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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157화 (157/183)

157화

<나락! 나락!>

힐베트로 에스코바르는 콜롬비아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딱히 마약과 연관이 없는 평범한 시민.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거르고 일터로 나가 일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와 뻗어버리는 소시민.

흔한 마약 카르텔에 속하지 못했을 정도로 평범하고, 온순한 삶을 살았다.

종말이 시작된 그 날.

그는 마찬가지로 평범한 일상의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분명 그래야 했다.

그린스킨을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자신의 회사 근처에 떨어진 그린스킨이 인간을 찢어서 먹는 모습을 본 힐베르토는 어떤 기시감 같은 것이 들었다.

그리고 그가 하는 일에 걸맞게 널린 육중한 공구를 이용해 이전까지 같이 일하는 동료를 게걸스럽게 찢어 먹던 그린스킨의 뚝배기를 깨버리고 각성했다.

각성한 힐베르토는 습관처럼 집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마주치는 그린스킨의 뚝배기를 깨기를 몇 번.

“아…….”

잔뜩 어질러진 좁고 낡은 집에 들어선 순간,

“이제 집이 너무 좁구나…….”

그는 자신이 변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거리로 나왔다. 등에는 공구로 쓰던 도끼와 망치, 쇠말뚝 같은 것을 담은 가방을 메고서.

그린스킨이 보이면, 죽인다.

상점이 보이면 들어가서 필요한 걸 챙긴다.

다시 그린스킨이 보이면 죽인다.

죽이고 죽인다.

그런 그의 앞에 콜롬비아하면 당연히 존재하는 마약 카르텔의 조직원이 나타난 건 어쩌면 운명이고 어쩌면 필연이었다.

“이봐. 애송이.”

“애송이? 나…말인가?”

“그래. 너. 조용히 따라와. 보스가 보자고 하신다.”

손에 AK소총을 들고 개조한 차량 위에는 달린 LWMMG 헤비머신건은 남자의 말이 권고나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라는 걸 온몸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멸망이 일어나고 나흘. 콜롬비아의 집마다 비상약보다 더 잘 구비되어 있는 총기가 그린스킨 앞에서 어떻게 작동했었는지를.

철컹.

“그건 무겁게 왜 들고 왔어? 휘두르기라도 하게?”

등에 메고 있던 공구 가방을 내려놓고 자신을 위협하고 있는 이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가방 속을 헤집는다.

“이게 적당하겠다.”

정글도인 마체테를 꺼내 몇 번 손에 쥐어 보고는,

“뭐해? 들어와.”

어쩔 줄 모르는 마약 갱단을 향해 그렇게 말하며 성큼 다가섰다.

움찔.

단순히 기백에 밀렸다거나 새롭게 나타난 각성자에 겁을 먹은 게 아니다. 갱들은 눈앞에 있는 목이 잔뜩 늘어난 티셔츠에 후줄근한 바지를 입은 이놈이 뭔가 다르다고 느꼈다. 그건 본능에서 오는 경고 같은 거였다.

거대한 호랑이를 동물원이 아니라, 산에서 마주했을 때 느껴질 법한 종(種)이 다르다는 느낌.

“한 놈은 살려두겠어. 안내가 필요하거든. 그래. 너, 네가 좋겠다. 운전대를 잡은 걸 보니 운전은 하는 모양이니.”

‘모양이―니.’라는 말이 길게 늘어지면서 순식간에 갱단의 목이 우수수 떨어진다.

“히, 히이이익?!!!”

힐베르토 에스코바르.

그의 고유 능력은 [시간 조작]의 위력이 발현된 순간이었다.

그가 집이 좁다고 중얼거린 이유.

그리고 자신이 달라졌다고 여긴 근본적인 원인.

그건 그에게는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자.”

앞서 말한 대로 운전할 사람만 남겨두고 모두 죽인 힐베르토는,

“흠? 사람을 죽여도 카르마 포인트를?”

사람을 죽임으로 자신이 강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것은,

“하긴. 이 나라에서는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콜롬비아에서는 그게 말이 안 되는 소리가 아니었다. 사람을 망치는 마약을 팔아 부를 쌓은 이들이 태반이니까.

익숙하다는 건 적응이 빠르다는 거고, 이런 세상에서 적응이 빠르다는 건 빠르게 강해진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그는 콜롬비아의 제2의 도시 메데인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힘을 키웠다. 휘하에 각성자를 거느리며 각성하지 못한 이들은 노예로 부려 먹었다.

익숙하게도 말이다.

한때 세계 마약 시장을 장악하고 호령하던 메데인 카르텔이 있던 도시 메데인이기에 노예처럼 부림을 당하는 사람들도 너무나 익숙하게 노예로 생활했고, 각성자들도 반항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뒤로 메데인은 계속 지옥이었다.

한 달, 두 달, 석 달이 지나고 그린스킨이 사라지고 좀비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걱정한 것보다 너무 약한 좀비에 실망한 힐베르토는,

“무료하네.”

삶이 무료해졌다. 무언가를 하고자 하면 할 수 있는 상황에 지루하고 질린 거다. 그런 그의 눈에 가이아 게시판이 들어온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왜 당연하냐고?

자, 예를 들어주지. 컴퓨터를 켰어. 주말에 아무 생각 없이 일어나서. 그랬는데 딱히 게임을 할 것도 아니고, 할 게 없어.

그럼 뭐부터 해?

그래. 크롬 열어서 유튜브부터 보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지. 그거랑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발견했다. 유토피아라는 존재에 대해서. 정확하게는 자신과 정반대에 서 있는 것 같은 이요한이라는 놈에 대해서.

멸망 전에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재산을 불린 남자였고, 주변에는 여인들이 가득하고, 멸망 이후에는 사람들을 모아 안전한 쉼터를 제공한다.

소설로 쓴다면 이요한은 주인공이고 힐베르토 자신은 빌런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그건 일종의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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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노예 교환할 사람? [작성자 ― 힐베르토 에스코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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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아 게시판에 자신 휘하의 노예 몇을 찍어 올렸다. 어디 한 번 그 잘나고 깨끗한 놈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고 싶었다.

충동적으로 벌인 일은 [경고]라는 글로 반응이 왔고, 힐베르토는 그 반응이 기꺼웠다. 키보드로 어그로를 끌었는데, 우르르 몰려들어 반응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반응이 무료하고 지루한 힐베트로의 삶에 흥미가 되었다.

그래서 계속 도발했다. 그랬더니 자신처럼 같이 도발하는 놈들이 나타났다. 영상이나 사진, 그리고 말하는 내용을 보니까 다 근방에 사는 놈들이다. 콜롬비아나 멕시코 혹은 브라질에 말이다.

‘그럼 그렇지.’

그런 놈들이 나타났을 때, 힐베르토는 자신이 ‘잘못된 존재’가 아니라는 위안을 받았다. 그래서 더 열렬히, 맹렬히, 이요한을 도발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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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중계] 지금 만나러 간다! 개자식들아! [작성자 ― 올리비아 오바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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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아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 보였다.

“응?”

설마. 진짜 오려고? 어떻게? 비행기 따위는 띄우지도 못할 텐데? 뜨는 순간 하늘을 가득 메운 눈탱이 악마가 몰려들어 엔진을 부숴버릴 거다.

“미친?!”

그런 마음에 영상을 클릭했는데, 진짜 하늘을 날고 있다. 실시간 영상 오른쪽에 여러 채팅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는데, 영상과 채팅만 본다면 멸망 전에 유행하던 인터넷 방송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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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중계] 지금 만나러 간다! 개자식들아! [작성자 ― 올리비아 오바테]

Benoit Cayrol: 엄청 빨라! 그런데 머리카락조차 흔들리지 않아? 뭘 타고 가는 거지?

Stanislas De Pas: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신기해.

Jules Sagot: 그런데 옆에 펄럭이는 하얀 걸 보면 날개가 보여!

Dominique Pinon: 이제 다 뒤졌다! 그 역겨운 새끼들!

Bruno Lemarchand: 나락! 나락!

Irene Paredes Hernández: 나락! 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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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

힐베르토가 보고 있는 걸 휘하 각성자라고 보지 않고 있을 리가 없다. 우르르 몰려오는 부하들의 행동에 짜증이 피어오른 건 어쩌면 그가 겁을 먹었다는 걸 감추기 위함일 지도 모른다.

“나도 알아!!”

“네?!”

“여기 나오는 영상을 보고 말하는 거 아니야?”

“영상이요?”

하마터면 엉뚱한 소리를 하는 부하의 머리를 터트릴 뻔했다. 그나마 머리가 돌아가는 놈이라서 밑에 두고 있는 놈이었는데.

“영상이 아니면 왜 이 난리야?”

“아! 보스! 좀비들이 이상합니다.”

“…걔들은 원래 이상해. 정상이었으면 인간을 파먹지 않는다고.”

“그렇긴 한데요. 그걸 감안해도 이상합니다.”

“어떻게 이상한데?”

“주변의 모든 좀비와 악마가 한쪽으로 이동 중입니다. 그것도 엄청 빠른 속도로요. 지금 쉘터 주변에 좀비 한 마리도 없어요.”

“응? 어느 쪽인데?”

“서, 서쪽입니다.”

서쪽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힐베르토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 소리……? 이거 뭐지?”

“네? 소리요? 무슨……?”

부하가 가리킨 방향. 서쪽. 거기서부터 아련하게 들려오는 비명과 무언가 찢어지는 소리. 그것은 힐베르토가 부하보다 훨씬 높은 랭크의 강자이기 때문에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그리고 부서지는 소리와 비명은 빠르게 점점 더 커졌다. 굳이 도플러 효과의 원리 따위는 몰라도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이 소란과 소리를 내는 존재가 쉘터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뭐야?”

그것도 엄청 빠르게.

“보, 보, 보스?!”

콰콰콰쾅―! 파아아앙!!

빠르게 이동하고 멈춘 후폭풍만으로도 좀비와 그린스킨을 막기 위해 세워 놓은 철조 구조물이 휘청거렸다.

“뭐야?! 어떤 새끼야?”

“나다 이 10새끼야.”

그들의 머리 위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농밀한 마력을 품고 있었다. 힐베르토가 그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을 때,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하늘을 가린 새하얀 무언가였다.

쿵―.

그리고 거기서 무언가 떨어져 내렸다.

“너냐?”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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