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멋은 중요하다쿤!>
올리비아는 경고를 무시한 이들을 체포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생중계로 전했다. 멸망 전의 세상이었거나, 그때의 상식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범죄자의 인권’ 어쩌고를 하면서 들고 일어났을 법한 장면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팔이나 다리가 잘리는 것?
그럴 수 있다.
그린스킨에 오독오독 씹히는 장면을 수도 없이 봤을 이들이 지금까지 생존한 생존자들이고, 각성자들이니까.
그러나 고기를 부위 별로 잘라 진공 포장을 하는 것처럼 기계적으로 처리해야 할 놈들을 잡아 사지를 자르고 불로 지지고 혀를 잘라냈다. 그런 행동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기계적으로 해서 오히려 더 무서웠다.
올리비아가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했음에도 이요한은 오히려 칭찬의 댓글을 남겼다. 왜일까?
그건 말 그대로 [경고]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요한과 유토피아는 한국이라는 동양의 작은 나라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 그 주변 권역, 그러니까 흔히 유라시아 대륙이라고 지칭하는 지역은 물론이고 러시아와 동남아에 속하는 쉘터에서는 최소한의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그만큼 이요한의 유토피아가 가진 힘을 체감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국가들은 이요한의 유토피아가 가진 힘을 짐작조차 못 했다. 그저 이요한이라는 각성자가 특이한 쉘터 계열 각성자라는 것과 기이할 정도로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는 게 그들이 느끼는 감상이었다.
그러니 이요한이 [경고]라는 말머리를 붙였음에도 시시덕거리면서 도발을 하거나, 그걸 흥미롭게 관찰하는 간 큰 짓을 벌이는 거다.
이번 올리비아의 실시간 중계는 단순히 그녀의 손속이 잔인하다거나 유토피아 소속 각성자가 비정하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니다.
영지 전력의 일부만으로도 콜롬비아에서 온갖 패악질을 부리는 각성자를 모두 잡혀 상반신만 남은 불구가 되어 컨테이너에 실렸다. 빌런을 실은 컨테이너는 설기의 몸에 묶였고, 놈들은 그런 식으로, 인간은커녕 가축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으며 이동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영지 소속 각성자는 아무도 뭐라고 하거나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없었다.
이요한을 좋아해서? 이요한을 믿어서? 이요한의 측근이기 때문에?
모두 다 아니다.
저들이 저런 취급을 받은 이유는 쉘터 내에서 발견한 잔혹한 참상 때문이다. 꼬챙이에 사람을 꽂아 전시한 것 약과에 불과했다.
글과 형언하지 못할 잔인한 짓을 벌이며 낄낄대던 놈들이 태반이었던 거다.
“잠깐만. 생존자가 몇 명이라고?”
“19,407명이라고 하네요.”
콜롬비아에서 카르마 포인트의 기준을 통과한 이들은 모두 설기의 등에 태웠다. 그렇게 했음에도 그 숫자는 2만이 넘지 않는단다.
웃기지 않나?
콜롬비아 전체에서 각성할 수 있는 사람, 그러니까 카르마 포인트의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이 고작 2만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이?
지옥 같은 곳에서 2만도 되지 않는 이들을 괴롭힌 건 오히려 각성자가 아니라, 같은 비각성자였다. 앞잡이 노릇을 해서 충성심을 증명해가며 지옥에서 삶을 연명해온 것이다.
“어휴.”
생존자를 괴롭혔던 각성자 중, 고유 능력이 특별하지 않아 필요 없는 연놈들과 앞잡이 노릇을 하며 악행을 말도 못 할 정도로 쌓은 비각성자를 죽이지 않고 콜롬비아에 버리고 왔다.
왜냐고? 고구마 좋아하는 거냐고?
무슨 말도 안 되는.
구황작물 중 으뜸은 감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고구마 따위. 고구마피자도 안 먹는다고. 피자의 근본은 포테이토 피자 아니면 페페로니 피자지!
아무튼, 쓰레기들을 콜롬비아에 버리고 온 이유는 전선의 분산 때문이었다. 쓰레기와 앞잡이만 남은 세상. 쉘터 각성자도 없다? 저들은 이제 살기 위해 하루하루가 지옥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다가 죽겠지.”
지옥 같은 하루를 살다가 처참하고 비참하게 죽어라.
이요한을 비롯한 유토피아 영지에서 그들에게 내리는 벌이다.
서로 모여서 힘을 합치면 어떻게 하냐고?
오히려 좋다.
힘을 합친 만큼 늘어난 인원이 있을 거고, 인원이 늘어나면 더 많은 적이 쳐들어올 테니, 그럼 더 큰 고난의 시간을 더 오래 감내하다가 뒈지는 거다.
지옥에서 삶을 스스로 늘린다? 오히려 바라던 바지.
“브라질이라고? 이제?”
“네. 이제 막 도착했네요.”
그런데 이요한은 가이아 게시판을 보지 않고 뭘 하고 있는 걸까? 무엇을 하길래 사나스 샤인스에게 질문하고 있는 걸까?
“그러니까 단순히 [광산]에 많이 있는 금속으로 만들면 안 된다쿤!”
“희귀 금속은 장비를 제작해야죠! 연금술로 후 처리를 하고, 마법으로 인챈트 하면 평범한 금속으로도 충분히 가치를 지닌다니까요?”
“그렇게 하면 멋이 없다쿤! 멋이!! 멋은 중요하다쿤!”
“아니! 이 미친 라쿤 새끼가?!”
“뭐?! 이익!! 너! 라쿤혐오주의 놈족이야?!”
“라쿤혐오주의는 무슨! 화폐에 멋이 왜 필요해! 실용적으로 동전을 찍어내면 되는 거잖아!!”
[화폐] 제작 때문에 회의 중이었다. 처음에는 분명히 괜찮은 분위기였다. 처음으로 소환한 라쿤 [장인]도 [화폐]라는 말에 흥미를 보였고, [연금술사]는 언제나 그렇듯 사람이 많이 모인 회의실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마법사]가 주도적으로 화폐의 필요성과 어떤 마법을 인챈트할 예정인지를 설명하면서 큰 의견 충돌 없이 흘러가던 회의였다.
이요한은 이때까지만 해도 올리비아의 영상에 댓글을 남길 정도로 올리비아의 영상에 집중하고 있었다.
“뭐요? 미스릴로 뭘 한다고요?”
“[화폐]라쿤! 미스릴을 첨가한다면 엄청난 화폐가 나올 거라쿤!”
문제는 저 [미스릴] 때문이다. [마법사]가 발작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미스릴]은 단순히 신기한 금속이라고 말할 게 아니니까.
특히나 [마법사]에게 [미스릴]은 그야말로 전가의 보도와 같은 금속이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인챈트에 사용하면 마력의 손실을 최소화해서 인챈트할 수 있고, [마법사]의 장비를 제작할 수도 있다.
반면 라쿤 [장인]의 의도도 아예 이해가 안 되는 수준인 건 아니다.
무려 카르마 포인트를 거래할 수 있는 화폐이니만큼, 어떠한 경우에라도 복제는 불가능하게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까 라쿤 [장인]은 이 영지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저러는 거다.
수인족 중에서도 작은 신장인 라쿤 [장인]과 이종족 중에서 가장 작은 신장인 놈(Gnome) 종족 [마법사]다. 작은 신장의 둘이 서로 멱살을 잡으며 으르렁거리는 모습은 딱히 위협적이지 않았지만,
“그만.”
저대로 둘 수는 없어서 일단 중재를 해야 했다.
“어머~.”
지금도 봐라. 올리비아를 대신해 옆에 앉아 여러 보좌를 하는 역할인 사나스 샤나인조차 멱살을 잡고 나름대로 진지하게 투덕거리는 둘의 모습이 그저 귀엽게만 여길 뿐이다.
씩씩거리며 서로를 노려보던 둘이 떨어져 각자 자리에 앉았을 때, 입을 열었다.
“라쿤 [장인]은 말이 조금 과하긴 했어. [미스릴]을 모든 [화폐]에 넣을 수는 없지.”
“끙…….”
“흥!”
라쿤의 꼬리가 힘없이 축 늘어지고, 놈 [마법사]의 작은 콧대가 하늘로 치솟는다. 어쩜 저렇게 알기 쉬운지.
“하지만 이해가 아예 안 되는 건 아니야. 어떠한 경우라도 복제나 위조의 문제가 없게 하려는 거잖아?”
“마, 맞다쿤!”
“흠.”
내 동의에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라쿤의 꼬리가 다시금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럼 이것부터 정하자. [화폐]의 기본 단위는 카르마 포인트 몇으로 할 거지? 그리고 업그레이드 단위는?”
“…….”
“…….”
둘은 생각에 잠겼는지 말이 없었다.
“몇 단계의 [화폐]를 만들 건지도 고민하고, 그리고 가장 높은 단위의 [화폐]를 얼마로 할지 역시도 고민해봐. 내 생각에는 가장 높은 단위로 100만 정도가 어떨까 싶어. 지구에 있는 각성자가 블루(Blue) 랭크에 스탯 하나를 올리는데 100만이 들거든.”
“100만이라쿤?”
“100만 카르마 포인트라. 허허.”
“그렇게 하면 100만 카르마 포인트 [화폐]에 미스릴을 미량 넣으면 되겠지. [화폐] 본연의 가치뿐만 아니라, 미스릴의 가치 때문에라도 위조 따위 할 수 없게.”
몇 번의 의견이 오간 끝에 최소 단위를 1천으로 책정했다. 그리고 다음이 1만, 10만, 100만.
[화폐]는 4단계로 구성되었고, 각각 [아이언], [실버], [골드], [미스릴] 합금으로 제작하기로 합의했고, 이것을 [행정청]에서 관리하고 감독하기로 합의했다.
“좋다쿤!”
“좋습니다.”
라쿤과 놈, 둘이 마치 극적 타결을 이룬 정상회담의 주최자처럼 진지한 얼굴로 손을 맞잡았는데,
“풉! 귀여워…….”
체형과 외모에서 오는 차이 때문에 아이들이 부모를 따라 하는 모양새 같았다.
“어? 요한님. 벌써 끝났나 봐요.”
“뭐가? 회의가?”
“아니요. 쓰레기 청소요.”
“…응? 그게 그렇게 빨리 끝날 수 있나?”
남미(南美), 남미, 대수롭지 않게 말하지만, 그 넓이는 어마어마하다. 아무리 설기에 탑승하고 있더라도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다 돌 수 있는 넓이가 아니다.
도망친 놈들도 찾아야 하고.
“어? 아! 올리비아가 남긴 링크가 있어요. 요한님.”
사나스의 말에 이요한이 가이아 게시판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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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이거 뭐야? 말을 탄 놈들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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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에는 고유 능력으로 [원견] 계열이 존재하는지 점점 빠르게 화면이 확대되더니 멀리서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는 유령마를 탄 기사들을 비추고 있었다.
엄청 멀리서 관찰한 건지 상당히 많이 확대했음에도 사람이 작게 보였는데. 쉘터로 짐작되는 권역에 기사들이,
“응? 쉘터 안으로 진입했어?”
무지성으로 돌진했다. 말 그대로 쉘터 권역 ‘안’으로 쳐들어갔다.
이요한의 [영지]와 달리 보통의 쉘터는 쉘터 권역 안에서 아군은 이로운 효과를 적으로 규정된 존재는 상당한 페널티를 받는다. 아마도 절반 정도의 힘이 줄어든다고 보면 된다.
“허어?”
그런데 고작해야 열 기 정도의 기사가 쉘터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것도 모자라 생존자를 압살하고 있다.
“저게 뭐야?”
데스 나이트라고 하기에는 생김새도 이상하고, 유황불을 연상케 하는 불쾌한 노란색 오라도 존재하고, 무엇보다 유령마를 탄 이들의 무기가 하나 같이 제각각이라는 거다.
데스 나이트처럼 검 하나만 들고 있는 게 아니라, 심지어 도리깨와 닮은 프레일 같은 무기에 낫을 들고 있는 놈도 있다.
“어라?”
그리고 쉘터의 생존자를 다 쓸어버린 놈들이 하는 행동도 기이하다. 놈이이 떠나간 자리에 꿈틀대는 것은 생존자가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쉘터를 나타내는 반투명한 반구는 사라졌지만, 모두 죽이지 않았다는 거다.
‘왜? 아니, 어떻게?’
이요한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언데드가 생명력의 잔존 여부를 놓친다고?”
그럴 리가. 작가 동생이 치킨 냄새를 지나친다는 것만큼 헛소리다. 그리고 영상의 주인도 같은 생각을 한 건지, 아니면 호기심에선지 막 움직이려는 순간,
“허?”
쉘터가 있던 곳을 향해 존비들이 무자비하게 들이닥친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져 아직 죽지 않은 인간을 먹어 치운다.
하급 언데드인 특수 좀비들이 각성자를 먹어 치우자, 스타크래프트의 저그처럼 기괴한 살덩어리가 꼬치처럼 그들을 뒤덮는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이것 때문에 올리비아는 일단 후퇴하는 것 같아요.”
“그건 잘했어. 근처도 가지 말라고 해.”
“네. 요한님.”
“어?! 이 사람들이 영지로 복귀하는 길목에 자기 쉘터가 있다고 들려서 자신들도 태워달라는데요?”
“…올리비아에게 알아서 하라고 해. 이제 생존자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되니까.”
“네~.”
그리고 허락을 하기 무섭게 자신의 쉘터도 방문해달라는 요청이 줄을 이으면서 올리비아가 영지로 복귀하기까지 사흘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