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합리적이고 충성심 가득한 논리>
황천 기사단장은 지구라는 차원에 온 이후로 어느 때보다 집중하고 사소한 정보도 그냥 흘려듣지 않았다.
그런 그의 귀에 ‘유토피아’라는 광오한 이름을 가진 영지에 대한 소식이 들려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허? 유토피아? 심연의 그 괴물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곳이 낙원이거늘……. 감히 인간 따위가?”
그는 낙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땅을 본 적이 있다. 심연에서.
심연(深淵)과 낙원(樂園).
상반되는 이름을 가진 이곳이 어울릴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심연에 있는 그것은 낙원이 아니었다. 낙원 따위로 불릴 수 없는 공간이었다.
다만 그것이 심연에 사는 지독하고 악독한 존재들에게는 어느 정도 낙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지독한 악의와 악령, 원념이 뒤섞여 끊임없이 휘몰아치는 마이너스 에너지의 근원.
언데드인 자신조차도 그 안에 들어가면 존재를 상실할 것 같은 곳이었다.
“그러니 재미있겠구나. 어디 발버둥을 쳐보거라.”
지옥의 유황불을 닮은 샛노란 안광이 폭사하듯이 터져 나왔다가 사라졌다. 그러는 사이에도 분대 단위로 나눈 황천 기사단에 포함시킨 리치에게서 각 분대의 전투 상황과 그린스킨으로 제작한 스켈레톤의 진화 진행 상황이 쉬지 않고 보고되고 있었다.
[여기는 황천 14분대. 인간 마을 발견. 처리 후 보고하겠음.]
마침 그의 귀를 간지럽히는 보고를 들으면서 히죽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실시간으로 무너지고 죽어 가는 인간 세력을 보면서 자신의 계획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상황이 그에게 더 없는 만족감을 충족시켜주었다.
언데드가 되면 자극과 감각에 무뎌진다. 그런 언데드에게 이렇게 여러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건 그리 많지 않다. 그것도 이렇게 긍정적인 쾌감에 가까운 감정을 말이다.
[황천 14분대. 인간 처리 완료.]
무심코 보고를 듣던 황천 기사단장의 손이 멈춘 것은 그 보고가 들어왔을 때였다.
“응?”
어딘가 보고 내용이 미묘하게 달랐다는 걸 느꼈다. 계속해서 같은 보고를 듣다 보니 미세한 차이를 저절로 알게 되었달까?
‘리치의 개성인가? 하여튼 주문쟁이들은. 쯧.’
황천 기사단장은 쉼 없이 손을 놀리면서 그렇게 속으로 불평하고 말았다.
‘아니지.’
그렇게 무시했어야 했다. 그가 이번 작전에 작은 허점도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다면.
“다시 보고하라고 해. 14분대.”
“알겠습니다. 14분대. 다시 보고하라.”
[…….]
그러나 들려오는 보고는 없었다. 고요함. 그 불편한 고요함에 정신없이 보고받던 리치들의 손이 멈췄다. 소란스럽던 공간에 고요함이 찾아오자 그 차이로 인해 더 불편하고 섬뜩한 고요가 황천 기사단장과 리치 사이에 흐른다.
“다시 불러봐.”
황천 기사단장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이 문장에서 눈치 빠른 사람을 알았겠지만, 사실 그는 당황하지 않은 ‘척’ 하는 중이었다.
‘일개 분대는 9명에서 10명의 황천 기사가 함께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리치까지 붙었지. 더불어 해골마도 타고 있어. 그런데 리치가 보고조차 못하고 죽었다?’
톡―, 톡톡. 톡―, 톡톡.
황량한 벌판에 차려진 커다란 누더기 천막 안. 그 안을 채운 누군가의 뼈로 만든 긴 테이블 위를 황천 기사단장이 규칙적으로 두드리는 소리가 불편하게 자리 잡은 침묵을 몰아내려고 하고 있었다.
“다른 분대에 상황 전파하고, 현 위치에서 대기하라고 해. 그리고 현재 분대 상황 보고하라고 해.”
“네.”
긴장하며 대기하던 리치가 서둘러 각 분대별로 마법 통신을 거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리치 정도 되면 웬만한 차원에서는 국가적으로 나서서 토벌해야 하는 고위 언데드다. 강력한 파괴력과 기괴한 효과를 지닌 흑마법을 숨을 쉬는 것처럼 다루는 전투 마법사이며,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니기에 물리력이 담긴 공격에도 저항력이 있는 존재니까.
그런 리치조차 지금은 숙련된 통신병 신세다. 하지만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할 언데드는 여기 없다. 각자 정말 생전 시절을 포함해 가장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보고는?”
“현재 13, 14, 17분대 연락 두절입니다.”
“뭐? 세 개나?”
어느새 세 개의 분대가 사라졌다. 숫자로 치면 황천 기사 서른과 리치 셋이다.
“…다들 다시 이쪽으로 집결시켜.”
“알겠습니다.”
“가까이 있는 이들끼리 서로 합류해서 오라고 전해. 아니다. 분대별로 위치 파악되지?”
“네. 위치 모두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럼 세 개 분대씩 집결하게 지정해줘.”
“알겠습니다.”
리치가 막 대답했을 무렵, 천막이 펄럭 열리더니 리치 마법 병단의 단장인 리치 군단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세 개 분대가 당했어.”
“당해요? 분대라고 해도 데스나이트가 최소 열 기에 리치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뒤에 달고 다니는 스켈레톤 무리도 그린스킨의 뼈로 살아 있을 때 만든 특별한 언데드라서 그것만도 무시하지 못할 전력일 텐데?”
리치 군단장의 말이 모두 맞다. 분대라고 해도 그 전력은 절대 인간이 쉽게 사냥할 수 있는 전력이 아니다.
“뭐에 당했답니까?”
“그게 문제야. 연락이 없다는 거. 셋이나 되는 분대가 몰살당했는데, 연락이 없어.”
“…네?”
그리고 애써 무시하고 있었지만, 황천 기사단장은 인정하기로 했다.
“유토피아. 유토피아야.”
현재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전력을 지닌 유토피아라는 영지에서 손을 쓴 것을.
“낙원이요? 갑자기 낙원은 왜?”
“군주께서 원하시는 그 땅을 여기 인간들이 그리 부른다더군.”
“허…….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검은 안광을 번쩍이는 리치 군단장이었지만,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무슨 방법을 썼을 것 같은가? 내가 지구에 와서 놀란 게 여기는 정말 정밀한 지도가 있더군. 그걸 기준으로 파악했을 때, 유토피아와 여기는 행성의 완전 반대편이야. 엄청 멀지. 그런데 어제 우리가 일을 시작했는데, 바로 다음 날인 오늘 이렇게 대응을 나왔다?”
“음. 빠르게 소식을 전달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해도 이상할 정도로 빠르군요.”
“공간 이동은 어때?”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 인간들의 마법 수준이 어떤지 전혀 파악이 안 됩니다. 마법과 비슷한 힘을 다루는 놈도 있는 것 같은데, 체계조차 잡히지 않은 상태로 쓰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공간 이동에 가능성을 두자면 2할 미만입니다.”
“왜?”
“그 정도 마력의 유동을 함께 한 리치가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습니다. 가뜩이나 마력에 민감한 게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공간 이동을 할 정도의 마력이라면 리치는 보이지 않는 구름 위로 이동했다고 해도 뭔가를 느꼈을 겁니다. 그리고 보고를 했겠죠. 출정 전에 가장 강조하신 일이니.”
“공간 이동이 아니라면……. 이 행성의 특유 문물인 하늘을 나는 기계를 탄 걸까? 하지만 그건 불가능할 텐데? 하늘에는 비홀더와 블러드 배트에 레이스도 떠다니잖아?”
“제가 얼핏 살펴보니 그 기계라는 것이 생각보다 복잡하더군요. 전차처럼 그냥 무턱대고 달린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작은 충격에서 문제가 생기는 위험하고, 무식한 시스템입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비행기에 대해서 리치 군단장의 평가가 신랄했지만, 그렇게 대화를 이어갈수록 그들은 도대체 무엇이 자신의 분대를 처리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자네라면 얼마나 걸릴 것 같나? 여기서 유토피아까지 날아간다면? 마법으로 말일세. 거리는 대략 넉넉하게 7,200(약 12,000km)마크 정도라고 치고.”
“…플라이 마법은 느리니까 거론할 필요도 없겠군요. 비행 마법에 몇 가지 추가적인 기능을 섞는다면 10시간은 걸리겠군요.”
리치 군단장은 한 시간에 1,200km를 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음속이 시속으로 환산하면 대략 1,119km/h 정도니까. 음속에 준하는 속도로 난다는 거다.
언뜻 이해되는 게 그는 무려 인간으로 치면 네이비(Navy) 랭크에 준하는 강자였다. 그것도 마법으로.
“물론 무리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그렇습니다. 무리하면 더 빠르게 이동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군. 난 더 느려. 펜덤시티드를 타고 달린다고 해도.”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미궁 속으로 빠지는 느낌에 황천 기사단장은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저 안에서 고민만 하다가는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파괴할 것만 같았기에.
“후우.”
“제가 준비하는 것도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조금 느리더라도 신중하게 진행하시지요.”
리치 마법 군단장의 말에도 황천 기사단장은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
‘뭐지? 왜 이러는 걸까?’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답답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본인의 상태에 황천 기사단장은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래.”
나중에 그는 그것이 황천 기사단장으로 전장에서 오래 구른 그의 본능이 보내는 경고라는 걸 알게 됐지만, 이 시기에 그는 그걸 무시했다.
대신에,
“어비스 존 활성화는 언제 끝날 것 같아?”
더 철저하게 준비에 몰두하기로 했다.
어비스 존(Abyss Zone).
여기서 어비스는 마력 랭크가 아니라, 심연을 뜻한다.
그러고 보면 숫자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리치 마법 병단에 소속된 리치의 숫자는 109마리. 그런데 각 분대에 딸려 보낸 리치는 고작 한 마리씩 밖에 되지 않는다. 서른 개의 분대니까 총 서른 마리만 출정을 나간 셈이다.
그럼 남은 79마리는? 황천 기사단장에게 다섯 마리의 리치가 배속되었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70여 마리는 뭘 하는 걸까?
바로 지금 언급한 이것.
어비스 존, 심연의 늪이라는 차원 규모의 저주 마법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이 저주 마법은 어떻게 보면 심플하다. 심연의 추방자 차원의 모성인 누더기 행성을 만들 때 리치 군주가 발현한 마법과 같은 거다. 다만 그때 리치 군주는 혼자서 즉시 발현했고, 지금은 아크 리치 한 마리에 리치 70여 마리가 달라붙어서 며칠을 끙끙 앓아가며 발현한다는 게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조차 쉽지 않아 보였다.
“빠르면 열흘이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열흘. 열흘이라……. 이번에 분대에 파견한 리치들이 모두 복귀해서 달라붙는다면?”
“그래도 열흘입니다. 이건 마법사가 많다고 빨라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얼마나 오차 없이 정교하게 진을 구성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늦어. 아무래도 그러면 늦을 것 같아.”
“하지만 이건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서두르다가 잘못되면 적과 싸워보지도 못하고 전멸할 수도 있는 그런 마법입니다.”
“알아. 아니까 강행하지 않는 거지. 어쩐다……?”
황천 기사단장은 혼자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가 참가한 수많은 차원 전쟁에서 이런 경우가 아주 없는 일은 아니었다. 심심치 않게 기발한 방법으로 황천 기사단을 척살하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황천 기사단장이 상황을 벗어난 것은,
“압도적인 힘이었어.”
언제나와 같이 무력이었다.
“이번에 우리 군주님께서 카르마를 상당히 많이 쓰셨지?”
“네. 아직 전쟁 초기입니다. 100일도 지나지 않았고요. 그런데 우리 리치 군단에 황천 기사단이라니.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카르마를 사용하셨을 겁니다.”
“…그럼 여기서 더 쓰자고 말씀드리면 날 죽이실까?”
“예?!”
리치 군단장은 정신 나간 놈을 보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해골 얼굴임에도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질 만큼― 황천 기사단장을 쳐다봤다.
“어쩌시려고요?”
“만약에 적의 공격에……. 아니지. 만약이 아니라, 무조건이라고 봐야지. 그래. 인정. 적의 무력 부대가 분대 세 개를 순식간에 끔살할 정도이고, 이게 전력이 아니라면? 멸절도 불러야 하지 않을까?”
“예에에에?!!”
조금 전에 미친놈을 보던 얼굴이었다면, 지금은 동네 바보를 보는 얼굴로 황천 기사단장을 바라봤다. 마법사 출신인 리치 군단장의 입장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좋아. 주문쟁이가 이해하기 편하게 설명해 주지. 차라리 애초에 카르마를 적게 들였다면 모를까, 상당한 양의 카르마를 쏟아부었는데? 여기서 어중간하게 멈춘다? 군주님이 그런 성격도 아니시지만, 이건 군주님의 성격과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더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야. 우린 이미 매몰 비용의 함정에 빠진 상황이라고 보면 돼. 이해했어?”
“그렇긴 하지만……. 적을 너무 고평가하시는 것 아닙니까?”
“저평가해서 뒈지는 것보다 차라리 고평가해서 카르마 좀 더 쓰는 게 훨씬 나. 군주께서 이 행성을 누더기 행성으로 삼으신다고 하셨으니, 투자한다고 생각하면 되고.”
“뭐, 다 알겠습니다. 이해도 했고요. 그런데 어떻게 설득하실 겁니까?”
“…합리적이고 충성심 가득한 논리?”
“아, 예.”
충성심이 가득한데 합리적이라니? 합리적이라는 말과 감성적인 영역의 극치인 충성심이 어울리나? 마법사인 그로서는 말이 안 되는 무식한 소리였다.
그러나,
“환영하오! 선배들!”
“미친. 이게 된다고?”
리치 군단장의 예상과 다르게 ‘합리적이고 충성심 가득한 논리’라는 뒤죽박죽 엉망진창인 모순적인 설득이 통했다는 소리였다. 상식이 파괴당한 느낌에 리치 군단장의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너……. 어쩌자고.”
“무조건 성공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군주님의 손에 우리가 소멸할 게야.”
지구에 강림한 아크 리치 셋과 데스나이트 로드 둘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획한 일을 진행하기 위해 서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