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팔행시를 하려던 참이었어요! 언니!!>
오페라 소닉스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있었다. 아니, 그녀의 삶이 아니라 소닉스라는 조인족의 역사를 다시 되새기기 시작했다.
왜냐고? 뜬금없이?
“이 영지는……. 정말 이상해.”
오페라가 이 영지의 이야기를 듣고 직접 찾아와 가장 먼저 놀란 것은 세계수가 아니었다. 바로 공기와 마력.
차원의 부유 섬 [아스가르드] 뿐만 아니라, 그녀가 녹투오스의 품에 안겨 도망친 멸망하기 전의 그녀의 차원에서조차 느껴보지 못한 깨끗한 공기와 순수하고 맑은 마력이 온몸을 휘감았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충격의 연속이었다.
세계수는 솔직히 말하면 사전에 족장인 녹투오스에게 언질을 받아서 그리 충격이 없었다. 오히려 오페라가 두 번째로 놀란 건,
“하이 엘프였어?! 신녀님의 주인님인 영주님이라고 부르는 그 신녀가?!”
하도 들어서 귀에 뇌에 박혀버린 엘프의 ‘신녀’라는 존재가 하이 엘프라는 것에 놀라고, 그 하이 엘프가 인간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장면에서 경악했고, 그 모습에 엘븐나이츠가 ‘우리 신녀님이 본처다!’라고 만족스러워하는 장면에서 하마터면 욕을 할 뻔했다.
“아아. 잘 참았지요.”
“그게 참은 거야? 오페라 언니? ‘아! 꺼져~!’라고 했잖아?”
부족의 차기 주술사로 교육을 해왔던 아에야의 테클에,
“그, 그건! 욕이 아니잖아요!”
발끈하긴 했지만, 오페라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때 그 정도의 반응으로 끝낸 자신이 정말 잘한 거라고.
“후우. 집중하세요. 아에야.”
“언니. 지금까지 언니가 딴생각했잖아. 아에야는 아까부터 열심히 예장(禮狀)을 제작하고 있었다구.”
오페라는 아에야의 대답에 반박하지 못했다.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주술사이니까.
“미, 미안해요. 아에야.”
“괜찮아. 언니. 헤헤.”
아에야의 순수하면서도 영악한 미소를 보며 같이 미소를 보이고 아에야의 머리를 쓰다듬던 오페라는 이 영지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다.
자이언트 윙 샤벨 타이거.
날개 달린 짐승의 왕.
고고한 포식자.
잔혹한 조율자.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해봤을까? 자이언트 윙 샤벨 타이거가 인간의 품에 안겨 양 볼을 꼬집히고 있을 거라는 걸? 그걸 꿈에서 봤다고 말해도 미친놈, 미친년 소리를 들었을 거다.
그런데 그런 일을 눈앞에서 본 오페라의 심정이 어땠을까? 다른 수인족이라면 조금 달랐을 거다. 자신이 조인족, 날개 달린 수인족이기에 그 충격은 더 크게 다가왔다.
“이게 말이……. 꿈이……? 하아. 혹시! 세뇌를?!”
“오페라 언니. 정신 차려. 그러다가 진짜 큰일 나. 언니가 그랬잖아.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라는 아집과 고정관념이 주술사에게 가장 위험하다고. 언니가 그래. 지금.”
오페라는 아에야의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저 나이에 저렇게 상황을 파악하고 진단을 내리기 쉽지 않은데, 누가 가르쳤는지 잘 가르쳤다. 아주 똑 부러진다.
‘누가 그르치긴 누가 가르쳐. 내가 가르쳤지. 정신 차려. 오페라.’
아에야의 뼈를 관통하는 펙트를 맞고서야 오페라는 인정하기로 했다. 녹투오스가 우연히 찾은 이곳은 소설에 나와도 말이 안 된다고 욕을 처먹을 낙원 같은 곳이고, 이 낙원을 만든 것이 인간임을.
“인정할게.”
“에휴. 언니. 언니가 인정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라니까? 언니가 인정하지 않는다고 이곳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잖아? 도대체 언제 철들래?”
“…우리 아에야. 오랜만에 술법 시험 좀 볼까?”
“안 돼. 나 약속 있어.”
“약속?”
“응. 리리노랑 몇몇 애들이랑 간식 먹기로 했어. 여기 서다혜라는 이모가 계시는데. 음식 엄~청 맛있대! 그래서 나도 기대 중이야!”
리리노를 비롯해 초등학생 나이대의 아이들은 각성 여부와 관계없이 [내성]에 머물기에 마찬가지로 [내성]에서 주로 활동하는 서다혜를 비롯한 [요리사] 각성자들은 종종 아이들에게 간식을 해주곤 했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무료로.
“지구의 음식은 어떤 맛일까? 헤헤헤.”
조금 전까지 팩트로 부족 유일의 주술사를 후들겨 패던 작고 귀여우면서 살벌한 아이는 어디 가고 천진난만한 아이가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렇구나. 우리 아에야.”
“응. 응.”
“어림도 없단다.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그 맛있는 간식이 언니 차지가 되지 않을까?”
아에야를 오래 봐온 오페라는 가증스러운 귀여운 척에 속지 않았다.
“칫. 이걸 안 속아?”
“자~. 준비해. 아에야.”
그날 아에야는 약속 시간에 무려 27분이나 늦어버렸다.
“우우우.”
“어서왕! 아에야짱!”
“늦었지? 미안. 이게 다 노처녀 오페라 언니 때문이야!!”
“우웅? 오페라아~?”
리리노가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끝을 늘리는 행동에 아에야는 사랑스럽다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진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엄청 크게 끄덕였다.
“그래! 아까 나랑 있던 조인족 언니 봤지? 우리 부족 유일한 주술사인데. 내가 배우고 있거든. 그런데 오늘 갑자기 막! 시험을 본다고 하는 거야!”
“우……. 리리노는 시험 시러~.”
“나도.”
“그럼 하에야 짱. 시험 잘 봤어?”
“아니. 그래서 늦었어! 누가 우리 불쌍한 노처녀 오페라 언니 좀 데려갔음 좋겠다. 연애라도 해야 그 성질머리……?”
“우웁.”
아에야는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귀여운 리리노가 입을 막고 고개를 귀엽게 흔드는 모습에 말을 멈췄다. 그리고 주술사의 재능을 지닌 그녀는 자신에게 위기가 찾아왔음을 바로 감지해냈다.
“혹시 내 뒤에 그 성질머리의 노처녀가 서 있어?”
끄―덕!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고개를 크게 끄덕이는 리리노의 귀여움에 이번만큼은 웃을 수 없었다.
“성질머리의 뭐라고? 아에야?”
“성질머리의 노처녀로 팔행시를 하려던 참이었어요! 언니!!”
“그래? 성.”
“성스러운 오페라는?”
“호오?! 제법인데? 질.”
“질식할 것처럼 숨이 막혔다?”
제법 순발력 있게 대응한 아에야였지만,
“팔행시가 더 열받네? 아에야?”
오히려 팔행시를 해서 더 열받게 해버리고 말았다. 아직 어른 아에야는 순발력은 있었지만, 분한 감정을 숨기는 연륜이 없었기에.
“내일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기어이 매를 벌고야 말았지만,
“우와! 이거 뭐야?! 왜 맛있어?”
그것도 잠시였다. 서다혜가 만들어 준 초코소라빵이라는 굉장히 이상할 것 같은 간식에―처음에 빵을 받고 나서 이상한 비주얼에 꺼림칙 해했다― 잔뜩 빠져버렸으니까.
‘내일 일은 내일의 내가 해줄 거야요. 아마도요.’
아에야는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달콤하고 폭신폭신하면서 쫀득쫀득한 초코소라빵과 먹기 좋게 데운 하얀 우유의 조합을 말이다.
아에야가 홀린 듯이 만족한 그 조합은,
“어머?! 이거 왜……? 맛있어?”
조인족 유일한 주술사 오페라의 입맛 역시도 사로잡았다. 새가 초콜릿을 먹어도 되는 건지는 차치하더라도 소라빵의 모양을 보고 표정이 이상해진 것은 둘이 똑같았으니, 취향도 똑같은 게 아닐까?
아 여담으로 아에야가 즉석에서 만든 ‘성질머리의 노처녀’ 팔행시는,
‘성’스러운 오페라는.
‘질’식할 것처럼 숨이 막혔다.
‘머’머리가 된 자신을 거울로 마주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생각한 오페라는
‘의’느님을 찾아 떠났지만,
‘노’답이었다. 머머리로 살 수 없다.
‘처’녀로 죽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여’차하면 오늘 밤 그놈을 자빠뜨려야겠다고 오페라는 다짐했다!
의외로 지구인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인간 나이로 치면 30살이 넘었지만, 조인족으로 치면 아직 성년식을 거행하지 않아 작은 초등학생 몸에 귀여운 날개가 달린 아에야가 순발력으로 지어낸 팔행시에 귀여운 아이의 천재성에 놀란 느낌이랄까?
“언니! 이것 봐요! 오늘 만난 각성자 언니 오빠들이 저 먹으라고 사준 거예요!”
아에야는 [내성]에서 마주치는 각성자들이 선물로 준 음료수와 간식을 잔뜩 품에 안고 자랑했다.
“언니! 어쩌면 저는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랑받는 그런 아이가 아니었을까요? 주술사 같은 머리 아픈 건 때려치우고 이참에 아이돌? 그런 거나 할까 봐요.”
그리고 오늘도 오페라의 가슴을 후벼파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었다.
“네가 언니, 오빠라고 부르는 인간들이 사실을 너보다 어리다는 걸 그들이 알면 어떤 기분일까?”
움찔!
막 초콜릿 봉지를 까던 아에야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좋아요. 이 초콜릿은 언니에게 줄게요. 솔직히 아스가르드에 있던 기간은 1년으로 쳐야 한다고 봐요. 거기서는 조금도 성장하는 기분이 안 들었다고요.”
“그래. 초콜릿은 고마워. 이제 주술사 따위라고 말한 부분에 대해서 우리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눠볼까?”
“…제가 언제 주술사 따위라고 했어요? 주술사 같은 머리 아픈 건이라고 했지!”
“그게 그 말이잖니?”
“그게 어떻게 그 말이에요! 그러면 결혼을 하지 않은 비혼주의자와 결혼을 못 한 노처녀가 같은 말이게요?”
“…그래. 그게 있었지. 성질머리의 노처녀. 잊고 있었는데. 다시 상기시켜줘서 아주, 고오맙다.”
“헤헤. 그냥 계속 잊고 계시는 건 어때요? 언니?”
“이리 오렴. 우리 아에야. 오늘은 긴급 상황에서 유용한 혈(血) 주술에 대해서 공부할까?”
“…뭐예요? 그게? 이름에서 불길함이 느껴지는데요?”
“괜찮아. 괜찮을 거다. 그냥 피를 좀 흘리는 주술 수업일 뿐이야.”
“……전혀 안 괜찮은 것 같은데?”
“괜찮을 거란다. 아마도.”
“아, 아마도요?!”
“그래! 아마도!!”
그날 혹독한 교육이 끝나고 여기저기 약초가 붙어 있는 아에야의 팔목과 손바닥을 보면서 어떤 지구 각성자는 오페라가 아동학대를 한다고 영주인 이요한에게 신고하는 헤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 4컷 유머 만화에 나올 법한 그 촌극을 들은 녹투오스에게 오페라와 아에야가 혼난 건 당연한 일이었고.
다만 이런 시끌벅적하게 지구의 각성자와 섞여 들어가는 조인족들을 보면서 이요한은 어떤 깨달음을 얻은 날이기도 했다.
“굳이 멀리 있다고 경고도 무시하고는 개자식들까지 보듬을 필요는 없는 거 아닌가? 인간이 아니어도 수인족도 있고, 엘프도 있는데?”
그렇다.
그의 경고를 무시하는 멀리 떨어진 아메리카 대륙의 몇몇 골치 아픈 쉘터에 대한 해결책을 찾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