귀여우시다니까~.”
소피아는 그렇게 말하고 [치료소]로 날름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그날 종교 예식은 정말 종교적인 색채는 하나도 띠지 않는 무슨 사업 설명회나 대학교 입학 설명회 같았다.
펠리타 교를 믿으면 얻는 이득과 지켜야 할 교리. 그리고 무엇보다 영지에서 [신앙] 스탯이 영지 간부들이 원하면 언제든 노출되는데, 너무 낮으면 불리할 수 있고, 마이너스면 추방이라는 경고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각성자가 되지 못한 영지민들에게 희소식이 있습니다. 우리 펠리카 교의 레벨이 상승하면서 비각성자라고 해도 [신성력]을 지닐 수 있습니다.”
소피아는 엄청난 내용을 사은품 설명하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던져놨다.
비각성자와 각성자의 가장 큰 차이는 스탯과 상태창 같은 것도 있지만, 마력의 유무가 가장 크다. 마력이라는 이 미지의 힘은 기적에 준하는 이능을 발현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재료니까.
단순하게 설명하면 냄비가 없어도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지만, 물이 없으면 조리되지 않은 라면을 먹어야 하는 것과 같다. 마력은 여기서 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소피아가 말한 아무렇지 않게 한 말은 엄청난 파문을 불러왔다. 특히나 영지의 기준은 통과했지만,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의 기준을 통과하지 못해 각성하지 못한 영지민과 그런 비각성자의 가족에게는.
무엇보다,
“그리고 우리 창천의 날개 기사단에 속한 사제와 성기사는 그렇게 모은 신성력을 다루는 기술을 교육할 생각도 있습니다.”
소피아가 한 말은 그들을 흥분에 몰아넣기 충분했다. 단순히 신성력이 생기는 것을 너머 그 기이한 힘을 다룰 수 있는 기술을 선사한다는 것이니까.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신앙] 스탯이 중요합니다. 비각성자가 신성력을 품을 수 있는 최소 조건이 90이니까요.”
다만 추가로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 조건에 소란과 흥분이 절반은 꺾였지만, 소피아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이었다. 정말 그 정도는 당연하다는 것처럼 말했다.
“저는, 그리고 우리는 당신들에게 [신앙]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는 분명합니다.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건 힘입니다. 그리고 펠리카 교단은 충분히 최소한의 안전을 위한 힘을 제공합니다. 그러니 믿으세요. 웬만하면.”
마력을 투사해 직관적인 설명회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고, 끝나는 것과 동시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고, 영지의 첫 번째 종교 예식이 끝났다.
그리고 단 한 번의 종교 예식만으로도 영지민 전원의 [신앙] 스탯이 상승했다. 특히나 몇몇 그룹의 [신앙] 스탯은 수십 단위가 상승했다. [신앙] 스탯이 급증한 이들 중에는 소릭스 종족이라고 말하는 조인족의 하나뿐인 주술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우르르 [치료소]를 나와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나는 언제나처럼 소피아와 엘라를 비롯한 지의사들과 이번에 합류한 조인족의 대표 격인 녹투오스와 오페라라는 두 조인족과 함께 내성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내성으로 통하는 문을 막 지나쳐 세계수로 향하던 중,
“먀아앙!!!”
세계수 가지 위에서 반갑고 귀여운 비명과 같은 울음과 함께 하늘에서 새하얀 찹쌀떡이 눈처럼 내게로 떨어져 내렸다.
“조심해!!”
서둘러 마력을 일으켜 새하얀 찹쌀떡 세 개를 받아내자마자,
“먀아…….”
설기가 내 앞에 내려앉으며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장난을 친 세 꼬물이를 노려봤다.
“먕. 먕.”
[아빠. 아빠.]
“그래. 그래. 우리 방울이. 오구오구. 고생했어. 힘들었구……. 잠깐! 이게 아니지. 귀여워서 그냥 넘어갈 뻔했네! 이놈들! 다칠 뻔했잖아! 이 말썽꾸리기 녀석들아!!”
“먀아……. 먀아.”
[떨어져도 안 다쳐……. 걔들도 블루 랭크라고. 주인.]
내 호들갑에 이번에는 세 꼬물이가 아니라,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올려다보면서 한탄하는 설기의 모습에,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그리고 설기 너! 왜 세상 다 산 할배 같은 말투야?! 새끼 낳았다고 어른 흉내 내는 거야? 응? 응?”
설기의 찹쌀떡 같은 벌을 주무르며 장난처럼 혼을 냈다. 해츨링을 잘 돌보라고 했더니 이런 사고나 치게 하고 말이야.
“먀야.”
[난 어른 흉내를 내는 게 아니라, 어른이다. 주인.]
“찹쌀아아아아아!! 오빠! 저 찹쌀이 주세요! 찹쌀이!”
그러는 사이 일본에서 한참 활개를 치다가 돌아온 꼬물이를 발견한 유다연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평소 애정하던 찹쌀이를 내놓으라고 난리였다.
“영쭈님! 리리노는 달이랑 놀래요.”
그 옆에서 리리노도 같이 팔을 쭉 내밀면서 자신의 지분을 요구했고. 두 사람에게 각각 찹쌀이와 달이를 안겨주고 나서야 주변이 조금 조용해졌다.
“!!!!!”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다. 그것 때문에 조용해진 게 아닌 것 같다. 우리 뒤로 같이 걷던 조인족들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어서 유난히 조용해진 거다.
“그, 그, 그, 그분은?!!”
특히나 영지에 도착하고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감정을 숨기던 조인족 무리의 대표인 녹투오스라는 중년의 조인족이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얼굴을 하면서 설기를 가리켰다.
“아아. 하긴. 우리 설기 엄청 귀엽죠? 심장에 해로울 정도로? 그래도 그분이라고 부르는 건 좀 에바다.”
유다연이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자,
“서, 설기? 우리 설기? 귀, 귀여워요?! 저, 저, 저분은 자이언트 윙 샤벨타이거잖아요!! 드래곤에 필적하는!!”
기겁하면서 설기의 정체를 입에 담았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세, 세상에! 알고 있으셨던 겁니까?! 그런데 어떻게……!”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본 것처럼 설기의 볼을 주무르고 있는 나를 보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하얗게 질린 얼굴이 이제는 회색빛으로 질려가면서,
“그, 그분은 포식자이자 조율자이십니다! 날개 달린 것들의 왕이시라고요! 그, 그러시면 아, 안 됩니다. 크, 큰일 납니다!”
최대한 작게 죽인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을 건네고 내게서 훌쩍 물러났다. 그리고 설기의 나른하면서 한심하다는 기색이 역력한 눈과 마주치자 급히 시선을 깔고 허리를 숙였다. 더 쳐다보면 바닥에 머리라도 댈 기세였다.
“우리 설기는 그런 애 아니에요. 그리고 올빼미 아저씨. 아저씨 네이비(Navy) 랭크라면서요? 우리 설기는 아직 블루 랭크? 그 정도예요. 맞죠? 오빠?”
“응.”
[마구간]은 그린 랭크다. [문을 여는 열쇠] 효과로 블루 랭크까지 도달했지만. 소피아나 엘라처럼 [성소]에서 소환한 존재가 아니라서 블루 랭크 99도 아니다.
“단순히 랭크로 어쩔 수 없는 그런 존재십니다. 무엇보다 펜리르 님과 마찬가지로 자이언트 윙 샤벨 타이거께서는 수인에 해당하십니다. 드레고니언이 드래곤에게 감히 반항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조인족은 날개 달린 짐승의 왕인 저분을 감히 거스를 생각조차 품을 수 없습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설기와 꼬물이 세 마리를 본 수인족들의 신성 스탯이 미친 듯이 상승하는 게 보였으니까.
특히나 처음에 31이었던 제사장은 어느새 73까지 급상승했고, 설기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신상 스탯이 반짝거리는 게 더 상승할 여지까지 있어 보였다.
그리고,
“미, 미, 미쳤어! 여기는!”
영지 건물이 순식간에 확장되고 공터에 새로운 형태의 집 중 하나인 [저택]이 순식간에 지어지는 걸 본 조인족들은 하나 같이 신앙 스탯이 미친 듯이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