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20억만 태우면 돼.>
가이아 게시판으로 전한 공지는 현존하는 각성자들이 인류애를 발휘해서 가장 상위에 노출될 수 있게 좋아요를 눌러주고 있었다.
이게 무슨 농담 같은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 그렇다. 좋아요를 많이 받으면 게시판 최상단에 노출된다. 좋아요 숫자만큼의 시간 동안.
그러니까 좋아요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상단에 노출되는 시간도 길어진다는 뜻이다. 생존한 이들이 한 마음으로 아메리카 대륙 곳곳 남은 생존자들이 내가 전한 공지를 보길 원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차라리 내가 동행할 걸 그랬어. 젠장.”
이번에는 영지 소속 각성자가 한 명도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식을 실시간으로 알 수가 없었다. 그게 무척 답답했다. 초조하고.
“주인……. 아니, 반려.”
“응.”
엘라와 소피아가 옆에 딱 붙어 있다. 그들뿐만 아니라, 지의사들도 오늘은 굳이 어딜 나가지 않고 내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나만큼이나 저들도 불안해 하고 있다는 거고, 그렇다는 건 이번에 출정을 나간 [엘븐나이츠]와 조인족 족장인 녹투오스가 어느새 우리에게는 동료 혹은 그 이상의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다.
“괜찮을 거예요. 실피드가 따라갔으니까요.”
“음? 정말? 언제?”
실피드. 바람의 정령왕이다.
“아니. 그래도 괜찮은 거야? 확실해? 무리하는 거 아니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현재 엘라의 상태가 떠올라 또 호들갑을 떨게 된다.
“정말 괜찮아요.”
“그래. 당신이 괜찮다고 하니까. 믿을게.”
“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사소한 것 하나에도 발그레 볼을 붉히며 웃는 모습에 잠시나마 불안함이 날아가는 걸 느꼈다.
“실프드에게 뭔가 특별한 연락은 없어?”
“네. 실피드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 보낸 거니까요. 아직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 보면 문제는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다시 기다림이 이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영지 안에는 평소와 다르게 적막이 점차 그 덩치를 키워나갔다. [내성]에서 시작된 고요함이 영지 끝까지.
그리고 그 적막함에 목이 졸린 것처럼 고통스러울 때 쯤,
“와요!”
멀리서 빠르게 가까워지는 하얀색 점이 있었다.
“온다!”
그리고 각자 신체 랭크에 따라서 시간 차이를 두고 설기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오빠! 왔어요! 왔어!”
유다연이 난리를 치는 사이에 벌써 성큼 다가온 설기가 영지의 성문 밖에 착륙했다. 설기 위에 웅크리고 있던 생존자들이 조심스럽게 설기 꼬리를 통해 미끄럼틀을 타는 것처럼 땅으로 내려서기 시작했고, [엘븐나이츠]가 땅의 정령으로 계단을 만들어주자 그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졌다.
어느새 설기의 등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되는 순간,
“먀야.”
설기는 마치 그동안의 노동에 대한 보상이라는 듯이 순식간에 작아져 작은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와 내 품에 안착했다. 그리고 팔 위에서 식빵을 말고서는 눈을 감았다.
“고생했어. 설기야.”
“먀…….”
[네에…….]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지만, 설기는 그냥 사람만 태우고 날아온 게 아니라 전투에도 참여했다고 하니 지칠 법도 했다.
그렇게 수고한 설기를 쓰다듬어주고 있을 때, 이번 일에서 가장 수고한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생했……?”
딱딱하게 굳은 안색으로 성벽 위로 올라온 이들을 대표해서,
“영주님.”
마기스테르가 다가와 입을 열었다. 이번 원정에서 이룬 일과 목격한 것들을.
“최고위 언데드가 일곱?”
“그렇습니다.”
그리고 설명이 끝났을 때, 흐름이 변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그것은 어느 경계를 지나는 순간부터 역한 기름 냄새가 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다는 건 네이비 랭크가 일곱이라는 뜻인가?”
“…맞습니다. 무엇보다 그것들의 나이가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서 잘못하면 네이비 극에 이른 존재와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놈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음.”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기(魔氣)와 마력(魔力)의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마기와 마력은 서로 비슷한 일을 한다. 이적, 기적, 이능과 같은 일을 함에 있어서 연료가 되는 힘이다. 불을 일으키고, 산을 무너뜨리고, 뼈와 근육이 가진 힘 이상의 힘을 내는 것.
다만 둘의 차이는 태생에서 생겨난다.
마기는 심연에서 비롯된 힘이다. 그리고 심연이란 기본적으로 악의와 저열함이 가득한 곳이고.
마력은 자연에서 태어난 자연스러운 힘이다.
그렇기에 마력은 다변하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산을 부수는 검강을 일으킬 수도 있고, 산을 만드는 생명력을 불러올 수 있다.
내 영지만 해도 성벽부터 내성까지 모든 것이 마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거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힘이 마력이다.
반면 마기는 생성과 창조 같은 건 할 수 없다. 다변적이지도 않다. 다만 마기는 파괴적이다. 같은 네이비 랭크라고 해도 마기를 다루는 존재가 초입이라면, 네이비 극에 이른 존재와 막상막하로 싸울 수 있다.
“음. 그정도면 이전에 나타난 놈과 비교해서 어때? 그린스킨의 황족 말이야.”
“신체 랭크는 그놈이 네이비 초입 정도일 겁니다. 다만 마기는 블루 랭크일 거고요. 문제는 권능입니다. 어떤 권능이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그래도 한 마리로는 최고위 언데드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럼 권능을 지녔다는 거야?”
“언데드가 지랄 맞은 이유가 그겁니다.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이 제한하는 기준인 권능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리하르콘] 등급의 [차원 용병]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리치 군주를 제외한 언데드 중, 권능을 다루는 존재는 둘 뿐입니다.”
“둘? 고작 둘이라고?”
“네. ‘최초’의 아크 리치 데이몬, ‘절망’의 어비스 나이트 오네로. 리치 군주의 최측근이자 그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흠.”
들어본 적이 없는 존재들이다. 즉, 회귀 전에는 지구에 등장할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는 뜻일 거다.
“저 둘은 웬만해서는 리치 군주 곁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치 군주의 차원이 그린스킨 차원과 대등하거나 더 강한 이유는 그 휘하의 병력이 언데드이기 때문입니다. 권능은 큰 힘을 지녔지만, ‘불사’에 가까운 언데드에게는 그 힘이 상당히 반감되거나 먹히지 않습니다.”
“언데드라서?”
“그렇습니다. 조사를 한 [오리하르콘] 등급의 [차원 용병]이 평하기를, ‘권능으로 최고위 언데드를 상대하는 건, 칼로 물을 베는 것과 같다.’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골치 아픈 존재라는 뜻이지?”
“그렇습니다.”
언데드는 그만큼 골치 아픈 존재들이라는 뜻이다.
“신성력은?”
“신성력과 언데드가 사용하는 마기 혹은 사기는 엄밀히 따지면 서로가 서로에게 상성입니다.”
“흠.”
그러면서 나는 소피아를 바라봤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이겨요.”
그리고 이내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는 그녀를.
“하긴.”
그리고 나 역시도 그녀의 확신을 믿었다. 본래 소피아의 랭크는 네이비 극이어야 한다. 네이비 랭크에 모든 스탯이 99인 상태.
하지만 몇 번이나 언급했다시피 [문을 여는 열쇠]는 그 벽을 허물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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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여는 열쇠[Rank: G → B]
차원 곳곳에 여러 이유로 몸을 감추고 있는 존재를 소환할 때마다 가장 적합한 통로를 연결하고 최적의 문을 열고 닫습니다.
따라서 소환에 필요한 비용은 절감되고, 소환된 존재의 가치는 상승합니다.
1. 소환 비용 50(▲15)% 감소.
2. 소환 개체의 능력 30(▲10)% 증폭.
3. 소환 개체와 소환자의 상호작용 25(▲10)%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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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겠지만, 개체의 능력 30% 증폭의 영향을 소피아도 받고 있다. 영지 랭크인 블루보다 한 단계 위인 네이비가 아니라, 그녀는 현재 바이올렛(Violet) 랭크에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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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방랑자 정보>
1. 이름(Name): 소피아 로렌(Sophia Loren)
2. 종족(Tribe): 인간(Human)
3. 소속(Clan): None
4. 직업(Class): 성녀(Saintess)
5. 신체(Status)
V등급
[근력 9] [민첩 9] [체력 9] [내구 9] [마력 9]
[신성 9] [신앙 9]
〈고유 능력〉
1. 기적 [Rank: Violet]
2. 강신 [Rank: Vio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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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래도 조금 불안하지?”
현재 바이올렛 랭크에 오른 소피아지만, 문제는 그녀의 랭크가 바이올렛 초입이라는 거다. 30% 증가가 아니라, 증폭이라는 조건이 붙었음에도 바이올렛 랭크의 스탯이 10을 넘지 못했다.
“어디 보자. 지금 남아 있는 카르마 포인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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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자 정보>
1. 이름(Name): 이요한
2. 칭호(Title): [지구가 도와주는] [장비 전문가] [마스터]
2. 국가(Nation): 대한민국
3. 소속(Clan): 유토피아
4. 직업(Class): 영주(領主)
5. 카르마(Karma)
[선업(Plus Karma) 61,000,900]
[악업(Minus Karma) 0]
[특수 카르마 포인트 2,609,901,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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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특수 카르마 포인트를 포함해서 26억 정도가 있다. 엄청 많아 보이지만, 이걸로 블루 랭크에 해금된 건물 하나조차 업그레이드 하지 못한다.
‘75억이었지. 업그레이드 하는 비용만.’
미쳐버린 인플레이션에 불평할 힘도 없었다.
‘아니, 그런데 엄밀히 따지면 영지 건물도 소환하는 거 아니야?’
이렇게 따져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더욱이 [연구원]은 [문을 여는 열쇠]의 효과도 받지 않았다. 무조건 500만이다.
“영주님?”
“흠흠.”
잠시 이야기가 옆으로 빠졌네. 카르마 포인트만 연관되면 이상하게 할 말이 많아진다니까?
“26억.”
“허업?!”
카르마 포인트의 가치를 알고 있는 녹투오스는 기겁하는 반면,
“음.”
그 가치에 관심이 없는 마기스테르는 그것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궁금해 했다.
“엘라. 소피아. 내가 네이비 랭크로 올라가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음?”
“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강해져서 [영지] 랭크 자체를 끌어올리는 거다.
“그러실 수 있어요? 영주님?”
“음. 응.”
블루 랭크에서 스탯 하나를 올리는 데 얼마가 필요할까?
신체 스탯은 100만. 특수 스탯은 500만이다.
나는 특수 스탯이 3개다.
그러니까 모든 스탯을 1씩 상승시키면 정확하게 2000만이 들어간다.
그렇게 100개를 올리면? 딱 20억이 필요하다. 20억 카르마 포인트가.
“20억만 태우면 돼.”
“허억!? 이, 이, 이십억!!”
그 어마어마한 수치에 대해서 ‘만’이라고 붙인 게 놀라웠을까? 아니면 태운다는 말이 그를 충격에 빠트렸을까? 녹투오스는 선 채로 눈을 까집고 기절했다.